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수업 (4)
‘살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응답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 ‘가장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감정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대부분이 ‘기쁨’과 ‘즐거움’을 꼽을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우리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대표적인 감정이죠. 그런데 비슷한 뉘앙스의 이 두 감정은 서로 다른 상태의 행복감을 의미합니다.
기쁨은 행위의 결과로 인한 행복감, 즐거움은 행위 그 자체 또는 상태로 인한 행복감을 의미하기에 순서를 매기자면 가장 보편적인 행복에 가까운 감정은 기쁨이고, 그다음이 즐거움이죠. 기쁨은 즐거움에 비해 내적인 만족감에 가까워서 깊고 지속적인 감정이기에 외부 자극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별거 없어도 괜찮은 마음의 상태’가 바로 기쁨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관 혹은 삶의 태도와 연관이 있으며, 내면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치죠. 의미 있는 존재로서의 ‘나’가 타인과 적절히 연결되어 있으면서 느끼는 주관적인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울증 회복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감정입니다.
반면에 즐거움은 외부 자극에 의해 즉각적으로 촉발되는 감각적인 감정입니다. 예를 들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친구와 수다를 떨 때,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처럼 자극에 의한 순간적인 행복감이 찾아올 때 우리는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느낍니다. 일시적인 스트레스 해소나 긍정적인 감정 유발에 도움이 되고, 비슷한 감정인 쾌락에 비해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죠. 그러나 즐거움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는 결국 쾌락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커서 중독이나 공허감으로 연결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 두 감정의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다음의 두 문장을 곱씹어보세요.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당신과 함께 늙어가는 것입니다.’
‘그의 요리는 먹는 즐거움뿐 아니라 보는 즐거움까지 느끼게 한다.’
이 두 문장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서로 바꾸어쓰면 어떨까요?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어색해집니다. 즐거움보다는 기쁨이 좀 더 고차원적인 감정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감정 중에서는 기쁨을 추구하는 편이 삶의 만족감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즐거움과 비슷한 감정으로는 아까 언급했듯이 ‘쾌락’이 있습니다. 그런데 쾌락은 즐거움에 비해 굉장히 강렬한 느낌을 주고 신체적인 반응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외부의 자극에 의한 도파민 분비를 유도해서 중독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사회 현상으로까지 설명되는 도파민은 본래 뇌신경 세포의 흥분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로, 기분을 좋게 하는 ‘행복 호르몬’으로도 불립니다. 뇌에서 도파민이 적게 분비되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고, 반대로 도파민 분비량이 과도해지면 조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 쇼핑 중독, 도박 중독 등의 증상이 바로 도파민의 과도한 분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강박적으로 특정 행위에 집착하게 되고, 더 심해져서 금단과 내성이 생긴다면 중독에 해당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비슷한 강도의 쾌락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점점 더 대상에 집착하고 몰입의 강도를 높이게 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도박 중독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도박 중독으로 진료받은 환자의 수가 5년 전인 2018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 30대의 중독이 가장 많았는데, 놀라운 점은 10대 도박 중독 환자의 증가세도 심상치 않다는 것입니다.
도박 등의 행위 중독이 특정 단계에 이르면 신체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떨리고 초조해지면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행동 양상을 보이죠. 한 50대 중년 남성의 경우 도박에 중독된 후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일찍 회사에 출근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업무를 빨리 마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그가 도박에 중독된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일찍 출근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도박장에 일찍 가기 위함이죠.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상황이 생기면 심한 불안 증상을 보이면서 급기야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도파민과 같은 보상 시스템을 통해 추구하는 즐거움은 기쁨보다는 쾌락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 보상 시스템이 적절히 작동한다면 동기부여를 하고 삶의 에너지로 작동합니다만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 민감성이 떨어져서 웬만한 쾌락에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점점 더 강렬한 걸 추구하는 식의 내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금단과 내성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하겠지만 평소 늘 쾌락을 경계해야 합니다. 쾌락은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쉽게 중독에 빠지게 되고 그 증상이 심해지면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합니다. 이때는 ‘격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들뜨는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으면 가라앉은 괴로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법륜스님의 말씀입니다. 들뜨는 즐거움이란 쾌락에 가깝습니다. 중독성이 강한 즐거움은 외부의 자극에 의한 것이므로 그것이 더 이상 나를 흥분시키지 못하면 상실감에 괴로워하거나 급기야 비참함까지 느낍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쾌락보다는 즐거움을, 즐거움보다는 기쁨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이고요.
제게는 여행이 그런 기쁨을 주곤 합니다. 지난 가을에 가족과 함께 프랑스 동부와 남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거창한 계획을 갖고 떠난 여행이 아니라 잠시 일을 잊고 오직 가족과 함께하는 자연을 즐기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정신없는 일과에서 놓여나 본연의 나를 느끼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제 일상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이벤트입니다.
저희 가족은 도시보다는 자연을 좋아해서 산이 있는 여행지를 선택했습니다. 프랑스 남동부 지역의 아름다운 소도시를 여행했는데, 안시와 샤모니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알프스산맥의 몽블랑 기슭에 자리 잡은 샤모니는 몽블랑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도시라서 케이블카를 타고 몽블랑이 코앞에 보이는 곳에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산에 올라가는 것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이 더 좋더군요. 작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보이는 산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오랜만에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여행객인 제 눈에 프랑스 사람들은 즐거움보다는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200년은 훌쩍 넘은 듯한 아주 오래된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철학과 생각을 공유하거나 예술을 주제로 몇 시간씩 수다를 떨면서 환하게 웃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게 기쁨의 감정이 차올랐습니다.
그 사이에서도 유난히 저의 눈길을 끈 노인이 있었습니다. 혼자 앉아 있던 그 노인은 자신을 알아보며 친근하게 인사하는 웨이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늘 먹던 메뉴를 달라는 눈짓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짓더군요. 잠시 후 웨이터가 가져다준 커피를 한 모금을 마시며 바게트 샌드위치를 천천히 베어 무는 그 모습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책을 읽다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고,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잔뜩 메모하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는지 여전히 잊히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단골 카페에서 보내는 그 시간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 미소에 담긴 안온하고 따듯한 기쁨은 이방인인 저에게도 오롯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행지에서 느끼는 이런 기쁨의 감정이 특히나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멋진 자연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좋지만, 그 도시만의 문화를 느끼고 현지인들의 일상 속에 잠시나마 녹아드는 기쁨만큼 행복한 경험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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