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영어 유치원은 부담스러운데, 영유 오후반 클래스는 어떨까 싶어 동네 어학원 투어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교육열이 상당히 높은 지역에서 산다. 그에 걸맞게, 선택의 폭도 다양한 듯 보였다. 그녀가 언급한 곳 중 하나는, 얼마 전 기회가 닿아 다녀왔던 곳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이 갖춘 도서관 책의 레벨과 양은 부러웠다. 이 정도 읽을 수준이 된다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만큼 보내주고 싶을 것도 같았다.
아이를 키울 때, 양육자의 철학은 방향을 결정한다. 물론,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기의 기질에 맞다면 호흡을 맞추거나, 아니면 강하게 반발하는 등 여러 가지 변수는 생긴다. 영어의 한? 영어의 자유로움을 주기 위한 노력에도 수많은 방법과 변수가 있음을 본다. 일단, 언제 어떻게 해 줄 것인가에 대한 것조차, 집집마다 정말 다양한 차이가 난다. 그중에서 부모의 경험치에 따른 철학, 재정 능력, 그리고 아이 기질에 따른 양육방식이 큰 변수를 만들어 내는 듯 보인다.
영어가 그냥 너무 좋아, 자기는 영어말만 하겠다고 영상을 보는 데로 척척 듣고 따라 하려는 아이도 보았다. 영유와 잘 맞고 경쟁적인 친구에게, 영유 숙제를 더 잘해가기 위해 과외를 해 준 경우도 있다. 언어 센스도 좋고 기억력도 좋아, 일주일 만에 다시 단어 게임을 해봐도 이전 것을 다 기억하는 아이도 있었다.
반면,
영유 3년을 다녔지만, 엄마와 책을 읽었던 아이보다 글 읽기를 더 힘들어하는 경우도 보았다. 성향도 내향적인데, 어려서부터 한국말 사용이 제한되면서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 경우도 보았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시작했다가 방향성과 방법이 맞지 않아, 영어 거부하는 친구들에게 놀이로 그 마음을 풀어주었던 경험도 있다. 원어민들만 있는 학교에서 생활해도 언어의 자유로움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경우도 보았다.
아빠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지만, 초등아이의 영어접근을 다소 일찍 강압적인 문법으로 시작해서 아이가 ‘영어 우울증‘ 이 생긴 경우를 보았다. 저녁마다 끌려가듯 방으로 들어가 문이 닫힐 때마다, 엄마의 마음은 무거웠지만, 아빠의 생각이 완고하고 확고해 고민인 경우였다. 게다가 동생은 아빠의 그늘에서 다소 자유로워, 동생의 영어는 언니보다 오히려? 편하고 자연스러워 언니는 위, 아래로 치이는 이중고를 겪었다. 물론, 이 또한 견디면서 자라나는 것이 강인한 생명력이고, 우리 아이들의 유연성이겠지만...
영유가 생긴 지도 꽤 되었고 아직까지 성황리에 운영되는 곳도 수없이 많다. 엄마표 영어라는 말이 나온 지도 20년이 넘어가면서 데이터가 차고 넘친다. 영어 도서관을 비롯, 학원 종류 많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 어떻게 영어를 할 것인가. 의 질문에, 그 선택이 명쾌하고 쉽지만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제,
일곱 살 현이는 영어책 보기를 의도적으로 계속 피했다. 할 거 하고, 노는 시간 준다 하면 웬만해서 협조하는 스타일인데. 어제는 어지간히 힘든 날이었나 보다. 마침, 헬륨가스 넣은 별풍선이 우리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풍선으로 향해 가는 현이, 별과 관련된 동화책을 꺼내는 나.
그렇다 한들,
(지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현이가 냉큼 와서 즐겁게 책을 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풍선을 잡았다 놓으며 별풍선 놀이에 온통 마음이 쏠렸다.
영상을 틀어놓고, 현이 노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책 문장과 현이의 모습이 매치되었다.
"현아, 우리 영화 찍자."
"The boy thought he would never catch a star....
He waited... and he waited and ate lunch.... and waited."
문장이 들리면,
현이는 별을 잡으려다 못 잡고 실망해서 돌아서기도 하고,
마냥 앉아 기다리기도 했다.
잠자리채를 휘둘러 별을 낚아보려 하기도 했다.
문장이 나와도 현이가 움직이지 않아
다시 찍고,
찍었는 줄 알았는데 버튼 잘못 눌렀다며
또다시 찍고,
다른 문장이 마음에 들면, 그 또한 영화로 만들어 보자
그에 맞는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듣고 또 들었다.
엄마에게 보내 준 영상 되돌려 보며,
현이는 한 번쯤은 더 들어보지 않았을까.
하. 지. 만.
이러한 과정이 지속적으로 누적되면서
'혼자 읽어 보려는 마음과 힘'을 키우는 시간이
지난하다 보니,
이러한 책 읽기 활동은
이벤트로 끝나버릴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막 아이에게 영어를 시작하려는 분들이,
혼란스러운 건 오히려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과 놀이가 좋은 줄 알지만,
학원이 다가 아닌 것도 알지만,
차고 넘치게 들려줘야 한다는 게 대체 어느 정도인지,
언제 어떻게 무슨 책부터 얼마큼 쏟아부어야 한다는 얘기인지,
영상만 보고도 아이가 영어를 한다는 얘기 듣다가,
영상 틀려고만 해도 도망가는 내 아이한테 괜스레 화가 나고,
학교 내신 하려면 어차피 책 읽을 시간 없고,
말 안 하는 건 다 똑같아져서 괜히 돈 쓸 필요 없다는 말에 그런가 싶기도 하고...
별을 따려면, 많은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그. 래. 서.
양육자에게 북극성이 필요한 게 아닐까.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어디서 왜 오는 것인지도 잘 헤아려보며,
아이와 함께 떠날 긴 여행을 준비해야 한다.
내 아이에게 필요한 짐을, 옆집 아이에게 맞출 순 없는 일이다.
영어는 언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미술 책 한 귀퉁이에 인쇄된 프린트로 온전히 감상할 수 없듯이,
영어도 그렇지 않을까.
영어를 싫어했던 사람으로,
영어를 싫어하게 만들었던 시스템에 억울했던 사람의 입장으로,
끼적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