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아동연쇄납치사건

by 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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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 건데…


나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놀라움이 얼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것을 손으로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근데, 시간이 없어. 이거 보이지. 지금 위에서 다 내 욕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때, 방기욱의 허리춤에 묶여 있던 하얀 천이 위로 톡톡 당겨졌다. 그러자 그가 아, 알았다고! 하며 작을 듯 클 듯한 소리로 말했다. 나는 번뜩 떠오른 말을 다급하게 내뱉었다.


-기욱아! 여기 지하에 큰 도박장이 하나 있어. 매일 저녁에 원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도박을 해. 내일 저녁에 거기서 보자.


방기욱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가볍게 웃어 보이며 알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볍게 흰색 천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가 하늘로 사라졌다. 나는 창문에 있는 두꺼운 창살 때문에 그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어디까지 내려왔던 건지 알지 못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기욱이를 처음으로 ‘기욱’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언제 민우를 ‘민우’라고 부르게 됐는지도 기억해 보려 애썼다. 이름이란 거, 이렇게 큰 의미가 있었나? 이름이 없는 곳에 와서야 알았다. 그리고 아주 조금만 생각해도 알 것 같았다. 내가 처음 민우를 ‘민우’라고 부른 순간은 민우를 향한 강렬한 연민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기욱이도 같은 이유일까? 그냥 다급하게 부른다고 나온 걸까?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번에 또 방기욱을 기욱이라 부를 수 있을까? 묘하게 어색하고, 이상했다.


-기욱이…


하지만 참 다정했다. 그가 내게 꾸준히 보여준 행동처럼 다정했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많은 일이 일어났던 오늘 하루동안 잠에 드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으나 나는 내가 원하던 완벽한 수면에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했다.


다음날, 해가 떠 있는 동안 내 신경은 온통 저녁약속을 향해 있었다. 기욱이와 민우를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이었다.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또 해가 지길 기다리고, 눈알사탕이 자리를 털고 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이자 나는 어색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발견한 눈알사탕이 남주의 눈치를 한 번 보고 말했다. 그러나 남주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너 또 가려고?


나는 말을 어색하게 빙빙 돌렸다. 잠이 안 온다느니 소화가 덜 됐다느니 산책을 좀 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는 둥의 의미 없는 어색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산책하는데 지하는 왜 들어간다는 거야.


구시렁거렸지만 기어코 난 눈알사탕 뒤를 따라 나왔다. 그녀는 날 탐탁지 않아 했지만 그것보다 도박장에 관한 생각들로 머리를 굴리는데 지쳐 있었다. 내가 온종일 민우와 기욱이를 다시 만났을 때 무슨 인사로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할 동안 눈알사탕은 자신에게 빚을 갚지 않고 도박을 지속하는 빚쟁이들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계단을 내려가서 문을 열고 익숙한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곳과 퍽 어울리지 않게 어슬렁거리는 남자 둘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왔어?


오랜만에 만나니 어떤 말을 건네면 좋을지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그저 반가웠다. 할 말도 다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기욱이는 해줄 말이 있다며 나를 구석으로 데려갔다.


-지금 이 도박장, 도박을 하는 건 맞는데 판돈을 걸고 하는 게 아니라, 마약을 걸고 하는 거야. 잘 보면 칩 무게는 매우 가볍고 주변 눈치를 보는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면 몰래 도박 칩을 분리해서 기관지에 가져다 대지.

나는 한 남자가 눈 밑이 퀭해서 칩을 든 손을 떠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손은 칩을 비틀어 속에 담긴 하얀 가루를 드러내었다.


-아마 가루가 얼마나 들어 있느냐에 따라 칩의 가치가 달라지겠지.


-설마...,


-맞아. 우리가 오전동안 작업한 그 가루들이 죄다 마약이야. 여긴 마약 공장이라고.


나는 번뜩 남주가 국물을 먹지 말라고 화를 냈던 저녁식사 시간을 떠올렸다. 내가 마약에 중독되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어쩌면 그녀 또한 마약에 중독되지 않은 이른바 생존자일지도 몰랐다.


-주림아 너랑 같이 온 저 여자는 정체가 뭐야?


민우가 내게 물었다. 한 여자를 손 끝으로 가리켰다. 눈알사탕이었다.


-한 번씩 계속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봐. 마치 감시하는 것처럼.


-이곳 도박장을 총괄하고 있다고 했어. 나랑 같은 방이고.


-같은 방이라…


-일단은 거리를 좀 두는 게 좋겠어. 그리고 지금도 아는 척은 최대한 피하자.


방기욱의 말에 유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저 사람들이 마약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닐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그들 사이에 섞여 들어갔다. 각자의 경계를 지키며 주변을 살폈다. 처음에는 활기차고 우렁찬 목소리들이 가득이었는데 점점 그것들이 줄어들더니 기분 나쁜 웃음소리들로 변했다. 우두머리인 눈알사탕까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사라진 것 같다고 느껴질 때쯤 우리는 다시 모였다.


-사실 너희한테 보여줄 게 있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었다.


-명함?


송연수. 강력 1팀 형사.


-송연수 형사면…


민우가 아, 그때, 라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리액션을 취했다.


-맞아. 그때 우리를 경찰서에 집어넣었던 그 형사야. 민우 아버지께서 우리를 데리고 나갈 때 내 손에 쥐어 줬던 건데 완전히 잊고 있었어.


-근데 이걸로 뭘 어떻게 하려고?


나는 기욱이의 날카로운 지적에 뜸을 들이다가 나지막이 아직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걸 이용하면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


-아니, 나는 경찰을 안 믿는 편이라.


숨 고를 시간도 없이 기욱이가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일전의 사건들로 인해 이제는 나도 경찰에 대한 신뢰가 좀 떨어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갑자기 경찰이 이곳에 들이닥친다고 하면 분주해질 거고, 그 틈을 타서 나가는 거지.


-하지만 어떻게 경찰이 이곳에 들이닥치게 만들지? 연락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법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 미궁 속을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기욱이가 입을 열었다.


-이곳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에 제삼자의 도움을 받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커. 경찰로 혼란스러워지든 다른 문제로 혼란스러워지든, 일단 이곳을 어지럽게 만들어야 해.


소화전이라도 부숴야 할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이 안에서 이질적인 행동을 하다가 이상한 낌새라도 눈치채면 어떡하지. 난동을 부린다 하더라도 우리는 셋 뿐이었기 때문에 수적으로 밀리는 상황만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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