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배움과 성장, 의식과 무의식, 삶과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는 존재
『그리고 저 너머에』 The Road Less Traveled는 정신과 의사이자 신학자,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인 M. 스콧 펙의 저서이다. 이 책에는 20여 년 동안 대중을 상대로 써온 그의 글과 삶의 여정이 담겨있다.
스콧(1936년 05월~2005년 09월)은 하버드대학(B.A.)과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M.D.)에서 수학한 후, 10여 년간 육군 군의관(정신과 의사)으로 일했다. 이때 경험이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기초가 된다.
그는 첫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과 전통적 가치, 심리학과 영성을 결합시켰다. 스콧은 이 책을 집필할 때는 불교도였으나, 크리스천으로 개종했다. 이후 인간 심리와 기독교 신앙을 통합하는 글을 집필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비영리 교육기관인 공동체 장려 재단(FCE)을 만들어 개인은 물론 조직과 사회의 영적 성장을 이루고자 한 사상가였다.
저자의 인생관과 종교관은 진지하고 깊다.
절대자로서 신을 섬기지 않는 불교신자든,
천지 만물을 창조한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 신자든,
혹은 아직도 신과 일정 거리를 두고 배회하고 있는 사람이든,
모든 살아있는 자들은 배움과 성장, 의식과 무의식, 삶과 죽음을 피해 갈 순 없다.
독자들은 저자의 깊은 사상과 인식을 통해,
살아가면서 매 순간 이루어지는 선택과 결정, 선과 악의 구별, 나르시시즘 극복, 사랑하고 받는 것, 역설과 함께 살아가기, 죽어가는 것과 죽음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통해 그 답을 찾게 된다.
개인과 사회가 가진 병리 현상의 근저에 있는 원시적이고 나태한 단순 사고를 비판했다.
생각하기 (15쪽~74쪽)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사고는 하나의 과정이다.
생각의 부족은 우리 사회에 문제와 갈등을 일으킨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전두엽과 자유의지로 일생 동안 배움을 지속시킨다.
우리의 왼쪽 뇌는 전체를 받아들여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분석적 기능(남성적 성향)을,
오른쪽 뇌는 각 부분들을 받아들여서 전체로 통합할 수 있는 직관적 능력(여성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잘 생각하기는,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분석하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단순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도록 한다.
우리는 유행에 집착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유행의 광범위한 영향력은 단순 사고방식에 의한 순응주의를 초래한다.
'정상적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서 단순 사고의 논리에 도전해야 한다.
우리에겐 비판적 생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고정관념은 대개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사람이나 사물에 꼬리표를 붙여 분류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범주에 대해 단순하게 추정하며 산다.
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잘 들으려면 다른 사람의 말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이는 자신을 괄호 밖에 두는 것이다.
상호 성장을 위해 자신을 확장시키려는 의지다.
근본적으로 응답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성실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 서로 대립되는 생각과 요구 조건 사이의 긴장감을 경험해야 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속에는 많은 역설이 가득 차 있다.
저자는 "인생이 어려운 것은 문제에 직면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설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서로 모순되는 개념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생각을 잘하는 데서 얻어지는 이익은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다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다.
"일단 정신세계가 확장되면, 그것은 결코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 현대적 자기 계발서의 시작을 알린 M. 스콧 펙의 저서
의식 (75쪽~121쪽)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이다.
의식은 사랑, 기도, 아름다움, 공동체 사회처럼 한 가지 관점만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포괄적이고 복잡하며 신비롭다.
의식적이 되는 것은 생각을 잘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남겼다.
저자는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표현한다.
'의식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는 별개로 '실체 그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나무는 스스로 토양, 비, 햇볕 등에서 에너지를 받으며 계절 따라 나뭇잎의 색깔을 바꾼다.
어쩌면 이들 존재는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의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 세상은 의식으로 활기가 넘친다.
세상은 살아 움직이고 사물을 인식하며, 성장하고, 변화한다.
의식 또는 자의식과 같은 개념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의식적인 정신으로 결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다면, 무의식적인 정신은 의식의 표면 아래에 존재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의 무의식 속에 완전히 빠져 있는 건 아닐까?
무의식은 '의식적 자아'라고 규정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상의 사실들을 알고 있다.
전두엽(인지력, 집중력 능력), 진화의 신화, 선과 악, 악과 죄 등을 살펴보면, 융의 '그림자'란 개념이 들여다 보인다.
칼 융은 악의 근원에 "그림자를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거부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자는 지속적으로 은폐하고, 의식의 융단 밑에 숨기고 싶은 것들을 포함하는 우리 마음의 한 부분이다.
악한이 아니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그림자를 직면하지 않으려는 성향의 사람들도 있다.
전통적인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대부분 심리적 장애 원인은, 의식하지 못한 성적 욕망과 분노 등과 같이 은폐된 감정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이런 징후들은 개인을 괴롭히기 위해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지하의 악마 같은 존재로 의식되었다.
그러나 스콧은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집필할 때, 그는 모든 심리적 장애란 기본적으로 의식의 혼란이라 믿었다.
이는 무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잘 생각해서 처리하려고 하지 않거나, 의식적으로 어떤 감정이나 고통을 회피하려는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문제, 감정, 욕망 등은 고통을 피하려는 의식적 마음이 그런 것들을 무의식 영역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에 그곳에 있을 뿐이다.
"그건 바로 당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느낄 때입니다. 만약 당신이 치료를 받지 않고도 잘 성장할 수 있다면 치료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성장하지 못하고 어려움에 처해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비능률적인 상태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95쪽)
인생의 어떤 부분에서는 제법 유능하다고 해도 다른 부분에서의 능력은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문제로 혼란을 느끼는 것은 의식이 모든 영역에서 균등하게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식 또는 의식의 발전은 자아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의식의 발전과 상당히 유사하다.
자아란 인격의 통치부이다.
높은 수준의 의식 밑에는 고도의 자기 통제력, 즉 심리적 능력이 있다.
죽음에 대한 의식 - 요구하는 의식과 연관된 또 하나의 극심한 고통은 죽음과 죽어가는 것에 대한 의식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더 의식적이라면, 이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흔히 말하는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를 '인간의 딜레마'라고도 했다.
죽음에 대한 거부감과 자연스럽게 연관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늙음에 대한 거부감이다.
늙음은 빼앗겨가는 과정이다.
백내장이 생기고, 보청기나 틀니가 필요할 것이며, 고관절 치환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화가 나고 우울한 기분에 빠져든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울증에 빠져 지내게 될 것이다.
내세(來世)를 위한 준비 역시 필요하다.
한때 저주로 보았던 것을 축복으로 여길 수 있도록 생각을 바꾸는 문제는,
늙어가는 것을 '죽은 뒤에 올 다음 세상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 받아들이는 문제와 직결된다.
스콧은 『지상에서처럼 천국에서』라는 책에서 '연옥'을 고통 없는 배움을 위한 현대적인 기술, 훌륭한 설비가 갖추어진 정신 병동이라고 묘사했다.
우리가 연옥에서 보내는 시간의 양은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그림자와 늙어가는 문제)에 직면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을 회피하는데 쏟았던 노력에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세든 현세든 우리는 연옥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
스콧은, 그렇지 않으면 신과 함께하지 못하고 *림보에서 영원히 머물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 신곡의 지옥편 초반에 등장하는 '림보'는 기독교를 믿을 기회가 없었던 의로운 사람들이 머문다는 선조 림보(Limbus Patrum)라고 볼 수 있다. 세례 받지 못한 아기들도 여기에 있다. 그리스 신화의 엘리 시 온 같은 느낌으로 풀밭이 펼쳐졌다고 하며, 이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인물들은 일곱 겹의 벽으로 둘러싸인 성에서 산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들과 영웅들 대부분이 여기에 있었다. 이슬람 쪽 인물들도 있는데, 기독교와 적대했지만 의로운 인물인 살라흐 앗 딘도 림보에 있었다. 단테가 연옥과 지옥을 여행할 때 안내자였던 베르길리우스도 이 림보에 있었다.
삶 자체는 행복해도 영원히 신을 보지 못한다는 슬픔이 있지만, 아주 운이 좋으면 천국이나 연옥에 갈 수도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 구약 인물들은 예수가 죽었다 살아났을 때 데려갔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만 한다는 불교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도 이어진 생각이다.
사람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은 동서고금을 통해 끝없이 이어져오는 우리의 숙명이다.
누구에게나 현명하게 맞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나는 육체적 건강과 민첩성을 박탈당하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다.
하지만 정신적인 박탈감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처럼 고통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영웅적인 인물, 좋은 스승 그리고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을 상실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공허함을 느낀다.
수많은 환상들이 깨어졌을 때, 결국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냉소적이 되거나 스스로를 처량하게 느끼기도 한다. (113쪽)
저자는 성숙한 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성숙한 종교는 죽음의 신비와 치열한 고투를 벌이며,
죽음과 직면함으로써 그 속에서 개인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이러한 치열한 노력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신하게 할 수는 없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부모를 통해서 신과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탄생, 죽음, 재생의 순환에 직접적으로 관계함으로써 '신의 자식'으로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115쪽)
이는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새롭게 수정해야 한다.
현재 나 자신을 가장 편안하게 느낄 때, 변화가 요청된다.
우리는 인생의 전 과정을 통해 계속 살아가는 법과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두렵기는 하겠지만 적절한 시기가 오면, 우리 삶에 대한 통제권을 의식적으로 포기하는 법(우리 자신을 신에게 맡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신의 마음에 맞추어 생각하며 살아가려면, 의식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의식의 발전은 신과 마음을 일치하기 위해, 마음을 무의식을 향해 열어가는 과정이다.
새로운 진실을 깨닫게 되면, 그동안 무의식 속에서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새로이 알아보게 된다.
배움과 성장 (122쪽~183쪽)
저자는 우리가 사는 이유를, 배움(진화하기 위해)이라고 믿고 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퇴보(뒤로 움직이는)의 반대 개념인 진보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들이 우리의 스승이다."
배움은 생각과 의식이 서로 복잡하게 짜이는 과정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더라도 어떤 의미심장한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발생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사건 속에서 우리가 '신의 지문'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결정짓는다.
감성 지능의 토대는 자아인식이다.
자아인식과 연관, 심리학자들은 '메타 무드'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메타 무드'란 행동을 취하기 전에 한걸음 물러서서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인생의 후반부는 전반부에 저질렀던 온갖 어리석음과 편견 그리고 잘못된 생각을 치유하는 데 쓰인다."
성인기의 능동적 배움은 가능하며, 바람직한 일이다.
무엇인가를 기꺼이 배우려는 자유 의지는 내면의 성찰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포함되어야 한다.
"놀랄 만한 업적을 이루고 방대한 양의 지식을 습득했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고통은 자신의 내부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만약 당신이 그 고통을 느낀다면, 당신의 내부에서부터 이미 배움은 시작된 것이다." - 철학자 키르케고르
성숙한 정신 건강을 유지하려면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상충되는 욕구와 목표, 의무, 책임감 등에서 끊임없이 미묘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한 훈련의 본질은 새롭게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새로운 학습과 우리 안에 고착되어 있던 무엇인가를 폐기하는 것.
폐기한다는 것은 인간의 경험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인격적 특성, 학습으로 확립된 행동 양식, 이데올로기, 생활 방식까지 폐기해야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버린다'라는 것을 함축한다.
폐기 행위는 보다 성숙된 영성으로 나가는 인생의 여정을 떠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인가 버려야 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상태가 되지 않을까'하는 실존적 두려움을 느낀다.
다른 것으로의 변화는 낡은 방식의 죽음을 의미하는 한편 새로운 방식의 탄생(재생)을 위한 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 속에 들어 있던 낡은 것을 버려야 한다.
이 과정은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해당된다.
훌륭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본질적으로 훌륭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려는 선택의 일부이다.
우리가 훌륭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복잡한 선택의 문제를 다루었다.
개인적 인생의 선택 (187쪽~226쪽)
우리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가족과 조직,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삶이 복잡하다.
의식은 언제나 선택에 선행한다. 의식이 없다면 선택도 없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도전을 생산적으로 처리하는 법을 배우는 능력이 곧 심리전 발전, 혹은 영적인 성장을 의미한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그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리란 보장은 없다.
현명한 사람은 문제에 직면해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문화적인 세뇌를 받은 사람들은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주는 것만큼 받는 것도 좋은 것"이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했다.
진정한 의미의 사랑보다 잠정적으로 더 많은 괴로움과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자선이라는 종교적 혹은 문화적 이상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졌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신경증적 죄의식을 갖고 있다.
'사랑은 부드럽고 친절한 것'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거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할 때도 있다.
모호한 사랑은 부드러움과 엄격함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생 동안 무엇이 우리의 책임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선택하는 것처럼,
사랑에 복종한다면 언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언제 자신을 사랑해야 되는지도 선택해야 한다.
사랑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애정을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복종의 선택(종교)과 소명의 선택(소득을 얻기 위한 세속적 정의)을 넘어 품위 있는 죽음에 이르는 선택까지 우리는 유연함과 조직적 사고를 통해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적 한계를 인정하고, 상호 의존성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가능하다.
이 세상에 간단하고 손쉬운 문제 해결법은 없다.
온갖 인생의 경험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공허와 무지의 고뇌를 견뎌야 한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경험한다.
"비난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참고 있는가?"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 우리는 어떤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매번 새롭게 결정을 내리며 살아가야 한다.
조직적 삶과 선택 (227쪽~278쪽)
인간 존재는 사회적 동물로서 실제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조직(사회, 기업, 가정)의 영향력 아래 있고 또 그 맥락 속에 있다.
조직 행위의 주제는 인간 심리학의 전 분야를 포괄한다.
조직 행위란 일시적인 집단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뿐 아니라, 집단과 조직 그 자체가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포함한다.
개인적으로 조직적 선택, 결정, 좋든 싫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동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방법이 모두 중요하다.
스콧은 이 장에서 훌륭한 예의, 체계적, 윤리적(인도적), 상호의존성과 협력, 조직 내 책임과 구조적 관계 결여 등에 관해 밝힌다.
개인 정신 건강의 큰 특징은 유연한 반응 체계이다.
이는 조직 건강의 특징이기도 하다.
운영 형태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형태로 전환할 수 있는 조직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작용하는 조직보다 분명 더 건강해질 것이다.
사회에 대한 선택 (279쪽~331쪽)
악의 세력들은 노골적이라기보다 교묘하다.
악 그 자체만큼 무서운 것은 '평생 장밋빛 안경을 쓰고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악에 대한 부정이다.
실제 악의 부정은 어떤 면에서 악 자체를 영속화시킬 수도 있다.
사회를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견해는 대중 매체의 영향에 의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악이 만드는 드라마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언론은 진실에 대한 균형 잃은 견해를 영속화한다.
신용카드를 도난당하면 이는 통계 수치의 하나가 되고, 범죄 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그러나 고객의 부주의로 잃어버린 신용카드를 맡아두었다 말없이 건네준 이야기에 대한 통계는 따로 없다.
언론이 기분 좋은 뉴스를 다루지 않으려 하거나 왜곡 보도하려는 태도는 대중에게 악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 이제는 '희소식이 무소식'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선행에 대한 기사들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면.....
균형 잡힌 견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악의 실체,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한 잠재성과 악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기 위해, 의식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점차적으로 구별하고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선을 지향하는 힘이 적어도 악을 지향하는 힘과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 본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은 존재한다.
늙은 중년의 스콧은 1984년 말부터 1995년 말까지, 아내 릴리와 함께 많은 봉사활동을 하며 살았다.
스콧은 1984년 12월, 9개의 다른 단체들과 연계하여 공동체 장려 재단(FCE)을 설립했다.
FCE는 비과세, 비영리 대중 교육 재단으로 여러 단체 내부에서의 건강한 의사소통과 단체들 간의 건강한 의사소통의 원칙(공동체 원칙)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스콧 부부는 배움을 멈춘 적도 없었고, 쉬지 않고 저술 활동을 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부부의 삶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고, 사회적 대의명분을 위해 기꺼이 공헌을 즐겨하며 살았다.
그는 축복이 가득했던 인생을 살아오면서, 아내와 함께 모험적인 은퇴 생활을 누렸다.
스콧 부부는 '인생 황금기는 바로 이때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적절한 지적, 감정적 대가를 지르고 났을 때 우리가 어떤 곳에 다다를 수 있는가에 대해 썼다.
신의 ‘과학’ (335쪽~402쪽)
스콧에게 있어서 결국 모든 것은 하느님을 향했다.
그가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것은, 올리버 웬델 홈스 주니어 판사가 말했다고 알려진 한 문장 때문이었다고 한다.
"복잡성의 이러한 세속적 단순성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겠지만,
그 반대편의 단순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마저 걸겠다."
복잡성의 다른 측면으로 가는 여행을 위해서 사고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했다.
과학자들이 신의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생각하려면 단순한 생각들을 넘어서야 한다.
복잡성의 다른 측면으로 향하는 길은 우리를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안내한다.
확실한 것을 고집하는 자세로는 신의 근본적인 진실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겸손하게 알고자 하는' 신중하지만, 담대한 의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복잡성의 다른 세계는 통합과 완전성을 이룬 곳이다.
스콧은 사람들이 '은총과 뜻밖의 발견'으로 자기를 비우고, 기도와 신앙생활로 보다 의식적이 되어 더욱 발전할 것을 추구했다.
책 『그리고 저 너머에』 첫 장부터 제2부까지 저자를 열심히 따라왔다.
나 역시 탄생, 죽음, 재생의 순환에 직접적으로 관계하며 살아왔지만, 아직 '신의 자식'으로의 의미는 확정 짓지 못했다.
꽤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 제법 깊은 사고와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지니게 됐다고 생각하며 읽었으나, 제3부 '다른 세계'에서는 머뭇거리는 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신앙(종교)과 영성에 대한 성장은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로 남겨두고, 귀한 책을 덮었다.
하느님의 ‘시’ (403쪽~4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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