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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쁨 Apr 21. 2022

가족복지론을 배웠다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 9

우여곡절 끝에 나는 처음 다녔던 대학교에 재입학했다. 다른 거 하겠다고 뛰쳐나간 학교에 내 발로 돌아간게 유쾌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졸업장은 따야겠단 생각이었다.


내 전공은 아동복지였다. 이 과에 진학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무지의 산물이었다.


학교로 돌아 온 첫 학기에 가족복지론이라는 과목을 들었다. 자퇴 전 지도교수였던 교수님의 수업이라 열심히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만 하는, 그런 수업이었다.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셨다. 내 가족을 사정한 후 레포트를 써서 제출하라 했다.


과제는 해야 하니까. 나는 우리 가족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레포트를 쓰기 시작하며 느낀 참담한 심정은 차마 글로 다 담을 수 없다.


이 레포트를 정말 내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과 동시에 수치심이 들었다. 이런 가족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거짓으로 지어내서 쓸까도 고민했다. 결국 원본을 제출하긴 했지만.




우리 집을 관찰하다보니 평소엔 그냥 지나쳤던 모습들이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첫째. 우리 집엔 경계가 없었다. 가정에 무책임했던 아빠를 상대하던 엄마는 자신의 분노와 무력함을 우리에게 토로했다. 어쩔 땐 히스테릭하게, 어쩔 땐 울분에 차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가족의 문제에 어린 우리 남매까지 지나치게 얽혀 있었다. 작은 집에서 살다 보니 사생활도 거의 없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의존하는 행동들이 싫으면서도 안쓰러웠다. 엄마가 불쌍했고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미웠다.


둘째. 우리 집엔 문도 없었다. 집이 작은 탓에 빨래를 널 곳이 마땅치 않아 방문에 빨래를 널었다. 옷걸이가 걸리니 문을 닫을 수가 없었고, 문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됐다. 엄마와 아빠의 갈등 상황에서도 피할 수 없었던 건 문을 닫지 못한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작은 방으로 피한다고 피했지만 문을 닫지 못하니 결국 갈등에 그대로 노출됐다.


셋째. 그로 인해 정서적인 문제들이 발생했다. 엄마가 우리에게 의존하기 시작한 건 물론이고, 나는 늘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다.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이슈가 터졌을 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다. 눈만 감으면 그 바다가 보일 정도라 잠을 자는 것조차 괴로웠다. 이런 증상들이 나의 우울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가족 문제와 연관되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한 거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학계에서 말하는 “밀착된 가족”에 100% 해당되진 않았다. 신기하게도 한 집 안에서 밀착과 유리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엄마도 아빠도 우리를 사랑했겠지만, 한 사람은 우리에게 집착했고 한 사람은 우리를 방임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나는 학대 당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들으면 우리 엄마는 울겠지. 하지만 학대의 기준은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어린 아이를 부부싸움에 노출시키는 것도, 아이에게 자신의 분노를 이야기하고 표출하는 것도 학대다. 부모로서의 양육 의무를 다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술만 마신 것 또한 방임이며 학대다.


나는 내가 학대 당했다는 사실을 23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당연하게 살았던 것이 비정상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물론 다른 학대 가정에 비하면 우리 집은 양반이고 나는 정상적으로 자란 축에 들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들 내가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내게 원동력이 되었다. 내 아이는 절대 이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세상엔 보이지 않는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는 가정도 많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6년이 지났음에도 이 과제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참담함. 괴로움. 수치심. 외로움. 수많은 감정을 느꼈고 결국 나는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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