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연쇄납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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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도박장은 불길에 휩싸였다. 그곳에 누가 남아 있다는 것은 믿기 힘들 정도로 형태가 일그러졌다. 그곳에서 올라와서 바깥으로 향했다. 연기가 건물의 모든 숨구멍에서 펄펄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야, 유민우, 뭐해! 빨리 와!
기욱이가 나를 불렀다. 세상은 제멋대로 흐르고 사람들도 흘러간다. 나만 계속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다. 아직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무언가 발에 자꾸 걸린다. 나는 발을 한 번 멈칫 하고는 기욱이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춘 정선규 때문에 나도 멈춰서서 앞을 보았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보인다. 여유롭게 걸어오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이라도 걸린듯 느릿하게 보인다. 내 발을 묶어두던 사슬 같은 것들이 핑, 하고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내려다보던 발등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 사람을 향해 걸어간다. 그 사람이 나를 발견하고 아무런 동요도 없이 계속 다가가는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종이를 든 손을 툭 떨구더니 종이는 한 없이 구겨진다. 가까이 다달은 내 눈을 그저 바라만 본다. 그 남자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 내가 먼저 말했다.
-소리를 지르고, 반항을 일으키고 그런 건 나와 맞지 않아. 정확히는 그럴 베짱이 안 되는 거지. 당신도 알다시피.
여기까지 얘기하니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 시선을 제대로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온몸이 가볍다. 아직 할 말을 다 마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진 기분이 느껴진다.
-그런데 남들은 자꾸 그런 것들을 안해서 네가 그토록 힘든 거라고, 가슴 속 응어리를 덜어내지 못하는 거라고 그러더라고. 마약을 하던, 클럽을 좀 가던 뭐 고만고만한 애들의 충고들이 어느 순간에는 정말 그런가, 그래서 그런가? 싶었지. 그래서 혼란스러웠어. 한참 동안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변할 동안 나는 이곳에서 그렇게 오래도록 계속 혼란스러웠어. 그리고 이제 당신을 마주하고 나니까 알겠어. 나한테는 당신만 없으면 됐던 거야. 내 마음속에 남은 응어리를 내가 애써 버릴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었던 거야. 그저 당신만 내 세상에서 사라져주면 됐던 거였어.
저 인간과 세상이 적절히 버무려진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명확히 깨달았다. 저 사람만 없었어도 지금 이 뜨거운 화재현장에서도 나는 희망을 보았을 거란 것을. 그게 비단 나의 생각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생각이, 도움이 내게 와 닿고 나도 변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던져줄 것이란 것을. 남들은 다 그렇게 슬프고, 즐겁고, 고통과 행복의 순간들을 함께 누리면서 살아간단 것을. 내 고통은 행복의 대가가 아니라 그저 고통일 뿐, 기나긴 어두운 시간도 진정한 사람들과 함께라면 이겨내고 살아갈 용기를 다시 얻는다는 것을.나는 뒤를 돌아 나에게 용기를 심어줄 사람들의 곁으로 걸어갔다. 남황민도, 양민혁도, 정선규도 한 켠에는 걱정 어린 눈썹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무한히 쏟아지는 위로와 칭찬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기꺼이 나를 응원한다는 저 순수한 사람들. 그리고 한참을 돌고 돌아 겨우 편해보이는 기욱이의 표정, 얼굴. 기욱이가 보고 있는 내 얼굴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떤 모양새이길래 기욱이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모르겠지만 딱 하나는 알겠다. 속이 참, 후련하다.
등 뒤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하늘을 향한 총구에서 굉음이 한 번 울리고 그 남자의 포효하는 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차가운 바람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귀가 먹먹해지고 현실보다 조금 늦게 소리를 인지하게 되는 것만 같다.
-긴급소식입니다. 오늘 새벽 1시경 유영그룹 유민철 대표가 마약 유통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유민철 대표는 오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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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익숙해질 것만 같은 조사실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을 것 같이 이상하리만큼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이 공간에 다시 한 번 놓였다. 어두운 듯 은은한 듯, 편안한 듯 날카로운 그곳에 앉아있다.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내 앞에 자리 잡는다. 조용해서 내 앞에 앉은 남자의 행태를 보지 않아도 소리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의자를 끌어당겨 자리에 앉고 양손 가득 들고 온 자료들을 책상에 올려두고, 그 중 제일 위에 있는 종이 무더기를 하나 자기 앞으로 가지고 가서 열어본다. 몇 장 넘기다가 한 숨을 푹 쉬고는 종이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나지막히 입을 연다.
-오랜만이네. 방기욱. 너무 자라서 못 알아볼 뻔 했다, 야.
조금 주춤하는 손을 책상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10년만인가? 아니지. 몇 달 만인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마주한 얼굴은 익숙하지만 정겹진 않다. 고작 몇 달 전에 봤던 얼굴이라면 믿을만 하지만 10년 전에도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10년 전 여름 즈음에 이곳에서 멀지 않은 파출소에 8살짜리 꼬마애들이 온 적이 있었어. 한 녀석은 피 범벅이 된 몸이었지.
그 말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날카로운 것들, 뜨겁게 흐르는 붉은 액체, 떨리는 손과 공포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다. 공급되던 산소가 바닥을 드러내는 느낌. 점점 숨이 거칠어진다. 진정시키기 위해선지 습관처럼 다리를 떤다.
-피 범벅이 된 녀석의 옆에 있던 남자애가 막 떨면서 말을 제대로 못하니까 피 묻은 손을 덜덜 떨면서도 말을 하더라고. 제가 아버지를 찔렀어요, 하고.
그 길로 나는 한 어리바리한 형사랑 같이 더 큰 경찰서로 이행됐다. 따뜻한 담요를 두른 채 진술서를 작성하고, 화장실에서 피를 닦아내고 며칠간 그곳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다. 한 남자 형사는 일이 바쁘지도 않은지 자꾸 찾아와서는 짜장면을 먹자며 귀찮게 조르고, 과자를 한가득 사 왔다. 그리고 언제든 연락하라며 명함을 쥐어주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서에 있는 아무 전화기로든 연락하라면서. 그 명함에 적힌 이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장형준.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저 남자의 목에 걸린 경찰증의 이름도 장형준이다. 그제서야 퍼즐이 하나 둘 맞춰진다.
-배는 안 고프냐? 짜장면 먹을까?
장형준은 그렇게 말하고 왼쪽 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끄덕인다.
-아직도 크림빵 좋아하니? ...뭐 있으면 먹겠지. 네가 안 먹으면 내가 먹으면 돼.
남자는 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아마 다른 형사들이 저 너머에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는 거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모두 기록으로 남고, 내 말이 증거가 되겠지. 그런 것쯤은 이제 잘 알고 있다. 결국 그것은 심증이 될 것이라는 것까지도. 물증이 없다면 결국 내가 어느순간 거짓말쟁이가 될 것마저도.
짜장면이라는 음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배달 속도가 빠르다. 정적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짜장면은 어느 순간 내 눈앞에 있다. 짜장면을 보면서 그때를 떠올리며 먹은 적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왜 짜장면은 만만한 음식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이 음식을 먹은 순간도 참 많았다. 좋은 상황이든 비위 상할 상황이든 가리지 않고 같은 음식을 먹었어도 먹을 때만큼은 다시 또 새로워진다. 남형준이 그릇을 째로 흔들고 나무젓가락을 두 갈래로 쪼개기 전에 비닐을 슥슥 비벼 뜯어낸다. 그렇게 봉인이 풀려나면 짜장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들어온다. 아, 그제야 문득 깨달은 게 있다. 짜장면을 먹는 순간은 항상 극적이었네. 오랜만의 제대로 된 식사, 고된 노동 후의 첫 끼 그런 순간들에 늘 짜장면이 있었네.
그런 생각이 뱀처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갈 때쯤 내 앞에는 군데군데 잘 비벼진 짜장면이 놓였다.
-왜 짜장면이었어?
내가 꺼낸 첫 마디였으나 동요도 하지 않고 한 차례 고민하더니 말을 이어간다.
-나도 몰라? 그냥 배운대로 하는 거지.
남자는 입 주변에 춘장을 잔뜩 묻히고 옅은 미소를 띤다. 그리고는 입안 가득 짜장면을 집어넣는다.
-야, 진짜 맛있어. 여기 맛집이야. 이 근처에서는 여기만큼 맛있는 중국집이 없어.
-왜 그때 날 버렸어?
내 말에 장형준은 입에 가득 넣었던 짜장면을 꿀떡 삼키고 그릇 안에 남은 짜장면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입주변을 소매로 닦아내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는데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숨을 들이마시는 저 형사의 사소한 소음까지 귀를 파고 들어오는 듯 했다. 고작 2초에서 3초는 지났을까.
-미안해.
저 아저씨의 특유의 초연한 말투가 이럴 때는 더 서글프게 들린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저 말투는 재수가 없다. 말투 하나만으로 거대한 우물 속에 묻어뒀던 감정들이 폭발하는 기분이 든다. 그것을 마주할 용기를 기를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 잊어버리려고 노력했지만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더 해봐. 미안하다는 말로만은 설명이 안 될만큼 복잡한 상황이잖아.
어떤 기분이어야 할지 모르겠다. 용서를 해주겠다는 관대한 마음? 용서할 수 없다는 분노? 배신감? 화를 내야할지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며 이제 다 잊자고 해야할지 고민해보아도 그 안에 답은 없었다. 눈에 눈물이 고이고 나서야 무슨 감정일지 지례짐작할 수 있었다.
-미안하다.
서운함이었다. 그저 속상한 것이다. 감정의 끈이 마구 엉켜서 자시 풀 수는 없는데 너 때문에 엉켜버렸으니 책임지라는둥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아저씨도 알고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나보다도 빨리 알아차렸을테다. 나는 양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주책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이런 거 세상에서 질리도록 싫어했던 한 때의 나 역시 감당해낼 수 없다. 쪽팔린다고 해도 별 수 없다. 그냥 친절한 경찰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던 꼬마가 잠시 내 몸에 빙의를 한 게 아닐까 싶을만큼 닦아내어도, 숨을 참으려해도, 헐떡이며 눈물을 비출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내가 계속 이렇게 말한다.
왜 나를 다시 돌려보냈어? 왜 나를 구해줘놓고 다시 무서운 그 자에게로 넘겨버린거야? 서운해. 속상하다고. 슬프다고. 무서웠다고.
아저씨는 어느새 내 등에 팔을 얹고 토닥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계속 미안해, 라고 사과할 뿐이었다. 막연히 토해내는 마음 속 질문들에 하나하나 대답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