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의 잔상' 너머, 실체에 닿는 투명한 시선에 대하여
하지만 그 용기를 얻기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 '착시의 잔상'을 안고 살았다.
겨울의 문턱, 생명의 온기가 자취를 감추는 계절이다. 말끔하게 정돈된 담벼락 아래, 유독 환하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내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이 추운 계절에, 웬 하얀 꽃이?'
그 청초한 자태에 홀린 듯 다가갔다. 예전 같으면 "참 희한하네"하며 그냥 스쳐 지나갔을 풍경이다. 하지만 나는 기어이 멈춰 서서 그것의 실체를 확인해야만 했다. 나르시시트에게 호되게 데인 뒤 생긴 본능적인 습관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으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집요함이 몸에 배어버린 탓이다.
가까이서 마주한 실체는 무심히 버려져 있는 하얀 휴지 조각이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착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황량한 밭고랑에 내려앉은 수많은 까마귀 떼는 가까이 다가가니 바람에 몸을 떠는 검은 비닐 더미였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것들을 그저 '꽃'으로, '새'로 믿으며 그 신비로운 오해 속에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곧장 믿지 않는다.
흔히들 '착시'를 뇌의 오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일종의 '경고등'이자 '선물'이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세상을 믿어버리는 습성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는 한 사람을 통해 뼈아프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녀를 '귀인'이라 여겼던 3년의 시간. 내가 대수술 후 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글을 쌓아가던 블로그라는 좁은 방에서, 그녀는 구원처럼 나타났다. 번듯한 이력과 살가운 말투에 나는 잠시 마음을 놓았다. 분명 내가 등단 시인임을 알면서도, 그녀는 나의 문학적 성취를 교묘하게 흔들며 마치 자신만이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 수 있는 양 오만한 조언을 일삼았다. 당시 심신이 미약했던 나는 그것이 나의 세계를 허무는 교묘한 기만인 줄도 모른 채, 그저 나를 위한 애정 어린 염려라 믿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변덕스러운 감정의 파고를 받아내느라 나의 기력은 점점 소진되어 갔다.
결정적인 순간은 함께 준비하던 공모전 결과 발표 날이었다. 낙방의 고배를 마신 그녀는 이성을 잃고, 내가 자신을 위로하지 않는다며 날 선 비난을 쏟아냈다. 70편을 써낸 자신의 상실감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사투하듯 써 내려간 나의 투병보다 우선이어야 한다는 기이한 논리. 그 순간, 다정함이라는 포장지가 찢겨 나가고 그 뒤에 숨어있던 기괴하고도 삭막한 그녀의 본색이 드러났다. 그곳은 어떤 씨앗도 싹을 틔울 수 없는, 영원한 동토 같았다.
나는 비로소 마주했다. 그녀에게 나는 존중받아야 할 동료 문인이자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불안한 자아를 기대어 쉴 가짜 기둥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 지독한 착시의 늪을 확인한 순간, 나는 미련 없이 그 관계를 끊어냈다. 내 정성은 일순간 남루한 휴지 조각이 되어 흩어졌고, 나는 한 달 반을 앓아누웠다. 믿으려야 믿을 수 없는 극한, 그 지독한 정신의 밑바닥을 기어코 훑고 지나온 혹독한 성장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다정함을 의심 없이 믿어버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을 것이다. 그녀는 역설적으로 나에게 세상을 보이는 대로만 보지 말라는 더 넓은 안목을 선물하고 떠난 셈이다. 뉴스나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존재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나를 온실 밖의 단단한 세상으로 이끌어준 장본인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그녀가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기어이 다가가 실체를 확인하고 나면, 한겨울에 피었을 리 없는 꽃에 대한 의구심이 풀린다. 진실을 알고 나니 더 이상 환영에 휘둘리지 않게 된 것이다. 비록 실체는 휴지 조각이었을지언정, 그것을 꽃으로 착각해 내 마음이 반짝하고 반응했던 그 '찰나의 설렘'만큼은 가짜가 아니었다. 일단 눈에 들어왔다는 것은 내 안의 열망이 투영된 결과임을 알기에, 나는 그 순간의 나를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제 실체를 직시하는 냉정함과, 그럼에도 또다시 찾아올 열망을 기어이 마중 나가는 뜨거움을 동시에 품게 되었다. 이 다정한 착각의 시선은 이제 타인의 삶으로 옮겨간다.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속 사람들처럼, 그 허름해 보이는 내면에도 한때 스스로 별이 되었던 찬란한 열망이 어딘가 숨 쉬고 있을 것이다.
휴지 조각을 보며 내 눈이 반짝였던 그 찰나처럼, 우리 모두의 생에는 지워지지 않는 빛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한때 각자마다 빛났던 그 열망을 기어이 '별'이라 불러주는 일. 그것은 실체를 직면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이자, 비루한 현실 너머의 진실을 예우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한때 분명히 빛났던 별이다. 남루한 현실 너머에서 기어이 꽃을 찾아내고야 마는, 당신의 마음이 먼저 피어난 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