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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Mar 07. 2023

영국 남자를 울린 동화책

The Scar

갈릴리 호수.

이스라엘을 여행할 당시, 갈릴리 호수 주변을 자전거로 도는 자전거 투어가 있었다.

호수라고 해서, 크기가 일산 호수공원 정도 될까 생각했었다.

자전거 투어라고 하길래, 친절하게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가 존재하는 줄 알았다.

둘 다 예상을 빗나갔다.

자전거를 빌려 타기 시작했을 때, 파도까지 치고 있는 이곳이 호수인가 바다인가 당황스러웠다. 지금 찾아보니, 물이 담수라 호수가 맞기는 하지만, 크기가 어마어마해서일까 성경에도 바다로 표현 되어 있다.

Sea of Galilee.

자전거 도로. 그런 배려는 없었다. 옆으로 쌩쌩 달리는 자동차 옆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타본 적 없는 자전거핸들과 심장을 동시에 부여잡고 돌길을 달려야 했다.


길은 점점 경사가 심해지는데, 브레이크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있는 힘껏 쥐는데도 속도가 잡히질 않았다. 자전거는 경사로를 따라 점점 더 빨라졌고, 급기야 핸들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당시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내가 몸을 던진 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다만, 엄청난 속도의 자전거 핸들을 놓는 순간 몸이 허공에 잠시 떴다가 까맣게 된 기억이 난다. 나중에 보니, 선글라스 가장자리에 초록의 잔디가 박혀 있었다. 조금만 더 가서 뛰어내렸다면 바위틈으로 떨어졌을 거라고 누군가 알려주었다. 지나가던 차들이 몇 대 멈추고 사람들이 내렸다. 몸을 가누고 앉았는데 멍했다. 어디선가 물병이 생겼는데 마신 기억은 나질 않는다. 팔에서 피가 흘렀다. 아픈 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몽롱하게 웅웅 거리기만 했다. 함께 가던 두 동생들은 앞서서 가고 있었는데, 차를 타고 가던 누군가가 뒤에서 일어난 일행의 이야기를 전했나 보다. 잠시 후 놀란 동생들이 언덕을 달려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언니 괜찮아?"

 

동생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현실로 돌아오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Mum died this morning.

It wasn't really this morning.

Dad said she died during the night - but I was sleeping during the night.

For me, she died this morning."


준비 없이 책장을 열었다가, 티슈가 여러 장 필요로 했던 책이다.


창문을 열면 엄마 냄새가 사라질 것 같아, 한여름에도 꽁꽁 닫아 두었던 창문을 외할머니가 열어젖혔을 때

꼬마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어린아이의 감정을 온전히 따라가도록, 페이지마다 완벽한 내레이션이 진행된다. 꼬마의 시점으로 바라본 엄마의 죽음과 남겨진 어른 둘 - 아빠와 외할머니.


엄마는, 토스트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빠에게 알려주고 떠나지 않았지만,

꼬마는 아빠가 잘 배울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한다고 했다.


무거운 주제지만, 어둡지 않다.

잔잔한 웃음을 주는 꼬마의 유머가, 곁에 있다면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따뜻해진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책.

<The Scar> by Charlotte Moundlic, illustrated

by Olivier Tallec 


이 책을 읽고 나서, 여러 사람에게 권했었다.

그중엔, 권투를 좋아하고 운동을 매일 두 시간씩 하는 회계사도 있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그는 책장을 넘기면서 예기치 않은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며 당황했다.

 

이거 애들 보는 책 맞느냐며...

이거 애들 보는 책 아니라고...

애들 보는 책이 왜 이러냐고...


결국 마지막 책장을 끝낸 그는... 표지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전송했다. 너도 보라며...


동화책을 읽어줄 아이가 없어도, 한 권쯤 소장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본다.

수시로 마주하는 내면의 아이가, 용감하게 성장해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들은 피가 흐르는 상처는 내버려 두고 일단 뇌 사진과 엑스레이를 먼저 찍었다.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팔에 난 상처에 드레싱을 해주고 집에 가라고 했다. 한동안 자전거가 무서워 타질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았다. 흉은 남았지만 사는데 지장은 없고, 자전거도 다시 탄다.

마지막 장의 꼬마처럼,

조금씩 커가고 있는 걸까.


오늘의 권장도서.

<The S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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