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른다는 것.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by myeong

잠이 오지 않아 노트북을 켜고 볼 만한 영화를 찾아 어슬렁 거리는, 그저 그런 날 중 어느 날이었다. 스크롤 한 번에 약 열다섯 편 정도의 영화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 폭포 속에서 나는 무심하게 이 시간을 때울 정도의 가벼운 영화를 찾아 방황했다. 그러던 중 한 여자가 활짝 웃는 얼굴에 홀려 클릭했다. 그래, 나는 언제나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가 되어 온 얼굴을 찡그려 웃는 얼굴에 약하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첫사랑인 12살의 해성과 나영은 무엇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나영의 이민으로 인해 이별한다. 12년이 지나 24살이 된 해성과 나영은 SNS를 통해 재회하지만 끝내 연인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또다시 12년이 흐른 36살의 해성은 나영을 보기 위해 그녀가 살고 있는 뉴욕에 찾아가지만 역시나 그들은 친구로 남는다. (36살의 나영은 이미 결혼했다.)



그들은 12년을 기점으로 만나지만 계속해서 엇갈린다. 보통의 로맨스물이라면 이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우려할 일이 아니다. 엇갈림 후에는 보장된 미래(연애, 혹은 결혼)가 있을 것이기에. 혹여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더라도 이들의 사랑은 평생 잊지 못할 찐득한 추억들을 만들고서 소멸됐을 것이기에. 그러나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계속된 엇갈림만이 놓여 있다. 모든 엇갈림은 이들의 사랑이 시작도 하지 않고 이미 끝났다는 확실성만 보여준다. 그들의 불확실성만이 확실하다.



past lives. 전생.

이 둘이 전생에서의 인연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전생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다만 현재 주어진 삶에서 이들이 함께할 듯 함께하지 못하니까 적어도 전생에서는 어떤 인연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을 해볼 뿐이다. 사랑으로 이어지기엔 너무도 미약한 도달을 전생이라는 운명론으로 덧댈 뿐이다.



"근데 이번에 와서 확인한 사실은, 넌 너이기 때문에 떠나가야 했어. 그리고 내가 널 좋아한 이유는 네가 너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넌 누구냐면 떠나는 사람인 거야." 뉴욕의 한 바에서 해성이 나영에게 하는 대사를 듣자마자 나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났다. '떠나는 사람'이라는 말이 너무나 무정하다고 느꼈다. 떠나는 사람 옆에는 언제나 남겨진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몇 번을 떠났고 또 몇 번을 남겨졌던가.



나영은 떠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에게 나영은 머무는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옆에 있는, 확실한 사람이다. 누군가는 나영을 떠나는 사람이라고 명명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영은 또렷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해성에게 나영은 떠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나영을 해성은 사랑한다.



자신에게 나영은 떠나는 사람이란 걸 36살의 해성이 알아차렸을 때, 해성은 비참했을까 아니면 후련했을까. 비참하지도 후련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저 나영이 떠나는 사람이고 자신은 그런 모습의 나영까지 좋아했다는 사실만이 드물게 남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문득 공중화장실에서 닳도록 본 문장이 떠올랐다. 그것은 너무 오래 그리고 빈번하게 본 나머지,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게 된 문장이었다. 그러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곱씹어보니 의미가 살아난다. 떠나는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에 무언가를 필연적으로 남기고 간다. 그것이 휴지든 잊지 못한 추억이든.



이 영화는 내가 두고 온, 혹은 나를 두고 간 모든 것들에 대해 위로를 선사한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남겨지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전복시켜 모두가 떠난 사람이자 동시에 남겨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나영에게 해성 또한 떠난 사람이다. 누가 먼저 떠나고, 이별을 고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둘의 관계가 끝이 났다는 것이며, 서로의 부재라는 이후의 일상에서 각자의 몫을 소화해서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나에게는 퍽 위안이 되었는데, 이별로 인한 잔해와 상처들을 서로 짊어진다는 점이 나를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모순적이게도 함께 맞는 고통에서 과거의 사랑들을 마주했다고 해야 할까.



또 하나의 위로는, 모든 떠난 자리에는 머물렀던 흔적이 있기에 그 순간에 영원히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12살 학교 운동장에서, 24살 영상통화에서, 그들의 웃음과 대화 속에서 나영과 해성의 계속해서 살아 있다. 지금 내 눈앞에 없다고 해서,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다고 해서 과거의 것이 영영 사라진 것이 아니다. 내가 과거로부터 멀리 달아나 지금의 나로 살고 있듯 나와 과거를 함께 향유했던 어떤 것들은 '그곳'에 온전히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순간 속에서 영원하다. 기억이라는 것은 낡고 지친 것을 용케도 찾아내어 되살리는 것에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미약하고도 연약한 만남들에 대한 위로이자 앞으로 만날 것들에 대한 미지의 용기이다.



이별은 슬프고 우린 매 순간 어디론가 떠나고 휩쓸리기에 나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자리에서 서로를 온전하고 충분하게 남긴다면 언제나 그곳에 있다. 그러니 출발도 두려워하지 말고 떠남도 두려워하지 말고 기어코 사랑해야 한다.



나는 연약한 파동들 속에

몇 개의 나를 남겨두고 온 걸까?

그렇게 남겨두고도

지금의 나는 여기 온전하게 서 있다.



@ 비하인드 스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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