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언어의 지문을 남긴다.
- 제임스 W. 페니 베이커의 저서 『단어의 사생활』 중에서
『단어의 사생활』은 단어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심리학 책이다.
평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하루 1만 6천 개나 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엄마' '맘마'라는 단어로 말문을 트기 시작한 순간부터, 살아있는 모든 과정이 말하고, 읽고, 쓰고는 연장선이다. 단어의 쓰임을 따로 생각해 본 적 없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단어의 양이 참 어마어마하다.
각자의 삶을 특정 지을 수 있을 만큼 남겨진 흔적 또한 예사롭지 않다.
평생 사용하는 단어들의 모양은 평생 변하지 않는 손가락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르다.
언어는 문화를 암시하는 기능어(機能語)로 이는 각국에서 사용하는 모든 언어에 적용된다.
긴밀한 유대를 중시하는 집단주의적 문화의 언어에서는 인칭 대명사를 생략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더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는 생략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언어는 지위가 더 높거나 존대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기능어다.
단어를 분석할 때 '자신의 감을 믿지 말라'
'나'라는 단어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어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우리'라는 단어는 거만하고, 감정적 거리를 두고 지위가 높을 때 자주 사용된다.
상대적으로 '나'라는 단어는 낮은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로 보게 된다.
기능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작동한다.
사람들은 보통 '나'라를 단어가 자신감이나 거만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자신 있는 사람들이 항상 '나'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지위가 높은 사람은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한다.
나, 우리, 당신이라는 대명사는 지위, 권력, 자신감, 거만함, 지도자의 자질 등과 공통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오바마는 당선 이래로 시종일관 다른 현대 대통령들에 비해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했다.
매체 전문가들의 발언과 반대로, 오바마는 1인칭 단수 대명사를 '지나치게 좋아하는'(조지 윌) 것도 아니고,
그의 '나'라는 단어 사용이 '오만에 사로잡혔다는 명백한 표시'(스댄리 피시)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오바마의 언어는 자기 확신과 함께 감정적 거리를 암시한다.
단어는 자신의 개인 서명과 같다.
학생들이 대입 논술에 사용하는 기능어로 그들의 대학 성적을 예측하기도 한다.
대입 논술에서는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는 구상명사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현재형 동사와 대명사를 적게 사용하면, 이후 대학생이 되어 좋은 성적을 얻을 확률이 더 크다.
이는 그렇게 쓰는 사람들이 더 똑똑하다는 것이 아니라, 교육 체계가 사물과 사건을 범주화하여 생각하는 사람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9/11 테러 사건 전후로 대명사 '나'의 사용은 뚝 떨어졌고 '우리' 사용은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긍정적인 경험에 대해 쓸 때 '우리'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주민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단어를 사용하는 도시는 빈부격차가 크지 않다.
사람들은, 행복할 때 구체적 명사(具體的名辭)를, 슬픔과 분노에 차 있을 때는 인지적 단어(認知的 單語)를 더 많이 쓴다.
그러나 대부분 나이가 들면 남녀 모두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명사와 단어를 적게 사용한다.
기능어 사용 방식이 달라진 것이기도 하겠지만, 사회 활동 영역이 작아지는 탓도 있을 것 같다.
단어의 비밀, 심리학과 단어가 만났다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페니 베이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그는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둔다.
단어들이 사람 내면의 움직임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일 때 특히 흥미롭다.
지독한 트라우마 경험을 혼자서 간직하는 사람들은 경험을 드러내고 말하는 사람들에 비해 건강상 문제가 더 많았다고 밝혀졌다.
트라우마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은 아무런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썼던 사람들에 비해 건강이 호전되었다.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가 면역 기능을 높이고, 혈압을 낮추며, 우울한 감정을 줄였으며 평소 기분도 더 나아지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트라우마는 단어를 통해 치유되어야 한다는 것이 페니 베이커의 주장이다.
감정의 격변을 언어로 변환하는 단순한 과정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꾸준히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어는 우리를 보여주는 '광고판'이다.
글쓰기의 시작은 '단어 선택'에 있다.
우리가 쓰는 단어와 우리의 심리 상태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페니 베이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인 단어로 그들의 생각, 감정, 동기, 사회적 관계 등을 알아냈다.
저자는 팀을 만들어 '언어 조사와 단어 계산 프로그램(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을 개발했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면, '단어의 흔적'만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은 물론 살아온 배경까지 밝혀낼 수 있다.
화가 난 사람은 분노와 관련된 단어를 사용하고, 슬픔에 잠긴 사람은 슬픔과 관련된 단어를 사용한다.
실험 참가자들이 트라우마에 대해 글을 쓸 때,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고르는 과정에서 그들의 감정 상태가 반영된다.
단어의 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평소 말하고, 책을 읽고, 감정을 다듬어 기록하는 단어에는 우리 생각과 감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글쓰기에 담기는 수만 가지 생각이 단어로 나열된 흔적은 그대로 한 사람의 지문처럼 남는다.
그 자취는 사람마다 다 다르며 평생 변하지 않는 지문처럼 고유한 특징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면 모두 평등과 자유를 갈망하지만 사회적 서열은 엄연히 존재한다.
서열은 서로 소통하기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정해진다.
소통에 참여한 주체들은 저마다 자신의 역할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민주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 서열이 존재한다는 것이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서열을 정하는 우리의 습성은 이후 모든 상호작용을 더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나' '우리' '당신'이라는 대명사가 지위, 권력, 자신감, 거만함, 지도자의 자질 등과 공통적으로 관련되어 있지만 이들 속성이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조직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타인에게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없더라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유능한 지도자는 거만함이나 권력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때도 있다.
지위와 권력 모두 사회적 서열을 알려주는 지표로 간주될 수 있지만 지위의 몰락은 그 사람이 사용하던 단어마저도 바꾸어 버릴 수 있다.
만약, 일반인인 내가 세계 유명 인사들이 참석하는 파티에 우연히 가게 된다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나'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할 사람은 내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들 중 서열이 가장 낮을 테니.
그러나 다시 또 만날 리 없는 유명 인사나 권력자들 앞에서 굳이 '나'의 낮은 서열을 인정할 필요가 있을까?
아직까지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나이도 서열 들어간다. '꼰대'나 '라테'처럼 권위적 말고. ㅋ
답답한 현실에 초연하고 의젓한 한 사람으로, 의식적으로라도 '나'라는 단어를 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비굴해 보이는 상황에 처하고 싶진 않다.
차라리 긴장을 풀고 더 인간적이고 진실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단어가 그에 따라 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를 바꿔 사용하도록 훈련할 수는 있지만 그 단어가 성격이나 행동,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강력한 증거는 없다는 것이 페니 베이커의 저서 『단어의 사생활』 (240쪽) 중에 나타난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흘리는 단어의 흔적들
자기기만의 다양한 형태 1) 어떤 사건에서 받은 감정적 충격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부인 2)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3) 명백히 거짓이거나 증명되지 않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
자기기만적인 언어의 세 가지 특징
1) 비개인적(비인칭) 언어 - 신변에 큰 변화를 겪은 사건에 대해 말하거나 쓸 때 그 경험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2)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특히 부정적 감정의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커다란 힘든 사건을 겪었지만 '감당할 수 있고' '영향이 미미한' 경험이라고 적는다.
3) 구체적인 대상을 나타내는 구상명사를 자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동사는 '~일 것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일 것이다'와 같은 말들을 사용, 실제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개인 인식 사이에 일종의 거리가 있음을 나타낸다.
자기기만과 본격적인 기만(거짓말) 사이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가끔 사람들의 진짜 감정이 새어 나오는데 이는 말실수 같은 미묘한 오류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고 했다.
말실수를 저지르기 가장 쉬운 때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할 때다.
단어 분석을 통한 거짓말 탐지기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단어 패턴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행복할 때는 '구체적 명사'를, 슬픔과 분노에 차 있을 때는 '인지적 단어'를 많이 쓴다.
감정을 파악하자면 행복, 슬픔, 분노라는 뚜렷한 세 가지의 감정 고려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 세 가지 감정은 뚜렷한 신체적, 심리적 느낌을 동반한다.
이 감정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는 역할도 한다.
감정과 단어에 대해서는 시인들이 어떻게 시를 쓰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시인들은 자신의 감정 반응에 대해 글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경험에 대해 쓸 때 '우리'라는 단어를 특히 많이 사용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구체적인 명사를 사용하고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표시하는 등 보다 구체적으로 글을 쓴다.
긍정적인 기분은 더 열린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도록 시야를 넓혀준다.
슬픔은 일반적으로 주의가 자신의 내면을 향하게 한다.
대명사는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을 따라 사용된다.
감정적 신체적으로 크게 고통스러울 때 '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슬픔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다른 강렬한 감정에 비해 슬픔이나 우울함을 느낄 때 과거와 미래 시제 동사를 더 많이 사용한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감정이 영향을 미친다.
감정은 생각에, 생각은 우리가 기능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반영된다.
그리고 기능어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능어는 감정 상태, 생각하는 패턴,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 등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광고 역할도 한다.
사용하는 단어로 성격과 욕구를 알아챌 수 있을까
각자 사용하는 기능어는 다른 성별에 따라 단어 사용에 차이가 나고, 여자들은 대명사(특히, '나'라는 단어), 조동사, 인지적 단어를 훨씬 많이 사용한다.
남자들은 명사를 더 많이 사용한다.
남자들끼리와 여자들끼리도 그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와 기능어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마다 특유의 단어 사용 패턴이 있다.
우리는 이런 다양한 패턴 덕분에 통찰력을 발휘하여 이들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들 간에 나타나는 기능어 사용의 다양한 패턴은 사람들의 성격과 사고방식을 드러내 보여준다.
형식적 스타일로 쓰는 사람 - 212쪽
기능어를 분석할 때 가장 일관된 요인으로 발견되는 것은 형식성은 딱딱하고, 웃음기 없고, 약간 거만한 경향이다.
형식적 사고(formal thinking, 논리나 형식에 치중한 사고방식)는 즉시성(immediacy)과 반대라고 보면 된다.
형식성(formality)이 매우 높은(즉시성이 낮은) 사고와 글은 보통 어려운 단어와 많은 명사, 숫자, 관형사, 조사를 포함한다.
또한 형식성이 높은 글에는 '나'라는 단어, 동사(특히, 현재형 동사), 영어의 경우 생각과 현실의 불일치를 암시하는 조동사(would, should, could 등)와 일반적인 부사(정말로, 매우, 아주 등)가 매우 적다.
형식성이 높은 글을 쓰는 사람은 훨씬 더 지적이고 약간 거리감이 느껴진다.
뭔가 진지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학술적인 글과 일반적인 비소설은 즉시성이 높은 연애소설에 비해 형식성이 높은 경향이 있다.
형식적 사고를 주로 하는 사람들은 지위와 권력에 관심이 더 많고, 자기반성적인 경향이 낮은 편이다.
이들은 덜 형식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에 비해 음주와 흡연을 적게 하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지만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덜 정직한 경향도 보인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글쓰기와 말하기 스타일이 즉각적인 쪽에서 형식적인 쪽으로 변한다.
결국 기능어의 첫 번째 측면인 형식성은 사회적, 심리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분석적 스타일로 쓰는 사람 - 213쪽
분석적 사고(analytic thinking)는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분석의 특징은 구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떤 시험에 붙고 어떤 시험에 떨어졌는지 구별하는 것이다.
분석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단어에는 배타적 단어(~를 제외하고, ~ 없이), 부정어, 인과관계와 관련된 단어(왜냐하면, 이유, ~때문이다). 통찰과 관련된 단어(깨닫다, 알다, 의미하다), 불확실한 단어(어쩌면, 아마도), 확신하는 단어(전적으로, 항상, 늘), 수량을 나타내는 단어(약간의, 많은, 더 큰) 등이 포함된다.
분석적 사고는 그 사람이 인지적으로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하거나 글을 쓸 때 구별을 하는 사람은 대학에서 더 높은 성적을 받고, 더 정직한 경향이 있으며, 새로운 경험을 열린 태도로 대한다.
이들은 또한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낮은 사람에 비해 글을 더 많이 읽고 자기 자신을 더 복합적인 관점으로 본다.
서술적 스타일로 쓰는 사람 - 215쪽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단순한 언어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음을 알려주는 기능어는 대개 사람을 나타내는 단어(모든 종류의 인칭 대명사, 특히 3인칭 대명사), 과거형 동사, 접속어(~하면서, 그리고, 함께 등 어떤 대상을 포괄하는 단어) 등이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적으라고 해도 최소한 20% 정도의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이야기든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실제 분석 결과 서술적 사고(narrative thinking) 요인이 높게 나오는 사람들은 사회적 스킬이 더 뛰어나고, 친구가 많고 자신을 더 외향적이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능어들을 모아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범주로 나눔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조직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파악하고 있다.
그들이 사용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이 기능어들은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가장 중요한 본질을 드러낸다.
저자와 *로라 킹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는 동안, 사람들이 생각하고 글 쓰는 스타일이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꿈의 인생을 창조하는 21일간의 여행의 저자
의식의 흐름대로 글 쓰는 학생들의 스타일은 신경계의 작용 방식에 대한 리포트를 쓰는 스타일과도 연관성이 있었다.
어릴 때 생각하는 방식이 일생 동안 지속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연구들도 있다.
실제 10대 초반에 쓴 일기나 학교 숙제를 보게 된다면 글을 쓰거나 생각하는 방식이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가능성이 크다.
환경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이 계속 변한다.
우울함에 빠진 사람은 형식적 사고의 수준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매우 낮은 상태로 변하기도 한다.
삶에 있어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는 사람은 이메일, 블로그, 일상적인 대화에서 분석적 사고의 경향이 높아진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글쓰기나 말하는 스타일을 연구하여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단어들은 '나의 행동과 생각의 잔여물'이다.
이 책에는 물병에 대한 묘사, 의미 추출 기법 등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투사 검사인 주제 통각 검사(Thematic Apper-ception Test, TAT)에서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사람들의 중요한 세 가지 욕구의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사람들은 성취 욕구(이기다, 지다, 성공하다, 실패하다, 시도하다), 권력 욕구(위협, 상사, 직원, 이끌다, 따르다, 주인, 복종하는), 소속 욕구(사랑하다, 친구, 외로운)에 따라 움직인다.
성취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성공을 염원하는 동시에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이기다'와 '지다'는, 뜻이 반대인 단어지만 같은 욕구를 반영할 수 있다.
억제된 권력 욕구가 있는 사람들은 혈압이 높다는 점도 발견되었다.
어딜 가든, 우리는 단어라는 단서를 남긴다.
일상 언어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일상 언어에는 이메일, 트위터 및 페이스북 등의 SNS 게시물, 문자 메시지, 대화 기록, 블로그 게시물, 전문적인 글, 연설문 등이 모두 포함된다.
분석적이거나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사물물을 묘사하거나 가든파티, 혹 누군가의 배탈에 관해 이야기할 때 관형사, 조사, 부정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격식을 차리는 상황에서는 더 딱딱하게 말하고, 광란의 파티장에서는 더 거칠게 말한다.
사람들이 순간 내뱉은 단어 속에는 그들의 속마을이 드러난다.
모임에서 누군가 대화의 방향을 바꾼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머릿속을 보여주는 강력한 표시가 된다.
우리는 사용하는 기능어의 지문을 남기며 살고 있다.
물론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환경과 상황에 처해 있던지 성격은 그대로이다.
단어를 바꿔 쓴다고 그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와 융 사이의 존경과 멸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의 관계는 심리학과 정신의학 역사의 중심에 있다.
1800년대 후반, 정신분석학에 대한 프로이트의 생각은 서양사상의 토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는 일련의 논문을 통해 사람들의 성격과 일상적 행동은 무의식적 과정에 좌우되고 그 무의식의 대부분은 매우 성적인(sexual)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린 시절 경험이 이후의 정신건강을 형성한다는 생각을 일깨우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창의적인 사상가였으며 자신의 관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기도 했다.
그의 한 가지 우려는 자신의 연구가 유대인의 사고방식이라고 깎아내려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칼 융은 젊고 야심 찬 스위스 기독교인 학자다.
의대를 갓 졸업한 융은 정신분열증과 무의식의 특성 같은 사고 장애의 심리학적 근거에 매료되었다.
프로이트와 융은 책과 논문을 주고받고, 몇 차례 편지가 오간 사이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융이 자신의 소중한 친구이자 후계자'라고 편지에 쓰기도 했고, 융은 프로이트에게 "동등한 관계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로서 당신과의 우정을 누리렵니다"라고 쓸 수 있었다.
1906년~1913년 사이 두 남자는 적어도 337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1911년 두 남자 사이에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프로이트의 명성은 급격히 치솟았고, 용은 프로이트가 성적인 면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 역시 융이 자신의 관점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편지 왕래를 하던 마지막 몇 달 동안 융은 프로이트가 거만하고 폐쇄적이라고 비난했다.
프로이트는 "개인적인 관계가 완전히 끝나야 한다....."라고 대응했다.
저자는 이 두 남자가 주고받은 편지들의 기능어를 분석했다.
두 사람은 그들의 언어 스타일 일치도에서 예상 가능한 패턴이 드러났다.
이들의 언어 스타일 일치도는 처음 몇 년 동안 이례적으로 높았지만 그 후 급격히 떨어진다.
두 사람은 처음 몇 년 동안 그들의 관계에 동등하게 헌신했다.
하지만 막바지에는 그 관계에서 분리되어 있고 언어 사용 스타일이 더 많이 변한 사람은 프로이트였다.
프로이트는 융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서 "나는 이 일로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네. 과거의 실망이 앙금으로 남아 자네와의 사이에 있던 유일한 감정의 끈마저 실처럼 가늘어진 지 오래이므로."
20세기 위대한 사상가이자 심리학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프로이트도, 집단 무의식을 밝혀낸 정신의학자 융도 언어의 흔적을 남기고 갔다.
이 대단한 두 남자의 기능어도 그냥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감히 말자면, 조금 치졸해 보이기도 하고 변덕스러운 기회주의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슷한 단어를 쓴다는 것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서로 좋아하거나 믿지는 않을지 몰라도 최소한 서로 지켜보고 귀를 기울인다.
좋은 친구들, 연인 사이의 대화는 언어 스타일 일치도가 높은데,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라는 공이 계속 굴러가게 하려면 둘 다 주제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문제 있는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둘 다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상대가 자신을 미묘하게 거부하고 있는 생각이 너무 위협적이어서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 역시 자신이 그러고 있는지 모를 수 있다.
저자 페니 베이커는 이런 사람들에게 언어 탐지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단어
우리는 자연스럽게 때론 영악하게 상황에 따라 단어를 다르게 사용한다.
대명사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변하는 광범위한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라는 의식의 정도가 집단 정체성을 반영하는 데 비해, 언어 스타일 일치도는 집단 구성원들의 공통적 세계관을 나타낸다.
위키피디아 연구는 같은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들의 언어 사용 스타일을 측정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연결성을 측정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모두, 언어의 지문을 남긴다.
글쓴이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특히 유용한 두 개의 단서는 '기능어'와 '문장 부호' 사용법이다.
대명사와 조사 등 기능어들은 글쓴이의 나이, 성별, 사회적 계층, 성격, 사회적 관계와 확실한 연관성이 있다.
저자는 현재 문장 부호 사용과 성격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들을 통해 확실한 연관성이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끝에 "고마워."라고 쓰는 사람과 "고마워!!!!!!!!"라고 쓰는 사람의 성격에 차이가 없다고 상상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 페니 베이커는 이 책 『단어의 사생활』에서 컴퓨터의 언어 분석이 열어준 많은 응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기능어는 우리가 세상을 좀 더 잘 알도록 도와줄 수 있다.
범죄자나 역사 속 작가의 정체를 밝히고, 대통령이나 독재자의 생각을 파악하고,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는 것 등을 가능케 하는 기능어는 인간의 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자신의 기능어를 살펴보면, 스스로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프로이트와 융 같이 존경받는 심리학자들도 갈등과 변덕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인간인 것을 보면 단어의 흔적은 맞다 틀리다의 단서가 아니다. 각기 다른 사람의 모습을 좀 더 이해하는 토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특징을 이해하면,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남들에게도 좀 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게 되겠지!
부록
단어 포착을 위한 유용한 안내서 요약
관심의 초점을 나타내는 단어들: (인칭) 대명사, 동사의 시재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들: 대명사, 관형사,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사고방식을 나타내는 단어들: 접속사, 명사, 동사, 인과관계와 관련된 단어 - 복잡한 사고와 단순한 사고, 인과적 사고와 비인과적 사고, 역동적 사고와 범주적 사고라는 사고의 유형들을 되돌아보면 다른 방식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거나 생산적인 사고방식이 따로 있지는 않다. 가끔 인과관계에 따라 복잡하고 역동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하루를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그런 방식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현실에서 우리는 모두 무엇에 대해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고방식을 이리저리 바꾸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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