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귀』 『난 죽지 않을 테야』 『이별처럼』3부
프랑스 소설가 '쎄르쥬 뻬레즈(Serge Perez) '는 청소년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인 작가다.
그는 '세계 청소년 화제작 시리즈' 『당나귀 귀』 『난 죽지 않을 테야』 『이별처럼』 3부작을 통해 인간 내면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 위선과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최근 '6년간 교사 100명 극단 선택… 초등 교사 가장 많았다' 라는 기사나, '학부형들의 과도한 민원'도 사회 전체가 함께 반성해야 할 문제지만, 학부모와 교사는 어른들이다.
이번 기회에 스스로 좋은 부모인지, 올바른 선생님인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다음, 사회 인식 개선과 법적인 문제가 논의되는 것이 순서다.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 어른들의 모든 이해관계에 우선되어야 한다.
교사의 애정 어린 관심과 지도를 받는 아이들은 대부분 커다란 문제없이 성장한다.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도 역시 다르지 않다.
『당나귀 귀』 『난 죽지 않을 테야』 『이별처럼』 3부작은 세상 모든 부모와 선생님이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주인공 레이몽은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소외, 경멸, 모함, 폭력, 괴롭힘 등 집단 따돌림당하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이다.
레이몽을 보살피고 보호해야 할 부모조차 어린 아들에게 학대와 폭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한다.
이 세 권의 시리즈는 그가 상급학교조차 진학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비참한 현실을 살다 간 한 아이의 깊은 내면의 독백을 통해 우리는 위선과 부조리에 가득 찬 세상을 부끄럽게 바라보게 된다.
어른들은 레이몽을 자기들의 생각대로 복종하도록 만들어 가려한다.
레이몽은 자신이 바라는 평화로운 일상을 현실(집과 학교)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이른 나이에 깨달아 버렸다.
어른들이 짐짓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살아가는 일상이 모두 거짓에 가득 찬 껍데기뿐이라는 것,
결국 현실의 부조리함을 숨기기 위한 위선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레이몽은 더 이상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레이몽은 어른들 중 유일하게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었던 빵집 아저씨를 따라 평화로운 세계로 떠난다. 현실의 어른들 시각으로 보면 그것은 그저 죽음일 뿐이겠지만, 어린 레이몽에겐 행복을 찾아 떠나는 '이별처럼' 느껴졌다.
레이몽의 안타까운 '이별 여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독자들에겐 커다란 아픔이 가슴속 멍으로 남는다.
'당나귀 귀'는 주인공 레이몽의 별명이다.
푸르쓰떼이 선생은 레이몽에게 매일 산수문제를 이해 못 한다고 꾸짖으며, 인정사정없이 그의 귀를 세게 잡아당겼다.
당나귀 귀처럼 보일 만큼 퉁퉁 붓도록 늘어난 귀가 얼마나 아팠을까?
같은 반 아이들은 레이몽을 안쓰럽게 생각하기는커녕 '당나귀 귀'라고 놀리면서 집단적으로 몰매를 가하거나 끊임없이 놀려댔다.
집에서도 레이몽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은 여동생 죠슬린이 지적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이 레이몽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임신 중이던 엄마가 어느 날 계단에서 구른 것이 레이몽 때문이고, 이때 뱃속에 있던 여동생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억측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레이몽의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매시간마다 부모에게 뺨을 맞거나 발길질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프란시스 라구스뛰르)는 다른 사람 소유의 정육점을 도맡아 운영하면서 계량 저울을 속이기도 하는 장사꾼이었다.
레이몽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있다면, 수요일 아침마다 우스갯소리도 잘하는 빵집 아저씨와 함께 마을에 빵을 돌리는 것이다. 아저씨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레이몽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다.
푸르쓰떼이 선생은 레이몽의 학습부진을 핑계 삼아 부모님을 학교로 부르고, 아버지는 레이몽을 유급시키지 않겠다는 대가로 담임선생에게 돼지 한 마리를 뇌물로 바치기로 한다. 원래 푸르쓰떼이 선생은 돼지를 2마리 요구했다. 한 마리는 교장 선생 몫으로.
아버지는 레이몽의 학업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레이몽이 유급하면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선생님도 레이몽의 학업성적에 관심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유급을 핑계로 대가를 더 받아내려는 생각뿐이었다.
이날 집으로 돌아온 레이몽은 아버지에게 하도 맞아서 5일 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누워있으면서 레이몽은 가출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야 했다.
더 이상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레이몽은 학교 앞에서 우연히 빵집 아저씨를 만나 아저씨 차에 올라타게 된다. 매일 매를 맞고 산다는 레이몽의 말을 듣고, 아저씨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깜짝 놀란다.
아저씨는 레이몽의 몸이 온통 멍투성이인 것을 발견하고, 아저씨를 믿으라고 하면서 좋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셨다.
레이몽은 견디기 어려운 생활 속에 처한 자신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레이몽만의 가치를 인정해 주신 아저씨가 마치 구세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레이몽은 빵집 아저씨의 도움으로 무참하게 매질만 당하는 집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게 된 것이 너무 기뻤다. 부모님도 레이몽을 떠나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흡족해했다.
그러나 빵집에서 주 5일간 숙식을 하면서 조수로 일하게 된 첫날 아침, 레이몽은 빵집 아저씨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된다.
레이몽은 모두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정직하고 따뜻한 시선을 가진 소년이다.
여동생 죠슬린을 아꼈고, 자기 때문에 죽어야 할 돼지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심성을 지녔다.
레이몽은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성장했고, 사회에 적응하는 약삭빠른 방법을 제때 터득하지 못했을 뿐이다.
학교에서는 위선 덩어리 푸르쓰떼이 같은 담임선생을 만났으며, 약삭빠른 어른들은 순수한 소년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급우들도 착한 레이몽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레이몽에게 학대와 위선과 차디찬 시선만을 보냈을 뿐이다.
학교와 집에 적응하지 못한 레이몽은 마침내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해변가 요양센터에 수용된다.
레이몽은 이곳에서 비슷한 심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또래들을 만나 서로의 상처를 위로받으며 차츰 편안함을 느낀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뤼뤼와 틱장애가 있는 자키는 레이몽을 자기들 편에 넣어 주었다.
세 명의 소년은 금방 친구가 되었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레이몽에게 선뜩 나서서 친구가 되어주진 않았다.
그들이 레이몽을 친구로 받아 준 것은, 샤워할 때 온몸을 덮고 있던 멍 자국과 채찍 자국, 상처, 혈종들을 보고 나서였다.
그렇게 많이 맞았다는 건, 곧 레이몽도 그들과 같은 친구라는 의미였다.
이들은 모두 쓰레기 더미처럼 더러운 곳, 힘든 곳에서 왔다는 동질감만으로도 친구가 되기에 족했다.
절망의 그늘 속에서 발견한 행복이었다.
요양센터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의 모든 상처는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레이몽은 말을 할 줄 모르는 안느라는 예쁜 소녀에게 특히 관심이 갔다.
누구도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레이몽과 안느는 점점 가까워졌고, 레이몽은 어느새 안느를 사랑하고 있었다.
레이몽은 불현듯 이런 행복의 순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졌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꾸중과 아이들의 놀림받을 생각을 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때처럼 두려운 생각이 몰려왔다. 매를 맞아 아팠던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레이몽은 사랑하는 친구 안느의 침실을 몰래 찾았다가 발칵 된다.
레이몽이 요양센터 규칙을 어긴 것도 문제였지만, 안느가 남몰래 간직하고 있던 깊은 상처- 잘려나간 혀로 인해 말을 할 수 없었던 것-로 인해 충격을 받아 넘어지면서 커다란 소란을 피우게 된 것이다.
결국 레이몽은 요양센터에서 쫓겨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별처럼' 떠나왔던 먼 여행지는 요양센터였지만, 레이몽은 이곳에서 행복했다.
요양센터에서 짧은 기간 동안 누린 행복이 레이몽을 짓누르고 있던 정신적 고통과 육체의 고초를 어느 정도 무디게 만들었다.
레이몽은 희망이 주는 큰 힘을 스스로 느꼈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레이몽은 "하지만 난 죽고 싶지 않아. 그래, 난 죽지 않을 테야."
다시 자신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릴 거친 매질, 주먹과 발길질, 욕설 속에서도 꼭 살아남아야겠다는 비장한 다짐을 한다.
레이몽은 죽고 싶지 않았고, 레이몽을 이렇게 만난 우리 역시 그런 소년의 모습을 상상하고 싶진 않았다.
'세상 일이란 다시 되돌릴 수가 없어. 그런 불가능한 거야. 이미 지나간 일일 때는, 벌써 엎질러진 물일 때는 오직 후회밖에는 할 일이 없어. 후회만 남는 거야. 그런데 후회를 하면 할수록, 난 내가 안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점점 더 분명하게 알 것 같아. 그리고 센터에서 그녀와 함께 있다면 굉장히 행복했을 거라는 것도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닫고 있어. 바로 그런 건가 봐. 후회란 건 바로 그런 거겠지. 가슴을 도려내는 칼날 같은 것..... 아, 내가 그것만 알고 있었어도, 내가 조금만 덜 멍청했어도.....' (67쪽)
요양원에서 집으로 쫓겨온 레이몽은 며칠간 계속 고열에 시달리다, 혼수상태로 겨우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학대와 소외라는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주인공은 점점 더 깊은 혼수상태로 빠져든다
병상에서 레이몽은 자신을 둘러싼 서글픈 현실, 요양센터에서 만난 친구들에 대한 추억, 그리고 스스로 간절하게 꿈꿔왔던 행복한 일상을 환상처럼 넘나들었다. - 레이몽은 모범생에다 우등생이었다. 부모님은 항상 자상하고 상냥했으며, 즐거운 식사 시간과 바닷가 소풍 등이 환상 속을 넘나들었다.
물론 이런 달콤한 환상이 레이몽의 현실에서 존재할 리는 만무였고, 고열도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레이몽은 아빠와 엄마, 선생님의 겉으로 보이는 멀쩡한 모습도 결국 현실의 부조리함을 감추기 위한 위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레이몽은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해 주었던 빵집 아저씨를 따라 평화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말하는 여행을.
현실이 늘 참담했던 레이몽에게 죽음은 세상의 끝, 막막한 단절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이어가기 위한 새로운 한 곳이었다.
저자 쎄르쥬 뻬레즈는 이른바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레이몽의 독백을 통해 우리 삶이 처참하게 엮이는 모습들을 가감 없이 냉소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사람보다는 사회의 인식을 우선시하고, 따뜻한 마음보다는 머리 좋은 아이들만 취하려는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위선적인 세상을 좀 더 깊이 체험하도록 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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