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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물리학자』물리학의 시각으로 본 명화감상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의 뮤즈는 물리학이었다고?

by Someday

미술관은 누구나 갈 수 있다. 인문학자, 해부학자는 물론 화학자와 물리학자도 다녀왔고,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근처 가까운 미술관은 물론,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의 저자 신민아는 '미술은 물리학 및 광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의 뮤즈가 인문학이었다면,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의 뮤즈는 물리학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인 뮤즈(무사)가 물리학이었다니! 내가 알고 느끼던 명화 속의 뮤즈는 인문, 역사, 천문학의 범주 안에 있었다.

뮤즈 여신들 우두머리이자 ‘서사시’를 담당한 칼리오페(Calliope)는 서판과 펜을 든 모습으로 주로 그려졌다.

‘희극’ 여신 탈리아(Thaleia)는 익살스러운 가면을,

'비극’ 여신 멜포메네(Melpomene)는 슬픈 표정 가면을 쓰고 그리스 비극 배우들이 신는 반장화를 신고 나타났다.

‘종교 찬가’를 담당한 폴리 힘이니 아(Polyhymnia)는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베일을 썼다.

‘에로틱한 시’의 여신 에라토(Erato)는 고대 악기 리라(lyre, 고대 발현악기)를 지니고 있다.

‘서정시’ 여신 에우테르페(Euterpe)는 상징적으로 플루트를 들고 있다.

'합창과 춤' 여신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는 손에 리라와 작은 채를 들고 춤을 추는 자태로 그려졌다.

‘역사’를 관장한 클레지오(Cleio)는 앉거나 기대서서 긴 두루마리와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천문학’을 관장한 우라니아(Urania)는 주로 막대기로 천구를 가리켰다.

고대인들에게 뮤즈는 그 자체가 예술적 영감이나 학문적 재능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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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천문학부에서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신민아는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명화와 화가의 삶을 재조명했다. 시대별 차이는 있지만, 많은 명화 속에 담겨있던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은 누구라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물리학을 탐구할수록 그림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림을 가까이할수록 물리학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물리학은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며, 물리학자는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는 사람들. 만물의 본질을 각자의 언어로 깊게 연구한다는 차원에서 과학자의 일과 예술가의 일은 다르지 않다고. - 명화가 그려지는 순간마다 과학이 함께 했다는 작가의 생각이 조금 생소하긴 했다.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눈으로 명화를 감상한다면, 과연 어떤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Chapter 1. 빛으로 그리고 물리로 색칠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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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태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피테르 브뢰헬, <새 덫이 있는 겨울 풍경> | 소빙하기

∙ 흔들리는 건 물결이었을까, 그들의 마음이었을까? : 오귀스트 르누아르, <라 그르누예르> · 클로드 모네, <라 그르누예르> | 파동과 간섭

∙ 오키프를 다시 태어나게 한 산타페의 푸른 하늘 : 조지아 오키프, <흰 구름과 페더널 산의 붉은 언덕> | 레일리 산란과 미 산란

∙ 신을 그리던 빛, 인류의 미래를 그리다 : 마르크 샤갈, 성 슈테판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 퀀텀닷과 나노입자의 과학

∙ 원자와 함께 왈츠를! “셸 위 댄스?” :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 포논과 포톤의 물리학

∙ 하늘 표정을 그리고 싶었던 화가 : 존 컨스터블, <건초 마차> | 구름 생성 원리와 구름 상자

∙ 아무것도 아닌 나를 그리기까지 : 렘브란트 반 레인, <웃고 있는 렘브란트> | 빛의 방향에 따른 광선

∙ 서양화에는 있고 동양화에는 없는 것 : 신윤복, <단오풍정> |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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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단오풍정> / 프라고나르의 <그네> - 그림 출처 나무위키

빛의 관점으로 그림을 감상하면 동서양의 그림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동양의 수묵화는 색깔과 명암의 짙음과 옅음으로 표현하고 공간 배치, 여백의 미를 강조한다. 서양화는 원근법, 빛과 사물의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해석해서 그렸다.

대표적인 예를 신윤복의 단오풍정과 프라고나르의 그네에서 엿볼 수 있다.

신윤복의 <단오풍정>에서는 빛과 그림자 없이도 현실감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우리는 다양한 상상을 발휘하며 그림을 감상하면서 세시풍속을 느낄 수 있다. 프리고나르의 <그네>는 나무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그네 타는 여인을 더 밝고 화사하게 만들었다. 빛의 관점으로 명화를 바라보는 것은 매력적인 감상이다.


∙ 평면의 캔버스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의 비밀 :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 | 원근법과 카메라 옵스큐라


우리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작가의 메시지를 읽기도 하지만 그림의 배경과 장소, 빛과 그림자, 계절과 기후, 등장인물의 옷과 생활상도 자세히 들여다본다. 역사학자가 아니라도 중세 미술과 건축에서는 초자연적 절대자의 힘이 느껴진다. 기독교적 절대 가치는 인간 중심이 아닌 기독교 중심의 인류사였다.

기상이변은 사람들을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놓기도 했고, 이런 상황을 탓할 누군가를 마녀라고 몰아가기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대기 및 천문 과학자들은 각 세기마다 변화무쌍했던 기상과 우주의 신비를 그림의 시대적 배경에서 밝혀내기도 했다. 실제 1300년~1870년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평년보다 1~2도 낮았다고 전해진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적으로 자연의 순환과 인간 활동의 조화를 추구하며 고단한 삶을 견뎌내며 살아왔다.


Chapter 2. ‘과학’이라는 뮤즈를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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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폭에 담긴 불멸의 찰나 :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 지베르니의 여름 끝자락> | 프레넬 법칙

∙ 얼마나 멀리서 보아야 가장 아름답게 보일까? : 조르주 쇠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 빛의 본질과 본다는 행위의 과학

쇠라의 <그랑드 자드 섬의 일요일 오후>

“누군가는 내 그림에서 시(詩)를 보았다고 하지만, 나는 오직 과학만 보았다.”

점묘법을 개발한 신인상주의 화가 쇠라가 한 말이다. 쇠라는 그림은 선으로 그려야 한다는 미술사의 오랜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깬 화가이자, 직접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증명하고자 했던 실험가였다. 그는 광학과 물리학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단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2년간 40여 점의 스케치와 20여 점의 소묘를 그렸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작은 점들은 물리학을 바탕으로 치밀히 계산한 결과들이다(159쪽).


조르주 쇠라는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점묘법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즐거운 정서는 선을 위로 향하게 했고, 따뜻한 색상을 사용, 밝은 색조들을 지배적으로 만들었다. 고요함은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사용하여 밝음과 어둠을 균형 있게 썼고, 선을 수평적으로 그렸다. 슬픔은 어둡고 차가운 색을 이용, 아래로 향하는 선을 사용했다.

우리는 쇠라를 19세기 예술이 찬란하게 빛나던 도시에서 만났다. 당시 빛이 다양한 색상을 띤다는 광학 이론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쇠라는 과학을 통해, 찬란하게 빛나던 파리 모습을 담아냈다.


∙ 사랑의 빛깔 :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 | 영-헬름홀츠의 삼색설

∙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다 : 바실리 칸딘스키, <노랑 빨강 파랑> | 음파와 중력파

∙ 작은 우주를 유영하는 생명들 : 구스타브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Ⅰ> | 빛의 파장 한계와 브라운 운동

∙ 반발하는 만큼 더 견고하게 응집하는 색 : 빈센트 반 고흐, <노란 집> | 보색대비

∙ 불안을 키우는 미술 : 빅토르 바자렐리, <얼룩말> | 프랙털 기하학과 카오스

∙ ‘일요일 화가’의 꿈 :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 전자기유도현상


물리학자들은 빛의 입자와 파동으로 색은 물체가 반사하거나 물체를 투과한 빛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7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가 빛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을 묘사했다.


Chapter 3.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그린 그림

뉴턴의 고전물리학이 절정에 이른 19세기 후반, 과학자들은 과학이 완성 단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면서 물리학계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뉴턴의 고전물리학 체계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 무질서로 가득한 우주 속 고요 : 잭슨 폴록, <가을 리듬(No. 30)> | 엔트로피와 열역학 제3 법칙

∙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 살바도르 달리, <폭발하는 라파엘의 머리> | 핵물리학

∙ 상상이 과학을 만났을 때 : 르네 마그리트, <데칼코마니> | 메타물질

∙ 불가사의한 우주의 한 단면 :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 양자역학과 양자 체셔 고양이

∙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블라디미르 쿠쉬, <해돋이 해변> | 불확정성의 원리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wIAHRUqX42_20230608134701.jpg 블라디미르 쿠쉬, <해돋이 해변> 1990년경

불확정성의 원리는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양자 중첩이 존재하지 않는다.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고안한 사고 실험에 고양이가 등장한다.

고양이가 갇혀 있는 상자에는 방사성 핵이 들어 있는 방사능 검출 계수기가 작동하면서 망치가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병을 깨고 독가스가 방출되기 시작한다. 실험은 한 시간 안에 핵이 붕괴할 확률이 50%가 되도록 조정하고 시작한다.

얼마 후 사람이 상자를 열었을 때, 고양이가 살아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고양이의 운명은 특정 시각에 상자를 들여다본 사람(외부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고양이는 살아 있거나 죽은 상태여야 하기에 양성자 역시 붕괴했거나 붕괴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죽었으며 동시에 살아 있는 고양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불확정성'이라는 양자역학의 성질로 볼 때,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시 세계에서도 일어나야 물리법칙이 작용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와 거시 세계를 분명하게 나누지 못했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역설'은 코펜하겐의 양자역학을 비판한 것이다.

*코펜하겐의 양자역학: 우주의 모든 것은 중첩된 사태로 있다가 관측을 당했을 경우에만 한 가지의 상태로 결정된다.


∙ 춤추는 원자들 : 앙리 마티스, <춤 Ⅱ> | 원자모형, 음의 높낮이와 파동

∙ 낮은 차원의 세계 : 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 낮은 차원의 물질과 탄소 동소체

몬드리안의 <뉴욕>

우리는 몬드리안을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검은색 선과 직사각형 면, 빨강, 파랑, 노랑으로 이뤄진 안정과 균형 이미지다. 그는 균형과 질서 안에 담긴 긴장감과 동적 에너지를 표현했다.

추상회화 고전으로 남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화면 위에서 실험을 거듭했지만, 새로움을 찾아 나선 거리 뉴욕에서 그는 놀라운 장면과 마주한다. 직선이 교차하는 바둑판같은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 수직으로 뻗은 빌딩들이 이루는 도시의 조화에서 몬드리안은 그가 좋아했던 재즈 즉흥 연주와 같은 긴장감과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느꼈다. 평생 캔버스 속에서 찾았던 이상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품을 <뉴욕>이라 불렀다. 그가 그리면 <뉴욕>이 되는 직사각형들이지만, 우리가 그리면 그냥 '직사각형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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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물리학으로 되돌린 그림의 시간

∙ <모나리자>를 다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 빛의 파장과 침투 깊이

∙ 나치까지 속인 희대의 위작 스캔들 : 요하네스 베르메르, <편지를 읽는 여인> | 테라헤르츠파 분석

∙ 빛을 비추자 나타난 그림 속에 숨겨진 여인 : 빈센트 반 고흐, <카페에서, 르 탱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 | 다양한 빛을 이용한 비파괴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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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 평생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고흐는 그림 뒷면에 그림을 그렸고, 모델 살 돈도 없어 거울을 보고 자화상을 그렸다. 고흐의 연인 세가토리는 가난한 화가의 모델이 되어주었고, 이 그림이 <카페에서, 르 탱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이다.

반 고흐 미술관이 이 그림을 엑스선으로 촬영했더니, 놀랍게도 밑그림에서 다른 여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가난한 고흐는 캔버스를 재사용했던 것이다. 빛은 가난 때문에 영원히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던 고흐의 또 다른 그림을 보여줬다. 광학기술의 발달로 엑스선, 적외선, 테라헤르츠파 등 다양한 파장대의 빛으로 그림을 분석한다.


∙ 명작이 탄생하는 순간, 그곳에 과학이 있었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 유화의 탄생과 발전 ∙ 그림 속 미스터리를 풀다

∙ 그림 속 미스터리를 풀다: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한 그림 분석 ∙ 그림의 시간을 되돌리는 자

∙ 그림의 시간을 되돌리는 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 미술품 복원


물리학은 어떤 현상에 관심이 가도 그 이론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려는 나를 금세 밀어내곤 했으니 내가 가까이 하긴 너무 먼 학문이었다.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책의 목차를 보면서도 기억과 감동이 희미한 것은 이 책을 읽은 지 반년도 더 지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도 몇 줄 끄적거려놓기만 한 것은 물리학 이론을 찾아보면서 한 편의 명화를 감상하는 일은 흥미롭긴 했지만 지루하기도 했다. 그 이론을 대충 그냥 넘기면 답답하고 아쉽기도 했고 명화 감상에 몰두하던 상태가 중지되기도 했으니,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미술감상은 주관적이지만, 그 시대 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알면 더 흥미롭다.

나는 계속 인문학으로 예술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명화 속에서 예술가 영혼의 끝자락이 섬세한 붓질에 녹아있는 것을 발견할 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의 고뇌와 환희에 감정이입을 한다. 그 먼 과거가 현재 내 손끝에 닿을 것만 같은 설렘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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