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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Oct 02. 2023

추석연휴, 만나고 헤어지며 산다.

두 분 어머니와 맺은 인연, 인명재천(人命在天) 이란 말로도...

아침 공기가 차갑다.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걸 느낀다.

30년 넘게 추석 음식 준비와 시댁 방문으로 갑갑한 추석을 보냈다.

지금은 튀김류와 송편만 미리 주문해 두고, 특별히 준비하는 음식은 토란국, 잡채와 갈비 정도다.

추석 연휴엔 외식을 즐기기도 한다.

추석 당일, 큰댁과 친정 오빠 댁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정말 많이 편해졌다.

그러나 시댁 방문은 지금도 종종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사위는 백년손님이지만, 며느리는 백 년 이방인인지도 모르겠다.  


작년 이맘땐, 손녀 꾸미와 거의 매주 만났다.

관심만 있으면 물리적 거리도 별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꾸미를 한 달 넘게 만나지 못한 채 가을을 맞았다. 세젤귀 꾸미는 어린이집, 체육 클래스 트니트니, 체험 학습 히히호호, 친구들과 나들이, 이제는 쿠킹클래스까지 다니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전해 듣는 소식만으로도 늘 흐뭇했지만 드디어 이번 추석 연휴 시작 전, 손녀다녀갔다. 꾸미가 쿠킹클래스에서 만들었다는 강정을 들고 와 얼마나 기특하던지.

구입하고 거의 한 달 반 만에 입혀보는 꾸미의 꼬까옷 3벌

놀이에 팔려 새 옷 안 갈아입겠다던 단호한 꾸미, 꼭 입혀보고 싶은 할미 마음이 서로 충돌했다.

할미랑 팽팽하게 맞서던 우리 꾸미. 할미는 치사했지만, 아이스크림 한 개로 인심 쓰는 척 꼬시면서 겨우 갈아입혔다. 초스피드로 겨우 몇 장 남긴 꾸미 새 옷 입은 사진들은 다시 들여다봐도, 역시 세젤귀염!



토란국도 제법 잘 먹어 준 꾸미는 엄빠랑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곧 어둠이 내린 길로 사라져 갔다.

꾸미는 바이바이를 열심히 흔들며 떠났다.

"꾸미야, 우리 10월 어떤 날, 다시 만나자!"

29일 추석날, 꾸미네는 친가로 우리는 큰댁과 친정 오빠 댁으로 각자 추석 방문 계획이 있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던 꾸미와의 1박 2일은 진한 아쉬움을 남긴 채 이렇게 접어야 했다.

꾸미는 할미도 같이 가자고 몇 번 조르기는 했지만, 지난번처럼 서럽게 울진 않았다.

어느새 이별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그만큼 또 성큼 성장한 꾸미의 모습이 마냥 대견스럽다.

꾸미랑 함께 한 1박 2일 동안 '그냥 행복했다.'


추석, 사람과 영혼이 관계를 이어가는 날

29일(금) 아침, 잠에서 깨어나 창밖을 보니 세상이 희미한 안개가 속에 갇혀있었다.

6시 30분경 안갯속을 가르며 천안을 출발했다.

8시가 지나서야 양평으로 들어섰다.

환하게 밝아왔지만, 지상에 내려앉은 안개는 미련을 쉽게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계속 우리 주의를 서성였다. 양자산이 둘러 안고 있는 지역이니 뿌연 안개가 시내보다 더 오래 머무는 듯했다.

1년 만에 찾은 양평 큰댁이다.

소박한 차례를 지내고,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먼 길 찾아온 영혼이 편히 들고나시도록 살아있는 자가 드리는 작은 배려심이랄까!

짧은 시간 깊은 정적이 흘렀다.

활짝 열어둔 창과 문으론 맑은 공기가 안개를 끌어안고 들어왔다.

숲 속의 싱그러움이 우리를 품어주고 홀연히 나선다. 조상님의 영혼도 그렇게 왔다 가셨으리라.

'모두 건강하고 지혜롭게 살다 오라'라고 토닥여 주는 느낌이 들었다.

어렵게 한 곳에 모였으나, 각자 또 가야 할 다른 곳이 있으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양평에서 안양으로 향하는 길, 

삼성산 터널 입구 바로 오른쪽으로 관악산둘레길 표지판이 보였다.

화살표 방향을 따라가면 관악산인덕원역이 이어졌다.

오빠 댁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했지만, 안양예술공원과 이어지는 관악산 둘레길을 생각하니 아직 안양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큰댁에 들렸다 오빠 댁으로 가면, 조카들은 이미 차례를 지내고 각자의 장소로 떠난 후이니 서로 오랫동안 만나질 못했다. 대부분 며느리들은, 명절마다 시댁부터 들렸다가 친정을 방문한다.

살아생전 만나 뵌 적 없는 윗대 시댁 어르신의 영혼까지 만나지만, 내 부모님 영혼이 찾아오시는 친정집 차례상엔 끼지도 못한다.

산 사람의 몸은 어차피 하나이니 순서대로 방문할 수밖에 없어 아쉬울 때도 많았다.

저승에서 찾아온 영혼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관습에서도 며느리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올해는 오빠 댁에서 조카 가족을 만났다. 

오빠의 아들 부부는 처갓집으로 떠났지만, 딸 부부는 아직 친정에 남아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40대 조카가 아직도 늘씬한 몸매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어이, 아가씨 오랜만이야?"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학부형으로 아들들 고등학교를 방문하면, 창문에서 '엄마, 너무 예쁘고 멋있어요!'라는 환호성을 질러댔다는 요즘 고딩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오빠도 40대 딸 자랑을 여전히 하고 싶어 하시니 고모인 나와 고모부인 '묵'도 함께 환호해 주었다. ^^

벌써 큰 아들은 군에 입대했고, 대학 1년생 작은 아들은 4년 장학생이기도 하다니, 이제야 조카 부부의 노고를 한껏 치하했다.  

더구나 작은 아이는 남편 '묵'의 후배이니, 묵은 이 젊은이와 특별히 더 진한 악수를 나눴다.

서로 전공도 물어보며 관심을 보이는 동문 두 사람의 입꼬리가 같이 슬쩍 올라갔다.

오랜만에 조카가족의 모습을 마주하니 무심하게 흘러간 긴 세월이 우리 모두에게 성장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빠 부부와 우리도 편하게 늙어가고 있으니 잘 여물어가는 가을의 결실과 같다고 믿는다.

올해도 옥상텃밭은 풍성한 가을을 가득 품고 있었다.

붉은 고추가 어찌나 소담스럽던지, 화분에서 자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정성과 관심을 기울이면 그 티가 난다.

옥상텃밭이 이렇게 풍요롭다니, 왠지 부와 결실의 티가 팍팍 전해진다.

2달 전쯤 이사를 했으니, 이제 이곳 오빠 댁도 가까운 곳이 아니다.

우리는 돌아갈 길의 거리와 시간을 머릿속으로 가름해 보게 된다.  

작별 인사를 나누며 나서는 길,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새털같이 가볍다.


'제7회 안양공공예술 프로젝트' 전시회

(구)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보인다.

산책을 즐겨하던 곳이니, 그냥 지나치기 섭섭했다. 결국 자동차에서 내렸다. '제7회 안양공공예술 프로젝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기대를 잔뜩 하고 들어섰으나 전시장 문은 닫혀있었다.

정문 안내소에 문의해 보니, 추석 당엔 문을 열지 않는단다. 내일(30일)부터 다시 오픈한다니, 살짝 아쉬웠다. 대부분 행사장들은 명절 당일 오히려 더 북적대던데 이곳은 예외였다.


주 전시장 문은 닫혀있었지만, 정원과 옛 주차장에 못 보던 설치예술품이 눈에 띄었다. 



왼쪽 작품, 폐오브제를 활용하여 한국 전통의 보자기를 새롭게 해석한 건축적 설치 혹은 설치적 조각이다.

이것 또한 자체로 독립된 작품인 동시에 관객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처럼 야외 전시의 출품작들은 오브제, 건축, 공공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현실로부터 새로운 무엇’을 만드는 ‘생산적 상상’을 실험한다. - 작가: 이자스쿤 친치야(1975~)


오른쪽 작품은 팔레트 오브제들을 견고하게 집적하여 거대한 규모로 만든 ‘무대와 혼성된 공공예술’이다.

자체로 독립된 작품인 동시에, 개막식과 커뮤니티 아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무대로서 기능한다. - 작가:  국형걸(1978~)

어린이 공원에서 볼 수 있는 빙빙 돌아가는 놀이 기구를 닮은 설치물로 보였지만, 돌아가는 구조는 아니었다. 밤에 조명등이 켜지면 또 다른 멋진 구조물로 보이겠지.


현장에 작품 설명 없이 우뚝 서있으니, 내겐 두 작품 모두 그 형체가 불친절해 보였다.

8월 25일 개막했다는데, 이런 점이 아쉬웠다. 위 작품 설명은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가져왔다.  

안양예술공원과 연계된 행사이니, 예술공원까지 다시 들렀다 가고 싶었지만...


https://apap7.or.kr:446/ko/exhibition#outdoor


추석 당일이니, 하행 경부고속도로도 차가 많이 밀렸다.

중간에 피곤해서 휴게소에서 쉬기도 했지만, 집에 도착하니 어둠이 가득 내린 8시가 넘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9시 30분경 이른 취침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5시 전에 깨어났지만, 숙면을 취하고 나니 몸이 개운했다.


인명재천(人命在天) 이란 말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노화가 더디어진 것은 사실이다.

정기적인 건강검진도 도움이 되었고, 평생 복용하는 약이 몇 가지씩 있다고 해도 불의의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장수를 누리는 노인들이 많다. 살아생전 젊음의 기간이 쭉 늘어나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의료적인 도움으로 주름을 없애거나 눈코의 형태를 살짝 바꾸는 경우도 있고, 마사지와 화장품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80대에도 건강해 보이는 노인을 만나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


추석 연휴에 찾아뵌 시어머니께서 뜬금없이 "네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셨지?"라고 물으셨다.

별안간  71세로 이승의 삶을 내려놓으셨던 울 엄니 생각이 간절하게 들고났다.

아직도 나름 정정하신 94세 시어머니와 24년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는 딱 한 살 차이가 난다.

한 분은 아직도 가정용 소형 미싱으로 당신의 옷을 마음에 들게 손수 고쳐 입고 계시고, 다른 한 분은 영혼을 만나기에도 힘들 만큼 오래전 세상을 떠나셨다. 시어머니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다녀오신 미용실에서 한 짧은 커트 머리도 보기 좋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어쩌다 장만한 유명 메이커 옷을 입고 가면 쓱  흩어만 보셔도 어떤 회사 옷인지 딱 알아맞히신다.  

두 분 어머니와 깊은 인연을 맺은 내겐 인명재천(人命在天) 이란 말로도 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는 침대 위에 우리 부부는 매트 위에 누웠다.

함께 간 우리 아들은 곁에 앉아 할머니가 원하는 이런저런 일 - 콜라가 먹고 싶으시다면 콜라를 사다 드렸고, 휴지가 필요하시면 휴지를, 잠시 일어나고 싶다 하시면 지팡이를 짚어 드렸다.  

'묵'은 어느새 잠이 들었고, 나는 어머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대답을 해드렸다.

아들만 5명을 두셨지만, 막내 이모님 댁 가까이서 따로 살고 계시니, 사람이 그리웠을 그 마음이 잘 느껴졌다. - 연휴 내내 아들들이 각자 겹치지 않게 어머니를 찾아뵈면, 여러 번 즐거우실 수 있다고 의논했으니, 우리 가족은 10월 1일 찾았다.-

TV에서는 무슨 가요대전 프로그램이 저 혼자 떠들어댔지만, 어머니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볼륨을 더 높이라고 하셨다.

물론 청력도 예전만 못하시니, 이해가 됐다.

자연스레 어머니와 내 목소리도 함께 더 커졌다.  

다 좋았는데, 이별 시간이 오면 몹시 슬픈 표정을 지으시니 잠시 서로 어쩔 줄 몰라한다.

결국 처량한 모습을 뒤로하고 자동차 문을 닫을 수밖에 없으니, 남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이나 힘들긴 마찬가지다.

자동차 라디오 속에선 고속도로 상하행선이 모두 구간마다 밀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금광호수 쪽으로 차를 돌려 지방 도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황금 들녘과 금광호수

금광호수도 황금빛 들녘도 왠지 쓸쓸해 보였다.

구불구불 시골길로 돌아왔지만, 그 시간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오래간만에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싫지 않았다.

돌아가든 밀려가든 닿아야 할 내 집이 있으니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랴!

우리 부부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으니 노인이 분명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다니 길게 살지 짧게 끝낼지 우리가 정할 수 없는 일이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도 우리 의지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게 마련이다.

살아있는 동안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에도 크게 구애받지 말고 편하게 보내야겠다.

가을의 결실처럼 풍요로운 넉넉함이 내 마음에 가득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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