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 4
내가 다니던 교회는 부촌에 있었다. 부촌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부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교회학교 선생님은 실제 드라마에 나오는 집에 살고 있었고, 교회 친구는 주방과 다이닝룸이 분리되어있는 고급 주택에 살고 있었다. 공부방과 방이 분리되어 있는 친구도 있었고, 집에 다락방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한 방에서 다 같이 잠을 자던 우리 집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어릴 때의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집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일에 순응하고 받아들였듯 밖에서도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모든 일에 그러려니. 다 그렇게 흘러가겠거니.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나는 조용하고 음침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방학이라 유독 교회에 갈 일도 많았던 때였다. 당시 나는 교회에서 뮤지컬과 연극을 배우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마음 반 엄마의 강력한 권유 반이었다.
재미는 있었다. 소극적이긴 했지만 노래를 좋아하긴 했으니까. 좋은 배역을 맡으면 기뻤고 열심히 연습했다.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즐겁게 임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친구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왔을 때부터였나? 허름한 우리 집을 보고 실망한 눈을 알아채지 못했을 때였나?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왕따가 되었다.
가정불화에 교우관계 파탄이라니. 나는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내 노랫소리 때문에 고막이 터졌다느니, 방에 가두고 욕을 하기 전엔 내보내 주지 않겠다느니, 나를 괴롭힌 내용을 일기장에 써서 엄마한테 보여줬다느니. 말도 안 되는 말과 괴롭힘이 날 괴롭게 했다. 나를 괴롭히던 무리의 대부분이 목사, 전도사의 딸이었고, 일기장에 써서 엄마에게 보여줬다는 말까지 들으니 정말 믿을 어른조차 없다는 공포심에 휩싸였다.
동생이 있는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보고 비웃고, 윽박지르고, 조롱했다. 괴로움보단 비참함이 더 컸다. 그래도 내가 정말 좋아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었는데.
괴롭힘이 오래 가진 못했다. 그 애들이 내 옷을 숨겼다. 아까까지 있던 옷이 안 보여 허둥댔고, 처음엔 크게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우리 엄마까지 상황의 심각함을 눈치채 버렸다. 엄마는 나를 내보내고 그 애들을 앉혀놓고 불 같이 화를 냈다. 교회 한 구석에 숨어 생각했다. 이제 끝인가?
얼마 후, 그 애들은 나를 찾아와 사과했다. 그 애들의 부모도 엄마에게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다시 세상은 돌아갔다. 이상했다. 분명 사과를 들었고 원래대로 돌아왔는데 하나도 나아진 게 없었다.
더 이상 불려 가지 않았고 괜한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지만 다시는 그 애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그 애들은 나를 피했고, 나는 그 애들의 눈치를 봤다. 그때 이후로 난 누가 나를 싫어하는 낌새만큼은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조금이라도 공기가 달라지면 눈치를 보고 쉽게 절망을 느낀다.
그래. 이 사건이 나의 두 번째 트라우마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왕따 당한 이유를 알았다.
내 옷에 밴 담배 냄새 때문이었다.
아빠는 항상 집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옷은 작은 방에 있었지만 방문도 닫지 못하는 집에서 연기는 잔해가 되어 곳곳에 스며들었다.
누렇게 바랜 벽지, 담배 쩐내가 빠지지 않는 집, 나도 모르는 새 옷에 스며든 냄새.
알게 된 계기도 우스웠다. 엄마가 아빠와 싸우는데 워낙 작은 집이라 듣기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어찌할 수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아. 겨우 그 이유라고?
내 잘못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매번 불려 가 방에 갇히고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을 겪어야 했던 거야?
비참하고 괴로웠다.
그중 가장 괴로웠던 건, 다 알고 있으면서 담배를 끊지도 않는, 아니, 최소한 밖에서 피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 아빠의 태도였다.
그때 이후로 나는 항상 눈치를 보고 위축되고 상처가 가득한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왜 아빠는 내 눈치를 보지 않을까?
그래. 나도 안다. 아빠 잘못 만은 아니라는 것, 나도 잘 안다. 그냥 그 애들의 질이 나빴던 거고, 핑계를 만들었던 거고, 그 이유가 아니었음 다른 이유를 들어 나를 괴롭혔을 거라는 거, 안다.
그렇지만 내가 부모라면, 그 잘못이 한심한 그 애들에게 있다고 할 지라도 자식에게 상처가 된 행동을 계속하진 않았을 거다. 최소한 “언제까지 그 얘기할 거야.”라며 본인이 피해자인 척 하진 않았을 거다.
이제는 그때의 그림자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상처가 치료된 건 아니다. 애초에 그때 누구도 나를 위로하고 치료해주려 한 적이 없으니까. 모두가 그저 한 순간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니까. 나만 이상한 사람이어서, 나만 그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거니까.
아니야. 나는 그냥 어렸고 여렸을 뿐이야. 내 잘못이 아니야.
그래. 난 그 이후로 삶의 이유를 느껴본 적이 없다. 살아있으니까 살았다. 그렇지만 항상 살고 싶지 않아도, 죽고 싶어도, 그래도, 나아지고 싶고, 나아가고 싶다.
그래. 나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