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
천천히 보아야 이해가 된다.
되풀이되는 일상, 사소해 보이는 사건도 관심과 관찰이 따르지 않으면, 톱니바퀴 돌아가듯 별스러울 것 하나 없다.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천천히 보아야 통한다.
세상 바라보는 속도를 조금만 늦추어도 더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소설가 김중혁이 말하는 세상을 관한 관심은 관찰이다.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면, 세상도 우리를 들여다본다.
세상과 동행하고 있으니, 혼자 걷는 길도 외롭지 않다.
나는 매일 하는 산책이지만, 걷는 길을 매일 조금씩 바꾼다.
새로운 상황에서 관심의 폭을 넓히고 싶은 걸까?
산책 시간도 날마다 들쑥날쑥 이긴 한데, 대체로 오전 중에 나서는 편이다.
평생 사유의 삶을 살다 간 철학자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칸트 선생의 깊은 사유는 그의 비판 철학서 3권에 그대로 담겨있다.
내 사유는 깊지 못하지만, 대체로 공평하고 올바르게 생각하며 공들여 살아왔으니 비교할 바 아니다.
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은 메모로 두서없이 뒹굴다가 말이 되기도 튀어나오기도 하고, 어느 날 마음잡고 끄적거리면 글이 되어 남는다.
김중혁 소설가의 친구 중에는 창작의 도구들이 많다.
화이트보드, 아이패드, 에스프레소 잔, 손톱깎이, 블루투스 핸드폰과 스피커, 독서대, 스탠드, 텀블러, 27인치 imac, 네임펜, 아트 라인..... 애플 펜슬, 몰스킨 노트, 0.7 샤프펜슬 등등. 책에는 작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등장한다.
내 책상 위에는 25인치 노트북, 볼펜, 0.5 샤프펜슬, 탁상 달력, 다이어리 노트, 둥글고 커다란 손잡이가 있는 돋보기, 돋보기안경, 핸드폰과 이어폰이 놓여있다.
누진다 초점 안경, 머그 컵, 간식 접시는 식탁 한쪽에 놓는다.
허리를 자주자주 쉬어 주기 위해, 일부러 식탁으로 거실로 방으로 왔다 갔다 하도록.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의 영향을 받은 또 누군가, 의 여향을 받은 누군가, 가 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 누군가의 그림은 또 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된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디제이인 것이다. (중략)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소리들이 내 손끝을 통해 하나가 됐다. 스피커와 헤드폰에서 비트가 흘러나와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비트였다. 심장이 울렁거렸다. 이 비트야말로 나다. 나는 디제이다. - [악기들의 도서관] 문학동네, 2008. 104~105쪽
쓰고 싶은 것을 제대로 쓴다(36쪽)
"그림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곳에서 멈출 뿐이다." - 스코틀랜드 화가, 폴 가드너 -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57쪽) 분노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싶은 것도 나의 마음이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그걸 다듬고 싶은 것도 나의 마음이다..... 글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어떤 문장은 제외되고 어떤 문장은 추가된다. 내가 던지는 질문에 내가 대답하면서, 겨우 산문을 마무리하고 나면 엄청난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59쪽)
2번 읽으면 방향을 찾을 수 있다(62쪽~) 김중혁 작가는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 만날 수 없다면, 가까이 있는 것을 한 번 더 접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붙잡아두면 썩어버리는 생각들(66쪽~)
작가는 기억해야 할 생각들을 스크랩한다. 사진, 문장, 기사도 모아둔다.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모아 두었다가 어느 날 글을 써야 할 때, 스크랩을 뒤져 그때부터 생각을 시작한다. 생각의 파편들을 끌어모으는 메모는 취한 상태로도, 잠이 덜 깬 상태로도 가능하다. 울면서도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른 후, 그 메모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를 판단하게 된다.
글쓰기의 첫 문장은 대충 생각으로 쓴다. 문장은 쓰인 상태가 아니므로 보였다가 보이지 않았다가 한다. 한참 들여다보고 나면, 그게 첫 문장 감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그 문장을 아래로 내리고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여러 개의 문장을 첫 문장으로 그려보면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첫 문장이 나타난다. 더 이상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 문장을 종이 위에 적는다. 문장을 입은 첫 문장이 그럴싸해 보인다.
"첫 문장과 함께 돌은 굴러가기 시작한다. 첫 문장은 약속이요 방향 물질이자, 수수께끼이며 번갯불이다. 뒤이어 나오는 전채 수프 요리의 맛을 결정짓는 각지게 썰어 놓는 재료다." - 독일 작가 코마스 브루시히(76쪽)
작가도 많은 첫 문장을 썼지만 여전히 첫 문장을 쓰는 건 힘들다. 글을 한참 쓰다가 첫 문장이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첫 문장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할 때,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경험하는 것이다. 글의 시작이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고, 글의 끝까지 달려가 본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한다. 글쓰기 경험은 삶의 경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나인지 알 수 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82쪽)
김중혁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분리시키고 싸우게 만들고 대화하게 만들고 중재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두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문장이 한 사람의 목소리로 적어가는 것이라면, 문단은 두 개의 마음이 함께 써 내려가는 것이다.(86쪽)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 중요하다. 작가는 이 책에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여러 번 인용하고 있다.
나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단위 - 거기서부터 의미의 일관성이 시작되고 낱말들이 비로소 단순한 낱말의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 고 주장하고 싶다. 글이 생명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면 문단의 단계가 바로 그것이다. 문단이라는 것은 대단히 놀랍고 융통성이 많은 도구이다. 때로는 낱말 하나로 끝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몇 페이지에 걸쳐 길게 이어질 수도 있다. 글을 잘 쓰려면 문단을 잘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장단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163~164쪽)
자신만의 문단 나누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많이 나눠봐야 한다. 책을 읽을 때는 이야기의 문단을 나눠본다..... 다른 사람의 리듬을 계속 들여다보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문단의 길이를 알아낼 수 있다. (96쪽)
숫자들처럼 우리에게는 각자의 존재 방식이 있다. 자신만의 글쓰기 스타일을 원한다면, 밖이 아닌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어떤 식으로 반대하는지, 어떤 식으로 결론에 이르는지를 들여다본다. 스타일은 밖에서 얻어와 내 몸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발견해 깎아나가는 것이라고 작가는 믿는다. (101쪽)
나만의 스타일 만들기
대화 상상하기 - 스타일 만드는 시작점 / 머리, 가슴, 발 - 리드미컬한 묘사는 스타일의 종착점 / 하우 투(How To) - 창작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마음과 창작의 비밀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 사이의 에너지가 글을 쓰는 동력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는 작가는 하우 투를 싫어하지만 두 가지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고. (116쪽)
글쓰기의 시작
벽에 붙이기 - 작가는 가언(家言)을 만드는 일과 표어를 찢어버리는 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글을 쓴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 작업실 책상 앞에 계속 뭔가 붙이게 되는 이유도 아마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고 싶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김중혁 작가가 책에다 밑줄을 긋는 이유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문장을 만났을 때, 내가 원하는 문장을 찾았을 때'라고 밝힌다. 우리와 다르지 않다. 작가가 좋아하는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 "작가에게 도서란, 단순히 작가의 생각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온 세상을 여행하는 행위다. (126쪽)
책의 울타리를 미리 쳐놓으면 다른 곳으로 넘어가기 힘들다. 많이 읽는다고 해서 언제나 많이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단순히 많이 읽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좁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아는 것을 안다고 계속 반복하여 말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에다 높은 장벽을 쌓는 일이 될 것이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독서에서 시작된다..... 발목을 붙잡는 책이 아니라 계단이 되는 책이어야 한다. 천천히 읽고, 낯설게 읽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읽고, 두 번 읽고, 이해하며 읽고, 오독하면서 한 번 더 읽고, 읽지 않은 책인 것처럼 한 번 더 읽고, 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한다. 그는 한 권의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이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128쪽)
글쓰기의 충고 - 모든 사람들이 긍정할 만한 글쓰기의 비법이란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야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루한 부분은 과감하게 지워라. - 스티븐 킹
젊은 작가들에게, 짜증 나는 지연 과정 없이 잘 쓸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충고한다. 추상적인 인류 전체에 대해 쓰지 말고, 구체적인 한 사람에 대해 써라. - E.B. 화이트
글쓰기의 가장 간단한 비법이자 가장 어려운 비법이기도 하다. 일단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가장 가까운 비유부터 시작하는 것, 가장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것부터 비틀어보는 것이 글쓰기의 가장 쉬운 시작.
문자로 기록하지 않으면 세세한 내용은 기억하기 힘들다. 즐겁든 고통스럽든 일단 적어야 한다.
당시에는 지긋지긋했지만 이제 그 기억은 내 마음이 뜯어먹기 좋아하는 좋은 풀밭이 되었다. - 조지 오웰
많은 작가들의 글쓰기 충고의 교집합은 '열심히 쓴다, 꾸준히 쓴다' 정도다. (130~131쪽)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만의 생각을 말과 글로 쏟아낸다. 우리는 작가가 아니더라도 말만 하고 살 순 없다. 메모를 하던, 한 줄 일기를 쓰던 자기의 생각을 글을 끄적이며 산다.
조금씩 쓰다 보면 스스로 깨닫게 되는 자신만의 방식도 생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선배님들의 말씀은 우리 생각을 표현하는 글에 좋은 계단이면 된다.
끝으로 소설가 김중혁은 글쓰기는 혼자 해서 좋은 것이지만, 혼자 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라고 밝힌다.
'지금 수많은 블로그에서, SNS에서, 책에서, 글쓰기는 자기 합리화의 좋은 도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정확하게 글을 쓰고 싶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말은 뱉으면 그만이지만, 글은 발표하기까지 수십 번 수백 번 고칠 수 있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을 고쳐낼 수 있다. 말에 비해 글은 훨씬 더 전략적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글쓰기 속에서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137쪽)
글쓰기 관련 김중혁 작가 풀어놓은 창작 비밀은 여기서 끝난다.
138쪽부터 아래와 같은 순서의 글과 그림이 담겨있다.
작가로부터 마치 특별 보너스를 받은 기분으로 가볍게 들어섰다가 문제풀이를 마주하곤 제법 진지해진다.
Pause. 당신 안에 당신이 모르는 예술가가 있다. (138쪽)
우연히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아무렇게나 그려보자
다 함께 그림을 그려보자
문제를 풀기 전에 (193쪽)
언어 영역 (194쪽)
1. 시끄럽고, 분주하고, 엉망진창이고, 헛소리가 난무하는 택시 안에서
2. 그냥 한마디 툭 던졌는데, 인생이 들어 있는 경우
3. 재치와 침묵과 웅변과 사생활이 곁들여지는 수상 연설
4. 휴대전화를 잠시 꺼둔 채 읽는 대화
5. 만약으로 시작해서 체험으로 끝나는 이야기
예술 영역 (221쪽)
1. 그림은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목소리와 같습니다
2. 작업실의 먼지를 모아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습니다
3. 말하는 것의 반대는 듣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입니다
4. 아름다운 추억이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줄 것입니다
사회 영역 (246쪽)
1. 세일즈맨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2. 젊은 친구, 지구에 온 것을 환영하네
과학 영역 (620쪽)
1.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2. 마침표를 잘 찍는 인간이 되는 방법
3. 죽음 이후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에필로그, 당신의 결과물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 '지금도 그림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지만 창작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무조건 열심히 빼곡하게 채워 넣는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게 꼭 필요하는 것도 알게 됐다. 창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로 에필로그를 마치고 싶다. G.K. 체스터튼의 말이다.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서투르게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나는 지금 무엇인가를 만들기로 작정한, 창작의 세계로 뛰어들기로 마음먹은 당신을 존중한다. 하찮다고 느껴지는 걸 만들었더라도, 생각과는 달리 어이없는 작품이 나왔더라도, 맞춤법이 몇 번 틀렸더라도, 그림 속 사물들의 비율이 엉망진창이라도, 노래의 멜로디가 이상하더라도, 나는 그 결과물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건투를 빈다.' (288쪽)
http://www.yes24.com/Product/Goods/57655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