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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an 13. 2023

언니, 그럼 나 이제 공부해야 해?

미켈란젤로: I am still learning. at age 87

아이의 영어를 집에서도 '거든다'? 는 것은 엄마나 아빠 누군가의 노력이 추가되는 일이겠지.

아는 동생은 물었다.

언니, 그럼 나 이제 영어 공부해야 해?



얼마 전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아들이 유치원 안 간다고 해서 매일 아침 실랑이를 벌인다고 했더니, 친구 아들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그랬다고 한다. 학교 가기 싫다고. 그랬던 아들이!!! 겨울방학 끝나면 담임선생님과 헤어진다고 진심으로 아쉬워했다고 한다. 친구 아들의 4학년 담임은 젊은 여선생님이었다. 일 년 동안 아이들을 이끌며, 아이들이 스스로 성취해 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선장 역할을 멋지게 해 주었다는 친구의 표현이 적절한 분임에 틀림없다. 무려 3년 동안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였다. 게다가 3학년은 친구말로, 최악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특강을 나간 적이 있다. 3학년 교실이 나란히 있는 복도에 함께 간 선생님과 들어서니 선생님 한 분이 먼저 다가와 물으셨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는지, 도와줄 부분은 있는지. 이미 교감 선생님께 말씀드려 놓았었지만, 다시 한번 말씀을 나누고 먼저 수업하는 교실 밖에서 '기다렸다'. 담임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도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계셨지만, 수업을 위해... 쉬는 시간이 오분정도 남았을 무렵, 우리가 도착했다는 것을 알렸다.


그제야 우리의 존재를 인지해주셨으나, 간단한 인사말은 생략하셨다. (준비물은 미리 말씀드려 놓았으나, 전달상의 착오인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그걸 왜 이제 말하냐고 입속말을 크게 하셨다. 그녀의 교실은 다소 황량해 보였다. 디스플레이도 비어 있는 곳이 많았고, 같은 방향일 교실이 옆반보다 어둡게 느껴졌다. 기분 탓일까. 수업을 시작하니, 책상에 앉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00 이가 뭐랬어요 00 이가 저랬어요라고 보고부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다음 반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쉬는 시간이 시작하자마자 교실로 미리 들어갔다. 아까, 복도에서 만났던 선생님은 수업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주시고, 그 외에 준비물을 쓰게 되면서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을 옆에 놓아 수업의 편의를 봐주셨고, 아이들의 배움에 신경을 쓰셨다. 쉬는 시간에 교실에 있던 한 아이가 오늘 뭐 하실 거예요?라고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교실은 아이들의 작품이 곳곳에 전시되어 컬러풀하고 생기가 돌았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돌아온 아이들은 차분히 자리에 앉았다.


담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아이들의 일년살이를 겪어본 분들은 알 것이다. 너무나 대조적인 비교가 기억의 조작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중학교 3학년 때, 너무나 폭력적이었던 담임을 바꿔달라고. 반 아이들과 단체로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다가, 교장 교감 선생님의 방문까지 받으면서 아래위 없이 날뛰는 아이들 취급을 받았었다. 그런가 하면, 어렵게 공부해서 뒤늦게 선생님이 되었던 중학교 2학년 국어 담임선생님은 학급 문예지를 만들고, 아이들과 장기를 두며 방과 후에도 친구처럼 놀았던 기억이 있다. 성적순으로 관심도를 분배했던 담임도 있었고, 아이들의 생일달마다 사탕 꽃사지를 만들어 축하해 준 (그 당시) 새신랑 수학 선생님도 얼마 전까지도 찾아뵈었었다.  


실제로 아이들의 인생에 선생님의 역할을 연구한 사람이 있다. <<빅데이터 인문학>>에 나오는 하버드의 경제학자 라지 체티다. 그는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훌륭한 선생님은 진로나 졸업 후 수입 심지어 말년까지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까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상관관계를 밝혀 냈다고 한다. 선생님의 영향이 이럴진대, 엄마 아빠의 영향력은 어떨까.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내 아이와 합이 딱 맞는 분과 만나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 옆에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부모님이 있어주었으면 한다. 아이와 미적분 같이 풀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To 부정사 용법에 대해 구분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어디 가면 높은 성적 받을 수 있는지 배워달라는 것도 아니다.


'엄마표 영어는 부담스럽고, 학원을 보내기 싫은 엄마들'의 이야기를 팟캐스트로 들은 적이 있다. 듣고 있다 보니, 아이와 찬찬히 호흡을 맞추며 잘하고 있는데 '엄마표 영어'가 뭐길래 '엄마표 영어는 부담스럽다' 하는지 물었다. 촘촘한 로드맵을 따라가며 읽어야 하는 책,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 부담스럽다고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집에서 아이 영어를 해주자 하면, 이미 넘사벽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은가보다.


일타강사 아니어도,

언어천재 아이를 둔 부모가 아니더라도

아이와 함께 달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면 되지 않을까.

매일 조금씩, 방법을 찾아 나가면

함께 크지 않을까.

최소한,

아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동생아, 미켈란젤로님이 뭐라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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