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 8
아빠는 시장에서 가게를 하다가 그만둔 후, 청소 일을 시작했다.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처우도 괜찮았고 월급도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적인 일이었다.
장사를 할 때는 거의 손에 쥐는 돈이 없었으니, 엄마는 싱글벙글이었다. 그래도 고3 초반에는 수험서 살 여유 정도는 있었던 걸 보면 그나마 살 만했던 시절이었다.
안정된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술 마시고 출근하는 날이 빈번했고, 야간근무이던 스케줄이 주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떤 무언의 압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뒀다. 야간 근무보다 수입이 줄었다는 이유였다.
금방 재취업할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매일 술을 마셨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내 귀에 들리는 건 또다시 엄마와 아빠의 다툼 소리였다.
나는 피폐해졌다. 아빠의 실업 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레슨도 포기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려고 하니 수능완성이며 n제며 문제집도 사야 했다. 엄마한테 말하는 것조차 스트레스였다. 수능 접수비용을 말하는 것도 스트레스였고, 무슨 인터넷 강의를 볼 수도 없게 인터넷이 끊긴 것도 스트레스였다.
엄마는 조금 히스테릭했지만 수험생인 내게 최대한 많은 것을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돈이 없는데 뭘 할 수 있겠는가. 학원 하나 다니지 못했고, 돈 주고 듣는 강의도 듣지 못했다. 어디서 엄마가 영어 단어를 공부하는 태블릿 같은 것을 사 왔지만, 사실 내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나도 노력은 했지만, 정보가 너무 없었다. 예체능반이었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도 일반 입시 지식이 부족했다. 사실 그땐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하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정말 무지했고 그래서 더 답답했다.
나는 예민함을 아빠에게 토로했다.
아빠는 왜 맨날 술을 마셔?
나 이것도 해야 하고, 이것도 해야 해.
물론 아빠는 듣는 체도 않았다. 매일 똑같이 술을 마시고 코를 골며 자고. 그러면서도 성적으로도 잔소리를 했다. 진짜 미치겠는 거다. 요금 연체로 인터넷이 끊겨 무료 강의인 EBS도 들을 수 없었고, 그나마 TV는 아빠가 독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용을 써도 기초를 제대로 잡지 못한 과목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빠의 실직 기간이 길어지고 나는 더 예민해져 갔다. 피폐해졌고 우울해졌다.
나는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성인이 된다지만,
내 동생은 어떻게 하지?
점점 나는 미쳐갔다. 아빠에게 매일 호소했다. 나 너무 힘들다. 최소한 동생을 위해서라도 이러지 말아 달라. 동생은 3년 이상 남았으니 동생을 생각해달라. 나는 어떻게든 버텨볼 테니 나머지 가족을 챙겨달라. 외치고 또 외쳤다.
귀를 닫은 아빠를 보며 할머니가 왜 엄마한테만 소리를 지르고 싸움을 걸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말이 안 통하면 포기해야 하는데 도저히 포기가 안 됐다.
아빠와 싸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증은 깊어져 갔다. 매일을 싸우고 홀로 자해를 했다. 살고 싶지 않은 나날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아빠한테 말했다.
“나 정말 죽고 싶어.”
아빠가 답했다.
“그럼 저기 상가 가서 떨어져 죽어.”
나는 그날 그 싸움의 공간, 공기, 느낌을 다 기억한다.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다.
할 말을 잃은 내게 아빠는 또다시 말했다.
“뭐 어디서 전선이라도 구해줘?”
진심으로 그 자리에서 목구멍에 칼을 쑤셔 넣고 죽고 싶었다. 그래야 이 끔찍한 상황이 끝날 것만 같았다.
아빠는 어떻게 부모 앞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하냐고 소리쳤다. 정말 몇 년이 쌓인 마음을, 처음으로 터트린 건데, 졸지에 부모 앞에서 패륜을 한 불효녀가 되어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그날이 똑똑히 기억나서 괴롭다. 꺼내고 꺼내서 무뎌지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이 날의 기억만큼은 지워지지가 않는다.
아빠가 나를 때린 적은 거의 없다. 게다가 아빠는 나를 사랑했다. 그렇지만 무책임했고 무정했다. 아빠에게 딸은 그저 기분 좋을 때나 예뻐 보이는 인형과 같은 존재였다.
아직까지 아빠는 돈이 없어도 매번 너희 고기는 사 먹였다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자랑할게 자식 먹일 고기 사 온 것 밖에 없구나 싶다가도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다.
난 아직도 아빠를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수많은 아빠와의 다툼이 있었지만 그 일은 유독 기억이 난다.
문득 다툼이라는 단어가 옳은가 싶다. 성인 남성, 그것도 부모가 자식을 대상으로 벌인 기싸움과 무시가 다툼이라는 귀여운 용어로 형용될 수 있는 건지, 난 잘 모르겠다.
아빠는 그날의 일을 새까맣게 잊고 살아가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모르겠다. 10년이나 지났으니 잊을 만도 한데, 내 등 뒤에 닿던 문의 느낌이 선명해서 도저히 방법이 없다.
나는 정말 죽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 생활 중 살고 싶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날은 정말 당장 누군가 나를 죽여줬으면 싶을 정도로 끔찍한 날이었다. 내가 과연 이 기억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날이 올까? 이겨내고 싶은데 이겨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정말 그때 아빠가 내가 죽길 바랐더라도 나는 이제 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