하동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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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있을 때쯤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았다. 할아버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녁에 인기척이 느껴져서 깼지만 여느 날과 같이 할아버지의 작은 등에서 안도감과 평온함을 느끼고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부터 지금까지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말 그대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평소라면 잘 내려오지 않는 산 중턱 아래까지 내려가서 할아버지를 애타게 찾았다. 그때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우리 셋은 동시에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등산하러 오신 중년의 아저씨들뿐이었고 그들은 놀라 우리를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그 순간 방기욱은 등산객 중 한 명에게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안 돼!
사람들 뒤에 숨어서 담배에 불을 붙이던 아저씨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바삭하게 잘 구워진 고엽 위로 툭 하고 반동이 일은 담배 한 개가 그 아저씨의 발에 무참히 밟혔다.
-당신 미쳤어? 가을에 등산하면서 담배는 두고 오는 게 상식이지!
-너야말로 미쳤어?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젊은 녀석이!
-사람 다 죽일 거야? 산불 나면 산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 전부 죽어. 살인자가 되는 거라고.
방기욱은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말했다. 그의 말투는 다듬어지지 않았고 강렬했지만 난 그를 말리지 않았다. 민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사실 그는 전과 달리 방기욱의 어떤 행동도 특별히 막으려고 한다거나 의미를 싣지 않았다.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이전의 그와는 달랐다. 방기욱의 말을 들은 등산객 단체는 화를 내는 한 남자를 말리면서 눈치껏 하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할아버지를 찾기 시작했다.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노을과 단풍이 마치 지구의 종말이라도 알리듯 온 세상을 새빨갛게 칠하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민우의 얼굴도 태양에 비춰 노랗게 물들었다. 방기욱의 뒷모습도 주황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 저거 산불 아니야?
연기는 바람에 의해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민우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연기는 점점 검게 변하더니 그 크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방기욱은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소리쳤다. 아마 연기의 반대 방향으로 피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방기욱은 우리 셋 중 가장 이 산을 잘 알았다. 나와 민우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아버지와 함께 보냈고, 함께 산을 익혔다. 그를 믿어야 한다는 수많은 이유들을 만들어가며 그의 뒤를 따라 달렸다. 도심에서 달릴 때보다 몇 배는 더 좋아진 체력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달리고 달리면서 숨이 일정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멈춰야만 했다. 내가 멈추자 앞서 달리고 있던 민우와 방기욱이 뒤를 돌아 날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도 아직 산속에 계실 거야. 같이 나가야 해. 미안. 너희 먼저 나가.
난 그렇게 말하고 반대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불쑥 방기욱이 튀어나왔다.
-하여간 혼자 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도 계속 까먹지.
-주림이는 그런 애지.
민우도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난 작게 미소를 띠고 할아버지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방기욱이 할아버지가 있을 만한 곳은 이미 다 둘러봤는데 그곳에 없었다고 말했다.
-동선이 엇갈려서 만나지 못한 걸지도 몰라. 다시 한번 가보자.
내 말에 민우와 방기욱은 고개를 끄덕이고 흩어져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역시나 어느 곳에도 할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난 더욱 조급해졌다.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이건 할아버지와 잠깐 멀어지고, 헤어지고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영영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는 건, 그런 건 생각도 해보지 못한 좌절감이었다. 난 지면에 튀어나와 있던 나뭇가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나를 간지럽히는 낙엽들 속으로 영영 파묻히고 싶었다. 따듯하고 푹신하지 않아도, 거칠고 따끔거려도 그 가벼운 무게감만이 내게 닿아있다는 안도감에 영영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난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이 한강만큼 가득 흘러서 이 산불을 전부 덮어버릴 수만 있다면 좋을 걸.
-위험해!
그때 잊고 있던 현실감각을 깨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방기욱이 나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내가 누워있던 자리 위에 불이 붙은 나무가 쓰러졌다. 방기욱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위험하다며 내려가자고 했다. 그때 저 멀리서 고개를 저으며 다가오는 민우도 보였다. 아아. 왜 자꾸 세상은 내게 동아줄을 내려주고는 다시 빼앗아가는 거지. 신이 너무 원통해서 가슴을 치고 또 쳤다. 그리고 흘러나온 눈물을 닦았다. 흐르는 눈물에 앞을 보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것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난 산을 내려가며 바닥에 떨어진 나무조각을 찾았다. 구름모양 나무조각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나는 그 나무조각을 가슴에 품었다가 주먹으로 꽉 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잊지 않고 할아버지의 몫만큼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산을 내려와 멍하니 그 산을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 동안 쌓였던 추억들과 먼지들이 모두 연소되고 남은 건 내 손에 쥐어진 나무조각뿐이었다. 완성되지 않아서 아직 반만 반들거리는 그 나무조각을 하늘 높이 들어 보였다. 나무의 노랗고 반들반들한 부분이 붉은 노을에 닿아 오렌지색으로 물들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버렸다. 새카만 연기들이 어두운 하늘 때문에 더는 선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뒤를 돌아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나는 행복이 두려워졌다. 행복한 기억 뒤에는 자꾸 가슴 아픈 일들만 남는다. 내가 행복하면 다시 또 좌절하고 고통스러울까 봐 쉽게 행복해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냥 영원히 행복하고 싶지 않아 졌을지도 몰랐다. 나에게 행복해진다는 건 그런 거였다. 매일이 행복한 사람들은 죽고 나면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받는 걸까. 그저 신들의 놀음에 내가 잘못 걸린 것일까. 그들의 장난감이 된 운명에 체념했다. 알고 있었다. 짐작하건대 내가 그럴 운명이라는 사실을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행복을 조금 맛 보여주니 옳다구나, 하고 좋아한 나의 잘못일까.
방기욱은 우리에게 할아버지의 지병에 대해 말해주었다. 알게 된 경위부터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친 이유까지 빠짐없이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할배는 심장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호스피스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돌연 환자가 되어버린 거지. 그걸 참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어. 그곳에서의 평화가 너무 자기를 살고 싶게 했다나…
난 계속 응, 그랬구나, 짧게 대답하며 방기욱의 말을 천천히 들었다. 할아버지의 인자한 얼굴을 떠올렸다. 우리에게 아픔을 비밀로 해야만 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아서 더 가슴이 아리었다. 할아버지가 걷고 있던 시간 속에는 우리가 얼마나 콩알만 하게 보였을까? 그 콩알들을 소중히 품기 위해 어떤 마음을 안고 있던 것일까? 나에게 이런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을 남겨두고 왜 자신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게만 둔 거예요. 속이 뜨거워서 눈을 꼭 감고 숨을 고르며 시원한 바람을 집어넣었다. 내가 할아버지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같이 발맞춰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멀리 있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그토록 먼 곳에서 평온하게, 잔잔하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답게 어디선가 살아서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