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의 현상학은 현대 철학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물줄기였다
에드문트 후설에게 <현상학의 근본 문제 강의>가 중요하게 평가된 이유는 다음 2가지로 정리한다.
1) 현상학 탐구 영역을 현상적 제현 영역까지 확장하는 길을 발견했다. '현상학적 태도에서 인식은, 절대적 인식 일반과 경험 영역의 절대적 인식을 기초로 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절대적 보편 과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상학적 태도에서 학문의 중요성이다. 후설은 "현상 자체로 돌아가라!"라고 주장했다.
2) 후설은 책 <현상학의 근본 문제 강의>에서 초월론적 상호주관성의 구축을 위한 결정적인 돌파구를 열었다. 후설 전집 <<상호주관성의 현상학>>의 편집자인 이소 케른은 <현상학의 근본 문제 강의> 6장의 '현상학적인 다수의 *모나드(Monad) 획득'이, 상호주관성 문제에 대한 논의를 위한 준비로 해석했다.
*모나드: 형이상학적 철학에서 '단일 본질'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의 근본 문제』는 *현상학을 정초(定礎) 한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괴팅겐 대학교에서 1910~1911년 겨울학기, 실제 강의한 ‘현상학의 근본 문제’ 강의록과 관련된 부록들을 번역한 것이다. 『에드문트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을 번역한 가천대학교 김기복 교수가 본문과 후설의 주석, 편집자 이소 케른(Iso Kern)의 주석들을 선별해 옮겼으며, 역자 주석과 해제를 더했다.
이 책은 후설 전집 13권 『상호주관성의 현상학 1』에 수록된 여섯째 텍스트 ‘현상학의 근본 문제’와 그 부록 열 편(21~ 30편), 다섯째 텍스트 ‘1910~11년 강의를 위한 준비’를 번역해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현상학(現象學, phenomenology): 에드문트 후설에 의해서 창시된 철학이다.
신칸트 학파와 같이 대상을 의식 또는 사유에 의해서 구성하는 논리적 구성주의에 서지 않고, 분석철학과 달리 객관의 본질을 진실로 포착하려는 데에 철학의 중심을 둔다. 경험과 의식의 구조들(the structures of experience and consciousness)을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설에게 현상학적 태도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절대적 인식에 기여했다.
토대 마련: 의심 가능한 외부 세계 대신, 의심 불가능한 '순수 의식'의 영역을 발견, 인식의 절대적 출발점을 제시했다.
명증성 확보: 인식은 단순한 외부 대상을 복사한 것이 아니라, 의식 내에서 직접 주어지는'Self-given' 명증한(분명하고 뚜렷하게 확인되는 상태) 직관으로 전환시켰다.
경험의 체계화: 무질서한 경험 사실들을 의식지향적 구조 안에서 분석함으로써, 경험 과학들이 가질 수 있는 인식론적 한계를 극복하고 그 근거를 단단히 다졌다. 즉, 에드문트 후설은 현상학적 태도를 통해 '인식론적 고립(나와 세계의 단절)'을 해결하고, 주관 의식 활동에서 객관적 진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입증하려 했다.
후설은 이 책에서 '현상학적 환원'을 강조한다. 심리 현상을 자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것 자체의 순수한 본질로 되돌려 순수 체험으로 포착한다. 심리 현상을 자연 사물처럼 다루려는 우리의 뿌리 깊은 자연주의적 경향성을 깨뜨리게 된다. 우리의 자연주의적 경향은 심리 현상에 대한 탐구 방법에서도 우리를 구속한다. 체험이 객관적 방법을 통해 외적으로 탐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순수 체험의 고유한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유일하고 엄밀한 학문적 탐구 방법은 현상학적으로 순화된 내적 경험 자체를 통하는 길이다. 직접적인 경험들 즉, 지각, 회상, 예상, 타자 경험에 주어지는 순수 체험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다. 후설의 사유는 이런 현상학적 경험의 가능성과 폭 그리고 한계를 담고 있다.
1 자연적 태도에서의 자아
자아는 자기 자신과 자기의 체험 및 성향 들을 시간 속에서 발견한다.
이때 자아는 자기 자신을 단지 지금 존재하는 자로서만, 지금 이러저러한 속성을 가지는 자로서만 아는 것은 아니다.
자아는 기억도 가지며, 이 기억에 의해 자기 자신을 '방금', 그리고 그 이전에, 이러저러한 특정한 체험들을 가졌던 동일한 자로서 '발견'한다. 자아가 가진 것과 가졌던 것은 모두 시간 위치(Zeitstelle)를 지니며, 자아 자신도 시간 속에서 자기 동일 자로 존재하고 시간 속에서 특정한 위치를 차지한다.
2 신체와 시공간적 주위
모든 자아는 자신을 유기적 신체를 가진 자로서 '발견'한다.
신체는 그 자체로는 자아가 아니라 시공간적 '사물'이며, 이때 신체 둘레에는 무한하게 펼쳐진 사물들로 무리를 이루고 있다.
모든 자아는 현행적으로 지각된 시간 부분이 무한히 과거로 뻗어 있는 동시에 미래로 뻗어 있는 시간 계열의 한 부분이다.
자아 자신은 지각만 하거나 직관적인 현존을 정립하는 체험만 갖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를 갖는 명료하거나 불명료한 앎을 갖는다.
사고하고 진술하며, 연구하는 모든 자아는 자신이 때로는 올바르게 판단하는 자이고, 때로는 그릇되게 판단하는 자이며, 때로는 의심하는 자이고, 때로는 혼란스러워하는 자이며, 때로는 명료한 확신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임을 안다.
신체와 관련한 자아에게도 지속적으로 의식되는 공간적 방향을 가진다.
오른쪽, 왼쪽, 앞, 뒤 등의 방향을 갖게 되고 마찬가지로 시간적으로는 지금, 이전, 이후라는 시간적 방향을 가진다.
3 체험을 신체에 위치시킴
모든 사람들은 자아의 체험도 신체와 연관 지으며, 자신에게 고유하게 속한 자아의 소유물들도 모두 신체와 연관 짓는다.
자아의 체험은 경험을 근거로, 아직까지는 상세히 규정되지 않았던 범위에서 자신의 신체 상태들과 사건들에 의전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4 타자 경험과 타자
신체에도 하나의 자아가 속하지만, '나의 자아와는' 다른 자아, 낯선 자아가 속한다.
자신이 자기 자신을 보고 경험을 통해 '발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타자들을 '보는 것'은 아니다.
타자의 체험과 성격적 소질 등도 역시 '발견되지만' 자기 자신의 것들과 같은 의미로 주어지고 소유되는 것은 아니다.
타자들은 '타자 경험'방식을 통해 정립한다.
다른 자아들은 그들의 신체를 기준으로, 하나의 동일한 전체 공간, 하나의 동일한 세계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시공간적 위치를 갖는다.
5 공간 현상, 그리고 정상적 상태의 다양한 주체의 현출들 간의 상응
각 자아는 자신을 중심점으로, 소위 좌표계의 영점으로 '발견'한다. 각 자아는 이미 인식되었거나 인식되지 않은 세계의 모든 사물을 이 영점으로부터 바라보고 질서 짓고 인식한다.
모든 자아는 자기 주면에 동일한 세계를 가지며, 경우에 따라서 다수의 자아들이 동일한 사물을, 세계의 동일한 한 부분을 본다.
공간에서 신체 전체를 움직일 때, 이것은 계속 다르게 현출 한다.
사물은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에서, 때로는 앞에서, 때로는 뒤에서 드러난다.
6 앞선 서술의 개괄
우리들 각자는 자기 자신을 자아로 알고 있다.
각자가 자신을 자아로 '발견'하는 이 동일한 태도를 취할 때, 각자는 자기 자신 안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과 연관하여 무엇을 '발견'하는가? 우리는 모든 사람이 '나'라고 말하는 방식을 기술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다른 것들은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나 자신이 존재함을, 그것도 여기 이것으로 존재함을, 그리고 이러저러한 특정 내용을 가지고 존재함을 정립하고, 나 자신이 이러저러한 것을 체험함을 정립한다. 나는 이러저러한 상태와 작용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상태 혹은 작용으로 정립하지 않고 '발견'하지 않는다.
주관적 공간 위치로부터 사물과 사물의 공간은 사물 현출들 속에서 이러저러하게 나타나 보인다.
우리는 시간과 시간 현출 사이의 차이에 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7 경험의 태도로서의 자연적 태도. 경험 판단의 명증성 문제
우리가 '발견한다'라고 표현한 것은 학문적 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추록적 사고보다도 앞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경험한다(erfahren)'라고 불리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자연적 태도란 경험의 태도이다.
8 경험과학들: 물리적 자연과학과 심리학. 자연적 세계 개념
인간은 경험한 것을 기술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학문적으로 인식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경험과학(ErfahrungsWissenschaft)이다. 이것은 자연적 태도의 학문이다.
1) 사물들에 대한 학문적 탐구는 물리적 자연과학의 작업이다.
2) 인간은 자신을 경험하고 이웃 인간들을 경험하며, 동물과 여타 영혼 존재라 불리는 다른 체험하는 유기적 존재를 경험(타자 경험) 한다.
사물은 사물 현출(現出)이 아니다. 사물은 그것을 내가 지각하든 말든, 따라서 상응하는 지각 현출을 가지든 말든 그것인 바대로 존재한다.
현출은 '자아'가 가지는 현출인 한에서 심리학에 속한다.
'현출'을 '가짐'은 '현출의 내용'을 통해 서로 구별될 뿐이다.
세계는 자연과학과 심리학의 무한한 대상일 뿐이다.
정밀하게 기술하는 학문들과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나아가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학문들의 무한한 대상이다.
9 경험적 태도 혹은 자연적 태도와 선험적 태도. 자연 존재론과 형식적 존재론
시공간적으로 현존하는 것들의 세계인 자연, 즉 '경험적' 세계(empirische Welt)에 대립한 이념적 세계가 존재한다.
이 이념들은 비공간적이고 비시간적이며 비 실제적이지만 바로 수계열에서 수들처럼, 존재하는 것들이며 자연이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타당한 학문적 진술의 주제들이다.
우리는 자연적, 경험적 태도(empirische Einstellung)와 비경험적 태도, 즉 선험적 태도(apriorishe Einstellung)를 구분해야 한다.
전자는 현존 대상들이, 후자에서는 본질 대상들이, 전자에서는 자연이, 후자에서는 이념들이 소여 된다.
공간의 이념과 공간적 형태들의 이념들 그 자체는 공간적이지 않은 공간적인 것들에 관한 이념들에 속한다.
현실적 공간인 자연에는 어떠한 공간 이념, 삼각형 이념 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현실적 시간에는 그 자신 비시간적 존재이며 바로 이념인 시간 이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질 태도, 최종적으로는 직관적 이면화 작용(Ideation)의 태도는 하나의 새로운 영역, 현존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을 내어주며,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태도는 이미 철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마주친 철학적 분과학문들이 유일한 선험적 학문인가라는 물음으로 계속 더 나아가야 한다.
10 자연의 선험적인 것, 자연적 세계 개념과 자연과학. 아베나리우스의 “순수 경험 비판”
아베나리우스 학파는 세계 개념에서 모든 '형이상학적' 첨가물을 제거하고 순수 경험의 '자연적' 세계 개념을 재구축하는 것을 순수 경험 이론과 비판의 과제로 보고 있다.
자연적 세계 개념에 대한 기술은 가장 넓은 외연과 크기 속에서 사고된 자연 존재론과 관련해서 숙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자연과학은 그것이 '자연적 세계 조망'의 정립을 전제하고 이러한 테두리와 의미 안에서 존재를 탐구하는 한에서, 선험적으로 실재적 존재론(reale Ontologie)에 구속되어 있다.
자연의 '존재론'은 자신의 분과들 안에서 자연적 성립의 순수한 형식적 - 일반적 의미를 전개하거나, 자연적 태도 자체에 주어지는 것을 전개한다. 자연적 세계 개념은 절대적이고 선험적으로 타당하다.
에드문트 후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갖는 '자연적 태도'에서 벗어나, 어떻게 인식이 절대적 명증성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했다.
자연적 태도의 정지: 판단중지, Epoché:당연하게 여기던 '존재'에 괄호 치기
현상학적 환원과 절대적 여실성: 후설은 의식이 텅 빈 그릇이 아니라, 항상 무언가를 향해 뻗어 나가는 화살표 같다고 보았다. '모든 의식은 무엇에 대한 의식이다'
경험 영역의 절대적 인식 기여: 확실성 발견과 본질 파악을 통해 무질서한 경험 사실들을 의식의 지향적 구조 안에서 분석한다. 경험 과학이 갖는 인식론적 한계를 극복한다.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론은 훗날 심리학이나 사회학 연구에서 '선입견을 버리고 현상 자체를 보는 법'으로 널리 쓰인다.
11 주관적 의미에서의 인식의 영역, 그리고 경험적 심리학과 이성적 심리학
모든 주관적인 것은 그 자체로 자연적인 영역에 속하고, 정확하게는 심리학의 영역에 속한다.
이것은 개별적인 경험적 주체의 사실들로서 일반적으로는 인간 세계 일반 안에 있는 의식하는 체험의 사실로 자연과학으로서의 심리학에 속한다.
체험은 체험하는 인격체의 체험이고, 작용 혹은 상태로서 이 인격체가 속하고 이 인격체가 더불어 객관적인 시간 위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12 경험적인 것 및 자연 본질의 배제의 문제. 자아가 신체에 결합함
자아는 체험하지만 체험은 신체에 연관된 것으로 어떤 '구성의' 단계 질서 안에 있는 것으로 경험된다.
감각적 감정 역시 신체와 결합된다. 높은 수준의 심리적인 체험은 이들과 내적으로 결합된 정초(定礎) 된 체험이다.
다양한 사물들에 대한 자아의 지각 체험은, 그것이 배치되는 전체 양상에 있어, 현존하는 것으로 정립된 신체와의 관계를 가진다.
이 배치 방식은 그때마다 자신의 신체에 속한다. 물론 타자의 경험에 의한 타인의 신체에 속한 지각들은 다른 배치 방식에 속하며, 다른 지각 집합에 속한다. 어떤 한 사람의 지각은 그와 다른 사람의 지각이 아니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13 사고하는 것(res cogitans)과 연장적인 것(res extensa) 사이의 경험적 결합의 분리 가능성. 현상학적 구별
신체에 결합된 모든 것은 분명히 다시 신체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
신체는 사물로서 있다. 하지만 감각하는 사물이라는 것은 사물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사물 신체라는 것은 하나의 사실성(Faktizitat)이다.
이것이 심리적인 것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경험이다.
색 감각, 음 감각의 본질에는, 그리고 지각, 판단, 욕망, 의문 등의 체험 본질에는, 사물과의 결합이 이들 사고 작용의 존재에 본질 필연적인 것인 양 사물과의 어떤 본질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구체적 통일체(concretum)에서 본질적으로 서로 비독립적이고 분리 불가능한 각 계기들을 구별한다는 의미에서의 추상화, 즉 흄이 말한 실제적 구별(distinctio realis)의 의미에서 추상화를 수행함 없이, 사고 작용과 사물 사이의 경험적 연관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14 자연 대상에 대한 체험의 존재 우위. 경험적(초재적) 지각과 순수 체험의 지각
실제로 하나의 체험은 독자적인 자신의 존재를 가지고 있다. 체험은 그것이 바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인식과 의식에 대해서와 달리 사물은 *즉자(an sich) 적인 존재하고 말한다.
사물은 경험 안에서 직접적으로 주어지고 경험 사고 안에서 사고되고 규정된다.
사물 경험은 현시(Darsellung)를 통한, '현출'을 통한 소통이다.
순수 체험에 대한 지각에서는 단적인 경험, 우선은 경험적 지각에서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 지각은 순수 체험을 모든 경험적 파악으로부터 끊어내고 그것을 그것의 순수한 의미 자체에서 취한다.
지각의 재평가는 내가 반성적 시선 속에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취하고 정립한 지각 고유의 존재에 있어서는 그 어떤 것도 변경시키지 않을 것이다.
* 즉자( an sich): '자체'(自體)로도 번역되며 이 경우에는 '그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
15 현상학적 태도. 순수 체험에 대한 현상학적 직관 혹은 지각을 심리학적 체험에 대한 내적 지각과 구별함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모든 체험과 관련하여 새로운 태도를, 모든 경험적이고 초재(礎材:기초가 되는 재료) 적인 태도를 배제하는 새로운 태도를 줄 수 있다. 우리는 경험적 태도에서 주어지는 어떠한 대상도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경험적 태도에서 주어질 수 있는 어떤 것도 우리 자신에게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사물과 더불어 모든 그 밖의 자연에 대한 정립이, 그중에서도 자신의 신체와 신체 체험의 심리 물리적 연관이 배제되어야 한다. 인격으로서 신체와 결합된 것으로 생각된 경험적 자아, 그리고 다른 경험적 자아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경험적 자아마저 그 정립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현상학적 환원을 일관적이고 완전하게 수행하고 심리적 체험에 대해 내적 기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심리적 체험을 하는 자아의 상태가 '체험'으로 객관적 시간 안에 있는 것을 파악하고 정립하지 않을 때에라야, 우리는 비로소 순수 체험을 현상학적 지각의 대상으로 획득하게 된다. 경험적 지각과 근본적 차이 안에서 참된 현상학적 자각을 수행하게 된다.
16 데카르트의 근본적 고찰과 현상학적 환원
현상적인 환원을 수행했지만, 그것을 수행하자마자 곧바로 포기했던 최초의 철학자는 데카르트였다. 근대 철학의 전체 발달 과정을 열었던 근본 고찰이 현상학적 환원의 개시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현상학적 자각의 상관 자는 데카르트적 의미에서의 의식 작용(cogitatio)이고, 우리는 그것을 경험적 의식과 대립된 순수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의식 작용, 즉 의식이란 모든 종류의 감각, 표상, 지각, 기억, 예상, 모든 종류의 판단, 추론, 모든 종류의 감정, 욕구, 의욕 등등이다. 이것들은 데카르트가 말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 안에서' 직접적으로 직관하는 것들이다. 절대적인 보편 과학이 아니라 현상학적 태도 내에서의 학문이 중요하다.
17 자연적 판단으로부터 현상학적 판단의 독립성
가장 큰 어려움을 일으키는 것은 현상학적 태도 자체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고 현상학적 태도를 잘못 규정하는 모든 방해물들이다.
나의 [현상학적 태도에서] 허용된 판단 안에서 정립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타당하며, 내가 [현상학적 태도에서] 허용되지 않은 판단 속에서 정립했거나 때때로 다시 정립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현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적 태도로서의 진리는 현상학자와는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일일뿐이다. 왜냐하면 현상학은 이미 그것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현상학자 자신의 존재를 자연의 구성원으로서 정립하는 모든 판단도 배제된다.
18 유아론이라는 반론
솔루스 입세(solus ipse)라는 말은 내가 홀로 존재하다는 것이다. 혹은 내가 모든 나머지 세계를 배제하지만 나 자신과 나의 심리적 상태와 작용들은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 자아의 현상학적 배제 가능성에 대한 반론
현상학적 태도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현상학적 탐구가 순수 자아나 순수 시간과 같은 것이 항상 주어지며 정립될 수 있음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현상학적인 것일 것이다.
20 현상학적 소여의 절대적 성격에 대한 반론과 현상학적 학문의 가능성 및 자연과학의 현상학적 정초 가능성에 대한 반론
자연은 어디에서나 진정으로 우리의 관심거리이다.
순수 현상학적 토대 위에서 가령 어떤 환상적인 추론 방식을 통해 자연에 도달하고, 자연에 관한 배제된 경험 인식에 대비되는 보다 고도의 절대적 자연 인식을 획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무의미한 것으로 거부되어야만 한다.
21 현상학적 환원의 무동기성
경험 정립을 배제하려는 동기를 현상학에 슬쩍 밀어 넣을 필요가 없다.
현상학으로서 이것에는 그러한 동기가 없다. 이는 개인적인 일일뿐이다.
현상학은 경험적 정립을 배제하고 그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에 탐구를 제한한다.
현상학자의 관심은 경험 안에서, 그리고 보편적인 경험과학 안에서 정립된 현존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다.
22 현상학적 인식의 절대성에 대한 반론을 논의하기 위한 예비적 숙고
자연 과학자는 자연 인식에 마음을 쓴다.
그는 방법적으로 정밀하게 세워진 모든 이론이 앞으로 올 경험을 통해 본질적으로 변양(變樣)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모든 경험적인 것을 배제한 현상학적 인식도 참된 의미에서의 인식이고, 의심할 바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학문적 통찰들의 영역일 것이다.
현상학은 하나의 분과학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방법에 대한 표제일 것이다. 다양한 현상학적 분과학문이 존재할 것인데, 어떤 것은 절대적인 소여(所與)와 관련되고 어떤 것은 '불완전한' 소여(주어진 바)에 관련될 것이다.
4장. 현상학은 절대적인 소여(所與)의 영역을 넘어 나감 - 85쪽
23 현상학적 소여의 절대적 성격의 문제
현상학적 직관의 개념을 확장해야 하는 이 개념은 경험적 직관과 평행하게 될 것이다.
24 현상학적으로 지각된 것의 절대적 소여. 현상학적 지각에서 배제의 무의미성
나는 지각한다. 그리고 지각된 사물의 실존을 배제하고 오직 지각 작용 자체를 바로 이것(eni Dies)으로 확고히 붙잡는다.
지각 작용은 지속하는 것이다. 지속의 통일체로 더 이상 아무것도 거기에 덧붙이지 말고 '이것'과 정립된 것만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이 지각 작용을 여기 지속하는 것으로 순수하게 취한다면, 모든 의심은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25 현상학적 태도 내부에 있는 “초재(礎材)”로서, 현상학적 지각에 함축된 파지(把持)
우리는 현상학적 태도 안에 있는 '초재(기초가 되는 재료)'을 허용해야 한다.
모든 파지(경험에서 얻은 정보를 유지하고 있는 작용)의 지금 - 아님의 파지이고 방금 있었던 것의 파지이며, 우리는 이 있었던 것이 소여 된다고 말했다.
지속하는 지각 내부에 있는 파지에 대해서 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경과해 버린 지각에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는 소위 자유로운 파지에게도 당연히 그러한 타당성을 부여해야만 할 것이다.
26 현상학적 회상과 그것의 기만 가능성. 경험적 기억의 현상학적 기억으로의 변경
현상학적으로 환원된 것은 현상학적인 있었음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것이 여전히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의식되는 동안 바로 이 의식되었던 것의 경과는 회상이라는 형식 속에서 반복으로 경과한다.
통일된 현상학적 회상은 현상학적인 다양들을 하나의 현상학적으로 환원된 재의식으로 결합한다.
주관적 직관 속에서 드러나는 모든 경험적 기만은 현상학적으로 환원된 회상의 기만 의식을 낳는다.
27 경험의 전체 영역을 현상학적이지만 절대적이지 않게 전유할 가능성. 예상
현재의 경험은 미래의 경험을 동기화한다.
그러나 현상학적 환원이 순수하게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이를 통해 이 동기 작용이 절대적 소여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내가 사건을 관찰하는 동안에 모기가 내 콧속으로 날아들면 나는 재채기를 해야 한다. 예상되었던 바라봄은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28 현상학적 경험. 그것의 “내재 안의 초재”와 기만의 가능성. 타자 경험과 자기 경험
현상학적 지각의 방식에서 직관되지 않고 소위 다른 다양한 방식의 현상학적 경험에서 직관이 연관을 준다.
이 연관들은 직관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의향 하는 향함 및 정립과 엮이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주제적으로] 의향 되지 않는다.
지속하고 있거나, 변화하는 사물에 대한 지각이 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서, 시선 방향의 변경 속에서, 현상학적 예상 계열 같은 것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동기 연관들에 관한 앎은 현상학적 지각의 앎이 아니다.
의식 작용의 명증이 우선 그리로 이끌어가는 절대적 자기소여의 직관이 아니며, 이 사실은 어디에서나 타당하다.
29 절대적 소여 영역을 넘어섬은 현상학적 학문의 가능성의 필연적 조건
우리가 현상학적 대상이라 부르는 모든 대상은 개별적 대상으로 사고되며, 모든 현상은 절대적 일회성으로, 개별적인 '여기 이것(Dies-da)'으로 사고된다.
현상학적 영험은 자주 자연적 경험보다 더 좋은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어쨌든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아니다.
30 내재와 초재 - 이 용어의 다의성과 현상학의 내재와 초재 의미
내재와 초재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초재(초월적 transzendent)에 관해서
1) 인식 대상 자체는 인식 작용 안에(일반적으로 인식 대상의 상관자인 의식 안에) 현재 하지 않는다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다.
2) 초재 편에는 대상으로 의식되지만, 현재 하지 않는 모든 것이 놓여 있다.
현상학적으로 환원된 회상과 심지어 파지가 직관되었던 것을 재생한다 할지라도, 기억된 기억 의식에 대해서는 초재하는 것이다.
3) 초재의 측면에는 자연이 속한다. 왜냐하면 자연은 현출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대상들의 전체를 포괄하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상학은 모든 의미에서의 초재를 배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현상학은 자연, 특정한 의미에서의 초재, 현출 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초재를, 배제하는 것을 통해서 정의된다.
31 현상학적 대상의 배경과 다양한 의식 작용에서의 현상학적 대상의 동일성. 현상학적 시간의식
현상학적 경험도 자신의 평행하는 양상들과 마찬가지로 권리와 명증을 지니고 있다. 이 측면에서 결여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양 측면 모두에서 인식의 장은 무한하다. 한쪽에서는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대상들의 전체가 있으며, 다른 쪽에는 우리가 의식, 의식 작용, 현상학적 자료라고 부르는 대상들의 전체가 있다.
경험적 시간의식과 혼동되지 말아야 할 현상학적 시간의식과 연관되어 있는 많은 제약 조건이 있다. 예상은 지각에 앞서고 지각은 회상에 앞서며 첫 번째 회상은 두 번째 회상에 앞선다. 이는 같은 현상적 내용에서는 필연적이다.
32 요약과 새로운 서술: 개별적 존재인 순수 의식으로의 현상학적 환원. 환원된 의식 세계의 유효 범위와 현상학적 학문의 가능성의 문제
자연적 세계는 모든 개별적 존재를 포괄한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자연적 세계 속에 정렬되고, 모든 것이 자연적 태도에서 자연적 세계 속에 정렬되기 때문이다. 모든 환원적 현상은 지속하는 것으로서, 그것도 지속하는 자체 현재로서 드러난다. 이 지속은 지금이라는 하나의 흘러가는 점과 과거의 흘러가는 하나의 흘러가는 점과 과거의 흘러가는 점들의 연속체로 채워진 지속이다.
33 현상학적 경험을 전체적인 통일적 의식 흐름으로 확장함
각 의식 작용마다 잇따름이라는 의향 되지 않은 시간 배경이 있는 것처럼, 각 의식 작용마다 동시성이라는 시간 배경도 있다. 이것도 회상에서 주목할 수 있다. 우리가 현상학적 환원을 계속 수행한다면, 그 속에는 의식의 무한한 통일성이 놓여 있으며, 적절한 비유를 사용한다면 무한한 통일적 의심 흐름이 놓여 있다. 경험을 충실하게 표현하고 분석하는 경험 판단으로부터 의식의 흐름은 현상학적 순수성 속에서 고유한 경험의 장, 즉 인식의 영역이 된다.
34 인위적인 제한의 폐기. 의식 흐름에 대한 자연적 반성을 출발점으로 현상학적 의식 흐름을 획득함. 그리고 이중적인 현상학적 환원
모든 경험은 이중적인 현상학적 환원을 허용한다. 한 번은 경험 자체를 순수한 내재적 직관으로 가져오는 현상학적 환원이고, 다른 경우는 경험의 지향적 내용과 대상에 대해 수행되는 현상학적 환원이다. 따라서 회상의 지향적 내용과 대상에 대해 수행되는 현상학적 환원이 존재한다. 이 환원은 원래의 지각에서는 수행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것은 그 자체로 이전의 환원에 대한 회상이 아니다.
35 현실적이고 가능한 순수 의식 연관들의 지표(Index)인, 자연적 경험의 초재적 통일체. 모든 자연적 경험과 모든 학문을 현상학적 경험과 학문으로 전환함
내재적 존재로서 취해진 각각의 자연적 경험은 다양한 다른 자연적 경험들을 동기화하고 다양한 자연적 경험의 실제적 가능성들을 동기화하며, 우리는 순수 의식의 연관들인 이러한 동기 연관을 풀어내고 이들에 시선을 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선은 현상학적 경험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본래적인 환원의 싹은 흄(D. Hume)에게 있었으며, 보다 더 구체적으로는 극단적인 경험론자인 밀(J. S. Mill)에게 있었다.
밀의 영속적 감각 가능성의 이론에서는 외적 사물의 현존은 감각 가능성으로 환원되어야만 한다. 사물을 연관된 감각 집합으로 대체하는 마흐(E. Mach)의 감각 일원론도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다.
36 의식의 상호 주관적 연관. 현상학적 환원은 개별 의식에 제한되는 것을 의미하는지의 문제
현상학적 환원은 경험심리학적 파악 속에서 개별적인 경험적 자아에 속하는, 그것도 현상학자인 자아에 속하는, 순수 의식 연관에 제한되는가? 우선, 이러한 순수 의식과 순수 자아의식은 어떤 성격을 갖는가? 에 의문을 갖는다.
37 통일적 의식 흐름의 구축 원리
현상학적 의식 흐름의 통일은 경험적으로 파악된 유일한 자아의 의식 통일과, 혹은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이 유일한 자아로부터 등장하는 의식의 통일과,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내가 나의 내적이거나 외적인 경험들로부터 출발한다면, 그리고 현상학적 환원을 수행한다면, 거기에서 생겨나는 현상학적 자료들 및 이들 연관들은 철저하게 유일한 하나의 의식 흐름에 속하고, 유일한 하나의 현상학적 자아에 속한다.
38 타자 경험. 타자 경험과 유비(類比)화 하는 이미지 의식의 대비
자아는 다른 자아를 경험한다.
그러나 누구든 자아가 타자를 체험한다고, 로크적인 반성과 같은 내적 지각에서 자신의 의식을 지각하는 것처럼 타자를 지각한다고, 누구도 자아가 타자를 기억한다거나 예상한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타자의 체험에 관한 어떤 이미지를 만든다면, 우리는 이 이미지를 특수한 것으로 느낀다.
[이미지의 의식보다는] 유비화 [즉, 상상 이미지]도 타자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요청된다.
39 이중적 현상학적 환원을 통하여 다른 현상학적 자아를 획득함. 다수의 자아 모나드들 간의 조화의 지표로서의 자연
타자 경험 자체와 타자 경험되는 것의 동시성도 자체 직관되는 것이 아니다.
경험적 타자의 경우, 타자 경험에서 정립된 시간은 지금이다. 이 지금이 자신의 의식의 지금과 동일한 객관적 시간점으로 경험적 정립이 된다. 모든 현상학적 존재는, 한편으로는 하나의 ('나'의) 현상학적 자아로 환원된다.
이 자아의 특출함은 지각하고 기억하고 타자 경험하는 자아이고, 게다가 현상학적 환원을 수행하는 자아인 것이다. 자연은 타자 경험을 통하여 서로 경험 연관을 맺는 모든 의식 흐름을 총괄하는 규칙에 대한 지표이다. 특히, 모든 객관적 시간점 및 모든 객관적으로 파악된 '동시성'이 그러하다. 모든 개관적 시간점은 소의 각 자아 모나드를 다른 자아 모나드와 관계 맺게 하는, 그것도 상관적으로 연관되는, 완전히 규정된 의식 동기들에 있어서, 관계 맺게 하는 완전히 규정된 법칙적 조화의 지표인 것이다.
40 현상학적 환원 안에서 자연의 존재에 대한 모든 판단의 억제
우리가 현상학적 환원을 수행하는 경우, 자연의 존재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순수 현상학적 연관에 대해서 펀단 하는 경우가가 타당하다.
우리의 전체 탐구는 현상학적 환원 안에서 일어났으며, 이 환원은 정의상 자연에 대한 모든 확언의 중지를 의미할 뿐이다.
41 본질학 및 사실학으로서의 현상학적 학문의 가능성이라는 문제
우리는 현상학적의 영역에서 선험적 인식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현상학적 경험의 토대 위해서 이념화 작용이 어느 정도까지 수행될 수 있고, 이념적 학문적 인식이 어느 정도까지 획득될 수 있는지 숙고하지 않았다.
우리가 경험을 진실로 확고히 견지한다면, 즉, 개별적 존재에 대한 정립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이러한 정립의 영역이 매우 넓음을 알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의 토대 위에서 경험과학과 같은 것이 현실적인 사실 학문으로 정초 될 수 있는지는 확실할 수 없다.
42 자연의 인식과 이에 상관적인 의식 연관의 인식 사이의 등가성. 그리고 선험적인 의식에 대한 인식을 경험적인 자연 인식의 현상학적 연관에 적용함. 심리 물리학
자연의 존재를 표현하는 모든 의식 연관이 우리의 인식으로 들어올 때, 우리는 자연에 대한 판단을 표명하지 않고, 자연의 실존을 암묵적으로라도 전제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의식 연관에 대한 인식은 어떤 방식으로는 자연에 대한 인식과 등가적이며, 그 역도 그러하다. 심리 물리학적 인식은 물리적 자연에 대한 본래적 인식(초재적 transzendent 인식)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본래적으로 자연 인식된다. 기본적으로 심리 물리학적 인식은 자연 인식과 순수 현상학적 인식의 중간항이다.
후설의 현상학은 현대 철학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물줄기였다. 그의 제자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로 이어진 영향은 '현상학의 혁명'이라고 불린다. 후설의 현상학적 태도가 하이데거와 실존주의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의식'에서 '존재'로의 전환 (후설->하이데거) 후설은 인식의 절대적 기초를 찾기 위해 내면의 '순수 의식'(인식론적 현상학)을 파고들었지만, 하이데거는 후설의 방법론을 계승하면서도 존재론적 현상학으로 귀결시켰다.
후설의 지향성이 '의식이 대상을 향하는 화살표'였다면, 하이데거와 실존주의자들은 이를 '인간이 세상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행위'로 보았다. 이는 인간은 단순히 사물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사물을 도구로 사용하며 세상에 관여, 이를 '관심' 혹은 '염려'라고 불렀다. 샤르트르(실존주의)는 후설의 지향성을 빌려와 '의식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니며(無), 외부를 향해 나감으로써 스스로 만들어간다'라고 주장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는 주장이다.
에드문트 후설은 말년에 '절대적 인식'에 대한 집념을 넘어, 우리가 실제로 발 딛고 사는 '생활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적 수식이나 이론이 나오기 전, 우리가 직접 겪는 생생한 삶의 현장을 가리킨다. 후설은 현상학의 시조(始祖)이다. 후설의 현상학적 태도는 인류에게 철학적 유산을 남겼다. 후설은 "현상 자체로 돌아가라!"라고 외치며 철학의 엄밀성을 세웠고, 후대 철학자들은 그 길을 따라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철학을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완성시켜 나갈 수 있었다.
부록 1. 1910/11년 강의를 위한 준비 순수 심리학과 정신과학, 역사학과 사회학. 순수 심리학과 현상학-심리학적 순수 상호주관성에로의 환원으로서 상호 주관적 환원
부록 2. 1910/11년 강의의 개요 (상호주관성에 관하여)
부록 3. 내재철학-아베나 리우스
부록 4. 현상학적 진리와 실증적(존재적 및 존재론적) 진리 사이의 관계. 실증적 주제와 현상학적 주제의 종합적 통일. 독단적 실증성과 초월론적으로 해명된 실증성
부록 5. 현상학적 경험 비판에 앞서는, 현상학적 경험의 통일성 문제의 선차성
부록 6. 우리가 자연과학이라 부르는 지식의 상호주관성
부록 7. 기억, 의식 흐름, 타자 경험
부록 8. 통각이자 간접 현전으로서의 타자 경험. 그것의 빈 지향, 직관화, 충족
부록 9. 나의 의식의 시간과 타자의 의식의 시간 사이의 동일화. 현상학적 환원에서의 다른 자아. 타자 경험되는 경험 체계들에 대한 지표인 자연, 그리고 모나드들의 반영(Spiegelung)의 조건인 자연
부록 10. 정신들을 매개하는 신체성
부록 11. 1910/11년 〈현상학의 근본 문제〉 강의에서 현상학적 환원, 모나드들의 독립성 및 연관들이라는 사상을 숙고함 - 209쪽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의 근본 문제』를 다룬 이 책은 후설의 현상학과 현상학적 사유에 관해 좀 더 깊게 들여다보게 한다. '현상학적 환원'에 관한 후설의 치열한 사유를 만났지만, 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접점과 그 깊이를 이해하기엔 스스로 부족했다.
후설의 ‘현상학의 근본 문제’ 강의는 현상학의 탐구 영역을 넓히고 학문으로서 현상학의 체계를 세우는 데 중요한 기점이 됐다.
이 강의록은 후설의 절대적으로 소여 되지 않는 경험 영역인 과거나 미래의 의식 체험들과 의식 흐름 전체, 재현에 대한 이중적인 현상학적 환원을, 다양한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후설이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엮은 책이지만, 일반인들도 현상학적 경험의 장으로, 어렵지만 첫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후설은 자신의 후기 저술들에서 타자 경험을 독특한 종류의 재현, 이중적인 현상학적 환원을 수행하면서 타자의 경험 체험이 나와 다른 자아의 체험임을 밝히면서 이 문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후설은 타자를 나와 구별되는 또 다른 자아의 모나드로 정립함으로써 타자의 경험과 상호주관성 문제의 돌파구를 처음으로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