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문, 신석정 시비, 전통놀이마당, 취향정, 덕진공원 안내도
다음날 아침 7시경 숙소 창문을 활짝 여니, 덕진공원은 제 본래 모습을 드러낸 촉촉한 맨얼굴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밤새 내린 봄비로 공원 풍경은 지난밤 눈부시던 조명 아래 빛나던 모습과는 또 달랐다.
유혹하듯 화려했던 밤 풍경이 떠난 자리로, 깊은 사색에 잠긴 온화한 풍경이 마냥 부드럽기만 했다.
옅은 안개가 낀 듯, 이슬에 젖은 듯,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봄날 아침의 싱그러움이 상쾌하기만 했다.
어젠 천안, 익산과 전주 세도시 모두 미세 먼지 가득 내린 하루였지만, 오늘은 밤새 내린 비가 미세먼지를 쓱 걷어갔다.
7층 창가에 서서 한동안 덕진공원 풍경을 두 눈에 가득 담고 있다 보니, '묵'이 컵우동(가락국수)이 다 끓었다고 나를 부른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묵은 호텔 타미 7층에서 푹 쉬고, 나 혼자 공원 산책을 나섰다.
9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각자 온전한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묵'은 장거리 출장 중이었으니, 한 시간이라도 더 쉬는 것이 좋았고, 나는 요즘도 혼자 만보 씩 매일 걷고 있으니,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정의 연속일 뿐이다. 이날은 아름다운 덕진공원 산책이니 더 만족스러웠다.
산책코스는 연지문에서 시작, 위 사진 풍경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었다. 단, 오른쪽은 끝까지 돌지 않고, 취향정으로 다시 돌아와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덕진공원(063-281-6661)은 24시간 개방된 호수공원으로 연지문 건너편 덕공원 후문 쪽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사계절 특별한 풍경을 담은 공원이지만, 연꽃 개화시기인 초여름(6월초) 이후에 맞춰가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현재, 공원 오른쪽 일부 구간에서 보수 공사가 진행중이다.
연지문(蓮池門)은 덕진공원을 대표하는 정문으로, 공원의 역사와 의미를 상징하는 중요한 구조물이다. 연지문은 '연못(蓮池)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덕진호의 아름다운 연꽃 군락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한다.
연지문에 걸린 현판의 글씨는 호남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자 유학자인 강암 송성용선생이 썼다.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서체로 유명하여, 나 같은 사람들이 덕진공원 첫 사진을 많이 찍는 곳이기도 하다.
연지문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신석정 시인의 시비가 보인다.
시비에 새겨진 고운 시어마다 봄비가 스며들어 흘렀다.
가까이 다가가 흘러내리던 촉촉한 시어를 내 흐릿한 두 눈 속에 주워 담았다.
네 눈망울에서는
초록빛 오월
하이얀 찔레꽃 내음새가 난다.
네 눈망울에는
초롱초롱한
별들의 이야기를 머금었다.
네 눈망울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아득한 종소리가 들린다.
네 눈망울에서는
머언 먼 뒷날
만나야 할 뜨거운 손들이 보인다.
네 눈망울에서는
손잡고 이야기할
즐거운 나날이 오고 있다. (신석정·시인, 1907-1974)
신석정 시인은 일제 말기 일본식 성명 강요를 거부, 절필하며 절개를 지킨 있는 시인이다. 대한민국 대표적인 저항 시인 이육사, 윤동주와 더불어 신석정 시인이 꼽힌다. 일제에 저항한 방식과 자세에는 각기 달랐지만, 이들의 꿋꿋한 저항 의식은 시어 속에도 곱게 남아있다.
신근 시인은 신석정, 김해강, 이철수 시인과 함께 전라북도 문단 기틀을 마련했으며, 후배 문인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후학 양성에 힘쓴 전북 문단의 거목이다.
여기 서면
태고의 숨결이 강심에 흐려
어머니, 당신의 젖줄인양 정겹습니다.
푸른 설화가 물무늬로 천년을 누벼오는데
기슭마다 아롱지는 옛님의 가락
달빛 안고 하얀 눈물로 가슴 벅차옵니다.
목숨이야 어디 놓인들 끊이랴마는
긴 세월 부여안고 넋으로 밝혀온 말간 강심
어머니 당신의 주름인양 거룩하외다.
길어 올리면 신화도 고여올 것같은 잔물결마다 비늘지는 옛님의 고운가락
구슬로 고여옵니다. (신근·시인, 1916-2003)
전주 덕진공원은 전주의 역사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시민 공원이자, 여름철 연꽃으로 유명한 명소이다.
덕진호(덕진연못)는 공원 중심에 자리 잡은 커다란 호수로, 고려시대부터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꽃 명소로 매년 여름(7~8월)이면 호수 전체가 연꽃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덕진채련(德津採蓮)'은 전주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연화정도서관은 호수 한가운데 위치한 아름다운 한옥 도서관으로, 전통적인 멋을 느끼며 책을 읽거나 호수 전경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연화교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최근, 석조 형태의 튼튼하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재건축된 멋진 산책길이다.
덕진연못에는 음악분수도 있다. 동절기를 제외한 야간에는 화려한 조명과 함께 음악분수 쇼가 펼쳐져 데이트 코스나 가족 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그러나 4월 3월 밤이었던 어젠 음악분수가 작동되지 않은 걸 보니, 아직 가동을 시작하지 않은 듯했다.
덕진공원에는 이외에도 어린이 전용 숲 놀이터는 물론 취향정, 덕진정, 용와정, 풍월정 등은 물론, 창포원까지 자연친화적인 시설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덕진공원은 전체적으로 관광객들로 붐비는 전주 한옥마을과는 다른 여유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산책코스로는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녹두장군으로 더 많이 알려진 전봉준(1855년(철종 6)~1895년(고종 32))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지도자이다. 그의 투쟁은 민중을 반침략, 반봉건의 방향으로 각성시킴으로써 사회변혁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손화중(1861년(철종 12)~1895년(고종 32))은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대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손 장군은 조선 후기 동학 농민 운동에서 농민군을 이끌었으나, 전주 화약 이후 나주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동료의 밀고로 관군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전통놀이마당이 있는 곳 건너편부터 일부 보수 공사 중이다.
연지정, 연지교 쪽으로 들어서면, 덕전호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있지만, 나는 다시 취향정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취향정은 어젯밤에 들렸었지만, 아침에 다시 마주하고 싶었다.
연화교 오른쪽 연꽃 자생지 호수 위에도 밤새 봄비가 내렸지만, 여전히 바싹 말라 보이는 갈대 무리는 서로 부비부비 해대며 우애를 다지고 있었다.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겨울의 희미한 그림자가 새봄 한편에서 어른어른거리는 듯했다. '이제 그만 편히 돌아가시라.' 이미 새봄이 온 천지에 스며든 4월 아닌가! 밤새 내린 봄비가 마른 갈대숲을 통해 계절의 틈새를 슬며시 보여 주고 있었다.
빛나는 조명 아래 마주했던 어젯밤과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취향정의 호젓한 풍경이 전하는 봄 풍경 속엔, 그윽한 봄 향기가 실려있었다.
눈부시게 찬란한 아침 햇살이 그리웠지만, 아직 하늘엔 짙은 회색빛 구름만 가득했다.
취향정(醉香亭)은 '연꽃 향기에 취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취향정은 1917년에 세워진 덕진공원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 중 하나이다. 그러나 건립자가 친일파 박기순이라는 역사적 아픔도 함께 간직한 곳임을 기억해야 할 곳이다.
취향정에서 덕진호 오른쪽 호수를 들여다보면, 이곳이 유명한 연꽃 군락지임을 실감하게 된다.
연꽃은 6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여름꽃이니, 이날은 그 만개한 자태가 가득 들어찰 연꽃 군락지를 상상하며 걸었다.
연화교를 따라 멀리 바라보면, 연화정 도서관이 보인다.
연화정(蓮花亭)은 최근 한옥 도서관으로 재건축되어 덕진공원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아름다운 곳이다.
이제, 연화교를 따라 연화정 도서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 연화정 도서관과 주위 풍경은 다음 회에서 스케치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