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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쁨 May 07. 2022

애매한 재능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 10

중학생 때부터 나의 꿈은 아이돌이었다. 집안을 부흥케 할 유일한 방법이기에 선택한 것이기도 했지만, 내가 춤과 노래를 좋아하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 사정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집 한쪽 구석에서 노래와 춤을 연습하는 것뿐이었다. 안무를 따려면 PC방에 가서 UCC를 틀어놓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해와야 했다. 그 당시 그 조그만 피처폰 액정으로 흐릿하게 찍힌 안무를 보며 춤을 췄고,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매일 밤 노래를 연습했다.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 조금 디테일은 떨어졌겠지만 그래도 나는 안무를 다 외웠다. 또 한 번 돈을 모아 PC방에 갔고 다른 춤을 촬영해왔다. 노래 연습도 마찬가지였다. 밤 시간에 연습하다 보니 큰 소리를 내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함은 빛을 보여주었다. 숨 쉬는 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한 곡을 무리 없이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다행히 내겐 약간의 재능이 있었다. 파워풀한 보컬은 아니었지만 항상 감정 전달에 뛰어나다는 칭찬을 들었다. 나 또한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게 즐거웠다. 노래를 부를 때는 내 감정을 쏟아낼 수 있었고, 춤을 출 때는 내 상황을 잊을 수 있었다. 꼭 데뷔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춤과 노래를 사랑했다.


오디션을 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수차례의 오디션을 보았고, 떨어졌다. 1차나 2차 합격까지 간 적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론 모두 떨어졌다. 나는 재능이 없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편협한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오직 대형 기획사 만을 노렸다. 아이돌이 되어 집안을 먹여 살리려면 웬만한 회사에서 데뷔해선 안된다는 뿌리 깊은 고집이 있었다. 어쩌다 한 두 번 넣은 중견 기획사들에서는 1,2차 합격 소식을 들었던 것을 보면 어쩌면 방법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몰랐다. 어떻게든 성공해야 했다.






다 지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괴롭다. 지금은 아이돌을 꿈꿀 수 없이 나이 들었지만, 그래서 자연스레 꿈을 포기했지만, 나는 아직도 노래와 춤이 좋다. 요정님이 찾아와 500억 가질래 데뷔할래라고 묻는다면 데뷔를 선택할 만큼 나는 아직도 미치도록 노래와 춤이 좋다.


그때 내가 다른 회사들도 지원해봤으면 어땠을까? 체중 관리에 좀 더 신경 썼다면? 엄마 아빠가 반대해도 아르바이트해서 학원을 다녔으면? 대학을 안 가고 학원을 다니면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면? 그럼 나는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


아이돌이라는 꿈이 자연스레 사장된 후, 나는 한동안 여자 아이돌들의 노래와 무대를 보지 못했다. 열등감에 미칠 것만 같았고 나는 왜 안 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마지막 즈음의 나는 집안 부흥이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잊고 있었다. 정말 마지막엔 내가 너무 무대에 서고 싶었다. 노래를 하고 싶고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는 정말 무명 아이돌이 되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냥 기회만 주어진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정말 그럴 수 있었다.


22. 아이돌로는 늦을 대로 늦은  시간. 나는 결국 내가 아이돌이   없음을 인정했다.






꿈을 잃은  나는 방향 없이 살아간다. 10 가까이 나를 지탱했던 꿈이 사라진  나는  무엇도 노래와  이상으로 좋아하지 못한다.


난 아직도 무엇 하나에 정착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노래와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과거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력이 떨어지는 앙돌을 보고 질투와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입이 떡 벌어지도록 완벽한 무대를 보면 부러움과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끔찍하리만큼 싫지만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꿈을 포기한 세월이 점점 흘러가면서 나는 더욱 어른이 되어가지만 그럼에도 알지 못하는 것투성이다. 왜 나이가 들었다고 춤과 노래를 좋아해선 안 되지?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단순히 좋아하는 것으론 나의 욕망을 채울 수 없음에 회의가 든다.


애매한 재능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이상만 높고 현실은 따라가지 못하면 사람은 쉽게 좌절한다. 나는 여전히 좌절하고 있다.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복잡한 심경을 가사의 한 구절로 토해보려 한다.


아버지, 정답을 알려줘!


내 아버지 말고, 신이든 성인이든 누구든 좋으니 제발 정답을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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