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아동연쇄납치사건

by 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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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황민은 그가 읽을 것 같지 않은 두꺼운 책에서 지도 같은 것을 꺼냈다. 펼쳐보니 찢은 책을 이어 붙인 두 손바닥 크기만 한 지도였다.


-이곳을 탈출하겠다고 했던 그 녀석이 만들어 둔 것이다. 이것을 다시 꺼내게 될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나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출구, 입구, 밖으로 이어지는 공간, 이디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찾기 위해 눈을 계속 굴렸다. 그러나 어디에도 출구, 바깥, 탈출구, 그런 표시는 없었다. 그때 유민우가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이곳이야.


그곳은 실선이 아닌 점선으로 그어진 곳이었다. 그렇군. 일부러 점선으로 그려 넣은 것이다. 막혀 있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함이겠지. 남황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라면 위치도 적당하고 포대자루를 미리 숨겨두기에도 괜찮겠어.


-불을 어떻게 피울 건지는 걱정하지 마세요. 나한테 이게 있으니까.


양민혁이 바지춤에서 성냥을 꺼냈다. 정선규가 양민혁의 손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익숙하게 그를 피했다. 그새 정선규와 친해진 유민우가 그를 잡았다. 남황민이 담배도 폈냐며 물었지만 양민혁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도박장으로 향할 팀에는 안대를 낀 여자, 양민혁, 정선규, 유민우 그리고 나. 남은 사람들과 남황민은 지상으로 가기로 했다. 지도는 설주림에게 건네려고 했지만 영재라는 여자가 한 번 보면 외울 수 있다며 도로 돌려주었다.


자신들의 역할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을 것, 자신의 위치에 있을 것, 그런 것들을 얘기하는 동안 나는 설주림의 표정을 보았다.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려던 순간이었다. 도박장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그 말인즉슨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나는 움찔거렸던 손을 제자리로 돌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고 떠올리다 눈을 감았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앞으로 남은 날은 고작 하루뿐, 자고 일어나면 결전의 날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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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몸이 무겁다. 탈출하기로 한 날이었다. 어제까지도 계속해오던 고민에 대한 답을 아직도 내리지 못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계속해서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전화기가 어디에 있는지 그곳이 방화할 곳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길에 보초는 몇이나 있는지 모두 알았다. 혼비백산이 된 때를 노려 전화를 걸 것인가, 걸어서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도 과연 경찰이 내 말을 믿고 출동할까. 계속해오던 고민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도움을 요청할 뿐, 선택은 상대가 한다. 그렇게 다짐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초과근무 여부를 물어본다. 한 달 중에 초과근무를 하는 날은 몇 안 되는 드문 날이었지만 근래에는 연달아 초과근무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사실 초과근무 여부를 묻는다는 게 우리의 의견을 존중하는 거라고 볼 수는 없다. 만약 안 하겠다고 하면 그날 저녁은 금식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 시간에 도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에 시달려 그것이 식욕을 이길 지경이었다. 눈알사탕과 근육이 빵빵한 남자를 제외한 남자 방 모두도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인 척을 하기 위해 초과근무 날이면 저녁을 굶더라도 도박장으로 향했다. 그들은 갈 때마다 포대자루를 옮겨놓았고, 지상에 옮겨두기 위한 포대자루는 눈알사탕을 통해 여자방으로 전달되어 여자들이 공장에서 조금씩 빼돌려두었다. 위치는 영재가 외우고 있었는데 일하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공장 안에서도 연결된 곳이었기 때문에 한 명씩 돌아가며 그곳을 들락날락거렸다.


그렇게 총 모인 포대자루는 지상에 15개, 도박장에 20개.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오늘 저녁에도 도박장 팀은 초과근무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지상팀은 초과근무로 남아 있다가 약속한 시간에 이동해서 불을 지핀다. 성냥개비는 총 3개로 성냥을 잘 다루며 지리능력이 탁월한 영재가 맡기로 했다. 정해진 시간은 오후 11시 30분.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고 겨울이라 건조했기 때문에 불이 옮겨 붙는 속도는 빠를 것으로 예상했다.

초과근무를 하며 정확히 오후 11시쯤 밖에서는 트럭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장 내부에는 시계가 없었으나 남주가 회중시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1시 25분쯤 저 멀리서 우직한 모습으로 서 있던 보초들도 제정신이 아닌 듯 두꺼운 눈꺼풀이 감기지 않도록 혼신을 다해 노력한다. 나는 마치 각성상태가 된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도 정신이 번뜩이는 기분이었다.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던 이유는 지금의 최상의 상태를 위함이었을까?


기다란 시곗바늘은 얼마 지나지 않아 5와 6의 정 가운데를 지난다. 영재는 우리에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조용히 자리를 뜬다. 밖에서는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지만 공장 안은 한 없이 조용하다. 이 적막은 폭풍이 들이닥치기 직전의 고요함, 스산함 그런 것들로 똘똘 뭉쳐 있다. 응축된 겨울의 시림은 곧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사라지겠지.


손에서 봉투가 미끄러진다. 하얀 가루가 흩날린다. 손에 난 땀 때문에 장갑이 손에 딱 달라붙었으나 장갑 바깥으로 땀이 새어나간 건지, 손끝이 떨리는 것일지 이유를 불문하고 자꾸 손에서 봉투가 미끄러진다. 여주가 목에 걸고 있던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 영재 목소리가 들려온다.


-불이야!!!!!!


비단 그것은 영재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 무슨 말인지 정확히 들리지는 않아도 누군가 우렁찬 괴성을 지르고 있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아마 도박장 쪽에서도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겠지. 이곳에는 포대자루가 아니더라도 불에 탈만한 원목재료들이 차고 넘친다. 이제 곧 이곳은 불길로 가득 덮일 것이다. 영재가 열고 나온 문 뒤로 벌써 영재의 키를 따라잡은 화려한 불꽃들이 보인다.


그 모습을 발견한 공장 내의 다른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이탈한다.


-가만히 있어!! 멈춰!!!


언제 잠에 들었냐는 듯 깨어난 보초들이 큰 소리로 말해보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다. 굳게 닫힌 공장 문은 쾅쾅 대는 여자들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짓눌린다. 애초에 이렇게나 허술한 곳이었다, 이곳은. 그 누구도 닿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탓에 그리 쉽게 무너질 줄 몰랐던 것이다.


나는 모두가 앞으로 나아갈 때 뒤를 돌았다. 그리고 영재가 나온 곳을 향해 뛰어갔다. 불길에 자진해서 들어가는 꼴이었다. 나를 발견한 남주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팔을 잡았다.


-미쳤어? 어디로 가는 거야!


남주가 그렇게 다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 건 처음이었다. 이토록 여유가 없어 보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남주가 잡은 내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손을 잡아 내려두었다.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경찰 신고는 안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남주가 소리 지르듯이 말했다. 인간의 울부짖음이 가득한 이곳에서 그마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엄습해 오는 뜨거운 불길에 나는 잠깐 주춤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나무판자들에 몸을 웅크렸다.


-이대로 두면 우리는 탈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길을 잘 찾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할 거예요.


-그러다가 네가 먼저 죽을 수도 있어. 기어코 저 불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거야?


남주의 말을 마치 뼈가 가득한 장어 같은 말이었다. 웃긴 비유일 수 있겠지만 정말 그랬다. 가시가 잔뜩 박혀 있는데 꼭꼭 잘 씹어먹으면 그럭저럭 삼켜 넘길 수 있는 말들. 날카로운 가시가 아닌 진정으로 날 걱정해서 하는 말임을 알 것 같았다. 남주의 미간의 주름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고 여전히 말투도 차가웠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녀는 날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위험할까 봐 불안한 것이다. 혼자 살아나간다는 게, 혼자만 살아남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었다.


-같이 살아야죠. 저만 살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길은 이미 외워두고 있었다. 이곳저곳이 무너져 내린 바람에 구조가 조금 해괴망측해졌다고 하더라도 길만큼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문을 지나 복도를 걸어 계단을 오르고, 환풍구 안을 기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어느 응접실 중 한 곳이다. 나는 재빨리 수화기를 집어 들고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송연수입니다.


그 목소리에 느껴선 안 될 안도감 같은 것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도와주세요, 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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