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속이는 가짜 친밀감에 관하여

감정수업 (5)

by 정우열

사랑의 유형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론이 있죠. 바로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J. Sternberg)의 ‘삼각형 이론’입니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열정, 친밀감, 헌신이라는 세 요소를 바탕으로 형성됩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열정은 안타깝게도 3년 정도만 지속되기 때문에 사랑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열정은 생리적으로 사람을 흥분하고 들뜨게 만드는 요인이라 사랑을 시작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열정이 있어야 특정 대상에 대해 열렬한 마음이 생기니까요. 그러나 열정은 이성을 무기력하게 만들어서 충동적인 행동을 유도하기도 하고 쉽게 식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열정 대신 사랑을 오래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건 친밀감과 헌신입니다. 이때의 친밀감이란 정서적 교류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감정입니다. 친밀감을 느끼는 대상과 함께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고, 상대의 태도나 의견에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그에게 의지하기도 합니다. 친밀감은 인간의 삶에 만족감을 주는 아주 특별한 감정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독립하고픈 욕구와 더불어 의존하고픈 욕구도 추구하기 때문에 성격, 나이, 성별과 무관하게 특정 대상과 관계 맺기를 갈망합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부터 무뚝뚝한 중년의 아저씨까지 누구나 정서적인 교류가 주는 친밀감을 느끼고 싶어 하죠.


친밀감이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본능이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만족감을 주고 안정된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감정인 친밀감은 경우에 따라서는 사랑보다 더 큰 행복감을 인간에게 선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친밀감은 기쁨만큼이나 주요한 감정이죠.


giuseppe-argenziano-P3uf2RJ8TTY-unsplash.jpg

참 아이러니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워야 할 가족들 간에도 내적 친밀감이 떨어지는 경우는 많습니다. 서로가 너무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더 크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는 관계라 그렇습니다. 남이라면 경우에 따라 거리를 두고 점차 멀어질 수 있지만 가족끼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기가 쉽지 않죠. 내면에 전제된 죄책감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그렇기에 가족 간의 친밀감이 반드시 타인과의 친밀감보다 더 건강하다는 것은 일종의 선입견입니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이 가족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친밀감의 대상으로 우리는 대체로 가족을 소망합니다. 그러나 그 관계 속에서 나의 기대가 크면 클수록 상처를 주거나 때로는 받을 가능성도 커지죠. 가족 관계는 서로 멀어지고 싶어지다가도 무의식적으로는 가까워지고 싶고, 또 소외당할수록 더욱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기에 갈등이 증폭됩니다.


그래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건강한 친밀감을 유지하고 싶다면 가족끼리도 멀어지고 싶은 마음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즉 양가감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론 대부분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가족이라고 해도 사정에 따라서는 조금 멀어져도 된다는 조언에 수긍하면서도 친밀감에 대한 소망과 결핍감 때문에 선뜻 거리 두기를 하지 못하죠. ‘그래도 가족인데 그럴 수는 없지’라는 강박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logan-weaver-lgnwvr-_ugrBOsRJXU-unsplash.jpg

제가 내담자들과 친밀감에 관한 상담을 할 때도 그 시작점은 가족입니다. 대개 친밀감에 대한 경험치는 가족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입니다. 가족 간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심한 갈등을 겪은 사람은 당연히 사회생활을 할 때도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심하거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상처가 또 반복될까 봐 가까이 다가가지 않거나 아예 회피하는 경우도 있고, 지나치게 경계하면서 자신을 오픈하지 않는 가짜 친밀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나를 오픈하지 않는 이유는 자존감이 떨어져서이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인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런 경험치를 쌓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표현을 망설이게 되는 것이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절대 자존감이 높아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만족감을 느끼고 나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아가 안정감을 찾고 자기 가치감도 높아지는데, 가짜 친밀감에 둘러싸인 상태에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가족끼리 쌓는 관계의 경험치 속에서 느끼는 감정도 예민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밀접한 관계라는 이유로 나를 너무 속박하고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당연시하지는 말자는 의미입니다. 가족 간의 친밀감에서 발생한 문제가 나의 성장을 제한하거나 다른 사람을 향한 관심을 허용하지 않는 수준이라면 오히려 조금은 느슨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판단 역시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예민하게 인식하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네이버-블로그-대문-1920_600.jpg

감정수업 책 정보 더보기

예스24 : https://url.kr/suyat8

교보문고 : https://url.kr/5586wa

알라딘 : https://url.kr/muivlv

keyword
작가의 이전글즐거움보다는 기쁨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