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종 심판관은 딱 한 명, 작가 자신밖에 없다.
나는 아직 말년(末年)을 살아보진 않았다.
좀 범생으로 살아온 살아온 사람으로서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에서 거칠게 살아온 사람에게 은근히 관심이 간다.
'찰스 부카우스키'는 반상업적 · 사적 · 실험적 · 창조적인 삶을 살았다.
나는 대부분 상업적 · 공적 테두리 안에서 가감을 따져가며 법과 규칙을 잘 지키며 인사이더로 평범하게 살아왔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용기가 없거나 창조성이 부족해서 범생처럼 살아왔다는 말이다.
언더그라운드 전설 찰스 부카우스키 말년 일기를 펼쳐 들었다.
경마장, 도박, 시가 담배, 자살 생각, 말(언어)의 유희, 컴퓨터, 고전음악, 술, 아내, 여자(남자), 인터뷰, 작가, 자동차, 고양이, 죽음... 브카우스키 일기에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아웃사이더인 그 사람 일기 속 단어들이 인사이더 내게 크게 이질적인 나열은 아니다. 매스컴을 통해 자주 듣던 단어들이기에.
그의 일상과 생각, 느낌 등이 일기만큼 오롯이 드러난 글은 없을 것이다.
1990년 대, 로스앤젤레스 남쪽 끝 항만, 공업지구에서 말년을 보냈던 그는 왼쪽 주머니에 항상 '죽음'을 넣고 다녔다.
언제 데리러 올 거냐, 물으며 준비하고 있겠다던 그 해학적인 모습이 눈에 선하다.
'...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애도할 일이 아니듯, 죽음도 애도할 일이 아니다.
끔찍한 건 죽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죽기까지 살아가는 삶, 또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이다.
인간들은 제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 삶에 오줌을 싸 댄다. 멍청한 씨댕이 들...'
말년의 부카우스키는 자신의 왼쪽 주머니 속에 죽음을 넣고 다니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언제든 기꺼이 그를 맞이하겠다는 마음으로 산다.
결국 죽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 역시 그것이 참 낯설게 느껴진다고도 했지만, 우리에게 죽음은 삶의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부카우스키(1920~1994)는 1944년 24살 때 첫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2년 후 또 한 편이 다른 잡지에 실린 것 말고, 그는 작품 발표 기회를 계속 얻지 못한다.
26살부터 10년 가까이 글쓰기를 접고 술에 젖어 살다, 출혈성 궤양으로 사경을 헤맨다.
이 정도면, 모범생도 언더그라운드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5살이 돼서 LA 지역 언더그라운드 매체들에 시를 발표하며 글쓰기를 재게 한다.
그런데, 이 일기 책을 읽고 있으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지는 이 노친네는 벌써 28년 전인 1994년 3월, 73세로 캘리포니아 주 샌피드로에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살아선 '알 수 없는 죽음'까지 일상에 녹여낸 이 사람에게서 나는 진한 동질성을 느낀다.
부카우스키의 회색 유머와 원색 위트가 그립다.
찰스 부카우스키 묘비에는 'Don't try.'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문학 지망생에게 주는 충고이기도 한 이 말을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글을 쓰느냐, 창작하는 방법이 뭐냐?"라고, 그래서 그는 답했다.
"애쓰지 마라.(Don't try.)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노력하지 '않는' 것, 목표가 캐딜락이든 창조든 불멸이든 간에 말이다. 기다려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좀 더 기다려라.
그건 벽 높은 데 있는 벌레 같은 거다.
그게 너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려라.
그러다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팔을 쭉 뻗어 탁 쳐서 죽이는 거다.
혹시 그 생김새가 마음에 든다면 애완용으로 삼든지"
'글쓰기의 최종 심판관은 딱 한 명, 작가 자신밖에 없다.
작가는 평론가, 편집자, 출판업자, 독자에게 휘둘리는 날엔 끝장이다.
그리고 작가가 명성과 행운에 휘둘리는 날엔 강물에 처넣어 똥 덩어리와 함께 떠내려 보내도 물론 괜찮다.'
"Don't try" - 노력하지 말라(애쓰지 말라)고 하니, 끄적끄적 즐기며 휴식이라도 취해야겠으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문장가가 아닌 보통 사람으로선 그저 안타깝고 궁하다.
최초 2019. 12. 10 포스팅한 글
수정 2022. 0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