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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Nov 10. 2024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공기처럼 존재하는 차별을 데이터로 마주하고, 당사자의 고통을 함께 한다.

저자 김승섭에게 공부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언어'였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당사자의 몸에 갇히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

저자는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이미 생산되어 있는 지식만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해야 할 때'는 읽고

만나고 부대끼며 길을 찾으려 했다. 

그는 현실적 해결책만을 구하지도, 정치적 올바름만을 쫓지도 않았다.


책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질문해 온 저자 김승섭의 연구를 소개하는 공부의 기록이자,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고백하는 분투의 기록서이기도 하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 등 한국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고통에 구체적 데이터와 정확한 문장으로 응답하기 위해 그는 '읽고 만나고 부대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길을 찾아 분투한다. 

책 속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소수자에게 낙인을 부여했던 19세기 논문부터 국내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최신 연구까지, 많은 학술 자료와 전문가와의 인터뷰도 담겨 있다. 데이비드 윌리엄스, 캐런 메싱 등 세계적 학자들과 김승섭이 만나 나눈 대화들은 한국 상황을 객관적 시각에서 돌아보게 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도 담아 현장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질문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도 “한국 여성에게 공중화장실은 불법 촬영과 폭력을 걱정해야 하는 불안한 공간”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함께 지적한다. 

HIV 신규 감염을 줄일 보건정책을 논하면서도, 동시에 그 질병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감염인의 사회적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고민한다.

그가 말하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란 공기처럼 존재하는 차별을 정확한 데이터로 마주하고, 당사자의 고통을 함께 이야기한다. 

저자는  문제의 복잡한 맥락을 헤아리는 모든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1.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 본문 15쪽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1

당신은 ‘정상인’입니까? 그럼 특권층입니다 : 흑인, 여성, 성소수자를 차별해 온 기득권의 논리

- 한 사회가 표준이라고 여기던 몸은 항상 기득권의 것이었다.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던 기득권은 소수자의 몸을 두고 매번 인간의 자격을 따져 물었다. 

백인은 흑인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 물었고, 남성은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아도 되는지 따졌고, 이성애자는 동성애자의 존재가 질병인지 질문했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질문은 남이 아닌 스스로를 향해 던져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정상인인가?" 

그렇다면 정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최근엔 '노인이 되어 불편해진 몸도 정상 범주에 들 수 있을까?' 종종 묻곤 한다. 


절대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 미국의 흑인 범죄율과 한국의 난민 수용 논란

-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암묵적 편견을 바꾸는 길은 권력의 적극적인 재분배를 통해 소수자의 삶을 바꾸어 내는 것과 함께, 우리 스스로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누구나 의도와 무관하게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인식하고 경계하며 행동해야 한다. 


당신들의 쉽고 잔인한, 어떤 해결책에 대하여


차별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아도 아프다 : 인종차별과 건강 연구 본격화한 사회학자 데이비드 윌리엄스

벽장을 벗어난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 정신질환 당사자 운동 강조하는 심리학자 패트릭 코리건

이동, 낙인, 정치, 합리성

-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고된 역사와 몸 깊숙이 새겨진 상처 말고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갖지 못한다. 

근거는 언어의 형태를 한 지식으로 표현되는데, 그 지식의 생산에는 자본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동권 투쟁에 나선 장애인을 비난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모습처럼, 공동체가 오랫동안 누적된 차별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부과할 때, 차별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당사자는 자시의 삶을 설명할 언어와 기회는 빼앗긴다. 

그러한 조건 위에서 합리성과 억지를 구분하는 '합리적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2. 지워진 존재, 응답받지 못하는 고통 - 99쪽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2



‘오줌권’을 위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화장실로 살펴보는 차별과 배제의 역사

-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질문이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공통점을 묻는 것이라면, 인간을 '배설하는 존재'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 있는 한 대변과 소변을 보지 않는 인간은 없으니까. 

장애학 연구자이자 인권 변호사인 김원영 씨는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미리 눌 수도, 조금씩 나눠 눌 수도 없기에 "모든 권리 가운데 '오줌권'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 아니겠느냐고 묻는다. 

일하고 살아가는 공간에 나를 위한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거나 설사 화장실이 있더라도 그걸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 공간이 나를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오랜 기간 화장실의 부재는 일터와 대학과 국회를 비롯한 공공 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근거로 작동했다.

오늘날 이러한 배제의 논리는 트랜스젠더나 장애인에게도 또 같이 적용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상아 없는 코끼리’는 누구인가 : 생존경쟁 속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묻다.

- 오늘날 인간은 지난 수백만 년과 결이 다른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인의 생존을 결정하는 강력한 외부 조건은 말라리아와 같은 자연환경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특성은 코끼리 상아의 부재와 같은 유전적 요인이 아니다. 

더 많이 다치고 더 일찍 죽는 사람은 저임금을 받으며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2018년 12월 11일 새벽 3시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낀 채 사망했던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 씨의 죽음은 가장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다 가장 먼저 죽어가는 수많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다. 

인간은 대부분 100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을 살아갈 뿐이지만 그 몸에는 지난 수백만 년 동안 겪은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동시에 우리 몸이 현재 보내는 시간은 조상과 후대를 잇는 진화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이기도 하다.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변화일지언정 우리가 살아가는 세월 동안에도 진화의 힘은 작동하고 있다. 

가장 아픈 사람이 가장 앞에 나선 싸움 ‘미투’ : 용기를 낸 사회적 약자가 겪는 2차 고통

- 성폭력은 개개인의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비대칭적 권력관계와 폭력적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일상이 민주주의의 최전선이다. 

‘보이지 않는 고통’을 응시하다 : 여성의 일터로 걸어 들어간 과학자 캐런 메싱

누구를 위한 반지하 방 퇴출인가

- 장기적으로 반지하 방 거주자가 줄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반지하를 좋아해서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반지하 방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햇빛이 들지 않는 자리까지 찾아간 이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반지하 방이 없어지면 그들은 더 안전한 곳을 선택해 살 수 있을까? 

정책 결정 과정에 지하와 반지하에서 살고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반영됐는가, 그 복잡한 맥락을 헤아릴 시간도 가지지 않은 채 반지하 방 주거 금지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회문제 해결은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한다.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푸는 대신 큰 칼을 휘둘러 자르는 것은 칼을 휘두른 이를 영웅처럼 보이게 할지 모르지만 그 영웅적 결정은 종종 상황을 악화시킨다. 

재난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는 약자를 먼저 덮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적이고 성급한 대책 발표가 아니다. 

어떤 정책으로 생겨날 영향력을 면밀히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난한 협의 과정이고, 그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의지와 인내이다.


3. 한국 사회의 ‘주삿바늘’은 무엇인가 - 163쪽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3

-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부정당하는 성소수자들의 삶은 절벽에 몰리게 된다. 

성소수자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가고, 때로는 가장 인정받고 싶은 존재인 부모에게조차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밝히지 못하는 것은 거절당하고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에이즈에 대한 인식 : 주삿바늘 교환 프로그램과 비과학적 낙인

- 혐오는 쉽다. 

가장 약하고 아픈 당사자들을 욕하면 된다. 

어떤 이들은 HIV 감염인에게 "네가 잘못해서 걸린 거다. 네 치료에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다"라고 함부로 손가락질한다. 

인권과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그릇된 말이다. 

이러한 혐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혐오와 낙인은 한국의 HIV 신규 감염을 증가시키고 더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균열과 혼란에서 시작되는 변화 : 김도현, 김지영 활동가와의 HIV 감염과 장애 대담

- 2008년 제정된 유엔 권리 협약에서 장애인은 '다양한 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과 동등한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참여를 저해하는 장기간의 신체적 정시적 지적 또는 감각적인 소상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된다. 

사회 참여가 불가능한 원인은 손상을 부당하게 대하는 사회 환경이므로 그 부조리한 환경에 초점을 맞춰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장애 인권 운동의 목표가 된다. 

손쉬운 낙인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 HIV 감염인에 대한 낙인 연구하는 보건학자 돈 오페라리오

두려움도 검열도 없는 하루 : 스무 번째 서울 퀴어 문화축제를 축하하며

누구도 두고 가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 포괄적 차별 금지법 단식농성 제정 활동가 미류, 종걸

차별에 침묵하는 정치 움직이려면 : 정치권의 ‘합리적 주장’을 데이터로 반박하는 경제학자 리 배지트

근거의 부재인가, 의지의 부재인가 : 정치인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 피해 근거 없다는 인권위 결정에 부쳐

- 지금 당장 구체적인 피해를 알 수 없다는 '근거의 부재'가 피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재의 근거'일 수는 없다. 특히, 그러한 사회적 무지의 책임이 국가에 있다면 혐오 발언의 구체적인 피해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인권단체의 진정에 각하 결정을 내린 인권위 역시 국가기관으로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4. 우리의 삶은 당신의 상상보다 복잡하다 - 247쪽 ~

내 본질은 누구도 무엇도 바꿀 수 없어요 : 서지현 검사가 말하는 한국 사회 피해자의 ‘말하기’

- 미투가 보여주는 건 개인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넘어서 실제 어떤 조직에서 이런 일이 만연하다는 증거다. 성폭력은 진공상태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역사와 권력과 문화가 있다. 이런 걸 놔두고 개인에게 자꾸 짐을 지우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 폭로에서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바라보지 않고 초점을 피해자에게 두고 그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만 계속 묻는다. 


피해자는 피해자답지 않다 : 고통의 개별성을 포착한 영화 「공동정범」의 김일란 감독

- 영화에서 국가폭력은 처참한 이미지가 아니라, 공기처럼 모든 장면에 존재하면서 사람들의 언어와 몸을 통해 살짝살짝 드러난다. 

상처가 일상 속에서 표현된다. 

일상을 살고 있는 존재들이 문득문득 겪는 고통을 보며, '저들은 화면 속 위험한 세상에서 고통을 겪고 있고, 나는 안전한 땅 위에서 위협받지 않으며 살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헬렌 켈러의 빛과 그림자 : 오류와 모순을 품고 당대를 살아낸 한 인간과의 대화


이것은 저의 싸움입니다 :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길 수 있을까? 유희경 시인과 나눈 이야기



저자 김승섭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이 책이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고 밝힌다. 

"누군가를 위해 썼거나 누군가를 대신해서 쓰는 책이 아니고요. 

세월호, 천안함을 보다 나은 언어로 표시하는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싶었던 저의 싸움이지요. 

저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말하는 게 항상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거꾸로 당사자들은 스스로 처했던 사건에 대해 말하는데 필요한 학술적 언어를 갖추기 위한 훈련을 받기 어려웠고 또 무엇보다 삶이 너무 바빴어요. 

저는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제도에 대해 공부하고, 낙인에 대해 공부하고, 참사에 대해 공부하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있잖아요. '이 사건을 연구자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내 몫이구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 저자는 어떤 예민한 사건을 놓고 이야기할 때,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이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는 언어의 전선을 찾고 싶어 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으니까.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잘 잊는다. 

타인의 고통에 실은 둔감 하다. 

설사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생존 병사들의 고통에 마음을 냈을지언정, 그들의 고통은 내 고통이 아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잊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이라고 하는 건 개인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 고통은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힘든 면이 있다.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다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놀랍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걸 전제로 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자꾸 실망하게 되고 세상을 경멸하는 되는 것 같다. 

한 개인의 몸 안에 있는 고통, 슬픔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회적 고통이 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계기는 그 고통에 누군가가 응답하기 시작할 때이다. 

그 응답을 잘 해낼수록, 많은 사람이 함께 할수록, 그 고통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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