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 6
자해
스스로 자기 몸을 해침
자해의 사전적 의미를 보고, 내 행동들이 자해였다는 걸 깨달았다.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내 모든 정서와 심리가 썩어 문드러졌음을 깨달은 것이다.
언제가 시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부모님이 싸우거나, 내가 부모님과 싸우거나, 혹은 아주 극심한 스트레스에 놓였을 때 나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앉아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파묻은 채 엉엉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이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언가 터져 나오기 직전의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내 몸을 때렸다.
때렸다, 라는 말은 조금 단순하다. 그때그때 달랐지만, 머리를 쥐어 뜯기도 했고, 팔을 깨물기도 했고, 꼬집기도, 할퀴기도 했다. 주먹으로 허벅지를 쾅쾅 내려치기도 하고 뺨을 때리기도 했다.
그래도 초반에는 나 자신을 진정시켜보겠다고 이런 행위를 했던 것 같다. 분노, 두려움, 절망, 괴로움, 흥분 등은 어린 내가 쉽게 가라앉힐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내 몸을 때린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가 주어졌고, 더 이상 내 몸을 때리는 걸론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하지만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학습되어 버린 나는 매일을 울면서 나 자신을 괴롭혔다.
“이러지 마. 이러면 안 돼.”
나 자신에게 되뇌면서 온 몸을 꼬집고 할퀴었다. 울어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그만 그치고 싶은데,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한 번 감정이 폭주하기 시작하면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숨도 쉬기 어려웠다. 너무 오래 울다 보면 탈진 직전이라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는 지조차 까먹기도 했다. 꺽꺽,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하면서 살아보겠다고 어떻게든 숨을 뱉어내는 내가 우스웠다.
이 행위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가장 절정이었다. 왕따를 당한 이후로 나는 상황의 변화에 아주 예민해졌고, 쉽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의 나라면 차라리 물건을 던졌을 텐데. 휴지든 연필이든, 내 앞에 놓인 물건을 던지고 화를 풀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정말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냥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어떻게든 흥분상태의 나를 진정시키고 싶어 한 발악이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이 지났다고 자해가 끝나진 않았다. 물론 성인이 되고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제법 단단해졌다. 하지만 나는 항상 내가 모래성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는 멀쩡해 보이는 모래성이 사람의 손이나 파도에 닿으면 무너지고 사라지듯, 언젠가 나도 그렇게 무너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 역시나 나는 무너졌다. 성인이 됐다고 부모님의 싸움이 사라진 게 아니었고, 나와의 싸움이 증발된 게 아니었다. 나는 한 달에 수십 번 무너졌다. 밖에서는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내 몸이 새빨개질 때까지 때리고 꼬집고 깨물고 할퀴기를 반복했다.
항상 불안정하던 나의 삶에 의지가 되는 사람이 생기면서 나는 많이 안정되어 갔다. 20대 중반이 되면서는 자해 횟수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새벽에 아빠가 갑작스레 거품을 물고 쓰러진 날. 부모님이 119 구급대와 집을 비운 후, 나는 다시금 내 온몸을 뜯으며 눈물을 흘리고 발악을 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이게 자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간신히, 정말 간신히 진정을 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들과 있던 동생이 급하게 돌아왔다. 동생과 함께 병원에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내 상태에 대해 말했다. 나는 사실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내 몸을 때린다고. 동생은 크게 충격을 받았고,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아서 시원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허무했다. 어린 동생도 부모님도, 그 누구도 내가 이렇게까지 극단에 몰린 걸 알아채지 못했구나. 비참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지금의 내가 많이 단단해지고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고도 생각한다. 지금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 나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모조리 터져버리리라 생각한다. 나는 항상 두렵다. 내가 과거의 나처럼 될까 봐. 또 나를 괴롭히는 것으로 이겨내려 할까 봐.
나는 아동복지를 전공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일종의 학대 속에 자랐고 나 자신을 학대해 왔다. 끊임없이 심리적 충돌 속에 살아가고 있고 내게 얼마나 많은 방어기제가 심어져 있는지 다 설명하기도 어렵다.
내 방어기제들이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있지만, 단숨에 모든 것을 무너뜨릴 해일이 언젠가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 나는 두렵고 무섭다.
이게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어찌 보면 치부일 수 있는 과거의 이야기까지 들먹이는 이유는, 어떻게든 내가 강해지고 싶어서이다. 담담한 척 이야기를 써가는 과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내가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저 깊고 깊은 무의식에 박아 둔 내 상처들을 스스로 꺼냄으로써 내가 조금이라도 치유되지 않을까. 오직 그 이유로 내겐 고통이며 슬픔인 이 글을 쓰고 있는 거다.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내가 자해를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괜찮다며 위로를 건넸다. 말해놓고 보니 별 거 아닌데. 도움이 필요한 와중에도 치부라는 이유로 꽁꽁 숨기고 살았다.
언젠가 마주할 감정이라면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 나는 정말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다 하고 있다. 정말, 이젠 살고 싶어서.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나도 진짜 이제는 행복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