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4km ⑦] 길 위에서 묻는 안부

60km로 스쳐 간 오해를 4km의 걸음으로 바로잡는 일

by 희원


차를 타고 시속 60km로 달릴 때, 창밖의 풍경은 그저 매끄럽게 놓인 회색 도면에 불과했다. 앞서 고백했듯 두 번의 큰 수술을 거치며 내 뇌의 선명했던 도면도 더 이상 펼쳐지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 익숙했던 길조차 사뭇 낯설었다. 하지만 먹통이 된 뇌 회로를 대신해 나의 눈을 다시 뜨게 해 준 것은 나의 작은 발이었다.


시속 4km. 누군가에겐 평온한 산책로일 뿐이겠지만, 내게는 세상의 작은 기척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어이 읽어내야만 마음이 놓이는 저마다의 삶의 문장들이 그 속에 끝도 없이 놓여 있었다.


그 예민해진 촉수 때문일까. 어제까지만 해도 비에 흠씬 젖은 채 옹기종기 봉오리를 맺고 있던 보라색 엉겅퀴꽃들이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췄다는 것을 알았다. 매일 걷던 길이었기에 몇 번이나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누군가의 인위적인 ‘손길’을 의심했다. ‘뭐지, 짓궂은 아이들이 꺾어버린 걸까? 아니면 미화 담당하시는 분이 정리하신 걸까?’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광경 앞에서 나는 습관적으로 타인의 소행부터 떠올렸다.


하지만 도로변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살벌했다. 가드레일을 따라 피어있던 꽃들이 하나같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것은 아예 보도블록 바닥에 뭉텅이째 스러져 있고, 어떤 것은 꺾인 줄기로 옆 나무에 간신히 몸을 기대고 있었다. 이런 상태가 한두 군데였다면 처음 내가 예상한 대로 누군가의 소행이라 짐작했겠지만, 길게 늘어선 제각각의 처참한 모습들을 직접 목격하고서야 비로소 납득했다.


아차, 지난밤의 비바람이 이토록 가혹했다니. 몸소 겪지 않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것이 세상일이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엉겅퀴가 떠나간 빈자리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느새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노란 금계국이 들어차 방싯 웃고 있었다. 겨울이 아무리 버텨도 어느 날 아침 '탁'하고 봄의 문턱을 넘어서듯, 변화는 늘 우리 곁에서 쉼 없이 꿈틀거리며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득 원영 스님의 글을 읽다 처음으로 뉘우쳤다. 시속 4km로 산책하며 마주했던 수많은 꽃과 나무, 길고양이들에게 나는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안부를 물은 적이 없었다.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그저 겉모습만 보며 “오늘은 유별나게 네가 더 예쁘구나”, “얘는 너무 일찍 폈네”라며 지나쳤을 뿐. 이 친구들의 안위 따윈 관심 밖이었던 것이, 꼭 허울만 좋게 살아온 내 삶의 모습이 투영된 것 같았다. 정교한 도면을 잃어버렸다고 한탄하면서도, 정작 내 눈앞에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길가에 넝쿨째 굴러온 호박에게도, 쥐똥을 닮은 열매 뒤에 천상의 향기를 숨기고 있는 쥐똥나무에게도 안부를 건네려 한다.



“이름 때문에 오해해서 미안해.

하지만 네 향기는 세상 그 어떤 꽃보다 향긋하고 사랑스럽구나.”



세상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때를 기다리는 존재들과 그들을 보살피는 ‘도로 입양’의 손길들 덕분임을, 그 따스한 동행에 힘입어 내가 이토록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산책을 마치고 아파트로 들어서기 전, 비에 흠씬 젖은 모과나무와 진한 눈 맞춤을 나눈다. 잎사귀에 매달린 빗방울이 하얀 꽃처럼 반짝인다. 빛나는 것은 광원만이 아니었다. 빛을 머금은 빗방울도, 그리고 그 풍경을 가슴에 담은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 관문인 18층 계단 오르기. 잔뜩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한 달 가까운 공백이 무색하리만치 내 몸은 이미 운동 세포들을 각인하고 있었다. 사실 나의 조급함은 절박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난간을 붙잡던 손을 떼고 오로지 내 다리의 힘만으로 정상에 서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그 ‘러너스 하이’의 찰나에 매료되고 말았었다. 조금 더 기다려주었어야 했건만, 뻑뻑하게 굳었던 몸이 풀리는 희열에 취해 기력이 채 차오르기도 전에 마음이 앞서버렸다. 결국 과욕은 오버페이스로 이어졌고, 무릎 타박상이라는 훈장 아닌 훈장을 얻으며 한 달 가까운 강제 휴지기에 접어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어렵사리 되찾은 체력이 그 한 달 사이에 방전된 것은 아닐까 싶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한낱 기우였다. 이미 몸속에 새겨진 운동 세포들은 한 달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늘 해오던 대로 우직하게 한 발 한 발 내딛고 계단을 오를 뿐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랐을 때 다리는 후들거리며 풀려버렸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내 안의 단단한 믿음이었다. 사선을 넘나들며 정직하게 다져온 생명력은, 공들여 쌓은 공부 실력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비바람에 꺾이었던 엉겅퀴처럼 나 역시 일대 도약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며 쓰러져 있었을 뿐임을 깨달았다.


주인보다 앞서가려던 마음을 내 몸이 잠시 멈춰 세워 보호해 준 것임을 이제는 안다. 피땀 흘려 일궈 온 내 안의 세포들은 나를 배신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뜨겁게 숨을 고르며 내가 다시 걸어오길 기다려주고 있었다. 어떤 꽃은 너무 일찍 피어 외롭고, 어떤 꽃은 너무 늦게까지 남아 애처롭다. 하지만 생명이란 저마다의 속도를 지니고 있기에 그 자체로 온전한 법이다.


잉크를 흘린 듯한 저녁노을 아래서, 나를 기다려준 내 몸의 세포들과 오늘 만난 모든 생명에게 마음속으로 작게 속삭여 본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우리, 내일 또 만나자.”






'작가의 말'


도면을 잃어버린 자리에 비로소 풍경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시속 60km의 속도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비바람에 꺾인 엉겅퀴의 수난과 쥐똥나무의 숨겨진 향기들.


이제 저는 매일 걷는 이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에게 안부를 묻기로 했습니다. 잠시 넘어져 쉬어가는 공백조차 사실은 내 안의 세포들이 다음 도약을 위해 묵묵히 힘을 비축하는 시간임을 이제는 믿습니다. 정확한 길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곁의 존재들, 그리고 나 자신의 속도와 눈높이를 맞추며 함께 걷는 일임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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