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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Feb 09. 2023

실패의 패턴 끊어내는 방법

수업료 먼저 내기?

이번 한 번만 그렇게 행동하고 다음부터는 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지금 하는 그 행동은 나중에도 또 할 테고, 아마 먼 과거에도 했을 것이다. 인생의 고통스러운 진실은 나를 뭉개버릴 이 바퀴 밑으로 나를 밀어 넣은 것이 바로 내가 내린 의사 결정들이라는 사실이다.

체사레 파베세(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


고시원을 매수하고 매도하기까지, 나를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매도 계약을 하기 전까지, 나를 지켜줄 오른 팔이라 생각했던 이에게 뒤통수를 세차게 얻어맞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금전적 손해도 쓰라렸지만, 인간에 대한 실망에... 마음속 한 구탱이가 어지간히 아팠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박노해 시인은 노래했건만. 그는 내게 '타인은 지옥이다'의 정수를 맛보게 해 주었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THE LAWS of HUMAN NATURE>

인간 본성의 법칙

Robert Greene 로버트 그린.

Thanks a million! Mr. Greene.


경전 못지않게 두툼한 책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는다.

한 인간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한 마음을 다스리게 해 준 글 귀가 있다.

"타인과 교류할 때 사람들은 마치 달과 같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당신에게 오직 한쪽 면밖에 보여주지 않는다...누구나 자신이 가장하는 바로 그 사람으로 늘 보일 수 있게..."(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그는, 그저 자신의 이익을 최대치로 가져가려 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간 본성에 충실한 일인이었다.

나는, 그저 그가 보여 준 한쪽 면만 보고 그를 믿어버린... 우매한 인간 본성에 충실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 인간'은 대체 어떤 인간이었는지 파악하고 싶었는데, 나란 존재가 대체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대한 변명과 항변이 통하지 않는 냉철한 교수님과 마주 앉은 느낌이었다.  


"우리 삶에는 어떤 패턴, 특히 실수나 실패에서 눈에 띄는 그런 패턴이 있다."

저자는, 이것을 '성격(character)'이라는 개념으로 보았다. Character의 어원이 '무엇을 조각하거나 도장을 찍는 도구'라는 것이 재미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미안해하는 엄마가, 다음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허나, 그 약속을 지키기 힘든 이유가 다 있었다. 이미 내 '성격'에 새겨져 있는 '불같음'. 그렇다면, 비슷한 상황에서 도장을 찍듯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운명인가. 본인도 원치 않는 '성격', 교환이나 환불받는 방법 어디 없을까?


이런 방법은 어떨까.

첫째, 신은 우리를 그렇게 나약하게 창조하지 않았음을 믿어보자. (포교 활동 아님)

둘째, 성격이 만들어진 경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셋째,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


성격이 만들어지는 경로?

저자는, 성격을 형성하는 세 개의 층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층, 유전.

두 번째 층, 양육자와 형성한 애착의 유형.

세 번째 층, 살아가면서 경험한 일들과 습관.


실수나 실패의 반복을 하다 보면, 생전 쳐다보지도 않던 철학관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운명론에 맡기고 싶은 맘이 굴뚝같아진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 달콤한 위로가 되지 않는가. 그러나,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 책임을 누가 대신해 주었던가? 그래서 스스로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유전으로 그렇게 물려받았으니, 어쩔 수 없는 것도 물론 존재한다. 그러니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첫 번째 방법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열에 아홉이 맘에 들지 않는 유전자일지라도, 신은 당신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강력한 유전자 하나를 틀림없이 준비해 두었으리라 믿는다. (신은 내게 얇은 귀와 충동적 마음을 주는 동시에 말랑한 회복 탄력성도 함께 내려 주셨다.)


유치원에서 어버이날 선물로 만들어 놓은 아이의 글귀에, '지금까지 죽지 않게 잘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가 눈에 띄어 박장 대소한 적이 있다. 일곱 살 아이에게, 부모님은 생명의 은인이었다. 이제 와서 본인의 성격이 맘에 안 든다고 부모탓을 하면 뭐 하겠나. '이 모양'으로 키워 놓은 것에, 손해배상 청구라도 할 셈인가. 안 고쳐지는 성격이라고 자신의 못남만을 탓한들 또 개선이 되나. 그래서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를 설계할 힘을 키워야 한다.


이미 여러 번의 실패로 자신의 인생이, 남의 잔칫상 끝나고 남은 밑바닥 맥주처럼 쓰고 역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제한된 경험이지만) 고시원에서 오래 거주하는 나이 든 분들의 공통적인 철학 중의 하나는, '그거 해봤는데 안된다.'였다. 엉망진창 더러운 재활용 쓰레기통을 새로 사서 정리하고 깔끔하게 청소를 해 놔도, '그렇게 해봐야 얼마 못 간다.', '애써 봐야 소용없다'였다. 지독한 염세와 회의가 깊이 박혀, 그들의 일상에 염세와 회의를 찍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몸이,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내도 그들은 술, 담배, 인스턴트커피와 편의점 도시락을 끊지 못했다. 두려워서일까 완고해서일까. 그것만이 남은 인생의 낙이라는 강력한 습관 때문일까.


이 세상은 성공한 사람들의 말과 방법에만 눈과 귀가 쏠리는 법이다. 이 글을 쓰면서, '너나 잘하세요' 란 생각이 열두 번도 더 들락날락한다. 그걸 알면서도 끼적이는 이유는... 사실은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도 인스타도 지속성이 없던 내게 잘 맞는 글쓰기 반려 플랫폼을 만나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Anyway.

'그 인간' 덕분에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래도 그분은 수업료를 과하게 챙겨갔다.

수업료 뽕을 뽑아야겠다.

이제.

실패의 패턴은 반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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