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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그램 Nov 17. 2018

숙성육, 잘 가꾸어진 고기

숙성육을 잘 표현하려면


  강의실에서 고기를 배웠다. 고기에 대한 온갖 문제가 나열된 시험지도 풀었다.  1. 도축 후 지육의 Ph 변화에 따른 보수력을 설명하시오.  2. 고기의 색이 붉게 나타나게 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시오.  3, 4... 


  운 좋게 아는 내용이 시험에 나오면 기뻐했다. 반면에 분명히 아는데, 몇 시간 전에 봤는데, 답이 기억에 나지 않을 때는 속상해했다. 내 머리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기말고사가 끝나고 고생한 나에게 상을 줘야 할 시간. 대학생들로 북적이는 1인분에 3900원 냉동 삼겹살집에 간다. 맛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고기는 재미있었다. 비록 내가 먹는 고기는 수입산 냉동 삼겹살이었지만.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고리타분할 것 같은 전공 책에 먹고 싶은 고기에 대한 내용이 가득하다니? 신선하다! 무엇보다도 고기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내가 마치 고기 전문가의 후예라도 된 듯한 착각을 일으켰는데, 이것은 내가 고기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1% 고기를 추구하는 온라인 정육점이라는 슬로건의 고기 회사, 육그램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이곳에서의 나는 고기에 대한 전공 지식만으로 우리가 판매하는 고기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먹어본 적이 없어서. 특히 ‘숙성육’은 더욱 어려웠다. 나는 그것을 먹어 본 적은 당연히 없고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다.     


  맛을 상상하기 어려운 숙성육.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잘 설명하고 싶고 사람들이 이걸 먹어 보고 싶게 만들고 싶다. 약간의 욕심을 부려보자면 소비자들이 숙성육을 취향대로 고를 수 있도록 일종의 공식(?) 같은 것들도 만들어보고 싶다.     


충남 부여에 위치한 서동한우 본점과 서초동 에이징룸

  

  그래서 숙성 분야 최고의 전문가분들을 만나 뵙고 숙성육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그분들과 함께 숙성육의 맛과 성분을 과학적으로 표현해보면 좋을 텐데라는 기대와 함께였다. 나는 몇 가지 인터뷰를 준비했는데 그 질문들은 대강 이렇다.      


Q1. 숙성을 중단하게 되는 과학적 기준이 있나요? 
Q2. 숙성 기간 별 고기의 변화를 데이터로 나타낸다면요?
Q3. 드라이 에이징에는 어떤 미생물을 사용하며 그것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요.

                                                                          ⋮     


  대표님들의 답변은 일치했다.  

   


  "숙성육은 공산품이 아닙니다"



  직접 만든 고기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답변이다. 애초부터 숙성육은 맛이든 성분이든 어떠한 기준에 짜 맞추어질 수 없는 것이다. 숙성육이 제조되는 과정은 자동화 또는 기계화가 불가능하고 오로지 수작업이 필요하다. 고기의 부위, 고기의 상태, 고기의 등급에 따라서 숙성 환경을 알맞게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알맞게 조절하더라도 그 맛과 성분을 완벽히 평준화하여 공식처럼 표현해내기는 어렵다. 고기는 소 또는 돼지라는 생물로부터 나온다. 그 생물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먹고 자랐느냐에 따라서 육질은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서동한우의 건조 숙성고


  숙성육의 맛은 만드는 사람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 숙성육은 만드는 사람만이 가진 노하우(know-how)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겠다. 매일매일 관심을 받고 만들어진 고기라는 측면에서 조금 더 감성적으로 표현해본다면, 잘 가꾸어진 나무 정도가 좋겠다!     


  숙성육을 체계화하겠다? 수 년 간에 걸친 노하우의 결정체를 고작 1시간의 인터뷰로 내 의도에 맞게 끼워 맞추려고 했던 것이 살짝 부끄럽다. 


 

  그럼 이제부터는 내가 맛본 숙성육에 대한 후기이다. 충남 부여에 위치한 서동 한우에서 맛본 한우 2등급 60일 드라이에이징 등심에 대한 후기다.      


  겉만 아주 살짝 익힌 고기 조각을 한 입 베어 물어보았다. 고기가 깔끔하고 쉽게 잘렸다. 순간 만화 속 주인공이 커다란 뼈 고기를 통째로 뜯어먹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이 가능한 건 주인공의 치아가 유독 튼튼해서 이거나, 만화 속 고기가 드라이에이징 된 고기이거나. 둘 중 하나겠다.


  서동 한우의 고기는 오래 익힐수록 육즙이 충분히 느껴지고 식감은 더욱 부드러워졌으며 향도 강해졌다. 오래 익히면 딱딱해진다는 말은 서동 한우의 고기에서만큼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향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반적인 고기의 육향과는 전혀 다르다. 블루치즈 또는 익힌 버섯에서 나는 향이랄까?(매우 주관적)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맛. 새로운 맛은 왠지 짜릿하고 신선한 자극이 된다.      


  오, 쓰다 보니 이 글이 숙성육을 가장 잘 설명하는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론

: 숙성육을 먹어봅시다


  여러분, 맛보세요. 요즘엔 잘 가꾸어진 맛, 그 맛을 찾기도 맛보기도 힘들잖아요? 맛이 어떻든 그건 일단 먹어보고 판단할 문제입니다. 맛있게 잘 구워진 숙성된 고기는 만드는 사람의 세심한 정성과 애정 그리고 노하우 없이는 식탁에 오르지 못했을 고기입니다.  



글_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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