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밀려들 때

감정수업(3)

by 정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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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청소부 히라야마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새벽 무렵 동네 주민의 빗자루질 소리에 잠을 깨면 화분에 물을 준 뒤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듯 옷을 갈아입고 준비물을 챙겨 길을 나섭니다. 히라야마의 일터는 시부야의 화장실입니다. 근사한 건축미를 지닌 공중화장실을 말끔히 청소하는 게 그의 일입니다. 퇴근 후에는 목욕탕에 들러 사우나를 하고 단골 선술집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헌책방에서 산 문고본을 읽으며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창밖의 빗자루질 소리를 들으며 어제와 같은 하루를 시작합니다.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히라야마가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채워가는 일상의 맥락으로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서사를 짐작할 뿐이죠. 그 대신 영화를 보고 나면 외로움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하루하루를 온전히 혼자 보내는 히라야마가 웬일인지 그리 외로워 보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히라야마는 외로움이 혼자라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정서가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혼자 일을 하고, 혼자 목욕탕을 가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가를 보내는 히라야마는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왜 우리를 찾아오는 걸까요? 흔히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겨 그들과 멀어지거나 혼자가 되어 쓸쓸해질 때 느끼는 감정을 외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외로움을 이렇게 타인과의 관계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인간은 영원히 외로움에서 헤어날 수 없을뿐더러 그 감정에 제대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의 관계’가 멀어졌을 때 우리를 찾아오는 감정입니다. 타인과 소원해지면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관심이 없어지듯이 나와의 관계가 소원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은 대개 나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자신과의 소통에도 서툰 사람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내 안의 다양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거북한 감정은 억압하고, 익숙한 감정만 받아들이면서 나와의 가짜 소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리 애써봐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에 점점 더 쓸쓸해지겠지만요. 이렇게 내면이 고립되면 자신과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에 나의 바람이 아닌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삶에 익숙해져 갑니다. 일종의 자아 분열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나의 일부를 부정하고 한쪽 측면만 받아들이면 자아는 통합되지 못한 채 분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히라야마는 비록 혼자였지만 오히려 자신과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외롭게 두는 것도 문제입니다. 계속 말했듯이 감정에는 죄가 없습니다. 오히려 외로움을 무시하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자신을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감추는 것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한시도 견디지 못해서 타인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나만의 독립적인 영역이 희생당하고 존재감은 훼손됩니다. 그렇게 점점 더 나에게서는 멀어지고 말죠. 나와의 소통이 단절될수록 관심은 외부로 향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쉬지 않고 연애를 이어나가는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연애는 결코 근원적인 외로움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상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더 많이 연락하고 더 자주 만나려 하면서 집착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상대에게 부담을 주고 관계는 부자연스러워지기 마련입니다. 누군가 나를 계속해서 구속하려고 하면 어떨까요? 당연히 벗어나고 싶고 도망가고 싶겠죠. 결국에는 늘 그래왔듯이 헤어지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이처럼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타인에 집착하면 내면은 더욱 공허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외로움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때문에 ‘호구’가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0~30대 젊은 층은 물론이거니와 40~50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았다고 생각되는 중장년층도 무리에서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호구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가령 특정 무리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자기주장을 하지 않거나 다수의 의견에만 의존한 채 꾸역꾸역 여기저기 끌려다닐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내 지갑부터 열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거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뒤늦게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회사에서는 능력 밖의 일을 떠안고, 가정에서는 성인이 된 자녀들에게 무리하게 금전적 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여도 같은 공간에서 자주 만나거나 오랜 시간 일상을 함께해오고 있는 이들에게 소외당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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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무리로부터의 소외감이 아니더라도 넘치게 애정을 줬던 이와의 단절이나 이별, 상실 또한 외로움을 불러옵니다. 주변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한 사람 혹은 어느 대상 하나의 부재가 외로움을 불러올 수 있는 거죠. 특히 자신으로부터 독립해가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평생에 걸쳐 의존과 독립의 균형점 맞추기를 합니다. 특히 부모는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헌신하죠. 아이가 자신에게 의존하면 할수록 부모는 아이에게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쏟고, 그만큼 자신의 감정과 삶에 대해서는 주체적으로 고민하지 않게 됩니다. 성인이 된 후 공고해진 자아가 다시 분열되는 시기가 이때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이는 점점 커가면서 자아가 강해지고 청소년이 되면 부모에게 의지하는 영역도 줄어들면서 무엇이든 자기 주관대로 하려고 합니다.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자기주장을 펴나가면서 부모와 연결된 끈도 서서히 놓으려고 하죠. 이 과정에서 부모도 다시 자신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물론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연결의 끈을 놓기가 여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동안 나를 잊고 부모 역할에만 충실했던 사람일수록 더욱 힘들 것이고, 나중에는 빈 둥지 증후군을 느끼면서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그동안 내가 나 자신과 많이 멀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혹은 어떤 집단을 사랑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외로움과도 기꺼이 친구가 되어보세요. 혼자만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나갈지 고민하고 하나씩 의미 부여를 하다 보면 외로움과 기꺼이 함께할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고독을 즐기며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가족과 친구처럼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정서적으로 교감해온 사람들에게는 나의 외로움을 어느 정도 털어놓아 보아도 좋습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수용해주어야 합니다. 깊은 관계는 서로가 내밀한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야만 형성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전혀 읽을 수 없다면 그 관계는 지속 가능하거나 상호 충만한 관계가 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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