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수업(2)
과거에 내가 저지른 실수나 실패를 떠올리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안일했던 시간,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몇 년간 쌓아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던 뼈아픈 경험, 나의 무심함으로 소원해져 버린 소중한 인연들…. 이런 후회스러운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대개는 자신을 공격하고 비난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왜 남보다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에 인색할까요? 타인을 응원하고 위로하듯이 스스로를 보듬어주는 것. 자기 연민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런 자기 연민의 감정도 많이 왜곡된 감정 중 하나라 정신과 의사로서 참 안타깝습니다. ‘연민’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입니다. 외롭고 힘들어도 쿨한 척하는 걸 멋지다고 생각하는 요즘의 정서상 불쌍하다는 말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깁니다. 그래서 연민은 촌스러운 감정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죠. 게다가 자기 연민이 현실을 무시하고 문제를 회피하는 등 자신을 보호하는 데 급급한 부정적인 자기방어의 한 가지 예시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연민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확장하는 과정 전반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런 선입견에서는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연민의 근간은 성장 환경 속에서 형성된 나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면서 나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다 보면 저절로 공감하게 되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비난, 책망, 후회보다는 안쓰러움과 대견함 등으로 감정이 확장되면서 어느새 이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죠.
그래서 자기 수용의 단계에 이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이 바로 자기 연민이기도 합니다. 무턱대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고 다독이면서 때로는 상대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기도 합니다. 이로써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괴로웠던 마음도 평안함에 이릅니다. 이렇게 진정한 자기 이해를 통해 나 자신을 공감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비판하려고 노력하면 나의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쓸 일이 줄어듭니다. 그렇게 축적된 에너지는 적극적으로 외부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겠죠.
반면에 자기 연민 없는 자아 비판에 익숙한 사람은 실수를 통해 배우기보다는 그저 자신을 공격하는 데 집중합니다. 한정된 에너지를 이렇게 쓰다 보면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에서도 점점 더 멀어지게 되지만요.
‘자기 비하’의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비하는 방어적 심리 반응을 일으켜서 도리어 핑계를 만들어줍니다. ‘어차피 안 될 텐데 뭐하러?’라면서 지금 내가 이 일을 시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화를 해버리는 것이죠. 매번 해야 할 일의 마감을 어기고 때로는 잠수 타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이런 유형입니다. 약속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 연민은 다음번에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를 격려하며 이번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게끔 만들어줍니다. 다시 한번 무언가 시도해볼 용기를 주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 연민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자기 비하와는 완전히 다른 감정입니다.
“자기 연민은 인생의 독이야.”
이런 조언은 연민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해입니다. 자기 연민은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입니다. 실수를 저질렀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때, 누군가로부터 거절당해서 낙담하고 있을 때 나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위로의 말과 같습니다. 힘이 되는 친구이자 자책감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아주 소중한 ‘기댈 곳’이죠.
연민의 감정이 지닌 이러한 긍정적인 면에 주목하면 관계에서도 사람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게 됩니다. 아울러 관계에서 오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좀 더 차분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에게도 연민은 중요한 감정입니다. 양육자가 스스로를 비난하고 늘 위축되어 있으면 아이와의 내밀한 정서적 교감 또한 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와의 애착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겠죠.
이는 육아뿐 아니라 배우자와의 관계, 사회생활 속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는 태도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들에게서도 자연스럽게 비난할 것부터 보입니다. 아이도 혼낼 것만 보이고, 배우자도 원망스럽고, 회사에서 벌어지는 상황들도 탓할 것들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와 마음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깊게 교감하는 경험을 쌓아나가면 가족과 주변 사람을 수용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일종의 선순환이죠. 누구든 좀 더 가까이 마주하면 포용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면서 관계도 개선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납니다.
반면에 자기 연민이 부족한 사람은 인간관계를 맺거나 새로운 시작을 할 때도 자꾸 위축되기만 합니다. 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 보니 나의 어떤 점이 부족하고 긍정적인지 몰라서 영 자신감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의 현실을 마주하면 괴로울 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스스로를 비난하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감정까지도 수용하는 고통스러운 과도기를 거쳐야 나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감정도 자기 연민, 얻어지는 감정도 자기 연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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