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인생은 기구하기 짝이 없어서 시작하길 망설입니다.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혜성처럼 등장해 단번에 세계적인 마술사 자리에 이름을 올린 서진우입니다!]
남자는 두 팔을 올려 거대한 함성에 답한다. 그리고 신사답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남자의 손이 닿는 곳에 자욱한 안개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남자의 시야도 서서히 선명해진다. 사방면으로 가득 들어찬 관객들을 바라본다. 남자는 그 광경을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린다. 관객들의 시선이 오롯이 그의 오른팔을 따라 움직인다. 숨 막힐 듯한 정적 속에서 그는 오른 손가락을 튕긴다. 그 순간 남자의 두 발은 서서히 공중으로 뜨기 시작한다. 그의 발과 모랫바닥은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관객들은 시야에서 벗어난 그 남자를 좇기 위해 고개를 든다. 잠시간의 당황스러움은 신비함으로 변하고, 열광적인 환호로 바뀐다.
그제야 관객들은 저들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된다. 새하얀 가벽이 바깥으로 무너지며 차가운 모래바람에 절로 눈을 찌푸리게 된다. 새카만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남자를 바라보던 이들은 온데간데없고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코를 찌르는 짠 내음에 한 번 이곳이 바다임을, 눈을 건조하게 만드는 황토색 바람에 두 번 이곳이 바닷가임을 확신하게 된다.
남자가 출렁거리는 바닷물을 향해 손짓하자 자석에 이끌리듯이 그의 손에 따라붙는다. 반대 손도 마찬가지로 바닷물을 끌어오더니 서커스 공연을 하듯 물길을 만들어 내고, 이리저리 공중에서 출렁하게 하더니 거대한 하트 모양으로 변한다. 함성은 고조에 달하듯 커져만 갔다.
공중에 가만히 떠 있던 남자는 하늘을 날아 바다 위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대로 바닷속으로 떨어진다. 모두 놀라 헉하며 입을 가렸으나 그가 떨어진 곳에는 투명한 막으로 만든 공간 속에 여전히 그가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모습을 감추더니 공중으로 튀어나왔다. 은퇴 공연이라더니 역시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라며 휘슬 부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문득 보니 남자의 손에는 마이크가 쥐어져 있다. 그는 그것을 입 가까이 대고 말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술사 서진우, 그리고 강시온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남자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그가 바닷속으로 떨어지듯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지개가 떴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던, 마술사 서진우를 단숨에 세계적인 마술사로 올린 그 마술을 마지막으로 마술계를 떠난 그를 향해 경의를 표하는 박수갈채 사이로 남자는 점점 흐릿해져 갔다.
바닷속으로 떨어진 남자는 자신의 마술사 인생 마지막 순간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눈물이 흘러도 거친 파도와 물길에는 속절없이 쓸려 내려간다. 입을 열자 목구멍으로 쑤셔 들어오는 짠 바닷물에 찢어질 듯 목젖이 따갑다. 그래도 어떻게든 말하려고 노력한다.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기 위해 애쓴다. 그토록 안간힘을 써서 하고자 했던 말은,
-미안해, 진우야.
강시온은 그렇게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강시온의 마지막은 애절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것은 서진우의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들의 인생은 기구하기 짝이 없어서, 그래서 시작하기를 망설인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남겨야만 하는 이 시대 최고의 마술사 서진우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순수하고 티 없이 맑은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시작한다.
서진우는 어릴 때부터 몸이 많이, 자주 아팠다. 툭하면 부러질 것 같이 가는 팔다리에, 틈만 나면 병원에 입원하곤 했다. 어릴 때부터 툭하면 같은 반 녀석이랑 싸우고, 틈만 나면 흙탕물에서 뒹굴던 강시온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라서 절대로 친해질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붉은 실로 연결된 듯했다. 서진우와 함께 있을 때면 어떤 사람에게든 이런 말을 들었다. 너희 정말 똑 닮았다. 정말로 쌍둥이가 아니라는 거지?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어디 하나 닮지 않은 서진우와 나를 왜 자꾸 그리들 엮어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어린 나이에 똑 닮은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오긴커녕 멀리서 봐도 밝은 자연 갈색모와 밝은 눈 색을 가진 서진우와 타고나길 새카만 내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서진우가 강시온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멍가게에 놀러 오기 시작하고부터이다. 어느 날, 하굣길에 다른 반 녀석과 한바탕 옴팡지게 싸우고 집으로 돌아와서 할아버지를 찾는 강시온의 눈에 서진우가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마루에 앉아 있는 그 녀석을 모른 체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도 서진우는 학교에 오는 날이면 빠짐없이 구멍가게 찾아왔다.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날도 무리를 해서 오곤 했다.
강시온은 왜 서진우가 자꾸 찾아오는지 궁금했다. 서진우가 돌아가고 어느 날은 할아버지한테 “쟤는 왜 자꾸 찾아와? 할아버지 장사 동 내려고 맨날 찾아온대?”라며 심술궂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마음 편히 쉴 곳이 없어서 그래.”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린 그때의 강시온은 서진우에게 집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잘 대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할아버지는 서진우에게 친절하게 대해줄 때마다 하루치 사탕을 한 개에서 두 개로 늘려주었다. 그게 좋았던 것도 있지만 막상 친해지고 나니 순수한 서진우랑 같이 지내는 게 즐거워졌다. 밖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던 내가 서진우에게 산수를 배우고, 글을 읽게 되는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는 웃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함께 나오게 되었다. 절대로 엮일 일이 없다고 확신했던 게 무색하게 우리는 그 누구보다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커가면서 강시온은 서진우가 집이 없는 가난한 아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대저택에서 지내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공부한다고 바빠진 서진우를 잡아둘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사이는 변치 않았다. 여전히 가장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시험이 끝난 날, 서진우는 할아버지를 뵙고 싶다고 말했다. 분명히 할아버지도 좋아하실 거라며, 작은 구멍가게에서 ‘시온 문방구’로 이름을 바꾼 우리 집으로 향했다.
-어이, 거기 띨띨한 놈들!
길거리에 핑크색 돗자리 위에 좌판을 깔고 앉은 한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곳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저희요?
어중간하게 손가락으로 가슴팍을 가리킨 강시온의 말에 “그래, 너희.”라며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 할아버지의 가까이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낯선 사람은 조심하라고들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가 이런 좌판부터 시작했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어서인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너네 혹시 이런 거, 아니면 이런 거, 저런 거 본 적 있나?
할아버지는 좌판에 깔린 장난감 같은 걸 우리에게 펼쳐두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동전이 사라지거나 공이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나는 마술 같은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미심쩍기 짝이 없던 그 사람을 강시온은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서진우가 튀어나와 말했다.
-여기 있는 거 제가 다 살게요.
강시온은 당황해서 어디서부터 어떤 말로 서진우를 말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서진우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강시온은 처음 보는 그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거 다 사려면 천만 원도 부족해.
역시 사기꾼이 맞았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그 할아버지가 강시온의 팔을 잡았다.
-다만 너희들한테 제안을 하나 할게. 나중에 너희가 다 자라서 이 시대의 최고의 마술사가 되겠다고 약속하면 이 모든 걸 공짜로 주마.
-그런데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우리가 갑자기 그렇게 대단한 마술사가 될 수 있겠어요.
강시온은 깜빡거리지도 않고 자신의 눈을 빤히 바라보던 그 꺼림칙한 할아버지의 손에서 팔을 빼내며 말했다.
-나는 보이거든. 네가 나중에 반드시 세상을 움직일 마술사가 되는 게. 그리고 뭐가 걱정이야. 이런 거, 저런 거? 내가 전부 알려줄 건데.
사실 강시온은 좌판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유연한 손놀림에 이미 매료되어 있었다. 들키고 싶지 않아 짐짓 웃어 보일 뿐이었다. 책에서만 보던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두근대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서진우의 빛나는 눈에 못내 제안을 수락했다는 변명과 함께, 그렇게 두 사람은 마술에 흠뻑 빠져버리고 말았다.
-마술에도 기술의 분류가 있어. 방금 내가 보여준 동전이 사라진다거나 이 작은 공이 내 손 안에서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는 손기술, 갑자기 몸이 잘리는 절단 마술이나 순간이동 같은 대형 마술은 일루전, 관객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예언, 독심술 같은 멘탈리즘.
작은 손기술부터 기믹-비밀 장치-이 들어간 프롭-공연에 쓰는 마술 소품-, 더 나아가 애퍼러터스-대형 장치 마술 도구-의 사용법까지 서진우와 강시온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마술을 연습했다. 서진우가 아파서 오지 못하는 날에도 강시온은 연습을 빼먹지 않았다.
그랬던 강시온이 다시는 마술을 하지 않을 거라며 근처에도 오지 않았던 때가 있었으니, 그날은 강시온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꽃이 활짝 피기도 한참 전인 열여덟에 강시온은 세상을 잃었다. 그날부로 강시온은 생활고에 쫓기기 시작했다. 장학금의 형태로 돈을 줄 수 있다는 한 마디에 열불을 내고 떠난 강시온을 서진우는 다신 볼 수 없었다.
강시온은 새벽부터 신문 배달을 하고 밤늦게까지 고깃집에서 빡빡한 수세미로 철판을 닦아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올 새가 없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전기세, 수도세, 월세 독촉장으로 가득한 우편함에 겉봉투부터 세련된 편지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강시온은 퉁퉁 불어 터질 거 같은 우편함에서 그것만 쏙 골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 단칸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익숙하고 쾌쾌한 냄새가 코끝에 맴돈다.
대충 작업 가방을 바닥에 던져두고 가스레인지 위에 물을 올렸다. 찬장에 있는 봉지라면 하나를 뜯어 냄비에 스프를 털어 넣었다. 그리고 물이 끓길 기다리며 아까 집어온 두툼한 편지 하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강시온은 바닥에 앉아 그것을 거칠게 뜯어보았다. 안에는 편지 하나와 스크랩한 신문이 들어 있었다. 정갈한 글씨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남자 향수 냄새에 코를 찡그린다. 찌푸린 인상을 피고 멀찍이 글을 읽어보던 강시온의 눈이 커졌다. 그는 당장 집 문을 열고 나가 편지지에 적힌 주소지로 발을 옮겼다.
편지지에 있던 주소는 보면 익숙한, 강시온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얼마토록 오랜만이어도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달리고 달려 강시온의 발이 멈춘 곳은 ‘시온 문방구’ 앞이었다.
떨리는 오른손을 겨우 왼손으로 붙잡아보았다. 잠금장치 하나 없는 슬라이드 문을 차르륵, 열었다. 마루 위에 앉아 있는 한 남성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시온아.
그 밝던 갈색모는 자취를 감췄고 그의 눈동자는 원래 색의 흔적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한 밤하늘 같았다. 강시온은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확인한 자신의 먼지 가득한 잠바를 괜히 툭툭 털었다. 멀끔한 정장을 입은 서진우를 이리 마주하니 공연히 낯설었다.
-편지 읽어서 이제 알게 됐겠지만, 나는 곧 죽을 거야.
강시온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괜히 시비를 걸었다.
-너 나 불러내려고 일부러 그딴 말 적은 거지?
서진우는 은근한 미소로 대답할 뿐이었다.
-이건 다 뭐야? 같이 보낸 신문.
그 신문의 헤드라인은 ‘혜성처럼 등장한 마술사, 서진우’였다. 믿고 싶지 않은 건지, 믿기지 않는 건지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안간힘으로 막아내고 잔뜩 구겨진 그것을 서진우한테 들이밀었다.
-진짜야. 가끔 소식 전해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너 정말 세상이랑 단절하고 살아왔구나.
신문을 구긴 강시온의 떨리는 손을 서진우는 부드럽게 잡았다.
-예전부터 넌 메서드-트릭의 실제 원리-는 단순했지만 늘 연출이 좋아서 클린 하게 끝났잖아. 반대로 나는 메서드를 잘 기획했지만 손기술이 좋진 않았지. 네가 필요해, 시온아.
그렇게 말한 서진우가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빼곡히 적힌 그것은 강시온의 흥미를 자극했다. 디 오션, 입을 움찔거리며 그 트릭의 이름을 곱씹었다. 끝까지 읽어낸 강시온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위험해.
-좌판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트릭이야. 하지만 해내기만 하면 단번에 세계에서 주목받을 수 있을 거야. 전 세계 어디를 뒤져봐도 그런 트릭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서진우의 말을 사실이다. 이런 마술은 아직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부탁이야. 내 마지막 부탁.
-영악하다, 서진우.
분명히 알았던 거다. 갑자기 찾아와서 무리한 부탁을 하더라도 나라면 반드시 서진우의 부탁을 들어줄 거란 걸.
그날부터 우리는 전 세계 어디를 뒤져도 찾을 수 없던 일명 ‘The Ocean(디 오션)’ 트릭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움직이게 하고, 길을 트고, 사실상 말도 안 되는 그 트릭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미스디렉션-주의 분산-과 클라이맥스 루틴 배치 방안이었다. 진행자가 가장 위험한 마지막 루틴, ‘바닷속으로 빠지며 무지개가 뜬다’는 부분만 해결하면 어떻게든 정말 흥미로운 쇼가 나올 것만 같았다.
-마지막 부분은 나한테 맡겨. 진행자인 나한테 방법이 다 있으니까.
어떤 방법이 있다는 말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미묘한 말일뿐이었지만 강시온은 그러겠다고 했다. 사실 강시온은 보조로서 미스디렉션을 위한 장치를 준비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서진우가 당장 다음 주에 예정된 무대에 이 루틴을 올리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스틸, 그리고 스위치. 좋았어!
물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PVA(폴리비닐알코올)와 글리세린으로 만든 젤의 상태인 그것의 뒤에 철 가루를 붙이고, 프롭-공연에 쓰이는 마술 소품-을 구현해 내는데 정신없이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리허설을 한 번도 안 해봐도 괜찮겠어?
-응. 한 번 하는데 버리는 프롭 양이 어마무시하니까. 아까워.
걱정되는 마음에 리허설을 귄한 강시온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는 서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연 당일이 밝았다. 강시온은 포스터에 적힌 문구를 눈으로 찬찬히 읽었다.
[혜성 마술쇼!]
혜성처럼 등장한 마술사, 서진우의 마술쇼-
관람비 무료
마술사: 서진우
보조: 강시온
[오랜만에 우리를 찾아온 일명, 혜성 마술사, 서진우 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서진우의 쇼는 시작되었다. 정해진 진행 순서를 지키며 차근차근 다음 단계의 마술 쇼가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멀리서 셋업 하며 들려오는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에 강시온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공연은 정신없이 셋 리스트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시온은 무대 뒤에서 가벽을 없애기 위해 레버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신호에 따라 레버를 내렸다. 사면을 가리고 있던 새하얀 벽들이 무너지고 실제 마술쇼 공간이었던 바닷가가 실체를 드러났다. 서진우가 손가락을 튕기는 타이밍에 맞춰 강시온이 로프를 들어 올리자 서진우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이 공연 중 가장 큰 환호가 들려왔다. 그리고 서진우의 손놀림은 마치 바닷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부분, ‘서진우가 바다에 빠지면 그 위로 무지개가 뜬다’. 강시온은 숨을 죽이고 멀리서 서진우를 바라본다. 서진우는 바다 아래로 급하강하기 시작하고 첨벙이는 큰 파도 소리 위로 무지개가 뜬다.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그리고 모든 조명은 갑자기 암전 되고 서진우의 목소리가 담긴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리스트 어디에도 없던 것이었다.
-오늘도 여기까지 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술사 서진우였습니다. 그럼 조심히 귀가하시길.
강시온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진우가 떨어지는 순간 어떤 트릭도 없었다는 것을. 관객들이 몰려나오는 바람에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강시온은 앞으로 전진할 수 없었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마음을 졸이며 서진우가 바다 어디선가 고개를 내밀 거라고 기대하며 그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객들이 모두 이곳을 떠나고 난 뒤에야 겨우 바다 근처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강시온은 서진우의 인영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따로 준비한 소품 트럭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익숙한 편지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분명히 공연 시작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강시온은 그것을 열어보았다.
마지막 트릭은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더라고. 내가 정말 부탁하고 싶었던 건 말이야. 네가 서진우 마술사를 계속 살아있게 해 줄 수 없을까? 네가 그렇게 해준다면 나는 계속 살아있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은 살고 싶어. 미친 듯이 살고 싶어. 살아내서 네 옆에 계속 있고 싶어. 내 마지막 소원은 이거 하나야. 부디.
작은 지하 단칸방에 침대 프레임도 없는 누런 매트리스 위에 누워있는 강시온은 팔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갑자기 방문을 두드리는 엄청난 진동에 눈을 뜨고 현관문을 열었다.
-서진우 씨 맞습니까?
-네?
수많은 카메라가 강시온을 비추고 있었다.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한 자들은 계속해서 질문을 해댔다. 나에게 서진우라고 하면서 말이다. 지난 쇼에서의 마지막 트릭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을 알고 있습니까? 다음 공연은 언제인지 귀띔해 줄 수 없습니까?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고요! 당신의 다음 행보를!
그때, 서진우의 새카맣던, 그래서 나와 닮아 있던 그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선명히 떠올랐다. 마치 거울을 본 것 같던, 강시온 그 자체였던 서진우가.
-당신은 서진우 씨가 맞나요?
내가 서진우인 것인지, 서진우가 강시온이었던 것일지,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아버렸다. 기자들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은 서진우가 바란 대로, 서진우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뼛속까지 시려오는 소름과 오한에도 뜨겁게 뭉클거리는 가슴이 말하는 대로. 그렇게 다시 살아 돌아온 내 친구.
-네, 제가 서진우입니다.
서진우가 죽은 그날부터 살아난 오늘까지 줄곧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던 나는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술사 서진우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