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수업 (1)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주관적’이며 ‘현실적’입니다. 이 중에서도 제가 가장 주목하는 속성은 ‘주관성’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교수의 책 『당신이 옳다』와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교수의 책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에서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느끼든 그것이 옳다, 당신은 언제나 옳다.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며 개인의 고유한 성정과도 같습니다. 즉 너무나 소중한 ‘나만의 것’이므로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죠. 내가 슬프면 그것이 옳고, 내가 화가 나면 그것이 옳고, 내가 우울하면 또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저를 찾아온 내담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감정을 의심합니다.
“선생님, 제가 진짜 우울한 게 맞을까요? 저만 유난스럽게 느끼는 거 같아서요.”
“이 정도 일로 이만큼이나 화가 나는 게 정상적인 건가요? 아무래도 저는 너무 예민한 사람 같아요.”
그때마다 저의 답변은 한결같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 감정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내 감정에 자꾸 의구심을 갖고 타인에게 늘 내 감정 상태를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그만큼 오랜 기간 우리가 내 안의 감정과 기를 써서 거리를 두고 그를 외면하며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내 감정을 철저히 방치하고 학대해온 것이죠. 이렇게 나의 솔직한 감정을 부정하는 패턴이 반복되면 타인의 판단이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고, 그렇게 서서히 자존감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틀렸다고 생각하니 자꾸 남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마음의 크기가 한없이 쪼그라들죠. 그러나 내 마음은 내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게 맞습니다. 사회에서 감정 드러내는 것을 터부시한다 해도, 내 감정을 터놓았을 때 원치 않던 반응이 돌아온다 해도 당신의 감정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세요. 감정은 주관입니다.
이어지는 감정의 두 번째 속성은 ‘현실성’입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감정을 형이상학적인 것, 현실의 삶과는 동떨어진 무언가로 인식합니다. 우리에게 감정은 내 삶을 성공으로 이끌거나 극적으로 변화시키거나 폭발적으로 성장하게끔 하는 요소가 아니죠. 그저 알면 좋고 몰라도 큰 문제 없는 교양쯤입니다. 그러나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도구임이 분명합니다. 감정에 우리의 하루하루는 대책 없이 끌려다니니까요. 감정에 따라 우리 세상의 색깔이 바뀌고 나의 행동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렇듯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바뀌는 나의 감정이 오랜 시간 동안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면 고유한 ‘정서’가 됩니다. 이는 개인이 특정한 행동을 할 때 맞물리는 감정들의 패턴으로, 내적 동기의 주요한 요인이 되며 삶을 살아가는 개인의 태도를 형성하는 데 근간이 되는 것이죠.
감정과 정서는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가령 회사에서 상사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았다고 생각해볼까요? 평소 감정이 좋지 않던 상사의 업무 지시를 받았다면 어떨까요? 말로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겠지만 하기 싫은 마음을 숨길 수 없어 표정으로 다 드러날 것입니다. 상사 역시 팀원의 감정을 다 읽어냅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감정이 요동칩니다.
‘상사가 중요한 일을 시키면 열심히 하겠다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저런 석연치 않은 표정이라니. 영 마음에 안 들어.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저 친구를 제외해야겠군.’
‘젠장, 오늘부터 야근이네. 마감이 임박해서 떠넘기다시피 일을 주는 이유가 뭐지? 내가 싫어서 저러는 거겠지? 하, 진짜 하기 싫다.’
일을 받자마자 반감부터 들고 하기 싫은 마음을 떨칠 수 없는데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중요한 일을 맡았으니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죠. 감정은 일의 목적과 개인의 업무 능력과는 별개로, 일의 흐름과 두 사람의 관계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순식간에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올려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것도 결국 감정입니다. 감정은 우리 삶의 순간순간마다 일종의 스노우볼 효과를 불러오거나 물길의 방향을 바꾸는 식의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더 이상 감정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라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생각보다 강력한 감정의 힘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역시 내 감정을 잘 인식하고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감정의 마지막 속성은 ‘자연스러움’입니다. 의대 본과 3학년, 처음으로 수술방에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전날 밤에는 떨리고 긴장되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었죠. 환자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치료 과정을 직접 경험한다는 중압감에 잔뜩 위축되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술하는 과정과 환자의 회복 과정을 지켜보면서는 의사의 역할에 대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수술 실력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람을 살리는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죠.
위암 수술을 예로 들면 의사의 역할은 암 부위를 포함해서 좀 더 넓게 위의 일정 부분을 잘라내고 봉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수술 후, 절제하고 봉합해놓은 부위가 잘 붙어서 다른 장기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 여부입니다. 즉 사람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라는 의미입니다. 치료하는 것과 치유되는 것은 같은 범주에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꿰맨 자리가 빠르게 붙으면서 새로운 조직이 생성되어 음식물이 통과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아무리 천의무봉의 솜씨를 가진 의사에게 수술을 받아도 회복이 더디거나 재발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환자의 건강 상태나 자기 회복력에 따라서 수술 경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의사는 우리 몸 안에서 부자연스럽게 작용하는 요소를 없애고 몸이 다시 자연스러워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라는 것을 말입니다.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에도 의사의 역할에 대한 제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서 이것을 억압당할 때 문제가 터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전공을 선택한 후에는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나다운 자연스러움’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정신과 진료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나 내담자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보듬어주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신과 의사와 상담사의 역할은 사람을 개조하고 설득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정신분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분석’이라고 하면 왠지 사람의 마음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교정하는 행위 같습니다만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자연스럽지 않았던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도록 그저 길을 터주는 작업을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해내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입니다. 정신과 의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말하고 싶어도 참고 들어주는 것’을 꼽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의사는 내담자의 감정을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이 살살 다루어야 합니다. 마구 파헤치면 내담자는 상처받고 관계도 망가집니다. 이는 정신과 의사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살뜰하게 다루어야 하듯이 타인의 감정도 귀하게 여기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성공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 삶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삶의 방향이 옳은지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저는 그 기준을 ‘내가 나의 감정에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는지’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의 속성인 주관성, 현실성, 자연스러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행복한 삶의 그야말로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외면한 채 앞만 보며 내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밀려오는 낯선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때가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이런 내면의 카오스에 빠지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감정들의 실체와 쓸모를 공부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정규 교육 과정 중에서 ‘감정’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은 전무합니다. 그런 시간의 부재가 지금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 결핍된 사람들이기에 더더욱 나의 결핍이 만들어낸 내 안의 감정을 쓸모 있는 무언가로 여기며 꾸준히 배우고 익혀야 하는데, 그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라도 우리가 감정을 공부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일 것입니다. 내 삶의 열쇠를 쥐고 있는 감정이 늘 옳고, 그리하여 언제나 자연스럽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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