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속에는 네 개의 에피소드가 각기 다른 이야기로 소개되지만 묘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시대상과 처한 환경이 다르지만, 편지를 매개로 한 상담을 통해 삶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문제들을 짚어내고 함께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참신한 소재, 치밀한 구성, 정확한 문장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영화와 TV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제1장 답장은 우유 상자에 (7쪽~)
실직을 하고 백수생활을 하던 쇼타, 고헤이, 아쓰야 세명의 청년은 좀도둑이 됐다.
함께 빈집(별장)을 턴 후, 훔쳐 타고 달아나던 자동차까지 고장이 났다.
쇼타는 아쓰야와 고헤이에게 상점인 듯 보이는 폐가를 알고 있다며, 이곳에서 하룻밤 몸을 숨기자고 제안한다.
이들이 찾은 곳은 문을 닫은 지 삼십 년이 훨씬 넘은 '나미야 잡화점'이었다.
쇼타는 잔자제품 판매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나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고 있었다.
고헤이는 몸집이 크고 선해 보이는 백수청년으로 등장한다.
아쓰야는 하청기업 직원이었으나 대기업 사원의 실수로 벌어진 일에 억울하게 덤터기를 쓰고 해고됐다.
아쓰야는 세 명 중 리더 역할을 하지만, 말투가 날카롭고 태도가 까질 해 보인다.
마음이 여려 보이는 쇼타나 고헤 보다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다.
이 세 사람은 2012년을 살고 있는 현실의 인물들이다.
세 사람은 나미야 잡화점에서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가게 뒷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시간의 경계가 뒤틀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들도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달 토끼'라는 과거의 사람이 보낸 편지를 받으면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달 토끼인 '기타자와 시즈코'는 올림픽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연습에 매진하던 펜싱선수였다.
그녀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의 시한부 소식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올림픽이 끝나는 대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한 달 토끼는 간병과 훈련 사이에서 갈등했다.
1979년 11월, 나미야 잡화점으로 보낸 상담편지를 쇼타, 고헤이, 아쓰야 세 명의 청년이 발견하게 되면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헤이는 나미야 잡화점으로 배달되는 편지에 답장을 쓰자고 가정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아쓰야는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해 보라며 반대했지만, 쇼타와 고헤이는 답장(상담)이라도 해주자고 결정했다.
"..... 내(고헤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이 사람도 자기 얘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거야. 별로 대단한 충고는 못해주더라도,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다, 어떻든 열심히 살아달라, 그런 대답만 해줘도 틀림없이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 (31쪽)
대부분의 상담자는 지식과 경험, 사리판단과 분별력, 어느 정도 인생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연륜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을 만든 상점 주인 나미야 할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 딱 닮아있다.
그런데 현실의 상담자가 된 세 명의 청년은 미숙하고 결점투성이인 '백수건달' 좀도둑 들이었다.
남의 고민을 들어본 적도 없었으며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을 만큼 피폐한 현실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다른 사람의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함께 고민하고 최선의 답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며 정성껏 상담 편지 답장을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스로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제2장 한밤중에 하모니카를 (83쪽~)
쇼타, 고헤이, 아쓰야의 두 번째 상담자는 '생선가게 뮤지션' 가쓰로였다.
그는 살아생전 그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안타깝게 사라져 간 아마추어 음악가이다.
그는 평생 음악과 짝사랑에 빠진 상태로 살았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가쓰로는 몇 년째 크리스마스이브 때마다 아동복지시설인 '환광원'을 찾아 위문공연을 펼치곤 했다
어느 해 새벽에 화재가 발생했고, 그는 '다쓰'라는 아이를 옥상까지 올라가 구해내지만, 스스로는 큰 화상을 입고 사망했다.
다쓰의 누나였던 당시 10살 소녀 '세리'는 이날의 참담한 사고를 계기로 음악의 천재성을 발휘하게 되고 당대 유명한 가수로 성공한다.
가수 세리가 항상 마지막에 부른 노래는 '가쓰로'가 자작곡 한 '재생'이라는 명곡이었다.
세 남자는 이미 가수 세리의 유명세를 현실에서 알고 있던 터였기에 과거의 '생선가게 뮤지션'에게 다음과 같은 확신에 찬 희망의 상담 편지를 전할 수 있었다.
"당신이 음악 외길을 걸 것은 절대로 쓸모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노래에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낸 음악은 틀림없이 오래오래 남습니다..... 아무튼 틀림없는 얘기예요. 마지막까지 꼭 그걸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 (148쪽)
제3장 시빅 자동차에서 아침까지 (151쪽~)
나미야 잡화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는 말년에 '그린 리버'라는 여자의 상담 편지를 받은 바 있다.
처자식이 있는 남자와 사귀던 '그린 리버'는 임신 중이었다.
그녀(가와베 미도리)는 전에 한 번 결혼을 했지만, 애가 들어서지 않는 체질이라며 의사가 아기는 포기하길 권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첫 결혼도 실패했었다.
그린 리버는 어렵게 갖게 된 아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혼자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도 혼란스럽다는 상담편지를 보냈었다.
그리고 바로 석 달 전 기사에 이웃한 도시에 살던 여자가 생후 일 년쯤 된 아기와 바다로 추락, 여자는 익사체로 발견됐지만 아기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동반자살 사건이 있었다.
죽은 여자의 이름은 '가와베 미도리',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초록색 강이라는 뜻이다.
우연이라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상담자인 나미야 할아버지를 괴롭혔다.
그러나 이 사건은 동반자살이 아니었다.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 가와베 미도리는 영양실조인 상태로 운전 중 빈혈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자동차를 빌린 것도 아기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한 것이었다.
미도리는 빈혈로 일시적인 정신혼미 상태에 빠진 채로 바다에 추락했다. 뒤늦게 혼신의 힘을 다해 창문을 열고 딸아이부터 차 밖으로 보냈고, 자신은 안전벨트조차 풀지 못한 상태로 사망했다.
이 아이도 환광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고, 그곳에서 세리와 다쓰 남매와 함께 성장했다.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가수 세리의 매니저로 일하게 된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상담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167쪽)
아들인 나미야 다카유키는 이런 번거로운 일을 벌써 몇 년째하고 계신 아버지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죽은 후, 서른세 번째 제삿날이 다가오면 어떤 방법으로든 '공고문'을 내달라고 아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나미야 잡화점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게
9월 13일 오전 0시부터 새벽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창구가 부활합니다.
예전에 나미야 잡화점에 상담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으셨던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그 답장은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도움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을까요. 기탄없는 의견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때처럼 가게 셔터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219쪽)
훗날 이 공고문은 '나미야 순고'에게 까지 유언으로 이어진다.
나미야 순고는 나미야 다카유키의 손자이다.
제4장 묵도는 비틀스로 (221쪽~)
'폴 레논'은 비틀스에 열광하는 중학교 3학년 생이었다.
당시 잘 나가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족이 야반도주하려는 상황에 직면했다.
평소 존경하던 부모님이 싫어졌고, 야반도주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는 "야반도주는 옳은 일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중지시켜야겠지요. 하지만 어떻게 해도 중지시킬 수 없다면 폴 레논 님은 부모님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의견입니다." (258쪽)
그러나 와쿠 고스케(폴 레논)는 휴게소 화장실에서 아버지와 갈등을 빚고 아버지가 차를 세워둔 곳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부모님과 생이별을 하고 고스케는 자신의 신분을 영원히 숨긴 채 생년월일조차 1957년 2월 26일을 6월 29일(비틀스가 일본을 방문한 날)로 혼자 정하고, '후지카와 히로시'라는 이름의 남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환광원'을 거쳐 유명 목공예가의 제자 아래서 도제 수업을 받으면서 성장, 제법 유명한 목공예가로 성공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아들 고스케를 찾지 못한 채, 일가족동반자살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스케는 뒤늦게서야 할아버지가 보내준 편지의 글귀가 다시 생각났다.
"온 가족이 같은 배에 타고 있기만 하면 함께 올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315쪽)
중년의 고스케는 나미야 잡화점 공고문을 보고 옛 마을을 다시 찾았다.
그는 나미야 잡화점이 열린다던 새벽시간을 기다리면 *'Fab 4'라는 카페에 들렀다.
카페는 뜻밖에도 옛 중학교 친구의 여동생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야반도주하던 전날, 친구에게 헐값으로 팔아버렸던 귀중한 비틀스 앨범을 발견하고 감회에 젖기도 했다.
에리코(여주인)는 오빠가 귀하게 보관했던 비디오가 있다며 LCD화면의 전원을 켰다.
그것은 애플 빌딩 옥상이었다
찬바람이 부는 가운데 비틀스가 연주에 들어간다. 영화 <렛 잇 비>의 클라이맥스 장면이다.
술잔을 내려놓고 고스케는 화면을 응시했다.
그의 인생을 바꿔버린 영화였다.
그것을 보고 인간의 마음을 이어주는 끈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를 통감했었다.
하지만.....
비디오 영상 속의 비틀스는 고스케의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옛날에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그들의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있고 연주도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 것처럼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바라보니 그때와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네 명의 멤버는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령 해체를 앞두고 있더라도 넷이서 연주할 때만은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영화관에서 봤을 때 지독한 연주라고 느꼈던 것은 고스케의 마음 상태가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마음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어떻게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319쪽)
* 'Fab.4'는 'Fabulous Four(멋진 4인조)'의 약자다.
더 비틀스의 애칭 'Fab.4'를 2월 4일 'Feb.4'에 붙혀 2월 4일은 '비틀스의 날'이다.
영국 출신 록 밴드 '더 비틀스'는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의 4인조. 1962년 레코드 데뷔하고 1970년에 그룹 해체 선언을 했다. 활동 기간 불과 7년 반 만에 213곡을 만들어내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지금도 그 영향력은 이어지고 있다. Yesterday(예스터데이) HEY JUDE(헤이 주드) Let It Be(렛 잇 비) 등의 곡은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다. - knowledge.huunii.com›문화›비틀스의 날
제5장 하늘 위에서 기도를 (321쪽~)
'길 잃은 강아지'는 여상을 졸업하고 도쿄 소재의 회사에 다니는 직장여성으로 경제적 자립을 위해 밤에는 호스티스 일을 하고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을 아동복지시설인 환광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 이모 할모니 부부가 데려다 키워주셨다.
그녀(무토 하루미)는 언젠가 꼭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모할머니 부부도 연로하셔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다.
1980년, 여름 그녀의 상담 편지를 받은 것은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가 아니라, 쇼타, 고헤이, 아쓰야 세명의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길 잃은 강아지'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그들이 이미 살아온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자세히 검색해서 앞날을 거의 예언해 주기에 이른다.
하루미는 그 예언의 상담 편지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하면서 경제적 성공을 거둬 지금은 많은 부를 지닌 50대 여사장으로 당당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미도 새로 바꾼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해 보다가 '나미야 잡화점, 단 하룻밤의 부활'이라는 문장을 마주하게 되고 나미야 잡화점에 감사의 편지를 전하게 된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환광원'을 거쳐간 인연이 닿아있는 것이 놀랍다.
이들이 모두 녹녹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속에 등장하는 이들에게도 인생은 끝없이 선택하고 노력해야 하는 힘든 현실의 연속이었다.
현실이 버거울 때면 잠시 그 선택을 미뤄두고 그저 가장 편한 길을 찾아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나 기적은 삶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았을 때 일어났다.
인생은 가끔 선택의 고민조차 사치스러울 때도 있다.
삶의 선택조차 없는 백지상태라면 난감한 것은 당연했다.
나미야 할아버지는 막막함과 답답한 어떤 이들에게, 늙어 망령이 난 머리까지 쥐어짜 그 답을 편지에 적어 보냈다.
'보는 방식을 달리해 보시라'던 나미야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447쪽)
나미야 할아버지는 지금도 하늘 위에서 우리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계시려나!
https://www.youtube.com/watch?v=G4Ifjgzls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