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안길에 새긴 이름,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 이야기

전주한옥마을 교동미술관 사진 전시회

by Someday

전주 한옥마을 교동 미술관은 시·도가 만든 단체가 아닌 개인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재를 들여 탄생한 공간이다. 이곳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500여 명의 근로자가 종사하던 약 2,500 여평의 백양 메리야스 공장 터였다.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그 시절 공장의 정취를 살려 봉제공장 일부의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내부는 전시관으로 개축하여 2007년 개관했다. 지금도 교동 미술관 정원에서는 당시 사용하던 싱거 재봉틀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전주 한옥마을 교동미술관


현, 교동 미술관(전, 봉제공장)/ 백양 메리야스 공장 일대 전경/ 현, 최명희 문학관(전 봉제공장) / 현, 교동 미술관 일대


교동 미술관 정원

싱거 71-101-고무줄달이 기계, 소매달이 기계 / 황순례 작, <소년>


정원 안쪽 작품 2점(정원 출입 금지, 작품 설명이 보이질 않는 거리였음)




교동 미술관의 특별한 사진 전시

'뒤안길에 새긴 이름' -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성 노예 피해 여성의 이야기

비영리 단체 겹겹 프로젝트는 지난 3월 31일부터 5월 5일까지 전주 한옥마을 교동 미술관에서 '뒤안길에 새긴 이름' 사진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해방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중국에 남겨져 살아야 했던 피해 여성 13명의 삶을 사진과 영상, 유품, 기록물 등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특히. 이분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위안부'의 존재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으며,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악몽의 세월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교동 미술관 유래 / '뒤안길에 새긴 이름' 13명의 이야기 / 교통미술관 유래



관람객들은 깊게 파인 할머님들 얼굴이 담긴 60여 점의 사진을 마주하면서 마음 한 편이 몹시 아려왔을 것이다. 이분들 삶의 흔적이 담긴 자료들을 마주하자니, 한 분 한 분의 얼굴과 그 이름이 마치,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듯 느껴졌다. 할머님들은 절대 치유될 수 없는 무거운 상처를 품고 살다 가셨지만, 조국과 고향 산천을 얼마나 사무치도록 그리워했을까, 이 그리움이 우리 가슴을 스르르 비집고 들어오니, 마음이 울컥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의 일제강점기 역사와 전쟁을 뒤돌아보게 했고, 할머님들의 상처와 아픔이 그분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우리 생각은 서로 이어지고, 우리 이야기는 서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전시 기간에는 아티스트 토크와 도슨트 투어, '기억의 편지'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된다고 한다. 전주 한옥마을 교통 미술관을 찾는 이들은 누구나 이 사진 전시회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수단 할머님




김순옥 할머님



리광자 할머님



박서운 할머님



박우득 할머님



현병숙 할머님



배삼엽 할머님



이귀녀 할머님



김의경 할머님




하상숙 할머님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55471

먼 길 떠나는 '위안부 피해자'인 고 하상숙 할머니 기사가 있어 함께 담는다. - 2017년 8월 30일 오마이뉴스



백넙데기 할머님



박차순 할머님



박대임 할머님



빼앗긴 이름과 말 - 관련 자료들





*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 법정(이하 2000년 법정으로 약칭함)은 일본군 성노예제와 관련된 범죄와 책임을 전쟁 직후 제대로 밝히고 처벌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2000년 12월 피해자와 피해국 관련단체 · 일본 인권단체 · 국제법률가 등이 모여 만든 민간차원의 국제인권법정이다.

당시 무력갈등 아래의 성폭력 문제와 맞물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운동의 중요주제로 부상하였지만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하여서는 당시 만들어진 국제형사재판소주 1에서도 처벌할 수 없었다.

2000년 법정은 이 문제를 세계의 저명한 법률가들과 피해국, 일본의 인권단체가 뉘른베르크 법정이나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과 같이 헌장을 만들고 법정 형태를 취하여 진상을 다루고자 하였다. 또 한편 다양한 NGO의 참가를 기초로 법정 개설을 전후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군‘위안부’ 문제와 분쟁하의 성폭력 문제를 공유하고 세상에 알렸다.

한국에서 2000년 법정은 1998년 12월 7일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 한국위원회’를 발족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위원회는 활동가 및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구성되었다. 준비 과정에서 한국과 북한은 일본 패전 이후 분단되기 전에는 공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하나의 기소장으로 작성하자고 합의하였다. 이에 단일의 검사단을 구성하여 하나의 기소장을 판사단에 제출하였다.

전범재판은 일반적으로 개인을 문제 삼으나 2000년 법정은 개인책임과 국가책임을 함께 다루었다. 법정은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었고, 일본천황 히로히토의 유죄와 일본정부에게 국가책임이 있다는 일차 판결을 하였다.

2001년 1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최종 판결로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내용은 중일전쟁주 2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아시아 각지에서 구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행한 강간과 성노예제, 인신매매, 고문 등의 전쟁범죄는 일본천황 히로히토를 비롯하여 10명의 피고인과 일본정부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피해 당사국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유수의 법률가들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의 범죄성과 분쟁하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국제적으로 진작시킨 법정이었다. - 자료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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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엔 전주한옥마을 전통술박물관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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