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은 말이죠...
눈이 내린다. 창 밖으로 온통 하얗게 덮인 세상을 본다. 지나가는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검은 패딩을 입고, 패딩에 달린 털모자를 푹 덮어쓰고 있다. 움직이는 흑백사진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쑥 글이 쓰고 싶어졌다. 마음 맞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 떨고 싶은 날이 있는 것처럼, 요새 읽은 책을 공유하고 싶어졌다.
[도둑맞은 집중력 STOLEN FOCUS] by 요한 하리. 고요하게 눈 내리는 날 수선 떨며 알릴 책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봐야 할 책이라고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결국 제일 먼저 달려 나와 하얀 눈밭 같은 스크린에 발자국을 남긴다. 읽다 보면 (가끔씩) 바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글자 그대로의 어색한 번역은 거슬릴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공들여 각계각층 오백여 명의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준비한 핵심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본다. 특히, 현대인의 집중력을 '조직적으로 훔쳐가는 sns 대기업'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며,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일상의 선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66일 인문학 대화법]은 김종원 작가의 66일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작가가 말하는 '인문학의 끝'은 바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예쁘게 말하기
거창한 인문학 개요가 아닌, 일상에 절실했던 한 마디. 지갑은 바로 무장해제 되어 작가님의 시리즈 중 다른 두권, [66일 자존감 대화법]과 [66일 공부머리 대화법]도 함께 집으로 초대했다. 삼 백일을 썼어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니 매일 쓰기는 '바로' 흔들렸다. 그것을 보며, 21일이나 40일 혹은 66일을 지속하면 습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믿음은 다소 약해졌다. 그러나 알면서도 바쁜 삶 속에서 무심코 튀어나오는 말들을 살짝 바꿔보니 다섯 살 아들 귀에도 다르게 들렸나 보다. 지난 며칠 동안 주고받은 말과 행동은 이전보다 제법 의젓해진 듯했다. 아들을 보며... 습관은, 마음속의 우선순위가 지속될 수 있다면 언제든 바로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함박눈을 보고 흥분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아이처럼. 눈이 내리는 날 충동적으로 글을 쓰려다가 sns 알람에 수차례 멈칫했다. 문자를 받고 급한 일처리를 위해 들락날락했고, 아이 태권도 데려다주러 다시 왔다 갔다 했다. 돌아와 앉으면, 하얀 화면 위에 뭘 쓰려고 했는지 잠시 멍해졌다. [도둑맞은 집중력]에 따르면, 학생들은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데 19초, 성인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3분이라고 한다. 그나마도 끊어졌다 다시 이어가려면 평균 23분의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오리건 대학 마이클 포스너 교수)... 짧은 끼적임조차 하루종일 걸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바라보고 예쁘게 말하는 습관을 키워가며, 도둑맞아가는 집중력을 지켜보고자 한다.
한글 자판의 '눈'을 영문 자판으로 바꾸니 'sns'가 되었다. 눈 오는 날 충동적으로 글을 쓰려다 알게 된, 쓸모없지만 소소한 재미를 주는 한/영 자판의 관계였다.
글 선생님이 보시면, 글이 아니다 하실 글인 줄 알면서도, 3분. 아니 19초의 집중력을 끌어모아 한 줄 한 줄 엮어 본 눈 내리는 날의 짧은 기록. 그 끼적임만으로 기분이 좋아진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