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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Oct 29. 2021

<8월의 고래> 고래가 지나가면 가을이 온다.

“사진은 희미해지지만 추억은 영원하다.”


The Whales Of August, 1987

개요  미국 / 90분

감독  린지 앤더슨

출연  베티 데이비스(리비 스트롱), 릴리안 기쉬(사라 웨버), 빈센트 프라이스(마노브 남작)



  메인 주(State of Maine)는 미국 북동부 뉴 잉글랜드 가장 북쪽에 있으며 남쪽과 동쪽은 대서양에 닿아 있다. 매해 8월, 산란기 맞은 향유고래 떼들이 지나가면, 그 장관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모여드는 유명한 곳이다. 

  고래가 지나가면 가을이 온다. 사라와 리비 자매는 메인 섬 바닷가 절벽 위 낡은 이층 집에서 60여 년을 살아오고 있다. 자매의 추억은 이 섬에서 머물기도 하고 흐르기도 한다. 젊은 날 아련한 추억은 영화 첫 장면 속에 흑백사진으로 흐른다. 고래 떼가 지나가던 날, 사라와 리비, 이웃 티샤는 고래 창자에서 용연향을 구하기 위해 바삐 뛰어다닌다. 생기발랄하던 젊은 날 모습은 순간에 사라지고, 노년의 모습들이 화면에 가득 찬다. 


용연향: 향유고래 창자 속에서 생성되는 물질. 오랜 시간 바다 위를 떠 다니며 햇빛과 소금기로 딱딱해진 용연향은 고급 향수 재료로 쓰이며, ‘바다의 황금’이라 불릴 만큼 비싸게 거래된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섬과 푸르른 바다, 빛나는 태양, 불어오는 바람은 그대로다. 밤이면 달빛이 바다 위에 뿌려 놓은 은화까지 영화 배경은 변함없는데, 사람들만 저마다 혼자 바쁘게 세월을 흘러왔다. 첫사랑, 결혼과 출산, 남편과 사별. 자매에게 인생은 지나치게 길진 않았지만,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여정이다. 

리비의 말처럼 “사진은 희미해지지만 추억은 영원하다.” 


  사라가 남편과 사별하고 힘들어할 때, 동생 리비는 15년간 언니 사라 곁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 후, 남편을 사별한 리비가 시력을 잃게 되자, 사라는 15년간 동생 리비를 돌보며 함께 살고 있다. 

  사라는 장미꽃을 사랑하고, 그림을 그리며, 이웃과 교류하며 밝게 살아간다. 리비는 시력을 잃고, 혼자만의 세계에 머문다. 외부를 향해 냉소적이며 부정적이다. 리비는 “세상의 모든 건 언젠가 죽어.” “11월엔 벤치도 떠나고 싶어.” “매튜(사별한 남편)는 11월에 죽었어.” “벤치나 지키고 있을게.”라며, 죽음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사라는 이젠 ‘애나(리비의 딸)가 리비를 돌봐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몰락한 러시아 귀족 마노브 남작은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겨준 보석들을 팔아 세계여행을 하던 중, 아름다운 메인 섬에 한동안 정착하고 있다. 남작은 이날 직접 잡은 청어를 자매 집에 갖다 주고, 사라는 고마움의 뜻으로 남작을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세 사람은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았으나, 까칠한 리비로 인해, 분위기가 어색하다. 남작은 “인생에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라며, “종종 표류했지만, 항상 떠 있었다."라고 말한다. 남작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간 후, 자매의 일상 균열이 겉으로 드러난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흔들기도 하고, 짓누르기도 한다. 사라와 리비는 이날 밤, 각자 긴 밤을 보내며 힘들어한다. 

  이날은 사라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사라는 필립(죽은 남편) 사진을 들고, 혼자 결혼기념일을 자축한다.  사라는 남편과 행복했던 추억에 젖어가며 나름 평온한 시간을 보내려 한다. 

  그러나 평소 까칠한 리비는 남작의 저녁식사 초대부터 마땅치 않았다. 혼자 자기 방에서 이런저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리비는 신경질적으로 사라를 찾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사라와 리비의 마음이 계속 어긋나는 어두운 긴 밤이 천천히 흐른다. 리비는 “삶이 날 속였어!”라며 중얼거린다. 두 사람 모습이 안쓰럽다. 


  노년의 기억은 서서히 소멸되기 시작하고, 두 사람의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질 않는다. 낡은 집도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사라는 집을 팔고 떠나야 할지 말지, 우울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사라는 항상 바다를 향해 큰 창을 내고 싶어 했다. 동생 리비는 늙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필요가 없다며, 까칠한 반응을 보여왔다. 큰 창을 통해 고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라의 안타까운 마음이 리비에게는 전해지지 않는지. 시각장애가 있는 리비의 진한 고독도 함께 느껴진다. 

  

  새 날이 밝았다. 수리공 죠수아는 아침부터 쿵쾅거리며 자매 집으로 들어선다. 뜻밖에도, 동생 리비가 죠수아에게 바다로 향한 큰 창을 내달라고 청한 것이다. 표정이 한결 밝아진 사라도 지난밤 갈등을 접고, 섬에 남아 리비를 계속 돌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사라는 리비 손을 잡고 벼랑 끝으로 걸어간다. 8월이면 지나가는 고래를 보기 위해.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어제처럼, 먼 옛날처럼 변함없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고래가 지나가야 가을이 오는데, 기다리는 고래는 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고래가 오지 않아도 괜찮다. 가을이 오지 않아도 좋다. 사라와  리비도 이대로 멈춰있을 테니. 추억은 영원하고, 더 이상 사람만 혼자 바쁘게 흘러가진 않는다.


    <8월의 고래>는 잔잔하고 단조로운 자매의 일상 중, 1박 2일간 이야기다. 온아한 사라(릴리안 기쉬)와 까칠한 리비(베티 데이비스), 몰락한 러시아 귀족 마노브(빈센트 프라이스), 오지랖 넓은 이웃 동생 티샤(앤 소던), 만물 수리공 조슈아(해리 커리 주니어) 출연진도 5명 노인이 전부다. 


  무성영화 시대 전설적인 여배우 릴리안 기쉬(당시 93세)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던 베티 데이비스(당시 79세)는 <8월의 고래>에서 생의 마지막 연기를 펼쳐 보였다. 


사진출처: 나무 위키 - 릴리안 기쉬 / 베티 데이비스

  자매의 갈등을 담담하게 담아낸 두 여배우의 열연은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이 영화를 찍고, 릴리안 기쉬는 6년 후, 베티 데이비스는 2년 후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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