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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Apr 09. 2023

놀이터에서 영어 쓰는 엄마

본 적 있으세요?

놀이터, 도서관, 식당, 버스 정류장 등 공공장소에서 아이와 영어로 대화하는 엄마 본 적 있으신 분. 단, 엄마가 외국인이거나 영어가 더 편한 재외동포분들을 제외하고.


영어교육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분명, 예전보다 영어를 편하게 말하는 아이들도 늘었고 영어 가능한 분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는, 한국인의 악센트 가득한 영어로 아이와 대화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엄마표 영어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분들은, 집안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오히려 밖에서 본인이 아이 영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다지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알던 어머니 한 분이, 엄마표 영어를 하시는 분이라고 옆에 앉아 계신 분을 소개해 주셨다.


"집에서 아이들 영어를 직접 해보시니 어떠세요"

"아, 네네... 아니... 저 영어 잘 못해요. 애들도 잘 못해요. 그냥 오디오 북 들려주고 있어요..."


사회문화 심리학자이자 건축 비평가이기도 한 김승귀 교수께서, '한국은 이러한 사춘기적 자의식이 상당히 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다.'라고 했다. 자의식. 쉽게 말하자면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에 대한 의식이다. 사춘기 때 강하게 드러나는 자의식은 남들의 시선이나 나에 대한 그들의 평가에 민감하다. 한국인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내가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괜히 튀어서 두드려 맞지 말고, 무난하게 무리 속에서 잘 섞여 살아남기를 바라던 부모님의 바램이, 세상은 바뀌어도 여전히 우리 DNA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굉장히 독특한 감각으로 주목받는 사람들의 성장과정 속에, 어김없이 '따돌림'이 있었던 것으로, 남과 다르다는 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들이 두 돌도 되기 전, 좋아하는 영어그림책을 들고나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테이블에서 소리 내서 읽어줄 때 지나가던 이들의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사회와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사춘기적 자의식'이었을까. 마치, 영어에 유난 떠는 엄마인 듯, 혹은 아이가 토종 한국인 엄마와 어딘가 달라 보이는 것 같지 않은가에 대해,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던진 말들이 주문한 음식보다 먼저 그릇 위로 담겼다.


엄마표 생활영어 책에서 놀이터 편을 보면서... 실제로 이 말을 주변 엄마들과 아이들 의식하지 않고 연습 삼아 아이에게 써 볼 엄마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조차도 놀이터에서 영어로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이기에. 물론, 그냥 하면 되겠지. 드러내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아이가 먼저 영어를 쓰지도 않는데 엄마가 놀이터에서 영어로 말하게 되진 않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텐데, 보고 있는 눈과 귀가 사방에 있다는 것 자체로 신경이 쓰였다.  


가끔, 영어로 인터뷰하는 연예인들이나 영어 시험만을 위해 강의하는 영쌤들의 발음에 대한 지적이 올라오는 것을 본다. 듣는 귀가 상당히 좋은 분들이 도처에 있다 보니, 이 사회에서, 문법도 발음도 내 맘대로지만 소통을 위한 영어를 섣불리 내뱉기가 어렵다.


아이들도 학원에서 배운 영어, 한 마디 두 마디 해볼 법도 한데, 공과 사를 철저히 분리하듯 언어와 학습이 분리되어 아웃풋은 종이 위로만 나온다. 영어를 아무리 못한다고 손사래 치는 분들도 굿모닝은 안다. 굿모닝 한다고 내 아이 영어가 언어로 바로 습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에도 말했지만 엄마가 던지는 굿모닝의 아웃풋이 아이들에겐, 영어가 언어로 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것임을 믿어보자.


엄마표 영어를 집에서 하는 분들이, 자유롭고 과감하게 집 밖에서도 여러 상황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알게 모르게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응원합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차고 넘치는 인풋만 기다리기보다, 하나의 인풋도 여러 상황의 아웃풋으로 써먹어 볼 수 있다면, 다음의 인풋 퀄리티가 높아질 수 있다. 왜냐하면, 사용처를 알고, 목적이 분명해서 배우는 말은, 언젠가 막연함을 기약하며 배우는 학습보다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라이브 아카데미라고 하는 영어사이트 구독자 수가 상당하다. 영어로 말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알기에, 상당한 구독자여도 빙산의 일각일 숫자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영어로 말하기 위해, 일부러 밋업을 만들고 시간을 조정하고 원어민을 섭외하려고만 할까. 우리끼리도, 구수한 한국 악센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그냥 하면 안 될까. 놀이터에서, 도서관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슈퍼 마켓에서 살아있는 말을 일단 아이와 신나게 아웃풋 해보자. 우리 억양대로면 어떤가. '영어도 못하면서 영어 쓰기는'... 이란 소곤거림이 뒤통수에 박히더라도. 관종인가 유난인가. 그런 시선 개의치 말고. '영어 못해서 영어를 쓰고 있다' 는 당당함으로.


시험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영어는 바뀌지 않는다는 자조적 목소리가 깊다. 시험제도는 개인이 바꿀 수 없겠지만, 문화는 다수의 개인이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책으로 배운 말을 아웃풋 할 수 있는 문화는 시작해 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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