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은 약 500년 전부터 시골 민가가 모여 마을을 형성했다.
양반가 고택과 어우러진 정원, 초가 돌담(총 5.3㎞)이 부드럽게 굽어진 산책길이 아름다운 외암마을은 앞으로 넓은 농경지, 뒤로는 설화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구룡지에 위치해 있다. 국가 중요민속문화재(236호)로 지정된 외암민속마을은 상류층 가옥과 서민층 가옥 동의 전통가옥 60여 채가 보존되어 있다. 이곳엔 조선 후기 중부지방 시골마을의 생활양식, 풍속, 습관과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보존되어 있으며, 실제 농사에 종사하는 주민들에겐 삶의 터전이기도 한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이며, 우리의 원형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외암'이라는 마을 명칭은 외암리의 서쪽에 있는 '역말'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역말에는 조선 초부터 시흥역이 있었다. 예안 이 씨 중심의 외암마을은 시흥역 말들을 거두어 먹이던 곳으로 '오양골'이라고 불렀다. '오야'에서 '외암'이라는 마을명이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암민속마을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 외암(巍巖) 이간 선생이 살던 곳으로 이곳 아름다운 풍경과 옛집들은 영화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그 진가를 널리 알린 바 있으며, 2021년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된 민속마을이다.
매표소에 들려 마을 앞에 흐르는 물길 위에 놓인 반석교를 건너면, 다양한 표정의 장승들이 외암 민속관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오랜 세월 마을의 재액을 막아내기 위한 장승 가족의 기원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초가장 및 담장장 입구로 들어서니, 외암 민속관 쪽 저잣거리 광장에서는 벌써부터 버스킹 공연 소리가 흥겹게 울려온다. 500년 전, 시공간 여행길에서 김광석 노래를 들고, 함께 흥얼거리며 걸으니, 이 또한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4월 18일(토) 오후, 날씨가 참으로 화창했다. 마치 봄을 밀어낸 여름이 들어선 듯 태양은 뜨겁게 이글거렸고, 바람은 훈훈했다. 정승 가족들이 서있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서면, 버스킹 공연 장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외암민속마을에서는 매년 정월에는 대보름 맞이 행사와 장승제, 10월에는 관(冠)·혼(婚)·상(喪)·제(第)와 농경문화를 주제로 한 짚풀문화제, 11월에는 동지 행사 등 전통문화를 보존하여, 관람객에게 자연친화적인 볼거리와 다양한 체험거리를 제공한다. 체험협의회(영농조합)에서는 한옥민박체험, 영농체험, 먹거리 체험 등을 진행한다.
마을 앞에 조성된 조선시대 시장인 저잣거리에서는 다양한 먹거리와 공연 관람은 물론, 지역 특산물도 구입할 수 있다. 이날 저잣거리 광장에서 진행된 버스킹 공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김광석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 모습들이 편하고 정겨워 보였다.
외암민속마을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안내
감자 수확, 강정 만들기, 고구마 캐기, 고추장 체험, 화톳불 체험(고구마, 밤), 도자기 냄비받침 액자, 도자기 풍경 이야기, 떡메치기, 미션! 문화재를 찾아서, 방문 걸이, 솜사탕 만들기, 엿 만들기, 옥수수 수확, 외암마을 로고 연필꽂이, 원형 나무 등, 율무 팔찌 외 16가지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외암 민속관 홍보관
저잣거리를 지나면 외암 민속관 홍보관이 있다.
홍보관 앞뜰에서 천천히 건축물 외관을 살펴보며, 탈곡기, 베틀, 지게 등도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외암 민속관 홍보관을 나서면 상류층 가옥으로 이어진다.
상류층 가옥으로 들어가는 대문은 문간채 가운데 정면에 있고, 안채와 사당으로 직접 이어지는 문은 오른쪽에 따로 있다.
사당으로 직접 들어가는 문 옆쪽으로는 고풍스러운 정자도 보인다. 안채와 사당은 사랑채를 지나서도 갈 수 있다. 정자 아래, 수풀 사이로 보이는 연못의 정원수는 마을 뒷산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끌어들였으며, 이렇게 끌어들인 물은 외암민속마을 방화수로도 쓰인다.
상류층 가옥 구조를 살펴보고, 문간채 한가운데 있는 대문을 통해 가옥으로 들어간다.
대문을 포함하는 건물에는 하인들이 기거하는 방과 창고, 외양간 등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다. 방과 마루로 구성되는 남자들의 생활공간으로,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글을 익히고 손님 맞는 예절을 배운다.
안채는 집터 내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건물로 외부인의 출입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 아늑한 곳이다.
안채 오른쪽에는 사당이 있고, 안채 왼쪽 뒤로 장독대가 있다.
사당은 조상의 신주(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가묘라고도 한다. 사당에는 4대 조상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의 신주를 봉안한다.
사당이 없을 경우에는 사랑 대청 위에 벽감을 만들어 조상의 신주를 모시기도 한다.
상류층 가옥 바로 곁으로 서민층 가옥들도 중류층, 일반적인 서민층, 초가삼간 서민층 가옥으로 나누어져 있다. 자연스럽게 상류층 가옥과 서민층 가옥을 비교해 보게 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옥의 크기와 구조, 세간살이 등으로 경제적 풍요가 단번에 느껴진다. 물론 삶의 질과 행복의 척도를 부유함 만으로 딱 가름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최고의 입지, 똘똘한 아파트 한 채 열풍으로 온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으니,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을 공용 마당에서는 관람객 누구나 투호놀이와 제기차기를 즐길 수 있다.
살을 한 번 던지기 시작하거나, 제기를 차기 시작하면, 승부욕이 절로 솟는 민속놀이로 최근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긴다.
투호놀이: 서울 양반 가정이나 궁중에서 하던 놀이. 명절이나 집안에 큰 잔치가 있어 일가친척이 모일 때 여흥으로 하는 우아한 예절을 바탕으로 한 우아한 놀이다. 후원 마당이나 대청마루에서 큰 항아리를 놓고 동서로 편을 갈라 그 속에 살(矢)을 던진다. 항아리에는 귀가 달려 있고 살에는 아름다운 무늬가 색색으로 물들어 있으며 편에 따라 빛깔이 다르게 되어 있다. 이 살을 던져 항아리 속에 들어가면 점수를 따는 것이다. 많이 들어갈수록 이긴다. 살이 적중하여 항아리 안에 들어가면 춤추며 기뻐하고 하나도 넣지 못하면 얼굴과 이마에 먹칠을 해서 벌을 주기도 한다.
제기차기: 우리의 민속놀이로, 설날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겨울철에 즐기는 놀이다. 구멍 뚫린 엽전을 종이로 싸서 구멍으로 빼내어 만들기도 하고, 기다란 풀을 묶어서 만든 제기도 있다. 발로 차서 떨어뜨리지 않고 많이 차는 사람이 이긴다. 오늘날에는 비닐로 만든 제기를 사서 즐기기도 한다. - 자료 출처: 위키백과
중류층 가옥의 문간채도 집으로 들어오는 대문을 포함하고 있다.
이곳은 수장 공간과 거주 공간이 연결되어 있으며, 일부 가옥에서는 문간채가 사랑채의 역할을 함께 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생활 도구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면함을 느끼게 한다.
중류층 가옥은 보통 안방, 대청, 건넌방, 부엌, 곳간채, 문간채로 나누어져 있다. 상류층 가옥의 구조보다 그 규모는 작았지만, 경제적으로 꽤 여유 있어 보였다.
중류층 가옥의 곳간채에는 농기구나 생활 용구 등을 보관한다. 바닥에 마루를 깐 곳에는 습기를 피해야 하는 곡물이나 저장 음식의 수장 공간으로 사용했다. 곳간채 오른쪽에는 장독대와 움집이 있고, 왼쪽에는 뒷간이 있다.
서민층 가옥 2에는 안방, 건넌방, 대청, 부엌, 헛간이 있다.
제법 규모가 큰 서민층 가옥으로 중부지역의 전형적인 민가인 'ㄱ'자 집이다.
안방은 크게 두 칸을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집은 안방과 윗방으로 나누어 여성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건넌방은 남성의 공간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 집은 안방과 건넌방 문 앞에 댓돌만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대청이 있어야 할 공간(사진 가운데)은 텅 비어 있다.
헛간은 저장 공간으로 따로 세워진 건물이다. 곡물이나 농기구, 생활 용구 등을 보관하며, 일부에서는 외양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뒷간의 크기는 중류층 가옥과 비슷하다.
활짝 열려있는 초가삼간의 사립문으로 들어선다. 서민층 가옥 초가삼간이 그림 같다.
보기엔 이렇듯 포근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런 초가삼간에서 살아간 서민들의 삶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집 크기로 신분을 나타내던 옛날이나, 아파트 평수로 삶의 질을 평가받는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가장 규모가 작은 서민 가옥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초가삼간 서민층 가옥은 방 2칸과 부엌이 전부다. 부엌 옆에 붙은 방이 안방(큰 방)이고, 그 옆방은 윗방이라 불린다. 집이 작아서 방을 사용할 때, 남녀의 구분이 아닌 세대별 거주가 일반적이다. 이 집 안채는 안방과 작은방이 나란히 붙어있다. 더 이상 줄일 것도 더 할 것도 없었을 고단한 삶이 느껴진다.
닭장 속 닭들은 통통하기보단 늘씬한 편으로 털에 윤기가 흘렀다. 키우고 관리하는 이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초가삼간집을 나서서 바라본 외암마을 외암 민속관 마을 풍경이 무척 고즈넉해 보였다. 관람객들의 흥겨운 소리도 마치 500여 년 전과 현재를 분리시킨 듯 느껴졌다. 문득 세상이 조용하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이제, 중류층 가옥과 상류층 가옥 사이 돌계단을 올라간다. 먼저, 왼쪽에 있는 이 간 선생 묘를 둘러보고, 오른쪽 민박촌으로 이어지는 산책길로 들어설 것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외암(巍巖) 이간(李柬, 1677~1727) 선생은 ‘인간과 동물은 같다’고 해석한 17세기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표적인 학술 논쟁이었던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낙론(洛論)을 이끌었던 중심인물이다. 저서로는 ‘외암 유고’ 등 16권이 있다.
마을로 향하는 길, 정자와 정원, 물길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는 언덕을 끼고 부드럽게 굽어진 산책길이 이어진다. 자연 속을 천천히 걷는다. 마을은 안 길을 중심으로 샛길들이 이어지면서 돌담과 집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담장은 대부분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옥들은 모두 사랑채와 대문채 사이의 사랑마당에 정원을 꾸며 놓았다.
집집마다 각각 특색 있는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마을에서 건재고택, 송화 댁, 교수 댁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커 보였고, 외암마을의 대표적인 고택의 정원인 만큼 원래의 모습이 계속 잘 보존되길 바란다.
작년 여름에 다녀갔을 땐, 이 '아산 외암마을 역사 문화 전수관'은 전수관, 사무소, 보관창고 신축 및 주변 정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당시 공사기간이 2024년 9월 25일 ~ 2025년 9월 24일까지라고 되어있었으니, 이미 지난가을에 완공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말끔한 새 건물의 자태가 오히려 민속마을에서 너무 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건축물도 다시 500년이 흐른 뒤에는 고색 빛깔로 조화를 이룰 것이다. 연륜은 한꺼번에 뛰어넘을 수 없으니 더 소중하다.
외암마을 역사 문화 전수관과 농촌체험 운영사무실은 좀 떨어진 거리에 각각 위치하지만, 편의상 한 곳으로 모았다. 아산시는 외암마을의 고유한 전통 경관을 보존하고 계승해 나갈 2026년 아산 외암마을 역사 문화 전수관 교육 프로그램을 상·하반기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문화유산과 041-536-8457
외암마을 농촌체험 운영사무실은 마을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과 민박에 관한 문의 및 예약을 담당한다. 전통 프로그램 체험, 농수산물 수확 체험을 비롯한 민박 예약 관련 문의 전화 041-541-0848
돌담이 정겨운 외암 마을 풍경 스케치 - 외암마을 주택들은 각자 개성 넘치는 이름을 달고, 민박 스테이 촌으로 거듭났다.
마을에는 가옥 주인의 관직 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참판 댁, 병사 댁, 감찰 댁, 참봉 댁, 종손 댁, 송화 댁, 영암댁, 신창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으며, 이들 가옥은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외암민속마을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봄볕 내리는 돌담길을 걷노라면, 아름다운 마을 풍경이 두 눈 속에 쓱쓱 스케치된다.
땅 위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하늘 향해 치솟아 오르면서도 겸손해 보였고, 교만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좁을 길을 따라 걸었다. 따뜻한 봄볕이 흐르듯 내리는 외암마을에서는 초록빛 나무도, 각기 컬러풀한 사람도 모두 물처럼 흘러갔다. 사람들도 건강한 초록 나무처럼 자기만의 긴 그림자를 달고, 외암마을을 감아도는 봉수산 물길처럼 500여 년의 시간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외암마을은 동북쪽에 위치한 주산인 설화산과 서남쪽에 위치한 봉수산을 잇는 축선에 만들어진 일정한 영역 안에 가옥들을 배치하여, 마을의 전체적인 모양은 동서로 긴 타원형이다. 설화산 자락이 완만한 구릉을 만들면서 마을 앞쪽으로 이어져 내려와, 서쪽의 마을 어귀는 낮고, 동쪽은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을 보인다. 외암마을 가옥들은 이런 지형을 따라 대부분 서남향을 향하고 있다.
5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외암마을을 돌아보며 시공간 여행을 마치고 나니. 2026년 4월 18일 봄날 오후 한가운데 딱 서 있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산바람과 강바람이 달아오르던 한낮 더위를 달래주듯 머리카락 사이로 들고났다.
* 외암민속마을 주차: 넓은 제1 주차장과 제2 주차장 모두 무료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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