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 닥터 차정숙 10회 본방 사수하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이 풀렸다. 줄거리 흐름과는 별로 상관없어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관심을 안가졌을 것 같은 장면이라 스포도 안될 것 같아 써보려고 한다.
차정숙이 왜 그렇게 평생 호구로 가족만을 위해 살았을까 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동안 정주행했다. 차정숙의 엄마인 오덕례가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동안 보여준 오덕례의 행동은 엄마로서 든든한 지원자여서 나무랄 것이 없었다. 차정숙이 20년만에 레지던트를 한다 해도 응원하고, 또 그만 둔다 해도 응원하고 무조건 딸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드디어 단서를 잡았다. 차정숙이 엄마에게 아빠가 밉지 않았냐고 왜 삼시세끼 차려줬냐고 했을 때 오덕례가 말했다. 내 남편이라서가 잘해준 게 아니라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이라고. 그시대에 남편을 사랑해서 같이 산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너는 마음이 크니까 서서방이 미워도 아이들 아빠라고 생각하고 잘해주라고. 언젠가 자기 잘못을 뉘우칠 날이 올 거라고.
이 멘트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엄마들이 호구 역할을 하며 그걸 미덕으로 여기는 대대로 내려오는 호구 가스라이팅의 중요한 대목이다. 전문용어로는 의존적 성격이라 하고, 쉬운 말로는 호구라 한다. 자기애적이고 착취적인 남편을 만나면, 쉬운 말로 말해 나쁜 남자와 결혼하면 평생 이용 당하며 참고 견디는 가장 흔한 성격이다. 나만 참으면 애들도 결핍없이 행복하게 자랄 거고, 언젠가 남편도 내 고생을 알아줄 거라고 죄를 뉘우치고 변할 거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호구로 자라는 프로세스는 크게 두가지다. 우선, 착취적인 엄마가 평생 자식을 착취하며 호구 역할에 익숙하게 한 경우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최악은, 의존적인 엄마가 평생 자식에게 호구 롤모델 역할을 해줬을 때이다. 오덕례가 차정숙에게 그 역할을 했다는 단서가 오늘 드디어 나왔다.
부디, 차정숙이 의존성을 극복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결말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대부분의 드라마는 그렇게 진행 되지 않는다. 권선징악, 즉 참고 견디면 선한 영향력으로 결국 나쁜 놈들이 정신차리고 모두 해피엔딩된다. 이 드라마도 아마 그렇겠지. 그렇게 또 수많은 호구 엄마들을 가스라이팅 하겠지. 그렇게 호구성이 아이들에게도 대물림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