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귀농귀촌 준비 중

노후설계?

by kwakkong

작년 어느 춥던 날

집 앞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했던 이야기가 시발점이 되었다


동네 언니한테 나도 노후에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얘기했던 한 마디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했다.


“가면 되지”라고 (내 입장에서는) 너무 쉽게 말하던 언니에게 현실적인 문제로 꿈도 못 꾼다고 하자 언니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었고, 추진력 갑 언니 덕분에 바로 필요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평생 학습 시대라는 말을 들은 지가 어언 20년은 돼 가는 것 같은데 정말 평생 배워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계기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놀 때도 무언가를 배웠다.

퇴직하고 쉴 때가 7개월 정도 있었는데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수업들을 들으며 나의 배움에 대한 욕구들이 채워졌던 것 같다. 그 정도 배운다고 어디서 전문가가 되지는 않지만 겉에서만 보는 것과 직접 배워본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를 배워서 어린이집 교사할 때 구도를 잘 맞춰서 찍을 수 있었고,

미싱으로 그림 그리는 걸 배워서 내 인생 한편에 미련으로 남아있던 자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림을 배워서 내 인생에 미술은 학점 깎아 먹는 괴목이라는 생각에 종지부를 찍고, 다음에는 이런 그림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됐다.


그런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은 귀농귀촌에 대한 것들이다.

“농업”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논농사 짓거나 밭농사 짓는 것!

꽃무늬 바지에 장화 신고 모자 쓰고 김매러 가는 이미지였다.


어떻게 보면 전혀 틀린 것은 아닌데 일반화의 오류가 있었다.

편한 바지에 장화를 신고 모자 쓰는 건 나를 보호허기 위해서였고,

생각보다 정말 많은 일들이 농업에 들어간다는 것,

소풍 가자는 말에 돗자리 깔고 음식준비해 가는 피크닉을 생각했지만 전지가위 들고 두 시간 동안 쑥을 캐고 왔다는 것(신기하고 힘들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무튼, 인생에 대한 새로운 기회를 농업에서 갖게 될 줄은 몰랐다.

욕심 안 부리고 슬슬 하면 직장 다니던 만큼은 충분히 벌 수 있고, 좀 더 열심히 공부하면서 하면 그보다는 훨씬 기회나 받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좋은 기회에 인턴쉽을 할 수 있게 됐다.

40대 중반에 연수생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될 줄은 몰랐는데…

좋은 농장의 따뜻하고 엄청 바쁜 대표님을 만나서 함께 바쁘게 배워가는 중이다.

어떤 농장에 가면 죽어라 김만 맨다는데..

요즘은 부모님과 함께 일하는 딸이 된 기분이랄까?


물론 나는 알아서 잘하는 딸이다. 뭐가 필요한 지 면밀히 살피고 때로는 효율적인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감각들이 예민해서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일 할 때는 그 예민함들이 도움이 많이 됐다.

엄청 뛰어난 것까지는 몰라도 일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그만두고 나면 항상 나를 그리워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니… 인정받는 기분이 드는 기분 좋은 일이다.

(물론 스스로는 많이 피곤하다 ㅎㅎ)


다른 건 차치하고 새로운 곳에서 매일 새로운 일을 배우며 일상이 된 지도 한 달째,

적응이 느려 학교 때부터 힘들 던 나는 30년 이상의 다양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덧 적응기간도 많이 줄고 적응 잘 된 척도 할 줄 아는 중년이 되었지.

(세상에 내가 중년이라니…

어릴 땐 중년되면 이제 조금 있으면 인생이 끝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막상 중년이 되어보니 아직도 멀었네. )


다양한 식물을 채집해보기도 하고, 잡초 뽑고, 오늘 딴 두릅을 다듬어서 장아찌도 담가보고, 로컬푸드 마켓 나가서 나물도 팔아보았다.

대표님께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도 만나고,

수많은 전화도 함께 듣고, 때로는 필요를 제공하기도 하면서, 예초기 돌리는 것도 보고, 다육이를 심기도 하는 등등의 다양한 일들을 해볼 수 있었다.


6차 산업 인증을 받고 귀농귀촌 하는 곳에는 때로 현장교육을 받으러 오는 교육생들이 있다(실제로 나도 대표님을 그 교육에서 만났었다)

다음 주에는 그 교육생들이 올 예정이고.. 나도 왔다 갔다 하면서 들을 것이다.


대표님은 현장에 체험 손님이나 방문 손님들에게 항상 나를 소개해주신다. 인맥이 넓어진다는 건 나같이 한 곳에서 25년 살았는데 아는 사람 몇 명 없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다. 조금 간질 하게 인사하는 시간이 지나면 나는 세상 바쁜 척하며 뛰어다니겠지(사실 바쁘기도 하고 ㅋㅋ)


암튼 이렇게 귀농준비하며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바쁘게 노후를 준비 중이다.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나의 로망은 2년 안에는 될 것 같은데.. 그러면 화장실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욕조는 꼭 만들어주고 싶다


오늘도 미래의 내 시골집을 그려보며 잠버릇 심한 딸의 날아오는 발을 막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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