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과 몽룡이야기가 흐르는 역사 속으로 들어선다.
전북 남원 광한루원(명승 33호)은 관아 정원이며, 남원 사람들이 삶이 담긴 곳이다.
우리는 470년 된 수려한 팽나무 그늘 아래서 박은숙 남원 해설사로부터 광한루의 역사적 배경을 듣는다.
이 나무는 조선 명종 13년(서기 1558년)에 심어진 옛 '남사관' 요리점 정원수였으나, 광한루원 조성 후 이곳으로 옮겨졌다.
지금은 짙은 녹음과 커다란 그늘로 관광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광한루원은 광한루(廣寒樓)의 전신인 선조 15년(1582년) 광통루(廣通樓)의 경관을 그대로 계승했다.
가까이 작은 개울을 품었고, 멀리 지리산 능선이 바라보이는 수려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원에서는 어딜 바라보나 한 폭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담긴다.
1582년 후, 광한루는 원(園)으로써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를 조성했다.
신선사상이 깃든 이상 세계 구현을 위해 호수 위로는 삼신산인 ‘영주(한라산)’, ‘봉래(금강산)’, ‘방장(지리산)’을 배치했다. 정유재란 이전 원래 광한루의 경관을 계승, 복원하기 위한 오랜 시간과 관심으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곳은 신선이 사는 곳인 양 그윽한 경치가 신비롭고 아름답다.
오죽하면 달이 지상에 내려와 있다 했을까!
한낮의 완월정은 남원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고품격 문화를 전하는 예술 공연장이며, 밤이면 하늘의 달도 지상으로 내려와 머물고 가는 곳이다.
누구나 달나라 신선처럼 살고 싶다면, 밤마다 완월정에 올라 왼쪽으로 광한루를 바라보면 된다.
가까이 달의 궁정을 밝히는 달빛을 마주하노라면, 빼어난 풍경에 그대로 취하고 만다.
남원에는 '지상에 내려앉은 은하수'가 있다.
바로 요천(蓼川)이다.
임진강의 지류인 요천은 진안 백운산에서 발원, 춘향의 고을 남원 땅을 관통한다. 물길은 곡성으로 흘러 모천인 섬진강의 품에 안긴다.
요천은 물이 맑고 돌이 깨끗하여 은어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해마다 6월~9월이면, 요천의 모래사장을 따라 여뀌 꽃이 아름답게 핀다.
이곳에서 피는 여뀌 꽃은 춘사, 모시, 노방, 자미사 등 얇은 천의 염색에 사용된다.
남원을 대표하는 여뀌 꽃으로 염색해서 분홍빛을 낸다니 그 빛깔은 얼마나 고울까!
상상만 하다 검색해서 찾아보니, 하늘하늘 분홍빛이 눈부시다.
진달래꽃 분홍색처럼 선연하니, 춘향의 임을 향한 마음 같은 사랑빛인듯하다.
고전이 살아 숨 쉬는, 풍류의 고장 남원을 이야기할 때면 반드시 이 요천을 결부시켜야 한다. 남원 벌 충적 평야를 적시는 요천을 하늘에서 보면 꼭 은하수를 닮아 있다. 은하수를 고유어로 ‘미리내’ 또는 ‘미르내’라고 하는데 ‘미르(리)’가 용(龍)을 뜻하므로 미르내는 용의 시내란 뜻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물의 전설, 2000. 10. 30. 천소영, 김동현)
사진 설명
정형모의 Insight - 남원시립 김병종 미술관에서 한복 전시 ‘다이얼로그, 상춘곡’을 시작한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
남원의 꽃 여뀌로 염색한 분홍 한복을 LED 조명이 켜진 마네킹에 입혀 놓았다. (2021.03.02.)
춘향의 임 향한 일편단심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춘향의 영정각이다.
1931년 광한루의 동쪽,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 숲 속에 지어졌다. 1910년 관기는 별정직 공무원이었다.
현재, 춘향 영정은 2점이 존재한다.
이성 김은호 화백의 춘향 영정이 유명하나, 그가 일제강점기 친일 화가로 평가됨으로써 현재 사당 안에 춘향 영정을 모시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2022. 05. 18. 현재, 사당 문은 잠겨있었다.
이당(以堂) 김은호의 일본식 이름은 쓰루야마 마사시 노기(1892. 06.~1979. 02.)이다. 그는 1919년 3ㆍ1 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적도 있으나 1920년대 후반,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식 채색화 기법을 익히면서 친 일본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복 후에는 친일 경력이 문제 되어 대부분의 미술인들이 망라된 조선 미술 건설 본부에서 제외되기도 했었으나 슬그머니 다시 미술계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운보 김기창 화백도 그의 제자다.
김은호는 2009년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 발표, 친일 반민족 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된다. 두드러진 친일 이력과 일본풍의 화풍으로 그가 그린 논개와 춘향 영정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과 논란을 일으켰다.
왼쪽 사진에 보이는 춘향 영정 2점 중 아직까지 한 점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깝다. 문외한인 내 눈엔 작가 미상의 춘향 영정에서 더 한국인 고유의 순수한 모습이 느껴진다. 논개나 춘향의 영정이 일본 화풍으로 모셔진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수령 150여 년의 뽕나무
비석 군
광한루 뒤쪽으로 비석 군이 보인다.
가장 오래된 비석으로 이선우 관찰사의 선덕 선정비를 꼽는다.
광한루는 조선 태조 때, 황희가 남원에 유배당 당시 지은 누각이다. 당시엔 광통루(廣通樓)라 불렸다.
세종 16년(1434년) 한성부 출신 학자인 정인지가 새롭게 고쳐 세운 후, 마치 옥황상제가 사는 월궁의 광한 청허부(廣寒淸虛府)와 같다 하여 그 이름을 '광한루'로 바꿨다.
현재 보존된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년) 남원부사 신감에 의해 다시 지어진 것으로, 부속 건물들은 정조 때 세워졌다.
관아 누각인 광한루원 일원에는 설화와 소설에 등장한 상상의 세계가 담겨 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특히, 광한루는 판소리 춘향가의 주인공인 성춘향과 이몽룡이 만난 곳으로 유명하다.
복합문을 지닌 광한루는 조선시대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남원 광한루는 본루, 익루, 월랑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된 누각이다.
위 왼쪽 사진에서 보면 익루는 가장 왼쪽에 있고, 방을 들인 특별한 구조를 지녔다.
익루는 건축물의 날개를 의미하는데, 양쪽에 익루를 들이면 날아가기 때문에 한쪽만 지었다고도 한다.
익루의 방은 당시 기생과 악공들의 대기실로 사용했다.
2층 본루는 1910년 ~1920년까지 일제강점기 재판소로, 본루 1층은 조선인들을 잡아들여 가둔 감옥으로 쓰였다.
6ㆍ25 동란 때, 2층 본루는 초등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
광한루원은 정유재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여러 번 원형이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다.
광한루도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현재, 광한루는 보존을 위한 출입 금지 구역이지만, 누각에는 김종직, 정철, 정인지, 강희맹, 백광훈, 이경여 등의 시가 83점의 편액으로 남아있어 1층 아래서나마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용성지에 실려 있는 것과 합하면 약 200여 수가 된다.
*용성지 : 방두천(房斗天)이 편찬한 연대 미상의 전라도 남원군(지금의 남원시) 읍지.
춘향과 몽룡의 이야기를 좀 더 상세하게 알고 싶어 찾아보니, 두 사람이 실제 인물이었다는 자료도 있다.
성춘향과 이몽룡. <춘향전>의 두 주인공은 여태껏 이런 이름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도령(李道令)’으로 알려져 온 남자 주인공은 ‘성도령(成道令)’으로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춘향의 성은 본디 무엇이었는지 정확지 않다).
‘이도령의 본래 이름은 성이성(成以性 · 1595~1664). 조선조 광해군 · 인조 때의 실존 인물이다. 그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한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 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 지역을 순행하다가 남원을 다시 찾았다. 성이성은 다시 옛 연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죽고 없었다.’
한국 최고의 로맨스이자 4대 국문 소설의 하나로 꼽히는 <춘향전>의 탄생 비밀이 최근 한 국문학자의 끈질긴 추적에 의해 밝혀졌다. <춘향전의 형성과 계통> <춘향전 비교 연구>등 굵직굵직한 저서를 내놓으며 지난 30년 동안 춘향전 연구에 관목 할 성과를 일궈온 설성경 교수(연세대 · 국문학)에 의해, 근 3백 년간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던 이른바 ‘춘향전 신화’의 본디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광한루 앞 호수 속에는 세 개의 작은 섬이 있다.
‘영주(한라산)’, ‘봉래(금강산)’, ‘방장(지리산)’을 뜻하는 세 개의 삼신산을 표현한 것이다. 3개의 섬이 동서방향으로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호수 북쪽 광한루 앞에는 돌 자라가 동남 방향으로 놓여 있다. 이는 신선사상에 입각한 지킴이의 기능을 갖고 있으며, 광한루원 (명승 제33호)은 넓은 은하 세계인 천체 우주를 상징한다.
광한루의 월랑
월랑 맨 아래로 보이는 틈을 들여다보면 어둠의 지하세계가 있다. 조상들이 오르내렸을 계단은 지상세계를 의미한다.
계단을 다 오르면 '계관'이라 쓰인 편액이 보이는 곳이 천상을 뜻한다.
아담한 월랑은 지하, 지상, 천상을 모두 품고 있다.
월랑 입구 처마 좌우로는 용 2마리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려는듯하다. 오른쪽 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고, 왼쪽 용의 입엔 여의주가 없다.
약한 쪽에는 여의주를 물려주고 강한 쪽은 그대로 두어 좌우 균형을 맞춘 깊은 뜻이 담긴 것이다.
건축물 처마에서까지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 했던 조상들의 슬기로움이 느껴졌다.
월랑 입구 옆쪽 양쪽 처마 아래로는 암수 코끼리가 각 한 마리씩이 조각되어 있다. 코끼리는 힘을 상징하다. 불교에서 코끼리는 마야 부인을 태우고 가는 동물로 신성함을 의미한다.
태평시대에만 나왔다는 명협이라는 풀도 그려져 있다. 이 풀은 중국 요임금 때 났었다는 전설상의 상서로운 풀이다.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하루에 한 잎씩 났다가, 열엿새부터 그믐까지 하루에 한 잎씩 떨어진다. 작은달에는 마지막 한 잎이 시들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신비로운 풀로 달력 풀, 책력 풀이라고도 부른다.
칠월 칠석 날 (음력 7월 7일) 견우와 직녀 두 별이 만날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들이 은하수에 모여, 몸을 서로 이어 만들었다는 전설의 다리다.
지리산 계곡물이 모여 강이 된 요천 수를 유입시켜 만든 호수이니, 은하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누구든 이 다리를 건너면, 춘향과 몽룡처럼 사랑을 이루고 복을 받는다고 전해진다.
오작교를 건너면 완월정에 닿는다.
광원루원 초입에서 바라보던 완월정에 직접 오르니, '성주풀이' '남원산성', '진도아리랑' 등의 남도 창을 감상할 수 있는 기쁨도 누린다.
전설에 따르면 옥황상제가 사는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고, 은하수 위에 오작교가 놓여 있었고, 계관(달나라 궁전)의 절경에서는 선녀들이 노닐었다.
이를 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니,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인 셈이다.
특히, 완월정은 이 아름다운 달나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누각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통적 조선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곳이다.
완월정에서는 매해 춘향제가 개최된다.
제1회 춘향제는 1931년에 열렸다. 당시 일제 탄압을 피해 여자들이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92회 춘향제는 2022.05.04. (수) ~ 2022.05.08. (일)에 열렸다.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으로 열리지 못했던 춘향제가 다시 열려 성황을 이루었다.
광한루에 담긴 춘향과 몽룡의 사랑처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남원을 아끼는 마음'은 변하지도 식지도 않는가 보다.
우리 고유의 정원문화가 구현된 아름다운 광한루원은 많은 이들이 사계절 찾는 명소이다.
광한루의 키워드는 단연 '춘향과 몽룡의 러브스토리'이지만, 역사적 배경을 알아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정유재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여러 번 원형이 훼손되었던 사건과 아픔도 다시 되새겨 본다.
유적지마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그늘도 함께 남아 있기에 더 애틋하고 소중하다.
광한루는 방자와 향단, 단옷날, 그네,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일편단심, 정경부인 등의 단어가 금세 떠오르기도 하는 장소다.
참고로 방자는 이름이 아니고 직책이라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공익요원쯤 되려나.
빨래 등의 가사업무를 돌보는 여자 방자도 있었다고 한다.
남원시는 전라북도 동남부에 있는 섬진강 상류 분지의 중심 도시이다.
주곡 농업 외 양잠업, 축산업, 연초 제조업 따위가 활발한 곳이다.
광한루, 남원 새터, 용담 석탑, 춘향각, 오작교 등의 명승지가 있는 예향의 도시이며 문화의 도시다.
남원 사람들의 감성은 감칠맛 나는 언어의 추임새에서도 느껴진다.
'좋채!', '그러재!' - 뒤를 길게 빼고 올리는 어법이 마냥 다정다감하게 들린다.
여행처럼 남원 살아보기 첫날,
남원다음관과 광한루원만 돌아보았는 데도 "나가 말이여! 여그가 참말로 좋다니까!"
우리 일행은 완월정에서 광원루원을 뒤로하고 정문을 나섰다.
시간이 되는 분들은 월매집과 춘향관, 전통놀이 체험장도 들려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