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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율 Nov 09. 2023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인가요?

장작의 내맘대로 리뷰 

깨알 장소 정보: 방화역 투썸플레이스

평점: ⭐️⭐️⭐️⭐️(4/5)


한 줄 평: 당신의 고도는 무엇인가요? 


#4. 네번째 장작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오증자 옮김/ 민음사


 에스트라공(고고) 난 원래 그렇다. 금방 잊어버리거나 평생 안 잊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다. -pg. 104 


소년 고도 씨에게 가서 뭐라고 할까요? 블라디미르(디디) 가서 이렇게 말해라. (말을 중단)……. 나를 만났다고 말해라. (생각한다….) 그냥 나를 만났다고만 해……. -pg. 159


 블라디미르(디디)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고고)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pg. 163 


#1. 제목


 프랑스어 원제는 'En attendant Godot'. 영문 'Waiting for Godot'.  그대로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노벨문학상 작품. 이 책은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추천해준 책이다. 


처음 제목만 들었을 때, 고도를 高度로 해석한 탓에 파일럿이 최고 고도를 향해 비행해서 자살하는 스토리를 상상했었다. 조금 읽다가 고도가 사람인 걸 알고 어이가 없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고도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정말 단순하지만, 더 나은 제목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이 있을까?  



#2. 표지


 사뮈엘 베케트 본인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 표지 색이 밤색인 이유를 생각해보니 고고와 디디가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자리 잡은 나무가 생각났다. 나무는 고고와 디디가 고도를 영원히 기다리는 것처럼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처럼 말이다. 


나무 = 고고, 디디 = 밤색 (?) 


 #3. 내용 


주인공 두 명(에스트라공(고고), 블라디미르(디디))은 어느 시골길 한복판 정체 모를 나무 아래서 고도를 기다린다. 그 과정에서 상인 포조, 노예 럭키 ,소년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매일 같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어렴풋이 기억할뿐이다.


 #4. 매력 포인트


 1. ‘인간의 대화’에 대한 통찰력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됨에도, 매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대화의 양상은 변한다. 이는 같은 장소, 같은 상황, 같은 시간으로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도 다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베케트는 발견하고 있다.  또한 베케트가 대화의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기점에 ‘침묵’을 삽입하여 대화의 전환점으로써 사용하는데, 이는 그가 ’인간의 대화‘에 대한 상당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2. 인간의 착각: 시계는 정확하다?


 그레고리력, 율리우스력 등 여러 역법의 존재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이는 인간이 시간의 개념을 완벽하게 정복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의 방증이다.  고고와 디디, 포조가 그 점을 다시금 자각하게 한다.  [ 지금 몇 시냐? -pg. 147 ] 라는 질문에 디디는 일곱 시 여덟 시라는 흐르는 시간개념을 말하지만, 고고는 해를 보며 지는 해인지 뜨는 해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이는 정지된 시간개념 혹은 하루의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있는 니체의 영원회귀사상과 유사하다.  또한, [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pg. 154]라는 포조의 말도 탄생의 순간이 죽음과 연결되는 영원회귀사상과 맞닿아 있다. 정리해보자면, 디디는 하루의 끝이 있어서 과거라는 개념이 있지만, 포조와 고고에는 과거라는 개념이 모호하여 기억과 추억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디디의 대화방식이 제일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개념이 정답인가? 는 분명 또 다른 문제이다. 


3. 부조리극의 역설


 이 책은 부조리극이다. 부조리극은 인간의 목적을 찾는 경향이 부질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극이다. 이에 모든 인물의 대화에는 맥락과 목적이 없다. 의사소통이 안 된다. 애초에 ’고도’가 무엇인지 정해진 것이 없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의도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극을 보고 무언가 심오한 것을 찾으려 했다면 잘못된 감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독자들은 “고도가 무엇인가?” 찾는 과정에서 좌절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며 풍부한 사유를 만들어 낸다. 마치 연금술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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