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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Dec 28. 2022

슬기로운 듣기 생활 2

당신이 흘려들어야 할 흘려듣기의 진실

‘초등영어 흘려듣기, 그렇게 엄마표영어 백날 해도 안 뚫립니다.’와 같은 제목의 영상 조회수가 9만 3천이 넘는 것을 보았다. 역시 흘려듣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꽤나 많은 듯하다.


엄마표영어에 영향력이 큰 책들을 중심으로 흘려듣기 파트를 한 번 살펴봤다. 흘려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효과를 열거한 책도 있고, 부분적 효과성을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흘려듣기에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또 한 편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 듣고 있다고 해서 귀가 트일 리 없다며 흘려듣기 자체에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흘려듣기는 말 그대로 흘려듣기이다. 바람처럼 흘러가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영어를 따라 말하라고 하는 것은 욕심이다"라고 하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거창한 엄마표 영어의 시작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아이영어에 조금 도움이 될까 관심을 가졌다가 이렇게 상반된 의견 속에 시작의 첫걸음이 늦어진다. 밑져야 본전으로라도 해야 하는 건지 시간 낭비인 건지.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다르다 보니 방향을 잃는 분들이 생겨난다.


아이걸음님의 [아이표 영어]에서 “아이가 원해서 하면 의미 있는 듣기예요. 그러니 아이가 좋아하는 걸 틀어 주세요.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걸 틀어주세요.” (p90)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이가 원해서 들으면 의미 있는 듣기라는데 영어학습에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팝송만 듣고 있으면 이것이 도움이 될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결론부터 말해보면, 흘려듣기를 설명한 책들에서 언급한 음원 재료에 대한 기준이 책마다 조금씩 상이하다. 누군가는 영상과 음원을 함께, 누군가는 음원만을. 일상에 적용되는 흘려듣기 방법에서도 차이는 있다. 이렇게 전제가 다르지만 하나로 표현되는 흘려듣기를 놓고, '된다/안된다'의 이분법적 접근은 당연히 혼란스럽다.


레스토랑에 가면 뒷 배경 음악으로 클래식이나 재즈 혹은 팝송이나 가요가 나오면 내가 그 음악에 집중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해도 그 운율이 남아 차분해지거나 순간 꽂힌 부분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음대를 준비하는 학생이 식사 때마다 들리는 배경음악만을 듣고 음악공부를 충분히 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조용히 배경음악으로 흐르던 음원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학생만이 들을 수 있는 혹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 알고 있는 음악이 나올 때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음악에 집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언어발달에 듣기가 가장 기본이고 우선된다는 것에 이견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왜 유독 영어학습에 흘려듣기 집중듣기 등 그 방법이 되네 안되네 끊임없이 의견이 분분할까. 듣기의 인풋은 거의 없이 듣기 평가를 진행했던 시대를 살아온 우리였고, 현재 90년생의 영어 듣기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왜? 교육제도가 바뀌지 않았으니까. (1945년에 지적되었던 내용이 지금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다.) 듣기에 쏟아부어야 할 노력에 비해 빠른 속도로 증명되지 않는 아이들의 아웃풋을 보면서, 결국은 최소한의 인풋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보장해야 속이 시원한데 그렇지 못해 일어나는 ‘의구심’. 바로 이 감정의 분분함이 아닐까 한 번 생각 해 본다.


진정으로 흘려듣기 해야 할 것은 옆집 엄마의 ‘그거 안된다던데’, ‘요즘은 그렇게 안 한다던데’, ‘몇 살까지는 이만큼 듣고 쓰고 말하고 해야 한다던데’와 같이 내 아이와 우리 집 상황을 근거에 두지 않은 조언이다. 흘려듣기가 소용없다고 했던 한 원장님도, 집요함과 꾸준함으로 승부하는 흘려듣기 방식, 혹은 아이가 스스로 재미있게 빠져 들어 듣는 흘려듣기에 전면적 반기를 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람처럼 한 번 빠르게 휘리릭 지나가는 말을 듣고 아이들에게 들었으니 따라 하라고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제 입으로 열 번을 말하는 것이 백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고 이해하면, 방법적으로 다른 제안을 한 것이지 '듣기'를 부정한 것이 아닌 것이다.


'맥락 없는 음원'은 당연히 아이에게 백색 소음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의미 없는 듣기 활동으로 아이들과 불필요한 실랑이를 하지 말라는 의미이지, 일반적으로 영상을 포함 전반적인 음원노출을 흘려듣기라 했을 때, 그 듣기가 크게 효과적이지 않다고 한 것이 아니라고 보면 조금 안정이 될까.


우리 아이들이 한글책을 읽으려면, ㄱ,ㄴ,ㄷ 사운드와 ㅏ,ㅑ,ㅓ,ㅕ의 사운드만 배우고 조합해서 읽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한글사운드를 차고 넘치게 들어 한글을 소리로 알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말하고 읽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영어를 듣거나 쓰는 경우가 적어 인위적으로 그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하는 '영어가 외국어'인 환경이다. 아이들의 영어 발전 속도가 더딘 것은 충분한 듣기 없이, 알파벳과 파닉스 문자로만 바로 읽기를 시작해서이다. 고광윤 교수님은 엄마표 영어의 성공 필수요소의 두 가지로 구어 영어능력과 영어책 읽기의 재미를 꼽는다. 구어 영어능력의 핵심은 듣기이다. 한글을 배우듯, 영어소리도 차고 넘치게 들을 수 있어야 읽기가 가능해진다. 읽기가 언어습득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듣기가 받쳐주지 못하면 그 읽기가 힘들어진다. 우리 아이들의 영어가 힘든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어떤 교수법이든 치료법이든 개개인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그 효과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듣지 않고 언어를 시작할 수 없다. 가정에서 시작하는 영어습득을 강조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배움의 중심이 아이에게 있다면 되는 것이다. 아이가 재미있어서 스스로 꾸준히 영어책을 읽고 영어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면 그것에 집중하면 된다. 실행하는 본을 보이고, 계획을 함께 고민하고, 동행하는 아이를 믿어보자. 싹도 틔우지 않은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을, 내 아이와 전혀 다른 아이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한 방법과, 되네 안 되네 하는 댓글 하나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요점을 정리하자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맥락이 있는 음원/영상시청/엄마가 좋아하는 팝송등 아이가 영어소리에 편하게 노출되는 환경은 언어습득에 필요한 요소이다. 꾸준히 계속해주다 보면, 아이가 더 듣고 싶어 하는 그 무언가가 찾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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