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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Nov 07. 2021

<84번가의 연인> 대서양을 오간 20여 년 우정

책을 매개로 20여 년간 주고받은 헬렌과 프랭크의 편지


84 Charing Cross Road, 1987

개요  미국, 영국 / 100분 

감독  데이비드 휴 존스

출연  앤 밴크로프트(헬렌), 앤서니 홉킨스(프랭크)



  미국 작가 헬렌(Helene Hanff, 1916–1997)과 영국 마크스 서점 프랭크가 책을 매개로 2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 담긴 이야기다. 헬렌 한프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 <채링 크로스 84번지>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즐기는 무명작가 헬렌 한프는 뉴욕에 산다. 원하는 책을 적당한 가격에 사고 싶은 그녀는 런던 84번가 마크스 서점에 편지로 책을 주문한다. 

  직원 프랭크 도엘과 책을 매개로 1949년 10월 5일부터 20여 년간 편지와 주문서, 돈과 책, 선물이 대서양을 오간다. 두 사람은 책을 통해 서로 교감한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면서 우정도 차곡차곡 편지처럼 쌓여간다. 헬렌은 마크스 서점 직원들과 프랭크 가족과도 우정을 나눈다.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헬렌은 경제적인 이유로 프랭크(Frank Percy Doel, 1908–1968) 살아생전 영국을 방문하지 못한다. 그녀는 프랭크가 죽고 나서야 그토록 동경했던 런던 84번가 서점을 찾아 회상에 젖는다. 

  유럽 대륙 전체가 2차 세계대전 소용돌이 속에 휩싸였던 시절, 섬나라 영국은 최악의 상황에서 조금 비켜있었지만, 사람들은 식량을 배급받아 근검절약하며 살아간다. 미국 뉴욕 경제사정은 유럽보다 낫지만, 서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열심히 일하며 살아도 돈을 모으기 힘드나 보다. 영화가 끝나가도 헬렌과 프랭크 모두 경제적으로 나아지질 않는 것을 보면. 

  

  미국과 영국의 평범한 사람들 삶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시공간을 넘나들며, 헬렌과 프랭크 사이에서 또 한 사람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프랭크와 직원들은 헬렌이 자주 보내주는 선물이 항상 고맙다. 답례로 동네 할머니가 수놓은 리넨 테이블보와 직원들이 함께 사인한 카드를 보낸다. 프랭크 아내 노라 역시 헬렌에게 가족사진과 감사 편지를 보낸다. 서신이 오가면서, 당시 미국과 영국 사회 모습,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헬렌은 미국에서 선거 운동에 참여하고 대학 시위 현장에서 자기주장을 펼친다. 그 상황이 경찰차에 실려 가는 TV 화면으로 방영되기도 한다. 영국에서 프랭크 부부가 투표하는 모습이 TV 화면을 채우면, 헬렌의 축하 인사 편지가 전해진다. “처칠에게 당선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배급 좀 늘려 달라고 하세요."라고. 대서양을 넘나든 두 사람 수많은 세월은 진한 우정으로 남는다.


  세월은 흐르고, 마크스 서점에도 변화가 생긴다. 프랭크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서점 직원 조지를 찾아가 헬렌의 편지를 읽어준다. 조지는 늙고 병든 자신에 대해 ‘불평하면 뭐 하나!’라며 삶의  무상함 조차 초월한 듯 말한다. 마침내 조지는 세상을 뜨고, 직원들도 하나 둘 서점을 떠난다. 

  영화 속에는 두 사람을 통해 많은 책이 등장한다. 해즐릿 수필집, 존 돈의 시와 산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제인 오스틴의 책, 리 헌트 에세이, 라틴성경, 와이엇 존스 시집, 하디 한정판, 뉴먼의 대학론, 퀼러 작품집, 엘리자베스 시대 시집 등등. 헬렌의 지식과 영감은 대학에서가 아닌 독서로 습득된 것들이다. 

  두 사람이 교환한 이야기는 다양하고 아름답고 풍부하다. 근대 문학선집 작가들, 책의 장정과 디자인, 책을 읽을 때마다 듣는다는 바흐와 코렐리 음악까지. 또 헬렌은 중고 책 여백에 쓰인 글을 무척 좋아한다. 그녀는 그 책을 읽었을 사람과도 상상으로 교감하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영화는 끝났지만, 헬렌은 나의 상상 속으로 들어와 가득 차 있다. 한동안 함께 해도 좋을 사람이다. 

헬렌과 프랭크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은 아날로그 감성에 익숙한 내겐 가을볕처럼 따뜻하기도 하고, 스쳐가는 갈바람처럼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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