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의 솔직한 생각 #4]
안녕하세요, 정신과 전문의 정우열입니다. 제가 책이나 강연에 자주 말씀드리는 오늘의 문장은 "사람은 원래 답정너입니다"입니다.
모르는 분을 위해서 '답정너'의 뜻을 설명드리면,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의 줄임말이죠. 사람은 원래 답정너라는 게 사람을 비하하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드린 거죠.
사람은 의외로 전혀 답이 없어서 고민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 자기가 원하는 방향, 또 원하는 결론이 있죠. 그래서 조언을 구할 때조차도 사실은 마음속에서 이런 상태로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을 해도 괜찮을까요?", "이 선택이 틀린 건 아니죠?" 이렇게 어떤 답을 얻고 싶다기보다는 이미 내 안에 있는 답에 확신을 얻고 싶은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고민을 털어놨는데 상대가 바로 해결책부터 말하고 조언하면 점점 할 말이 없어지죠. 왜냐하면 그 순간의 마음에서는 "아직 내 마음도 다 말 안 했는데", "이미 상대방이 결론을 내버렸네" 이런 식으로 느끼니까요.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조언을 많이 해 줄수록 관계는 오히려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료실에서도 상담을 통해 자주 경험하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을 하더라도 조금만 관계가 안전해지면 말이 바뀝니다. "사실은 제 마음은 이미 이렇게 정해져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이 선택이 좀 무서웠던 거 같아요. 몰랐던 건 아닌 거 같아요." 답이 없었던 게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거는 정답을 제시해 주는 게 아닙니다. 안전하게 자기 마음을 말할 수 있는 그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안전하다는 거는 내가 말을 했을 때 판단받지 않는다는 느낌이 주어지는 게 안전한 거고, "그건 틀렸다"라고 말을 해 주지 않을 법한 그런 분위기가 중요한 거죠.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저절로 이미 자기 마음속에 있었던 말을 꺼내게 됩니다.
그래서 조언 대신에 수용이 경험되면 점점 바뀌는데요. 말이 점점 많아지고 그러면서 생각이 정리가 되고, 자기가 내린 답을 자기 입으로 말하기 시작하죠. 이렇게 될 때는 그 답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진짜 중요한 거는 그 답이 이미 자신의 것이라는 거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대할 때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되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고 조언들을 계속 수집하곤 하죠. 그런다고 해서 답이 내려지나요? 오히려 마음이 더 복잡해지죠.
왜 그럴까요? 그때 바로 질문을 던져 보세요. "내 마음은 사실 이미 원하는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서 내가 답정너는 아닐까?" 대개의 경우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답을 스스로 인정하기가 두렵고 무서워서 조언을 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 두렵고, 또 남들이 이걸 어떻게 볼까 하는 마음이 들고, "이건 너무 이기적인 선택으로 보이진 않을까" 이런 두려움이 들어서 내 마음의 답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대신 말해 주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죠.
이럴 때 필요한 태도 역시 똑같습니다. "이건 이기적인 생각이야", "이렇게 느끼면 안 돼" 이런 게 아니라 "아, 내 마음이 이쪽을 원하고 있구나. 이 답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 거야. 조금 더 솔직해져도 괜찮아." 지난번 "내 마음의 변호사가 되어 주세요"라는 영상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태도는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자기 이해입니다.
오늘 드린 말씀의 핵심을 정리해 보면요. 사람은 원래 답정너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조언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자기 마음에 더 확신을 갖고 싶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을 때도, 또 내가 내 인생의 선택 앞에 서 있을 때도 어떤 조언을 통해 해결책부터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먼저 이걸 해 보세요. "내 마음은 이미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이죠. 그리고 그 답을 부끄럽지 않게 꺼낼 수 있도록 타인에게도, 또 나 자신에게도 그런 수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