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감정이 핵심입니다

[정신과의사의 솔직한 생각 #5]

by 정우열


안녕하세요 정신과 전문의 정우열입니다. 책이나 강의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문장들을 연재중인데요. 오늘의 문장은 제가 정말 많이 말씀드리는 거죠. "언제나 감정이 핵심입니다"입니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그게 인간관계 문제다, 일의 문제다, 아이가 문제다, 내가 의지가 약한 게 문제다, 내 생각이 문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근데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은 거의 모든 문제들이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결국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한 상태로 귀결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감정을 줄이거나 없애는 법이 아니라 감정을 그대로 읽는 법 그리고 어떻게 써야 되는지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오늘 영상의 핵심 문장을 먼저 말씀드리면은 "감정은 문제가 아니라 내비게이션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오해가 있는데요. 불안하면은 그거는 약해진 거고 내가 화를 내면은 인성이 나쁜 거고 슬프면은 뭔가 무너진 거고 질투하는 거는 못난 사람이고 이런 식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감정을 없애려고 하죠. "불안해 하지 마, 화내지 마, 그 정도로 슬퍼할 일이 아니야." 이런 식으로요.


근데 감정은 그런 게 아닙니다. 뭔가 고장 난 시스템이 아니고요. 그냥 인간이 생존하면서 수십만 년 동안 다듬어 온 아주 정교한 신호 체계입니다. 문제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오히려 무시하고 오해하는 게 문제인 거죠. 모든 감정에는 다 기능이 있는데요. 그냥 나를 괴롭히기 위한 게 아니라 나를 망치기 위한 게 아니라 나한테 신호를 주고 있는 겁니다. 지금이 방향은 뭔가 위험하다 그러니까 잠깐 멈춰서 점검을 해야 된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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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가 내비게이션으로 비유를 하는데요.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내비게이션이 경고음이 울리죠. 그냥 볼륨을 줄이면 조용해지긴 하는데 해결은 안 되죠. 오히려 더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최신 심리학의 흐름 자체가 인지 중심에서 감정 중심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생각이 먼저고 그다음에 감정이고 그러니까 생각을 바꾸면 감정도 바뀐다 이런 식으로 인지 치료가 많이 있었죠. 근데 최근의 심리학이나 신경 과학 연구는 계속 이런 관점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감정이 먼저 활성화되고 인지는 그다음에 그 감정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고요.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해서 느끼는 게 아니라 사실은 느끼고 나서 그거에 맞춰서 생각을 합니다.


뇌 과학적으로 봐도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은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하죠. 그래서 이미 감정이 느껴진 다음에 우리는 그 감정에 나름의 이유를 붙이는 겁니다. 불안하면은 내가 뭔가 생각을 잘못해서 그래, 화가 나면은 내 성격이 문제야, 슬프면은 마음이 약해서 그래. 감정이 먼저 신호를 보내는 거고 생각은 그 신호를 해석하는 건데 이 부분에서 좀 오해가 있는 거죠.


이 순서를 모르면은 생각만 바꾸게 되고 그러면은 감정은 오히려 더 탈이 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이들 경험을 하시죠. 아무리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도 불안이 이미 남아 있고 내가 아무리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감정 자체는 그대로 쌓여 있고. 그래서 최근의 심리 치료 흐름은 감정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교정하려고 하지도 않고 감정은 뭔가 정보를 주는 거고 그걸 다뤄야 된다 이런 관점이죠. 그래서 제가 감정을 계속 강조 드리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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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세팅에서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감정을 무시하면 결국에는 문제가 반복되고 감정을 잘 읽으면 오히려 점점 해결이 되고 그래서 제가 늘 "언제나 핵심은 감정이다"라는 이야기를 드리곤 합니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 감정들을 그 기능 중심으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불안의 경우에는 위험을 예측하고 준비하라는 신호 역할을 합니다. 그냥 겁이 많아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본질은 뭔가 위험이 예상되니까 대비하라는 거죠. 불안이 없었다면 사람은 살 수 없었겠죠. 그리고 진짜 문제는 불안을 무시할 때, 불안에 끌려다닐 때 생기죠. 그래서 오히려 불안할 때 질문을 던져야 됩니다. '내가 지금 뭘 대비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통제 가능한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그냥 없애는 게 아니라 뭘 가리키는지를 구체화해 보는 겁니다.


분노도 기능이 있는데요. 경계가 침범당했으니까 보호하라는 신호입니다. 근데 많이 오해를 받죠. 분노는 나쁜 거고 폭력적인 거라고. 근데 분노라는 감정 자체는 기능이 명확합니다. '지금 내 경계가 침범당했다.' 이걸 모르고 그냥 쌓아두다가는 참고 넘기고 합리화하고 그러다가 고스란히 쌓였다가 폭발하고 더 문제가 되죠. 그래서 분노를 느낄 때 질문을 해 봐야 돼요. '내가 지금 어디서 어느 정도 선 넘음을 경험한 건가?' 그래서 '어떤 경계를 지켜야 하는 건가?' 분노는 그 경계를 확실하게 그으라는 신호인 거죠.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실을 애도하고 회복하라는 신호 역할을 하는데요. 그냥 약해진 게 아니라 회복을 위해서 필수적인 과정이죠. 상실이 있었는데 슬퍼하지 않으면은 그 감정은 오히려 더 깊숙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좀 멈추고 애도하라고 알려주는 신호죠. 서둘러서 끝내려고 할수록 회복은 더 늦어진다는 거 아마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질투도 기능이 있는데요. 내가 지금 이 관계를 잃을 정도로 어떤 욕구가 있다는 신호예요. 도덕적으로 많이 비난을 받곤 하죠 질투라는 게.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질투는 굉장히 솔직한 기능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이 관계에서 너무 중요한 거를 잃은 거 같다.' 질투를 느낄 때 필요한 거는 점검입니다. '역시 나는 지금 이 관계에서 뭘 원하고 있고 이 욕구를 상대방과 소통해 본 적이 있는지' 좀 점검해 봐야 되는 거죠. 이 관계에서 일어나는 나의 욕구에 대한 역시 신호인 겁니다.


부러움도 기능이 있는데요. 내가 지금 뭔가를 원하는 방향을 또 알려주는 신호죠. 그냥 단순히 비교하는 건 안 좋은 거고 부러운 건 나쁜 거고 이게 아니라 또 역시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겁니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게, 내 욕구가 저 방향성이구나.' 근데 이거를 억지로 억누르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방향 감각을 잃어버려요. 내가 뭘 원하는지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부러움이 생길 때 억압하기보다는 질문을 좀 던져 보세요. '지금 저 사람의 어떤 점이 나를 건드려서 부러움이 작동한 걸까? 내 욕구의 방향은 그건가?' 이런 식으로요.


몇 가지의 감정들을 간략하게 다뤘는데 감정은 수없이 많죠. 모든 감정은 다 이유가 있는 거고 그 신호에 관심을 기울여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리해 보면은 감정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막 평가하지도 말고 판단하지도 말고 그냥 그 기능으로 해석을 해 보는 게 좋습니다. 정보를 준다는 거죠. 감정 자체는 문제가 없고 그 감정이 주는 정보를 무시하고 오해할 때 문제가 생기는 거죠.


오늘 글을 정리해 드리면은 모든 감정은 단순히 나를 괴롭히려고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 편에서 나에게 주는 신호라는 기능이 있다. 근데 다만 그게 조금 거칠 때가 있고 불편할 때가 있을 뿐이죠. 그래서 "문제가 아니라 내비게이션이다"라는 관점에서 감정을 바라보고 그냥 무조건 억압하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읽어 보려는 노력을 해 보시면 분명히 삶의 방향이 좀 달라지는 걸 느끼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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