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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그림을 맛있게 먹는 7가지 방법』- 송주영 저

by Someday

나는 붓(펜)을 들어도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문자를 나열한다.

나에게 '그림 그리기'란 계발되지 못한 채 끝난 미완의 영역이다.

끄적거린 문자들도 평범한 일상의 나열이며, 리듬에 맞춰 끄덕이며 제 흥에 겨워 쏟아내는 목소리도 울림이 부족하다.

삶의 어느 방향을 바라보아도 평범하고 무난하니 위안이 되었다가도, 보통에도 미치지 못하는 재능의 나열에 낙담하기도 한다.

그러다 몰두하게 된 '그림 감상'이 내 삶의 한구석으로 들어와 제법 커다란 기쁨과 상상을 안겨주었다.

한 점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그 화가가 태어나서 활동한 시기의 세계사까지 찾아보게 되고, 당시 화풍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된다.

누군가 필생의 빛나는 업적으로 남긴 명화를 마주하는 일은, 직접 그리지 못해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에 관한 사실을 찾아 나서고, 나름의 상상을 입히게 되면, 한 사람의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진다. 그 화가는 이미 나에게 친숙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림 감상이 뜸해지면 잊히기도 하지만, 그림을 다시 마주할 기회가 생기면, 처음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인지하니, 취미생활도 티끌 모아 태산이 되는 게 분명했다. SNS 기록으로 남겨두었던 화가와 작품을 다시 펼쳐 보면,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커다란 반가움과 특별한 의미가 더해진다.




1부 개인 취향 존중 시대의 그림 감상법 - 11쪽

1. 스토리텔링으로 그림 보기

그림 속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과정이다. 주관적인 상상과 틈틈이 배우고 익힌 관련된 지식이 만나면, 분명 의미 있는 '나만의 취향'이 완성되어 간다. 각종 매체에서 쏟아지는 광고, 매일 쓰는 제품에 새겨진 작은 이미지에서도 그 뒤에 숨겨진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습관이 쌓인다면, 직접 그림을 그리지 못하더라도, 작품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한 사람이 될 것이다.

명작이냐 종이 쪼가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림도 외국어처럼 공부해야 vs 몰라도 느낄 수 있어

김홍도(1745~1806?)의 그림을 통해 본 '스토리텔링 감상법' : 1) 그림 속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핀다. 2) 몇 가지 지식들을 덧붙여 정황을 파악한다. 3) 그림 속 주인공의 스토리를 상상한다.

지식과 상상력 모두가 필요한 그림 보기


2. 형식과 내용으로 그림 보기

그림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형식과 내용을 구분해서 보는 것이다. 모든 예술 작품에는 반드시 형식(form)과 내용(content)이 있다. 형식은 작품을 이루는 외형, 윤곽, 형태나 구조를 뜻한다. 내용은 그 형태 사이로 배어 나오는 생각, 정신, 이념이나 이야기다. 작품 안에 담긴 형식과 내용은 철학적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름다움美(형식) = 善(내용) vs 아름다움 ≠ 선

16세기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가 그린 <아테네 학당>은 서양 고대 철학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품 한가운데 팔을 높이든 플라톤(왼쪽)과 손을 땅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가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영향권 안에 있는 서유럽인 들은 '아름다움'이란 곧 '선'이라고 여겼다.



르네상스 이후, 근대로 접어드는 18세기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인간의 경험을 '내용'으로 보았다. 그리고 경험과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식 능력이 있는데, 이것이 예술의 경우 '형식'을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다.


모더니즘 vs 포스트모더니즘

'현실은 이상의 모방'이라는 고전 미학의 흐름은 점·선·면의 형태로 재현되는 추상미술로 이어졌다. 질서와 규범이 있는 자연 세계가 내용이면 그 내용으로 회화, 선율, 건축으로 ‘재현’ 한 것이 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저항을 바탕으로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내용’으로 삼고 ‘형식’을 변형, 파괴 또는 해체하고자 했다.


현대미술, 형식과 내용의 사랑싸움


현대미술은 형식과 내용 사이에서 충돌하고 다투기도 한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지점이 어느 방향인지 가늠하는데, 형식과 내용을 구분해 감상하는 방법은 유효하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선, 면, 색으로 구성된 모든 요소는 '형식'에 해당되지만, 작품은 형식과 내용이 상관관계를 지니고, '의미(meaning)'를 만들어 낸다.



예술 작품 안에서 형식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룬 연구가 바로 형태 이론, 형태심리학이다. 작품의 맥락과 의미를 파고들다 보면, 예술이 '탈 신비화' 되고, 인간과 예술 사이의 의미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현대는 예쁘거나 아름답지 않아도 예술이 되고 작품이 된다. 아름다움조차 '추함'이 있어 더 빛날 수 있으며, 아름다움은 어쩌면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추함'의 미학을 따라가 본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1917년 4월,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렸던 '예술만큼 추한 (UGLY AS ART)' 전시회가 바로 그러했다. 어둠이 밝음을 더 빛나게 하고, 추함이 아름다움을, 슬픔이 기쁨을 더 극대화한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혼란스럽긴 했지만.

작품을 형식과 내용으로 나눠서 보면 비평적 분석을 할 수 있다. '의미'를 찾는 것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이다. 형식과 내용의 조화와 반목의 서사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파악하면, 작품의 전하려는 메시지가 읽힌다.


3. 무제 그림 보기

제목이 없는 <무제> 그림을 마주하면, '나만의 취향'과 창조적 상상력이 더 활발하게 교류한다. 어떤 사회를, 역사를, 한 작가를 알아보고 느끼고 감상하노라면, 정답이 없어서 그 즐거움은 더 클 수도 있다.

추상미술을 이끌었던 예술가들은 형상을 재현하기 위해 자유로워지는 것을 예술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본질적인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인간 이성의 완성이다. 그림은 더 이상 사물의 모방과 재현이 아니라는 인식이 근대 미술과 현대 미술을 가르는 변곡점이 되었다. 그림을 둘러싼 사실관계, 작가의 의도 등도 중요하지만, 그림과 소통하는 감상자의 열리 태도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4. 개인 취향의 비밀

문화적 취향의 대물림은 민감하고 예민한 문제로, 취향의 다름이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 그림을 볼 때, 뇌는 경험된 기억과 언어 맥락적 반응을 함께 작동한다. 우리 뇌는 그림과 음악을 보고 들을 때 '익숙함'을 먼저 선택한다. 익숙함을 편안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 작품은 좋은 것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취향은 자연스럽게 결정되지만, 익숙함이 지루하게 여겨지는 순간, 취향에 균열이 생긴다. 이런 균열은 역설적으로 예술의 새로운 에너지가 된다. 이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그림이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초현실주의 작품들이다. 익숙함을 낯설게 하는 것이 현대 예술의 특징이다.

마그리트는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배치하고 배열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는 그 자체로 모순과 역설이다. 익숙한 것을 비틀어 새로운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이 곧 현대적 개념의 창작인 것이다.



2부 오래전 미술 다시 보기 - 51쪽

1. 반전 있는 선사시대 미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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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하이텔이라는 노인은 죽기 전 네안과 크롱, 두 아이를 낳았는데, 네안은 죽고 크롱만 살아남았다. 이후 크롱은 많은 아이를 낳았다. 크롱 사망 후, 아이들 사이에서 "크롱이 네안을 죽였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네안이 못생긴 데다 머리도 나빴대. 그런데 자꾸 아빠 음식을 훔쳐서 아빠가 죽인 거래!" 못생긴 건 악하고 나쁜 거라며 수군댔다. 그러던 어느 날 크롱의 아이들은 'DNA'라고 쓰인 네안의 유서를 발견했다. "나 네안은 나의 형제 크롱, 데니와 함께 살아서 행복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이제 너희가 사이좋게 나눠 가지도록 하라." 이 이야기는 길고 복잡한 진화인류학의 최근 연구 내용을 동화처럼 응축한 것이다.

실제 우리가 DNA 상자를 열게 된 것도 불과 10년이다. 문명은 갈수록 진보하는 발전 사관에 따라 인류는 계단식으로 진화해 왔다는 주장이 21세기 들어서 반전을 시작했다. 지구상 모든 인간에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1~4%, 테니소바인에게는 17%의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현재 파푸아뉴기니 필리핀 원주민에겐 약 5%의 데니소바인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덕분에 우리는 면역력, 출산 능력, 통증 민감도를 얻었지만 비만과 당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취약한 유전자와도 관련이 있다.

선사시대 미술의 꽃은 동굴벽화다. 그들의 벽화 속에는 300만 년 동안 이어진 염원과 불안한 마음을 향한 위로의 그림이 담겨있다. 동굴벽화에는 인간 형상이 없거나 추상적인 형태다. 죽인 짐승의 영혼이 사냥의 꿈을 괴롭히지 않길 바라를 제사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2. 물감이 된 미라, 머미 브라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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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미 브라운을 사용한 화가들이 그 실체를 몰랐을 수도 있다는 점도 감안하면, 현재도 함부로 파묘(破墓) 하지 않는 것처럼, 오래전 작품과 당시 예술가들에 대해 함부로 예단하거나 적의를 갖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3. 반짝이던 짧은 삶의 추억, 바니타스 정물화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 더 회자된 것은 드라마 <더 글로리>에 등장한 가해자 손명호의 손목에 새겨진 이 문신 때문이기도 했지만, 멘토(mento)가 가려지고, 메 모리(me mori)만 남으면 스페인어로 '나는 죽었다'란 뜻이 되어, 허세 뒤에 남는 것은 멸망을 자초한 자의 최후였고, 이런 허세는 17세기 유럽 바니타스 정물화에도 남아있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는 네덜란드와 플란데런(벨기에 북부에 위치한) 지역에서 유행한 정물화의 한 장르로, 중세 말 흑사병, 종교 전쟁 등 여러 비극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촛불, 꽃, 썩은 과일 등의 오브제를 그리며 인생의 무상함을 암시했다. 해골이 대표적이지만 해골 없는 바니타스도 있다. 당시 화가들에겐 이런 정물화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왕관, 책, 거울, 모래시계 등과 같은 물건에도 비슷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 시기, 동서양 모두 정치적 대혼란 직전 '소빙기'라 불렸던 기후변화를 겪었다. 사람들은 재해와 기근으로 비정상적인 죽음을 경험하면서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삶의 풍요'와 불가항력적 죽음이라는 '삶의 덧없음'을 몸소 체험했고, 사물의 물성(物性)에 관심을 가졌다. 서양의 정물화는 기독교적 도덕성을, 동양의 정물화는 유교적 도덕성을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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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백과 <유어, 그릇, 석류와 함께 하는 정물화> 칼프, 윌렘 1640/<허영심의 우화> 안토니오 데 페레다, 1632~6

17세기 동북아시아에서도 헤게모니(주도권)가 변하는 혼란 속에서 정물화가 유행하며 사물 의미를 부여했다. 동양의 경우, '인간은 자연과 조화로운 합일을 이룬다'라는 인식적 틀을 바탕으로 자연의 끊임없는 순환 구조 속에서 죽음을 바라보았다. 동양의 화조도, 사군자에는 살아 있는 꽃과 손상되지 않은 과일 등이 등장한다. 한국, 중국, 일본 예술가들이 즐겨 그린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사군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상징한다.



4. 무늬 없는 백자대호, '달 항아리 높이곰 돋으샤'

인간의 역사는 그릇과 함께 했다. 신석기시대 토기는 인류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혁명적 도구였다.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기원전 493~433년)가 흙, 물, 불, 바람의 조화로 만물을 이해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사진출처: 우리 역사넷 - 달항아리


17~18세기 조선시대 잠깐 등장했던 달 항아리 '백자대호'는 처음부터 감상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2000년 이후 두둥실 떠올라, 이젠 'K-미술의 상징'이라 불릴 만큼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3년 3월 뉴욕 소더비에 나온 달 항아리는 우리 돈으로 약 60억 원, 같은 해 9월 소더비 경매에서는 약 47억 원에 낙찰됐다. 천년 전 누군가 불렀다는 정읍사에 나오는 "달아 높이 곰 돋으샤 / 어기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우리 조상들이 보름달을 바라보며 여유를 가지고 감상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이제, 이렇게 달을 닮은 항아리가 높이높이 떠올랐다.



3부 반전 있는 그림 보기 - 97쪽

1. 다빈치 생모는 노예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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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한국인으로 여기는 사람의 DNA에도 코카소이드, 니그로이드 계열의 유전인자가 확인된다. 민족이란 언어,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집단으로 에스니스타(ethnicity) 즉 부족, 씨족이라는 개념이다.

'다빈치의 생모가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출신의 노예'라는, 2023년 3월 나폴리 대 카를로 베체 교수의 소식을 전한 이탈리아 언론 보도에 "다빈치는 반쪽짜리 이탈리아인이었다!"라는 제목이 떴다.

노예제도는 모든 시대, 모든 지역, 모든 국가에 존재했다. 사람을 '재화'처럼 다루는 것이 노예의 정의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노비제도는 중세 유럽의 농노와 노예의 절충적 존재에 가까웠다. 조선 개국 당시 노비는 전체 인구의 4%였으나, 100년 년 후 40%로 늘어났다.

우리는 조선시대 양반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에 익숙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의 조상도 노비일 수 있다.

다빈치의 생모가 노예라는 이야기는 '타인의 역사' 속에 담길 이야기이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그가 인류사에 남긴 예술적 천재성에 어떤 변화가 생기겠는가?


2. 루벤스의 동양인 남성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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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미술사 학자인 테이스 베스트스테인 교수에 의해 루벤스의 작품 <한복 입은 남자>의 주인공은 중국인 상인 이풍으로 밝혀졌다.


3. 렘브란트의 〈야경〉으로 배우는 미술 복원

렘브란트는 '빛의 화가', '자화상의 대가'로 통하는 서양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화가다. 그의 대표작 <프린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덴부르크의 민병대>는 <야경>이라고도 불리지만, 1940년대 현대적인 미술 복원작업으로 실제 밤이 아닌 낮의 풍경이라고 밝혀졌다. 17세기 유화 물감의 납 성분이 그림을 밤처럼 검게 변한 것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야경>이라고 불린다. '공공연한 비밀'처럼, 밤이 아님을 알지만, 밤이라고 불러야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와 의미가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는 납 성분의 물감을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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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작업 중 하나가 미술 복원가이다. 이유는 대상이 예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해석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고, 판단의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시각예술은 인간이 눈으로 작품을 볼 때 시작되고, 그 시작에 관여하는 직업이 미술 복원가 들이다.



4. 페르메이르를 둘러싼 진실과 거짓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는 작품을 1년에 두세 점만 완성했다. 작품 수가 적다는 희소성, 극사실적 그림을 그렸다는 화제성, 보석을 갈아 만든 비싼 안료를 사용한 특이성, 그리고 그림 속 여인들이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감성 때문에 그의 작품은 표절과 위작의 표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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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 /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58~1660

위작 논란의 정점에는 2008년 BBC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기꾼"이라고 불렀던 반 메이헤런이 있다. 이 사람은 네덜란드의 유명한 위작 작가로 페르메이르의 위작을 가장 많이 그렸다.

2020년 공개된 <라스트 베르메르>는 메이헤런의 위작 사건을 다룬 영화다. 메이헤런은 페르메이르 위작을 국보급 그림으로 속여 독일군 헤르만 괴링에게 팔았는데, 알고 보니 그가 받은 돈 또한 모두 위조지폐였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던 사건을 다룬 영화였다.



4부 근현대 미술 다시 보기 - 145쪽

1. 최초의 미술저작권 이야기

서양미술사에서 예술로 인정받는 '막장드라마'가 있다. 영국 18세기 화가 윌리엄 호가스(1697~1764)의 연작 시리즈들이다. 호가스는 처음으로 미술저작권을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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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스의 대표작은 그의 세 번째 연작 시리즈 '유행하는 결혼'이다. 돈이 필요한 몰락 귀족의 아들과 돈만 많은 상인의 딸이 애정 없는 정략결혼을 한 후, 남편은 미성년 창녀와 함께 성병을 치료하기 위해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고, 흥청망청 파티를 즐기던 아내는 결혼을 중매했던 변호사와 불륜 관계가 된다. 아내의 불륜 현장을 덮친 남편을 불륜남이 살해하고, 그로 인해 불륜남은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에 아내는 음독자살을 한다. 아기는 죽은 엄마에게 매독에 감염되고, 죽은 딸의 손에서 반지를 빼는 아버지와 앙상하게 뼈만 남은 개가 있다. 막장도 이런 막장은 없을 것이다. 호가스는 돈 때문에 막장이 된 시대를 고발하는 사회의식, 자기 창작물을 법으로 지켜낸 예술가적 자의식이 확고했다. 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으로 그려진 그의 '막장드라마'는 이렇게 미술사에 남았다.


2. 풍경화의 거장, 겸재와 터너를 발견한 안목의 비밀

조선 후기 화가 겸재(1676~1759)는 노년에 이르러 인왕산 아래 순화방 인왕계곡(지금의 옥인동 군인 아파트 자리)에서 여유로운 만년기를 보내며 <인왕제색도>, <박연폭포> 등 불멸의 걸작을 남겼다. 그는 '진경산수화'의 정체성을 재도약시킨 한국 미술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박연폭포 1750 / 인왕제색도 1751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영국, 1775~1851)는 평생 풍경화를 그린 화가로, 클로드 로랭(17세기 프랑스 화가)을 능가하고자 했다. 중기(中期)에는 로랭의 화풍 영향이 보이나 후반에는 한층 더 '빛의 묘사'로 들어갔다. 터너는 1819년부터 이탈리아를 세 번 여행했는데, 물과 하늘, 빛나는 남국의 태양을 마주하며, 풍경 일체를 빛의 묘사에 집중시켜 화폭 속에 그 빛을 용해시켜 나갔다. 그의 그림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고 가지런한 균형을 잡은 대담한 창작품이었다.

터너의 작품 <항구 앞바다의 눈보라>(1842) 일명 <눈 폭풍>을 감상하노라면, 배의 그림자까지 거칠게 불어대는 태풍 속으로 꺼지는 듯한 상태가 그래로 전해진다. 과거의 회화에서는 전례 없던 동적인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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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감상하다 보면, 과거 작품과 현대 작품이 끊임없이 대화하고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인간사도 미술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전통은 현대 속에 되살아나며, 현대는 과거와 이어져 있어, 우리는 작품들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하게 된다.


3. 현대 회화의 시작, 폴리 베르제르의 미스터리

폴리 베르제르(Folies Bergère)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카바레 음악 홀이다.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폴리 베르제르의 바>(1882) 작품 속에 담긴 그 장면이 현재도 존재하는 곳이라고 한다. 마네는 그림 내용에 혁명을 가져온 현대회화의 창시자이다. '현대적 회화'의 물꼬를 튼 세 사람은 폴 세잔(1839~1906), 에두아르 마네,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이다.

세잔은 2차 평면 회화에서 사물을 구, 직육면체, 원뿔 등으로 단순화해서 보는 실험적 추상미술의 개념적 선구자이며, 이를 시간과 공간 분할한 것은 피카소였다. 세잔과 피카소가 회화의 '형식'을 실험했다면, 마네는 회화의 '내용'에 대한 혁명을 시작한 화가로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올랭피아> 그리고 유작인 <폴리 베르제르의 바>는 그의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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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르셀 뒤샹의 신의 한 수

1952년 65세의 뒤샹은 "모든 예술이 체스 선수들은 아니지만, 모든 체스 선수는 예술가들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76세의 듀샹은 LA 파사데나 뮤지엄 한가운데서 누드모델 에바 바비츠와 조용히 체스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이것이 뒤샹의 예술가 은퇴식이었다. 1971년 첫 수를 둔지 48년 만에 마지막 수를 두며 '예술과 체스 게임'을 끝내는 순간이었다. 1968년 뒤샹은 존 게이지(1912~1992)와 전자 체스를 두는 퍼포먼스를 한 후, 조국 프랑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많은 미술사가는 뒤샹이 미술을 접고 체스나 두며 놀았다고 봤지만, 뒤샹은 체스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과학 이론과 예술 이론 양쪽 모두를 공략하며 평생을 예술 작품으로 엮어낸 예술가였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1912 / 자전거 바퀴 1913 / 샘 1917

체르를 즐겨 한 뒤샹은,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최초의 작품인 1913년 자전거 바퀴와 색칠된 부엌 의자를 사용해 만든 작품 <자전거 바퀴>를 발표했다. 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포함하는 예술작품을 뜻하는 키네틱 아트 작품은 대개 조각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경향은 미래파나 다다의 예술운동에서 파생되었다. 변기를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기도 했던 창조적인 예술가였다.


5부~7부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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