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아동연쇄납치사건

by 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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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아팠다. 작고 뼈밖에 없는 저 몸으로 있는 힘껏 나를 밟고 있으나 그것은 지금 내가 느끼는 마음의 고통에 비해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설주림을 애타게 불러보지만 그녀는 날 돌아보지 않는다. 아니, 돌아볼 주저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아픈 이유다.


그 어린 남자애가 나를 밟고 또 처참히 무너뜨려서 만들어 낸 상처는 그 아이의 몸에 있는 상처와 결이 다르다. 힘에 부쳐 더 이상은 폭행을 지속할 수 없을 때쯤 남자아이는 멀어졌다. 그리고 다리를 묶고 있던 밧줄을 풀고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엄청난 수의 남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째서 우리를 이런 곳으로 데려 온건지, 알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나와 유민우는 순순히 그들이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포대자루들과 새하얀 시루떡이 담긴 상자를 옮겼다. 유민우는 무거운 짐을 몇 개 옮기다 말고 다른 한 남자에 의해 자리가 옮겨졌고, 상자를 열어 시루떡 사이에 하얀 가루가 담긴 밀봉 팩을 밀어 넣었다.


이 상자와 포대자루들을 오전에 트럭으로 싣고 와서 일이 끝나면 다시 트럭으로 옮겨 운송해갔다. 이렇게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쯤 모자를 쓴 남자가 마치 장교처럼 ‘오늘 업무 종료’를 외쳤고, 우리는 또 다시 줄지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나와 유민우는 같은 방에 배정되었고 그곳에는 엄연히 서열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어느 곳에나 서열따위는 존재했다. 다만 내가 항상 우위에 있어서 나머지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덩치 큰 사내가 고개를 흔들어 우직끈, 우둑우둑 뼈가 마찰하는 소리를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동 좀 했냐? 그렇게 삐쩍 말라가지고 나랑 싸움이나 되겠어?


-그럴 리가요. 될 리가요. 전혀요?


허리를 돌리고 손을 쭉 펴서 머리 위로 올려 스트레칭을 하는 몸집이 무던히 있는 그 남자 옆에 생머리를 축 늘어뜨린 남자가 자신의 콧잔등에 자리한 안경을 검지손가락을 들썩이며 말했다. 안경 쓴 남자야 말로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니 살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몸을 하고 있었다. 덩치 큰 남자의 말마따나 삐쩍 마른 자는 바로 그 자였다. 스트레칭을 하던 남자가 허리를 구부렸다가 필 때 옷 사이로 슬쩍 보이는 문신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남자는 씩 웃고 웃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개걸스럽게 웃으며 안경 쓴 남자의 등을 툭툭 치며 재밌어, 역시 재밌어,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약쟁이!


그때,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남자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그 자세를 유지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덩치 큰 남자는 씩씩대며 몸을 웅크린 남자의 엉덩이를 뻥 차버렸다.


-이 새끼는 불러도 답을 안해. 저리 좀 비켜!


그렇게 말하며 한 번 더 뻥 찼다. 그러자 그 남자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뛰어다녔다.


-으악!!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덩치 큰 남자가 미간에 손을 얹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안경 쓴 남자를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안경 쓴 남자가 그 왜소한 몸으로 날뛰는 약쟁이라 불리는 남자를 잡아챈다.


-자, 형씨들은 이제 그쪽이 아니라 이쪽을 봐야지.


-저, 근데 저 분은 왜 약쟁인가요?


유민우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덩치 큰 남자는 짜증난다는 듯이 뒷머리를 털었다.


-약쟁이니까 약쟁이지. 우리집 약쟁이한테 관심을 갖진 마시고, 형씨들 이름이나 밝히지?


유민우는 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그 어깨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냥 고개를 다시 돌려서 덩치 큰 남자를 향해 나를 소개할 뿐이었다.


-방기욱.


내가 먼저 이름을 말하니 유민우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오케이! 내 이름은 남황민. 자 이제 통성명은 했으니까 예의는 다 차렸고. 둘이 한 번에 덤벼. 니들은 한 번에 붙어도 내가 이길 거 같으니까.


-아저씨. 아저씨야말로 괜찮겠어? 나는 그쪽이 그닥 위험해 보이진 않는데.


나는 남황민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피식 웃었다. 그러자 남황민이 재밌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었다.


-둘이 딱 붙으면 내 뒤로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 덩치로, 두 명이서 나를 들 수나 있겠어? 내가 형씨들 위로 떨어지기만 해도 K.O.야. 형씨들 말 조심해. 아차, 핸디캡이라도 줘야 하나. 어떻게 생각해?


-핸디캡 말입니까? 아무렴 필요해 보이기는 하나,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데 핸디캡을 줘 봤자 힘만 더 뺄겁니다. 그냥 빨리 끝내시죠? 우리 형님은 왕년에 헬스장에서 잘나가던 남자거든요. 조심 좀 하셔야 할 겁니다.


안경 쓴 남자가 나와 유민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황민은 왼손을 들어올리더니 들어오라며 손을 까딱인다. 난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유민우도 이제는 겁을 먹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하면 저 손을 어떻게 아작낼 수 있을까, 나는 고민할 뿐이다. 아니지. 저 손을 아작내고 나면 다음은 설주림을 찾는데 방해할만한 사람은 없겠지, 안심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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