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침묵을 깨고, 고독을 저축하는 시인의 통창 앞 성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없는 외로움'도 미리 저축해 둬야 하는 게 아닐까? 언젠가 홀로 남겨질 그날을 위해, 지금부터 고독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두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나는 '혼자'라는 감각에 무딘 편이다. 눈만 뜨면 전화를 걸어 안부를 챙기시는 친정엄마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연상케 할 만큼 정서가 남다른 남편 덕분에 일상은 늘 다정한 백색 소음으로 평온했다. 그 안온함에 취해 삼촌의 고요를 살피지 못했던 나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창밖으로 바라보며 그제야 마음 한편에 잠시 미뤄 뒀던 부채감을 꺼내 들었다.
내심 삼촌이 먼저 전화를 걸어주길 바랐던 나의 참 짧았던 생각. 그날의 무심함을 그렇게라도 털어내려 했던 소심한 기다림은, 계절이 바뀌는 동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짐이 되어 쌓여 있었다.
계기는 몇 달 전, 삼촌의 부친상에 조문을 갔을 때였다. 학창 시절 나의 선망이었던 삼촌과 나는 고작 세 살 차이. 부모님 세대부터 워낙 각별했던 터라 우리는 파릇한 청춘의 추억을 공유해 온 사이였다. 내 친구들도, 주변 언니들도 모두 삼촌을 좋아했지만, 나는 그들 앞에서 "내가 삼촌을 제일 많이 좋아한다"라고 당당히 밝힐 만큼 삼촌을 향한 애정이 깊었다.
삼촌도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상주 노릇으로 경황이 없던 와중에도 어느 틈엔가 다가온 삼촌은 내 맞은편 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뜰만큼 파격적인 행동을 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던 우리들 사이로 스스럼없이 다가와 내 왼쪽 뺨을 가만히 감싸 쥔 것이다. 따스해야 할 촉감이었지만, 참 이상하게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놀라 감각이 마비된 것일까, 아니면 그 순간이 꿈결 같아서였을까. 삼촌은 간결하고 단호하게, 그러나 간절하게 말했다. "꼭 기다려. 알았지?"
그 말 역시 환청처럼 내 귓가를 맴돌 뿐이었다. 인천 가는 막차 시간이 다 됐다며 서두르는 언니의 손에 이끌려, 마치 도깨비에 홀린 양 인사도 없이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환청 같은 약속과 나의 무책임한 침묵은 시간이 갈수록 무거운 이자가 더해진 부채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마침내 미안함이 극에 달했을 때, 큰 용기를 내어 수화기를 들었다. 서로의 목소리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실로 20년 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반가움 가득한 대화의 바다 한가운데, 꽝 하고 내뱉은 삼촌의 의외의 단 한 마디.
"너무 외로워."
순간 거대한 바윗덩이가 내 몸 위로 인정사정없이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삼촌이...? 아니, 삼촌조차! 그 찬란했던 청춘의 상징이자 나의 우상이나 다름없었던 삼촌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이 나오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물기 하나 없이 건조했던 삼촌의 목소리. 그 메마른 음성은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원초적인 불안을 건드렸고, 끝내 나의 가장 취약한 곳을 아프게 일깨웠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외로움일까. 돈도, 명예도, 건강도 결국은 이 근원적인 고독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방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남 2녀의 장녀로 늘 사람들 틈에서 북적이며 자라온 나는, 단 한 번도 혼자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외로움이라는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없는 외로움이라도 미리 저축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마침 그때의 나는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로 사투를 벌인 후, 겨우 숨을 돌릴 즈음 찾아온 또 한 차례의 장폐색 수술로 몸과 마음이 낱낱이 부서져 있던 시기였다. 절망의 끝에서 간신히 회복의 빛을 붙잡고 있던 내게, 한 치 앞도 모를 생의 불확실함을 온몸으로 겪어낸 후여서인지 삼촌의 그 한마디는 심장 깊숙이 더 깊게 박혔던 모양이다.
나는 나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나만의 고요한 의식을 시작했다. 평생 종교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어떤 이끌림에 의해 성당의 문을 두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나는 경전의 문장들을 한 자 한 자 옮겨 적는 필사에 몰두하며 내면을 다잡아 나갔다. 매일 수 시간씩 펜을 쥐느라 손가락 마디가 딱딱하게 굳어 잘 펴지지 않았지만, 그 통증마저 달게 느껴졌다. 타인에게 의지하던 마음을 거두고, 오직 종이 위에 새겨지는 문장의 무게에만 의지해 홀로 서는 법을 익혀 나갔다.
두 번째 저축은 '신체의 근육'을 단단히 하는 일이었다. 이 또한 공교롭게도 삼촌의 그 고백을 들은 시점과 맞물려 시작한 계단 오르기였다. 오직 생존을 위해 내디뎠던 첫발이었지만, 이는 내 삶의 지도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처음엔 8분 넘게 걸리던 18층 계단이 어느덧 4분대에 진입했다. 몸이 단단해지니 어떤 시련이 와도 맞설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고, 그 덕분에 생의 한 페이지에서 영영 사라진 줄 알았던 일상도 다시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내면과 신체의 기초 체력만으로는 처절할 정도로 무서운 고독의 습격을 다 막아낼 수 없음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부단히 노력해야만이 그 무시무시할 정도로 시린 외로움 앞에서 겁먹지 않고 의연하게 대적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만이 확고해질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거실 통창 앞에 오직 나만을 위한 작은 성소를 꾸리기에 이르렀다. 노을이 지는 서재 대신, 북동쪽 거실 통창 앞 환한 자리는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과 마주하는 나만의 투명한 요새가 됐다.
이곳에 앉아 워드를 두드리다 보면, 때때로 새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돌진하듯 세차게 날아오는 비상을 목격한다. 내게 닿을 듯 다가오다 한순간 '피융'하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 자유로운 궤적을 볼 때면, 고독이란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성벽이 아니라 '만끽하라'는 뜻으로 지상이 우리에게 내려준 마지막 보류이자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은 하얀 기러기와 새까만 까마귀가 무리 지어 지나가고, 또 어느 날은 된장잠자리와 하얀 나비가 허공을 활보한다. 눈 내리는 겨울이면 아파트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지하 주차장 지붕에 포근히 내려앉은 눈을 내려다본다.
세상과 분리되어 있으나 결코 단절되지 않은 이 시선. 이 '관찰자의 거리'야말로 내가 고독을 저축하며 얻은 가장 귀한 이자일지는 모르겠다. 이곳에서 나는 30년의 침묵을 깨고 돌아온 '시인'이 되고, 새로운 세계를 짓는 '작가'가 된다. 이 루틴이 단단해질수록, 훗날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다 해도 나는 이 통창 앞의 풍경들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을 것임을 조금이나마 인지하기에 이르렀다.
준비되지 않은 외로움은 재앙이지만, 미리 저축해 둔 외로움은 축복이자 고고한 성찰의 시간이 된다. 외로움이란 나의 근원이며 오직 나 자신과의 깊은 대화 속에서만 정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영혼과 육체를 단단히 무장한 채, 나는 이제 다가올 고독을 두려움이 아닌 담담함으로 맞이하리라. 이 저축의 힘이 비로소 내 눈앞의 '착시'를 걷어냈을 뿐만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심연 속에 함몰당하기 전에 내면의 뿌리를 굳건히 다진 근력으로, 그 너머의 광활한 우주가 내보내는 메시지를 직시할 안목을 내게 주었다. 이제 나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이든 죽은 듯 고정된 사물이든, 내게 다가오는 그 모든 고독한 본질들과 허심탄회하게 조우하며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외로움이라는 오랜 친구와 한집에 상주하듯 평온히 머물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가장 나다운 진정한 자유룰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